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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붉은 땅의 진혼곡
갇힌 섬/ 능욕의 밤/ 대왕고래/ 고래고기/ 결사항전 대반격/ 미군 수송선 ‘리버티호’/ 요동치는 바다/ 진혼곡 다시 핀 동백 2부 다시 불려간 이름 자두나무의 유월/ 낙동강 전선/ 감자의 맛/ 푸른 영도다리/ 흔적/ 휴전/ 돌아온 사람/ 조사원/ 에필로그 작가의 말 추천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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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13
사람들은 먼저 생각을 줄였고, 그다음 말수를 줄였다. 그 들은 환초 중심부에 건설 중인 비행장 활주로에서 강제 노역을 했다. 조선에서 끌려온 인원에 일본군까지 합하면 백 명이 넘었다. 이들이 처음 섬에 도착했을 땐 굴 밖에 막사를 쳐 지냈다. 하지만 미군의 공습과 때때로 불어닥 치는 강풍에 숙소로 쓰기 어려웠다. 그렇게 시작한 동굴 생활이 벌써 3년째였다. p81 “오늘 배급한 식량과 관련해 보고 드리려고 합니다.” “고래고기 말인가?” “그렇습니다, 대좌. 실은 그 고기는 고래가 아니라….” “고래가 아니라고? 그럼 뭐란 말인가? 그렇게 맛 좋은 고기가 바다에 있었단 말인가?” 사카이가 놀란 눈으로 이토와 이시이를 번갈아 쳐다봤다. 세 사람 사이에 불안한 침묵이 흘렀다. p168 예산으로 돌아갔던 장순팔은 한 달을 채 버티지 못하고 고향을 떠났다. 그 역시 동영처럼 동네 사람들로부터 손가락질을 받았기 때문이다. “돈에 눈이 멀어 왜놈들 즌쟁 도우러 간 놈이 무슨 염치 로 돌아온겨.” 엄밀히 말하자면 그는 강제로 끌려간 건 아니었다. 어느 날, 면서기 최 씨가 마을회관에 목수들을 죄다 모아놓 고 감언이설을 늘어놨다. “일급과 월급 특별수당을 넉넉히 줄 것이며, 돈은 부모와 가족에게 등기로 보낼 수 있게 해주겠다. 일이 끝나면 퇴직금까지 받아 돌아와 풍족하게 살 수 있다”고. p325 진수는 그제야 알았다. 동영이 증언을 망설였던 이유는 죽음의 공포 때문만이 아니었다는 걸. 자신의 비극이 타인들에게 단순한 ‘조사서’의 활자로 박제되는 게 두려웠 으리라고. 하지만 오늘, 두 사람은 빵을 나누며 녹음기가 담지 못한 주파수를 맞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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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에서 지워진 사람들을 다시 불러내다
“그날 우리가 먹었던 건 고래고기가 아니었다.” 태평양전쟁이 한창이던 시절, 일본군에 의해 머나먼 마셜제도의 밀리환초로 끌려간 조선인들이 있었다. 고향을 떠나 낯선 섬에 도착한 이들에게 기다리고 있었던 것은 강제노동과 굶주림, 폭력과 죽음이었다. 전쟁은 끝났지만 그들의 이야기는 끝나지 않았다. 살아남은 사람들은 고향으로 돌아왔지만, 자신이 겪은 일을 쉽게 말할 수 없었다. 죽은 이들의 이름과 삶은 기록에서 희미해졌고, 세월이 흐르면서 그들의 존재마저 역사 속에서 잊혀졌다. 장편소설 『밀리환초』는 바로 그 잊힌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시 불러낸다. 류재민 작가는 역사적 자료와 증언을 바탕으로 밀리환초에서 벌어진 비극을 한 사람 한 사람의 삶으로 되살려냈다. 그들은 역사책에 등장하는 숫자나 피해자 명단이 아니다. 누군가의 아버지와 아들이었고, 친구였으며, 언젠가 고향으로 돌아가 평범한 삶을 살아가기를 꿈꾸었던 ‘사람들’이었다. 소설은 전쟁의 참혹함을 보여주는 데 멈추지 않는다. 굶주림 속에서 인간의 존엄을 지키려 했던 사람들, 서로에게 의지하며 하루를 버텨낸 사람들,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도 살아남아야 했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더 따라간다. 그리고 묻는다. 우리는 왜 그들을 기억하지 않는가. 『밀리환초』에서 ‘기억’은 과거를 돌아보는 행위에 머물지 않는다. 기억한다는 것은 누군가의 삶이 있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일이며, 그 사람이 살아온 시간과 존엄을 되찾아주는 일이다. 그렇기에 이 소설은 전쟁에 관한 이야기이면서 동시에 인간에 관한 이야기다. 상처는 시간이 흐른다고 저절로 사라지지 않는다. 그러나 기억하고 이야기하는 순간, 상처는 새로운 의미를 얻기도 한다. 『밀리환초』는 그 과정에서 용서와 화해의 가능성을 바라본다. 용서는 잊는 것이 아니라 기억하는 데서 시작될 수 있기 때문이다. 류재민 작가는 말한다. “소설은 허구이다. 있을 법한 이야기를 쓰는 글이다. 하지만 내가 쓴 소설은 ‘진짜 있었던’ 이야기다.” 이 한 문장에는 『밀리환초』를 쓴 이유가 담겨 있다. 기록에 남지 못한 사람들의 삶을 기억하고, 잃어버린 이름을 다시 불러내며, 그들이 끝내 이루지 못한 꿈을 오늘의 독자에게 전하는 것. 『밀리환초』는 그렇게 역사의 뒤편에 남겨진 사람들에게 늦게나마 말을 건넨다. 당신들을 잊지 않았다고. 그리고 우리에게 조용히 묻는다. 우리는 지금 무엇을 기억하고 있는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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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어떤 힘에 의해 고향을 떠나야 했으며 무엇을 빼앗겼는지 밝히고, 그들의 존엄을 회복하는 일이 먼저다. 피해 당사자의 목소리를 직접 듣기 어려워진 지금, 남아 있는 기록과 유족의 기억을 살피고 이를 다음 세대에 전하는 일은 더욱 절실하다. 이 책을 통해 잊힌 이들의 이름을 다시 부르고, 살아 돌아온 이들의 오랜 고통을 헤아리며, 아직 밝혀야 할 진실에 눈길을 보낼 수 있을 것이다. 그들의 목소리를 직접 듣기에는 이미 너무 늦었지만, 그 삶마저 망각 속으로 떠나보낼 수는 없다.” - 조건 (동국대 역사교육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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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에서 역사는 연도와 사건의 기록으로만 존재하지 않는다. 배고픔을 견디는 한 사람의 몸이 되고, 고향에 두고 온 가족을 그리워하는 마음이 되며, 절망 속에서도 살아남고자 서로의 손을 놓지 않았던 평범한 사람들의 얼굴이 된다. 그래서 『밀리환초』를 읽는 일은 과거의 사건을 아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 우리는 그 시대를 살아야 했던 한 인간의 두려움과 절망, 그리고 마지막까지 놓지 않았던 삶의 의지를 마주하게 된다.” - 이희성 (단국대 문화예술콘텐츠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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