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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음을 참지 못하는 아기는 이제 어른이 될 수 없다
좀비는 심장이 뛰지 않고 잠도 자지 않으며, 머리가 완전히 부서지기 전까지 멈추지 않는다. 모든 감각이 퇴화한 대신 극도로 발달한 청각으로 살아 있는 것들을 사냥한다. 이런 세계에서 살아남는 법은 단 하나, 소리를 내지 않는 것이다. 사람들은 다쳤거나 약하거나 식량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서로를 버렸고, 가장 약한 존재들이 가장 먼저 빠르게 사라졌다. 그러던 어느 봄날, 현수와 호은이 머물던 집 앞에서 좀비들의 아우성 사이로 고문받는 동물 같은 소리가 들려온다. 좀비 세상에서 들릴 리가 없다고 여겼던, 아기 울음소리다. 열아홉 살 현수는 사격 선수 출신으로, 좀비가 되어 가던 경찰 엄마가 쥐여 준 권총을 지금도 허리춤에 차고 다닌다. 열네 살 호은은 어리다는 이유로 어른들에게 속고 버려지며 철저한 손익 계산으로 살아남았다. 2년째 서로에게 의지해 온 두 사람은 처음으로 갈등하게 된다. 현수는 아기를 지키고 싶어 하고, 호은은 황당한 소리라며 현수를 쏘아본다. 무엇을 취하고 무엇을 버릴지 빠르게 계산한 그 시선은, 지난 4년간 인간들이 서로에게 보여 온 바로 그 눈이다. 현수는 호은의 판단이 옳다는 것을 알면서도 물러서지 않는다. 『아포칼립스 베이비시터즈』의 첫 장면은 멸망해 가는 세계의 생존법을 정면으로 거스른다. 좀비물에서 소리는 곧 죽음이고, 약한 존재는 가장 먼저 버려진다. 그런데 이 작품의 주인공은 세상에서 가장 시끄럽고 가장 약한 존재를 품에 안기로 한다. 모두가 버리라고 말하는 생명을, 왜 현수는 지키려고 할까? 그리고 우리라면 어떻게 해야 할까? 계산하는 아이와 계산하지 않는 아이, 흔치 않은 버디물의 탄생 현수에게 아기 울음소리는 잊고 싶어도 잊을 수 없는 소리다. 중학교 사격부 에이스였던 현수는 경찰이던 아빠가 순직한 뒤, 일하는 엄마를 대신해 갓 난 동생을 돌봐야 했다. 그리고 좀비로 변해 가던 엄마는 현수에게 권총을 쥐여 주었다. 엄마가 부탁한 동생마저 잃고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던 현수를 붙잡은 것은 홍나무 무기를 깎던 목수 아저씨였다. 그렇게 괴롭거든, 다음에는 꼭 구하라고 다독여 주었다. 그로부터 몇 년 후 창밖에서 아기 울음소리가 들려왔을 때, 현수는 그 ‘다음’이 왔다고 생각한다. 호은은 정반대의 방식으로 살아남았다. 웃으며 다가오는 인간이 좀비보다 무섭다고 생각한다. 좀비들에게 포위된 자신을 구해 준 현수조차 의심했을 정도다. 무엇을 바라느냐는 호은의 질문에 현수가 “너는 나랑 같이 있어 주잖아.”라고 대답했을 때부터일까. 현수는 호은이 유일하게 믿고, 살아남기를 바라는 인간이다. 현수는 이상하다. 자기였다면 아무리 당장 쓸 일이 없더라도 홍나무처럼 귀한 것을 남에게 아무 대가 없이 주지는 않았을 것이다. 혼자 살아남기 급급해서 남에게 줄 여분의 마음 같은 건 사라진 지 오래였으니까. 그런데 현수는 그런 걸 가지고 있었다. 좀비 세상에서 더는 찾아볼 수 없는 드물고 귀한, 여분의 마음을. (40쪽) 다섯 살 차이가 나는 두 주인공은 언니와 동생이 아닌 동료로 등장한다. 심사위원들은 “버디물의 핵심은 두 인물의 ‘대등함’과 ‘다름’”이라며, “작가는 현수를 통해 호은의 가치를 수정하려 들지 않는다.”라고 짚었다. 현수는 현수대로, 호은은 호은대로 각자의 방식으로 선택하고 살아남으며 서로에게 스며든다. 살아남기 급급했던 호은은 현수에게서 손익 계산을 벗어난 ‘여분의 마음’을 배우고, 너무 쉽게 자신을 내던지던 현수는 호은을 통해 자기 목숨도 소중하다는 사실을 배운다. 두 사람의 확고한 신념, 갈등하면서도 서로를 존중하고 연대하는 뜨거운 우정은 독자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이상적이어서 더 이상한 곳, ‘과수원’ 아기가 탄 차량의 내비게이션에 남은 단서를 따라, 현수와 호은은 소문 속 안전지대인 ‘과수원’을 찾아 나선다. 과수원은 정말로 존재했고, 지하 12층까지 이어진 복합 안전 가옥에서 백여 명의 사람들이 분홍빛 인공 하늘 아래 살고 있다. 과수원장은 그 아기가 두 달 전 납치되었던 자신의 딸이라며 거듭 고마움을 전하고, 현수와 호은은 과수원에 살도록 한다. 그러나 과수원은 이상적이어서 더 이상한 곳이다. 밤마다 신경을 긁는 기계음과 잦은 지진, 바깥세상에 대해서는 묻지 않는 사람들, 어린아이들 사이에 떠도는 저수지 괴물 이야기. 원장이 한 달 뒤 인류가 좀비에게 승리하는 모습을 보여 주겠다고 선언하자 과수원은 축제 분위기에 휩싸이지만, 과수원의 보안관이 되기로 한 현수는 불안을 쉬이 떨치지 못한다. 그러다 마을 주민을 구하러 뛰어든 저수지의 물밑에서 거대한 좀비를 목격하면서, 과수원의 숨겨진 얼굴과 마주한다. 과수원장이 말한 ‘좀비 시대를 끝낼 해결책’이 바로 아기의 생명과 직결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아기를 끌어안은 현수에게 과수원장은 묻는다. “똑바로 말해 봐요. 당신이 정말 구하고 싶은 게 뭐예요? 아기 한 명, 아니면 나머지 모두?” 지상 낙원인 듯하던 과수원이 어떤 희생을 발판으로 삼아 왔는지, 수상한 행동을 하던 마을 사람들에게는 어떤 과거가 있으며, 과수원 천장과 연결되는 저수지에 생겨난 괴물과는 어떤 관계가 있는지…… 현수가 가려진 진실에 한 걸음씩 가까워지는 과정은 손에 땀을 쥐게 만들며, 거대한 음모의 실체를 마주했을 때는 전율이 인다. 『아포칼립스 베이비시터즈』는 마치 영화를 보는 듯한 속도감과 박진감, 그리고 치밀한 설계가 빛나는 본격 장르 소설이다. 장르의 문법에 충실하면서도 작가의 현실 인식을 반영한다는 덕목을 고루 갖춘 이 작품의 질문은 많은 장르문학이 독자에게 꾸준히 던져 왔던 그것이다. 다수를 위해 소수를 희생해도 되는가? 그러나 속도와 경쟁을 추구할수록 약자가 도태되는 현상이 심화되는 우리 사회에서, 질문을 받은 당사자가 바로 청소년이라는 사실을 생각하면 이 질문은 한결 묵직하고 예리하게 다가온다. 꼭 좀비 창궐이라는 아포칼립스가 도래하지 않더라도, 마찬가지다. 신념이 심판대에 오르는 것은 평화 속에서가 아니라 위기에 내몰렸을 때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경쟁이 일상이 된 시대의 청소년은, 이 질문에 어떤 대답을 내놓을까? “기억해. 네가 무사하기를 바라는 사람이 있다는 거.” 죽은 인간의 몸에서 피어나 살아 있는 인간을 지키는 홍나무처럼, 이 작품 속 인물들은 저마다 누군가의 안녕을 바라며 버틴다. 동생을 지키지 못한 죄책감으로 총을 들었던 현수는 자기 목숨 또한 누군가 지키고 싶어 하는 소중한 것임을 배우고, 손익 계산 하나로 버텨 온 호은은 대가 없이 건네는 ‘여분의 마음’을 배운다. 절망을 초래한 것이 기성세대라고는 해도, 또 미래의 열쇠를 쥐여 주고픈 대상이 청소년이라고 해도 『아포칼립스 베이비시터즈』는 기성세대와 미래 세대가 대립하는 방식으로 이야기를 전개시키지는 않는다. 위기의 순간, 현수는 권총을 쥐여 준 엄마가 딸에게 전하려던 것이 책임감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고, 자신의 오늘이 ‘사랑하는 이가 무사하기만을 바라는 수많은 이들의 소망’이 합해진 결과라는 것 또한 알게 된다. 그 장면은 현수가 자기 자신의 소중함을 자각하고 다시 살아갈 동력을 되찾는 전환점이자 이 작품의 절정이다. 청소년 인물들은 부조리한 기성세대의 논리에 휘둘리지 않고 자기들만의 방식으로 미래를 쟁취해 내고, 그를 지켜보는 기성세대 가운데에는 자신을 돌아보고 지금 할 수 있는 방식으로 책임을 지려는 이들도 있다. 과거와 미래는 그렇게 연결된다. 이 거대한 세계관과 치밀한 주제의식을 연결시킨 이우인 작가는 “거창한 의미보다는 확실한 재미가 있는 이야기를 쓰고 싶었”다고 말한다. 그 말처럼 이 소설은 첫 장부터 마지막 장까지 숨 돌릴 틈 없이 질주한다. 그러나 그 질주 끝에 남는 것은 결코 가볍지 않은 질문이다. 지켜야 할 것이 있는 사람은, 반드시 살아남는다. 그렇다면 당신은 무엇을 지킬 것인가? 좀비로 뒤덮인 세상을 가로지르는 두 베이비시터의 모험은 지금 여기의 청소년들에게 절망 속에서도 질기게 희망을 찾아내는 법, 그 희망의 씨앗이 결국 사람에 대한 믿음이라는 것을 보여 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