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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일본군 위안부’에 대한 두 가지 시선
몇 년 전, 일본군 위안부를 소재로 누드사진을 촬영한 여배우가 여론의 호된 공격을 받았다. 공개적으로 사진과 필름을 불태우고, 여배우는 ‘나눔의 집’에 찾아가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에게 눈물로 사과를 했으며 결국 몇 년 동안 연예활동을 중단해야 했다. ‘어떻게 감히 역사의 비극을 이렇게 이용할 수 있느냐’는 언론과 대중들의 분노는 결코 작지 않았다. 최근, 일본군 위안부이셨던 박두리 할머니가 돌아가셨다. 다큐멘터리 <낮은 목소리> 연작을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잊지 못할 할머니. 강한 생명력과 의지로 주위를 밝혀주셨던 분의 가슴 아픈 죽음 앞에, 여론은 그리 크게 반응하지 않았다. 일본군 위안부라는 문제에 대한 우리의 이중적인 시선을 보여주는 두 가지 사례다. 누구나 알고는 있으되, 날마다 기억하거나 되새기고 싶어 하지는 않는다. 분명 손톱 밑에 박힌 가시지만, 오래 되어 그 통증이 무뎌진 까닭에 그역사를 증언하는 여성적 서사의 힘 이 소설은 식민지시대의 종군위안부 문제를 다룬 거의 최초의 소설이라고 할 수 있다. ‘종군위안부’하니까 아마도 대부분의 독자들은 어둡고 칙칙하며 반복적인 과거사의 한 장면을 떠올리게 될 것이다. 그런데 아니다. 재미있고 쉽게 읽힌다. 그동안 이 주제가 쉽게 서사화될 수 없었던 것은 그로 인한 트라우마를 치유할 적절한 언어를 찾기 어려웠기 때문일 것이다. 이 소설은 진솔한 언어를 통해 그 고통의 상황들을 생생하게 드러낼 뿐만 아니라, 여성적인 목소리로써 상처를 극복하는 따뜻하고 부드러운 서사의 힘을 흥미롭게 보여준다. 이 소설의 주인공 마당순이가 그날의 지옥 같은 상황을 견딜 수 있게 한 힘은 무엇일까. 그것은 아마도 여성적인 사랑의 힘일 것이다. 즉, 혼절 중에 모국어(어머니)를 내뱉는 남자(소오세키)에 대한 사랑과, 죽어간 여자들을 기억하며 목각인형들에 새겨 넣은 자매애적 사랑이리라. 놀라운 것은 그런 여성적인 사랑의 힘이 죽음의 공포에 떠는 일본 병사들의 불안감마저 치유하는 힘을 발휘하고 있는 점이다. 정글 속에서 목각인형 용으로 나무를 하며 부르는 아리랑은 분명 민족의식을 드러내고 있지만,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인형들이 걸린 나무는 일본 병사들에게까지 소원목으로 불려진다. 여기서 여성적인 사랑이 깃든 민족의식은 원한 같은 복수심으로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전쟁과 학대의 트라우마를 극복하는 보다 유연한 힘으로 드러남을 볼 수 있다. 물론 그렇게 견디며 살아남은 여자들이 자신들의 내면의 상처를 치유한 것은 아니며, 우리의 역사적 상처가 지워진 것도 아니다. 오마당순이는 절망의 순간마다 어릴 적 할머니가 들려준 이야기들을 떠올린다. 그처럼 이 땅의 마당순이들의 생존 이유는, 이제 그들이 자신들의 이야기를 전해줄 차례라는 것이며, 역사를 증언하는 여성적 서사의 힘은 바로 여기에 있다고 할 수 있다. 그 이야기를 경청하며 역사의 상처를 치유하는 일은 우리들 자신의 몫일 것이다. ―나병철(한국교원대학교 교수, 문학평론가) 가시를 뽑으려 하지는 않는다. 한일 간의 이슈나 계기가 있을 때면 갑자기 위안부 할머니들은 언론의 주인공이 된다. 그러나 그 한순간이 지나면 그뿐이다. 할머니들은 ‘우리’ 눈에 잘 띄지 않는 곳에서 조용히 살고 계시는 역사의 화석 같은 존재로 간주되고 있다. 2... 육체에 새겨진 삶은 현재적이다 우리가 일본군 위안부에 대해 어떤 인식을 가지고 있든, 그분들의 삶은 생생하고 구체적이다. 그들의 경험은 역사 속에 묻혀서 지워지는 것이 아니라, ‘육체’에 새겨진 현재적인 것이다. 이제껏 누구도 위안부 할머니들을 현재성 속으로 되살려내지 못했다. 그분들을 취재해서 생산된 영상물이나 문학 작품들은, 그들의 과거와 우리의 역사를 고발했다. 물론 그런 작업 역시 필요하다. 하지만 ‘기억은 영원히 현재적이다’. 몸에 새겨진 기억은 몸과 함께 영원하다. 얼마 전, 일본군 위안부의 동원 및 모집의 주체에 대한 논쟁이 있었다. 정부 차원의 동원령이 아니라 민간인 모집책이 있었다 아니다의 문제로 한동안 전문가들 사이에 논란이 있었다. 하지만 그런 논란 역시 일본군 위안부 문제의 본질을 비껴가는 것이라 볼 수 있다. 십대에서 이십대에 이르는 이 땅의 여성들이 본인의 의지에 반하여 종군위안부 생활을 해야 했고, 그 역사와 기억은 개인의 영혼과 육체에 지울 수 없는 상처를 새겼다. 모집책이 있었느냐, 금전적인 대가를 받았느냐는 논쟁은 일본군 위안부들의 문제를 낡은 서류철 속으로 집어넣는 것과 같다. 일본군 위안부라는 문제는, 역사의 기록이기 이전에 개인의 몸과 영혼에 새겨진 기억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3... 흥미로운 서사의 미덕, ‘날아라 금빛 날개를 타고’ 일본군 위안부 출신 할머니들이 매주 일본대사관에서 수요집회를 연지 700회(2006년 3월 15일)가 되는 이즈음, 그들의 삶을 새로운 시각에서 본격적으로 다룬 장편소설 ‘날아라 금빛 날개를 타고’가 출간되었다. 종군위안부에 대한 소설이라고 하면 으레 굴곡지고 어두운 삶을 다룬 논픽션에 가까울 것이라는 선입견을 가지기 쉽다. 하지만 ‘날아라 금빛 날개를 타고’는 그런 선입견을 가볍게 벗어난다. 영화나 드라마를 보는 듯 속도감 있고 흥미롭게 펼쳐지는 서사, 생명력으로 가득 찬 매력적인 등장인물, 구체적이고 다양한 사건……. 이 소설은, 일단 책을 손에 잡으면 다 읽을 때까지 놓을 수 없는, 장편소설만의 매력과 미덕을 충분히 갖춘 작품이다. 그리고 그 힘은 바로 ‘서사의 힘’이다. 서사가 실종되었다는 문제 제기가 심심찮게 일어나고 있는 우리 문단에서 오랜만에 곡진하고 흥미진진한 서사의 힘을 보여주는 작품이 바로 ‘날아라 금빛 날개를 타고’이다. 특히 이 작품은 여성작가가 들려주는 여성의 생생하고 구체적인 삶이라는 점이 돋보인다. 만약 우리가 어려서 할머니에게서 들었던 흥미로운 옛날이야기들이 우리 몸을 이루는 서사의 바탕이 되었다면, ‘날아라 금빛 날개를 타고’는 바로 그 원형적인 서사를 되살려대고 있다. 4... 마당순이, 불꽃, 달래깨비, 연꽃 ‘날아라 금빛 날개를 타고’의 주인공은 복사꽃 피는 마을에서 태어나 자란 당차고 야무진 오마당순이다. 이름처럼 마당에서 태어나, 하고 싶은 공부도 마음껏 할 수 없었던 일제 강점기의 소녀 마당순이. 그러나 그녀에겐 특별한 것이 있었다. 눈동자 가장 깊은 곳에 뜨거운 불씨 하나를 간직하고 있었던 것이다. 시대와 상황의 거센 물결에 마당순이의 삶은 유린당한다. 그 과정에서 마당순이라는 이름은 타인에 의해 하루에로, 아키코로 불리운다. 열여섯 나이에 속아서 종군위안부로 가게 된 마당순이는 처절한 삶에서 자신을 발견한다. 전쟁과 역사라는 거대한 흐름이 한 인간의 삶과 한 여성의 몸을 어떻게 짓밟는지에 대해 그녀는 두 눈을 똑바로 뜨고 지켜본다. 마당순이는 그러나, 그 험한 경험에 패배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녀는 이 죽음의 현장에서 ‘생명’와 ‘영혼’을 위로한다. 태평양 전쟁의 한가운데, 남양의 어느 섬에서 그녀와 위안부 소녀들이 만들어내는 ‘소원목(所願木)’은 이 소설에서 가장 아름다우면서도 강렬한 이미지다. 생명의 강인한 불씨를 품은 소녀, 달래깨비처럼 절대 죽지 않고 모질게 살아남아 꽃을 피우는 소녀는 결국 전쟁과 죽음, 성적 착취라는 어두운 진흙 속에서 연꽃을 피운다. 그간 우리가 많은 소설에서 만났던 여성주인공들은, 내향적이고 독백적인 여성이거나 또는 남성 작가의 자기 반영으로서 여성성을 찾기 어려웠던 여성이 많았다. 그러나 마당순이는 강인하면서도 매력적이고, 폭력 속에서도 생명을 희구한다. 그녀의 이런 모습은 바로, 굴곡 많은 역사 속에서 이 땅을 지켜온 한국 여성의 힘과 아름다움을 그대로 담고 있는 것이다. 5... 일본군 위안부는 흑백사진이 아니다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이 그동안 여러 매체에 재현된 모습은, 분노하거나 상처 입은 희생자였다. 물론 그런 모습도 위안부 할머니들의 일부분이다. 하지만 단선적인 하나의 이미지로 고착되기에는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의 삶은 훨씬 더 풍부하다. 그분들의 삶은 역사책이나 각종 기록 속에 등장하는 오래된 흑백사진 한 컷이 아닌 것이다. ‘날아라 금빛 날개를 타고’의 큰 장점 중 하나는, 종군 위안부들이 열여섯, 열여덟, 스무 살의 소녀들이었으며 그 나이에 어울리는 미래에 대한 희망과 사랑의 꿈을 간직하고 있는 여성들이었다는 사실을 생생하게 구현해냈다는 데에 있다. 일본군 위안부로 끌려갔던 소녀들이 경험했던 삶의 모습을 풍부하고 유려하게 묘사함으로써, 이들이 곧 우리 자신이나 우리 어머니, 또는 우리 딸들의 모습이라는 사실을 굳이 거창한 명제로 강조하지 않고도 성공적으로 보여준다. ‘날아라 금빛 날개를 타고’ 속에서는 이들이 겪어야 했던 일상의 하루하루가 손에 잡힐 듯이 펼쳐진다. 이들의 불안과 고통, 고민, 희망 등은 곧 우리의 그것이 된다. 비극이되 비극에 빠지지 않는 현실의 풍부한 힘. 이런 풍부함은 ‘날아라 금빛 날개를 타고’의 작가 고혜정의 이력에서 비롯된다고 보인다. 이미 십여 년 동안 수십 명의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을 직접 만나 수많은 시간을 함께 한 그녀의 경험이 없었다면 ‘날아라 금빛 날개를 타고’ 역시 평면적인 역사기록에 그칠 수도 있었을 것이다. 6... ‘날아라 금빛 날개를 타고’, 작가 고혜정. 말하지 않을 수 없었던 이야기들 십여 년이 넘는 시간 동안 중국, 필리핀, 일본 등지를 방문하면서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을 만나 인터뷰하며 자료를 축적해온 작가 고혜정은, 사실 한국정신대연구소 소장으로 더 유명한 인물이다. 사실 이 소설이 일본군 위안부에 대해 그녀가 생산해낸 유일한 결과물은 아니다. 고혜정은 그동안 종군 위안부와 관련된 증언집, 사진, 다큐멘터리 영상물, 논픽션 등의 작업을 꾸준히 해온 바 있다. 그런데 왜 구태여 그녀는 장편소설이라는 장르로 위안부 할머니의 삶을 이야기해야 했을까? “논픽션으로는 그들의 ‘이야기’를 고스란히 드러낼 수 없었다. 뭔가 미흡하다는 생각이 자꾸 들었다. 그것이 지금의 나, 우리와 어떤 상관이 있느냐고 스스로에게 묻게 되었다.” “그분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나 자신도 무척 괴로웠다. 외면하고 싶지만 해결하지 않고서는 온전한 삶이 아닌 상처들. 정면으로 그 상처를 들여다보자는 심정이었던 것 같다. 이 글을 스스로를 치유하고 싶어서 쓴 것이다.” 작가 고혜정의 이런 말은, 서사 장르가 가지는 치유와 위로의 기능을 보여준다. 왜 우리가 살아가면서 반복적으로 ‘이야기’에 집착하는가. 왜 끊임없이 어떤 형태로건 이야기를 만나려 하는가. 그리고 어떤 사건들은 왜 ‘이야기’가 아닌 형태로는 제대로 담아낼 수 없는가. 그런 질문에 대한 답이 바로 ‘날아라 금빛 날개를 타고’라는 장편소설이며, 이 소설이 보여주고 있는 수많은 미덕이기도 한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