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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그래서 인물화를 그리기 시작한 거야 나의 심장이 붓끝에 있다 여백에 숨어 있는 바람조차 그릴 수 있어 수천 번의 붓질로 그려낸 단 하나의 표정 너의 입술은 표정 앞에 서면 절벽 앞에 있는 것 같아 눈을 감는다는 건 내 마음의 불을 켜는 일 너의 얼굴 속에 내가 있다 눈 감고 세월을 먹어버리자 미소는 가장 간결한 너의 모습 그게 우리 얼굴이야 닫힌 눈 뒤에 있는 종이 속으로 너를 보낸다 에필로그 |
싹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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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반은 눈 감고 사는 일이다. 나머지 절반도 눈을 뜬 건 아니어서 너는 너의 눈 감은 모습을 스스로 볼 수가 없다. 나는 신이 부여한 그림 그리는 재주로 네가 눈 감고 있는 모습을 그린다. 너무 흔해서 생각할 필요도 없고 죽어도 볼 수 없었던 그 표정을 어느 날 문득 네가 보게 해 주겠다는 것.
화가로서 너를 위해 할 수 있는 가장 솔직한 시도, 눈 감은 안식을 책으로 엮는다.” “파리는 내게 한 번도 목욕탕이 있는 집을 허락하지 않았어. 에펠탑이 내려다보이는 몽마르트르 언덕 호텔 데자르 55호, 오지호 선생님도 묵고 가셨던, 아티스트의 혼들이 사는 유명한 방. 5층 창문을 열고 지붕으로 나가 쪽 대야를 굴뚝 사이에 놓고 에펠탑을 바라보며 체조하듯 목욕을 했었지. 농부의 아들이었고, 미학을 공부하지만 절대 가난은 피할 수 없으리란 걸 이미 알고 있는 미술학도에게 파리는 아름다움으로만 다가오진 않았어. 점점 프랑스도 잊히고 나이 들어 살아온 날들이 얼굴에 묻어날 즈음, 난 인물화를 그리기 시작한 거야. 눈 감은 안식을 만나기 시작한 거지. 이치를 몰라서 못 그리는 건 실력하곤 상관없어. 눈 뜨고 있다는 사실이 불편한 날도 있는 거야.” “물 없는 백사장을 천천히 미끄러지는 작은 배처럼, 그렇게 더디더라도 간절하게 나의 붓이 움직이길 바라지. 얼굴을 그린다는 건 누군가의 생애를 느낄 수 있어야 가능한 일이야. 화가의 심장이 붓끝에 있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일이지. 잠시 다녀가고 있는 이승의 한순간이지만 그림 속에서는 영원을 살 수가 있는 거야. 내가 너를 안다는 것은 하늘에 떠 있는 수많은 별 중에 단 하나의 별에 대해 생각하는 것만큼이나 신비한 일이지.” “눈 감은 얼굴을 그리기 위해서 수많은 고요를 깨우곤 하지. 벌들이 온갖 색의 꽃가루를 묻히고 한 방울 꿀을 만들어내듯 물감으로 단 하나의 표정을 그려내지. 그러기 위해 나는 밤이 새도록 눈을 부릅뜨고 일개미처럼 바쁘게 붓질을 하지. 붓질이 더딜 때쯤 눈을 감으면, 눈 감은 사람들 얼굴이 떠오르곤 해.” “눈을 감는다는 것은 불을 끈다는 것이지. 칠흑 같은 삶을 살아가는 눈 감은 얼굴들과 붓끝으로 만나 함께 지내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어. 너를 그리는 날, 나는 눈이 멀었지. 잠시 나를 위해 눈을 감아주었던, 붓끝에 걸린 평온한 너의 얼굴. 눈을 감는다는 건 내 마음의 불을 켜는 일이야.” “가슴 속으로 스미는 그림, 주인 없는 그림을 그릴 거야. 모두가 갖고 싶은, 단 한 장의 그림을 그릴 거야. 단 한 순간, 긴 호흡 뒤에……. 오늘도 종이 속으로 너를 보낸다.” --- 본문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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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라리 눈 감고 널 바라보고 싶다!”
- 화가 전병현이 그린 눈 감은 얼굴들, 눈 감은 염화미소展 눈을 감는다는 것은 불을 끄는 일이다. 두 눈 부릅뜨고 칠흑 같은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도 눈을 감을 때 비로소 평온해지기 때문이다. 눈을 감는다는 건 너와 내 마음의 불을 켜는 일이다. 화가는 눈 감은 얼굴만 그렸다. 얼굴을 그린다는 건 누군가의 생애를 느끼는 일이라고 생각하면서, 어떤 생애의 빛나는 한순간을 절묘하게 포착해낸다. 그리고 말한다. “육체는 사라지겠지만, 그림 속에서는 영원을 살 수가 있는 거야.” 화가 전병현이 그린 126장의 눈 감은 표정들, 그러나 눈 뜬 마음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