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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1 선물 2 탈출 3 만남 4 이직 5 휴가 6 계약 7 거래 8 변경 9 성탄 10 신년 11 나락 12 부탁 13 불화 14 감정 15 변화 [2부] 16 의심 17 혼돈 18 망상 19 사랑 20 의문 21 현혹 22 연민 23 고백 24 각성 25 진화 26 또 다른 선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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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크리스마스잖아. 이곤은 안젤리나에게 받은 능력을 울고 있는 여자에게 선물하기로 결심했다. 몇 년이나 지났지만, 써먹어 본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제대로 작동하는지도 알 수 없었다. 이렇게 테스트해 보는 거지 뭐. 이곤은 자기 오른 손바닥에 혹시 땀이 났을까 싶어 티슈로 쓱쓱 닦은 뒤 자리에서 일어나 여자에게 다가갔다. 그러고는 얼굴을 가리며 울고 있는 여자의 손목을 확 움켜쥔 뒤 소리쳤다. 나현 씨, 얼굴 가리면 내가 모를 줄 알아? 여자는 화들짝 놀라 이곤을 쳐다보았다. 이곤은 움켜쥔 여자의 손목에서 재빨리 DNA를 흡입했다.
---p.17 저는 저주받았어요. 그건 또 무슨 헛소리야? 진짜예요. 제가 말해도 못 믿으시겠지만, 제가 저주를 받아서 그래요. 이곤은 평소 같으면 이딴 헛소리를 당연히 무시했을 것이다. 그러나, 요빈이 어딘지 모르게 이상하다는 걸 확실히 느꼈기 때문에 궁금증이 생겼다. 누가 너를 저주했는데? 저는 악마를 만난 적이 있어요. 악마를 만났다고? 네. 못 믿으시겠지만 진짜예요. 아니야. 믿어. 이곤의 말에 오히려 요빈이 깜짝 놀랐다. 제가 악마를 만났다는 걸 어떻게 믿어요? 나는 천사를 만난 적이 있거든. ---p.45 이곤의 계획은 성공이었다. 남자들은 하루가 멀다고 가게를 찾아왔다. 이곤은 단골과 같이 온 손님과 악수하며 그들의 DNA를 흡입했고, 그 DNA를 또 옆 테이블의 손님들에게 주입했다. 가게에서 서로 눈이 맞은 손님들은 같이 있기 위해 술과 안주를 더 주문했고, 며칠 후 입소문을 타고 몬트리올피넛갤러리는 화곡동 명물이 되었다. SNS에도 사진과 영상들이 끊임없이 올라왔다. 그래. 안젤리나가 이 땅에 사랑을 퍼뜨리면 로또 당첨되게 해 준다고 했잖아. 이곤은 추운 2월 말 가게 앞 눈 쌓인 거리에 줄 서 있는 사람들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로또 2등 당첨금은 우습게 벌겠네. ---p.164~165 악마도 천사처럼 날개를 보이게 할 수 있나요? 카페에서 보여 드리긴 좀 힘들겠네요. 죄송합니다. 그런데 진짜로 물어보고 싶은 게 있는데요. 천사도 거짓말을 해요? 이곤의 질문에 하다드는 피식 웃었다. 거짓말은 인간만 합니다. 천사도, 우리도, 창조주도 거짓말을 안 합니다. 거짓말은 약한 인간들이나 하는 겁니다. 이곤은 이상하다는 듯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천사가 저한테 능력을 줄 때 안 아프다고 했거든요. 그런데 엄청 아팠어요. 하다드는 고개를 끄덕였다. 천사들은 멍청합니다. 늘 자신이 옳다고 믿죠. 의심할 줄을 몰라요. 거짓말이 아니라 안 아프다고 믿었던 것뿐입니다. 천사는 거짓말을 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천사의 말이라고 다 믿으면 안 됩니다. ---p.183 천사님. 한 번만 기회를 주세요. 제가 다 수습할 수 있어요. 제가 어떻게든 수습해 볼게요. 어떻게? 네가 죽은 사람을 살리기라도 할 거야? 안젤리나는 자기 허리에 매달려 있는 이곤의 팔을 풀고 밀어 버렸다. 이곤은 아스팔트 바닥을 굴렀다. 요빈이 놀라 달려갔지만, 이곤은 벌떡 일어나 다시 안젤리나의 허리를 붙잡았다. 이곤은 팔꿈치가 까져 피가 흐르고 있는 줄도 몰랐다. 제가 뭐든 다 수습할게요. 제 욕심 안 부리고 천사님이 시키신 대로 사랑도 잘 퍼트릴게요. 그러니까 DNA 추출기는 제발 가져가지 말아 주세요. 저 이거라도 없으면 진짜 아무것도 아닌 놈이 돼요. ---p.252 인간은 육체가 있는 한 지구를 못 벗어납니다. 어항 속 물고기처럼 말이죠. 창조주께서 이 넓은 우주를 만들어 놓고 티끌만 한 지구에 인간들을 가둬 놓은 이유가 뭘까요? 고통을 주려고 그런 겁니다. 고통이 있어야 얻는 게 있고, 고통을 견뎌 낼수록 영혼이 무르익는 것이죠. 그러니 누구를 죽이거나 누구에게 고통을 주는 것은 복수가 안 됩니다. 그리고 복수 같은 건 하지 마세요. 좋을 게 없어요. 아이씨, 그러면 뭐 어쩌라고요? 알아들을 수 없는 하다드의 말에 비아는 짜증이 솟구쳐 소리를 질렀다. 그냥 반성이나 하게 하시죠. ---p.40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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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에 빠진 건 죄가 아니지만
사랑에 빠지게 한 건 죄가 된다? 아버지가 형에게 준 1억을 대신 보관하려다가 코인 사기에 연루된 이곤. 그는 마음을 달래기 위해 산책하던 중 우연히 한 천사를 돕는다. 그 대가로 특정인의 DNA를 추출하여 몸에 심으면 그 사람을 좋아하게 만드는 큐피드 능력을 얻는다. 잘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지인의 자영업을 돕기 위해 근처로 이사한 당일, 이곤은 월세 사기를 당한다. 원래 그 집에 살고 있던 요빈은 이곤에게 동거를 제안한다. 낯선 남자를 대뜸 집 안에 들이는 선택을 의아해하는 이곤에게 요빈은 자신이 악마와의 계약으로 매력을 빼앗겨서 문제없을 것이라 말한다. 게다가 요빈 역시 같은 집주인에게 전세 사기를 당한 상황. 동병상련의 마음으로 이곤은 제 능력을 이용해 요빈의 연애를 도와주려 한다. 그러나 애매한 힘은 득이 아니라 오히려 독이 된다. 요빈의 친구 비아와 그녀의 회사 대표 시훈, 요빈의 상사인 기정까지 관계가 엮이는 가운데 급기야 누군가 죽는 사달이 난다. 사건은 계속 꼬여만 가고, 결국 그들 앞에 천사와 악마가 다시 나타난다. 유쾌·상쾌·불쾌한 작가의 상상력을 마음껏 펼친 소설 『움켜쥐는 관계』 작가의 소설들은 전반적으로 주인공 한 명의 활약이 돋보이기보다 여러 명이 유기적으로 얽힌 스토리로 진행된다. 또 지문과 대사의 구분이 없음에도 구어체의 맛이 살아 있어 잘 읽힌다. 그중 가장 눈길을 끄는 특징으로 인물들이 뭔가를 얻는 결말보다는 뭔가를 잃은 후 수습하는 과정을 정성스레 보여 준다는 점이다. 남을 도우려다가 중범죄에 휘말렸지만 타개해 보려는 이곤, 비호감 인간이지만 매사 뚝심 있게 최선을 다하는 요빈, 남들을 깎아내릴지언정 엄격한 판단력으로 닥치는 사건을 정리하는 비아까지, 등장인물들은 한 방의 ‘역전’이 아닌, 동시다발적인 ‘역습’을 펼치면서 자신들의 하루하루를 긍정적으로 바꿔 나간다. 그렇게 마지막 장까지 강렬한 도파민과 흡인력을 채운『움켜쥐는 관계』는 전우진 작가의 ‘유쾌·상쾌·불쾌한 상상력’이 가히 무르익은 역작이다. 냉소와 풍자가 뒤엉킨, 지금까지 없던 블랙 코미디의 결정체로서 장르가 나아갈 미래의 이정표가 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