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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상치 못한 방문과거에서 온 유령희망 혹은 절망의 땅에서마음속에 묻은 고향새장 밖으로나를 닮은 눈뿌리내릴 곳지키지 못한 사람빈자리나는 그대를 사랑했네마지막 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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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속에 겨울을 품은 사람들은서로를 알아보기 마련이니까”고려인 4세와 탈북 벌목공, 시린 계절에 피어난 한 송이 꽃 같은 이야기소설 속 주인공들은 제 의지와 상관없이 고향을 떠나온 사람들이다. 소냐의 가족에게는 연해주에서 중앙아시아로 떠밀려간 고려인의 시간이 있고, 영호에게는 가난과 굶주림 속에서 외화벌이 벌목공으로 시베리아까지 흘러온 시간이 있다. 한 사람은 국적을 가지고도 어디에도 온전히 속하지 못하고, 다른 한 사람은 자신을 증명할 신분조차 없이 낯선 땅을 떠돈다. 서로 다른 역사와 삶을 건너온 두 사람은 처음 마주한 순간, 상대에게서 자신과 같은 눈빛을 발견한다. 같은 겨울을 품은 사람만이 알아볼 수 있는 ‘외로움’이었다.문득 소냐는 그런 눈을 본 적이 있음을 깨달았다. 세상 밖으로 밀려난 이방인 같은 그 눈빛은 자신이 거울을 볼 때마다 마주하던 것이었다. 처음 만난 낯선 남자는 바로 소냐 자신과 같은 눈을 하고 있었다. 143p저자는 고려인 강제 이주와 북한 해외 벌목 노동이라는 묵직한 역사를 전면에 내세우기보다, 그 시간이 한 사람의 눈빛과 몸, 돌아갈 수 없는 고향에 대한 그리움에 무엇을 남겼는지를 바라본다. 그리고 한 걸음 더 나아가 “돌아갈 땅을 잃은 사람에게 고향은 무엇인가”를 묻는다.이 소설을 관통하는 모티프 가운데 하나가 감자 화분이다. 소냐가 학교 책상에서 키우다 집으로 가져온 감자는 좁은 화분 속에서 뿌리를 제대로 내리지 못한 채 시들어 간다. 그 화분을 보며 영호는 사람이나 식물이나 저마다 제가 속할 곳에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어디에도 마음 놓고 뿌리내리지 못한 두 사람의 삶이 고스란히 겹쳐지는 장면이다. 영호와 소냐가 함께 감자를 온실 흙에 옮겨 심던 날, 그곳에 묻은 것은 감자만이 아니었다. 언젠가 제대로 뿌리내릴 수 있으리라는 희망도 함께였다. 그리고 그 희망이 조금씩 자라나던 어느 날, 영호는 고향이란 무엇인지에 관한 자신만의 답을 내놓는다.“만약에 운명의 장난으로 떠나야 하더라도 반드시 돌아올 거요. 당연히 돌아올 수밖에 없잖아. 소냐는 내 마음의 고향이니까.” 217p이 소설에서 고향은 지도 위의 물리적 좌표만을 뜻하지 않는다. 돌아갈 수 없는 땅 대신 자신을 알아봐 주는 한 사람의 마음이 고향이 되기도 한다. 시대에 떠밀려 이방인이 된 두 사람이 서로의 겨울을 알아보고 그 안에서 비로소 머물 곳을 발견하는 순간, 사랑은 시작된다.“우리는 서로의 이방인이 아니었을까각자의 겨울을 품은 채 같은 봄을 그리워하는”사랑에는 하나의 얼굴만 있지 않다시대가 만든 이방인이었던 소냐와 영호는 서로의 삶 안으로 끝내 들어가지 못한 이방인이기도 했다. 함께 거리를 걷는 일조차 숨겨야 했던 사랑, 그리고 25년 동안 닿을 수 없는 곳에서 서로를 그리워하기만 했던 시간…. 그런데 소설은 거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간다. 때로는 한 지붕 아래, 가장 가까운 사람 곁에서도 우리는 이방인이 된다. 오랜 친구로 시작해 부부로서 25년을 함께한 소냐와 파샤도 서로의 가장 깊은 상처까지 알지는 못했다. “나 이제 당신이 누군지도 잘 모르겠어.” 소냐의 말에 파샤는 “난 꽤 됐어. 당신을 모르겠다고 생각한 지가”라고 답하며, 오래 묻어 둔 외로움을 털어놓는다.“당신은 몰라. 우린…….”“같은 이방인이어서 통하는 게 있다, 뭐 그런 소리를 하고 싶은 거야?”파샤가 차가운 목소리로 소냐의 말을 가로막았다.“그거 알아? 우리 셋 관계에서 이방인은 항상 나였어. 당신이 나한테 마음을 닫아 버리는 바람에. 결혼 전에도, 후에도.”어리벙벙한 소냐를 무시한 채 파샤가 말을 이었다.“그러니까 당신 말은 틀렸어. 나도 잘 알아. 이방인이 되는 게 어떤 건지.” 327p이 순간 ‘이방인’은 디아스포라라는 역사적 배경을 넘어, 사랑하는 사람의 마음속에서조차 끝내 낯선 존재로 남을 수밖에 없는 인간의 근원적인 고독을 가리킨다. 오래 함께했다는 이유만으로 상대를 다 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사랑한다는 것은 상대를 완전히 이해하는 일일까, 끝내 알 수 없는 부분까지 품는 일일까.파샤에게도 그만의 겨울이 있다. 어린 시절에는 죽은 동생의 빈자리 때문에 부모에게 온전히 사랑받지 못한다고 느꼈고, 어른이 되어서는 죽은 줄 알았던 소냐의 첫사랑 영호의 기억과 다시 경쟁해야 했다. “죽은 사람의 빈자리는 엄청 힘이 세다”는 그의 말에는 그 오랜 외로움이 배어 있다.첫사랑의 강렬한 기억을 품어온 소냐와 영호, 오랜 세월 한 사람의 곁을 지켜 온 파샤. 소설은 어느 쪽이 더 크고 진실한 사랑인지 쉽게 저울질하지 않는다. 다만 “아빠의 사랑을 당연하게 여기지 마”라는 딸 옐레나의 말처럼, 첫사랑의 그림자를 좇느라 곁에 있는 사랑을 미처 보지 못했던 소냐에게 변함없이 자신의 곁을 지켜온 사람을 다시 바라볼 기회를 건넬 뿐이다. 이루어지지 않았기에 순백으로 남은 첫사랑이 있는가 하면, 설렘이 사라진 자리에 시간과 책임, 상처와 이해가 켜켜이 쌓여 단단해진 사랑도 있다. 품은 겨울은 저마다 다르지만 이들이 기다린 것은 결국 같다. 자신을 바라봐 주는 사람, 마음 놓고 머물 수 있는 자리, 이해받고 있다는 감각. 서로에게 이방인이면서도 같은 봄을 그리워한다는 역설 속에서 이 소설의 사랑은 한층 더 깊어진다.“제대로 떠나보낸 뒤에야 비로소 다시 살아갈 수 있다”떠나온 곳과 남겨진 마음 사이를 오래도록 응시하는 소설누구에게나 끝내지 못한 이별이 하나쯤 있다. 흐지부지 끊긴 관계, 건네지 못한 마지막 인사, 이유도 모른 채 사라져 버린 사람…. 『작별은 계절보다 늦게』가 마지막으로 향하는 곳도 바로 그 미완의 작별이다. 그러나 이 소설이 들여다보는 것은 한 남녀의 오래된 이별만이 아니다. 떠나온 고향과 잃어버린 사람, 서로의 마음에 닿지 못한 시간까지. 인물들은 저마다 끝내지 못한 무언가를 품고 살아간다.재회한 첫사랑과 다시 시작하는 이야기라면 익숙하다. 하지만 이 소설은 그 익숙한 문법을 비껴간다. 25년 만에 돌아온 영호가 바라는 것은 과거를 되돌리는 일이 아니다. 영호는 소냐에게, 떠나야 하더라도 반드시 돌아오겠다고 약속했었다. 그 약속을 지키기까지 그토록 긴 세월이 걸렸을 뿐이다. 두 사람은 오래전에 헤어졌지만, 그들의 작별은 그날 끝나지 않았다. 난데없이 찾아온 이별은 소냐의 마음속에서 온전히 애도되지 못한 채 남아 있었으니까. 시간이 모든 이별을 저절로 끝내 주지는 않는다. 그래서 제대로 작별하는 일은 사랑의 끝이 아니라, 사랑이 마지막으로 감당해야 할 ‘몫’에 가깝다. 그 작별 앞에서 소냐가 떠나보내야 하는 것은 영호 한 사람만이 아니다. 그와 함께한 청춘, 미숙했지만 순수했던 시절, 그리고 오랫동안 마음속에 붙들어두었던 과거의 자신까지. 영호가 마음을 담아 소냐에게 건넸던 붉은 포인세티아가 긴 세월을 건너 다시 한번 두 사람 사이에 놓인다.승차장으로 가는 길목엔 꽃집이 있었다. 별안간 영호가 가게 안으로 들어가더니 빨간 포인세티아 한 송이를 손에 들고나왔다. 어리둥절한 소냐에게 영호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읊조렸다. “마지막 꽃들은 더 사랑스럽네. 들판에 화려한 첫 꽃들보다도 우리 가슴에 슬픈 꿈들을 더 생생하게 일깨우는 마지막 꽃들. 그렇게 간혹 이별의 순간은 더 생생하네, 달콤한 만남의 순간보다도.” 348p떠나보낸다고 해서 사랑했던 시간이 사라지지 않는다. 기억은 여전히 삶의 한 자리를 차지한다. 다만 기억을 간직하는 것과 그 기억에 붙들려 사는 것은 다르다. 이 소설이 말하는 애도는 잊는 일이 아니라, 사랑했던 시간을 온전히 삶 안에 놓아둔 채 다시 오늘을 마주하는 일에 가깝다. 그래서 이 이야기의 끝에는 과거의 부정도, 어느 한 사랑의 소멸도 없다. 오래된 사랑은 오래된 사랑대로 남고, 늘 곁에 있어 미처 알아보지 못했던 사랑의 소중함도 조금이나마 알게 된다.계절은 때가 되면 어김없이 바뀌지만, 누군가를 사랑한 마음과 잃은 슬픔은 그렇게 제때 끝나지 않는다. 그러나 늦더라도 제대로 작별하고 나면, 우리는 거기서부터 다시 살아갈 수 있다. 『작별은 계절보다 늦게』는 저마다 가슴에 겨울을 품고 살아가는 이들에게 건네는 조용한 안부다. 아직 겨울의 한가운데일지라도, 어딘가에서 봄이 오고 있을지 모른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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