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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세 개의 바다를 건너 1943년 흰 밤, 검은 낮 1943년 따뜻한 겨울 1943년 서늘한 여름 1944년 남겨진 사람들 1944년 뜨거운 여름 1945년 행렬 1945년 우글레고르스크 1946년 2부 귀환선 1946~1949년 다시, 시작 1949년 혼담 1950년 결혼 1951년 무국적자 1957년 3부 선택 1958년 갈림길 1 1960년 갈림길 2 1961년 얼어붙은 땅 1963년 마지막 잔치 1964년 슬픔의 틈새 1966년 4부 단옥, 타마코, 올가 1988년 무너지는 둑 1992년 뿌리 1 1995년 뿌리 2 1996년 1945년 8월 15일 1999년 심장의 반쪽 2000년 유언 2025년 작가의 말 참고 자료 |
Lee Geum-y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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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금이 작가의 일제강점기 여성 디아스포라 3부작
배승연 (청소년 PD)
『슬픔의 틈새』는 우리가 쉽사리 지나쳐 온 역사 속 이름 없는 사람들의 삶을 다룬 소설이다. 이금이 작가는 강제 징용으로 탄광 노동자가 된 아버지를 찾아 사할린으로 떠난 주단옥의 일생을 따라가며, 국가와 시대의 경계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친 개인의 삶이 얼마나 치열하고도 존엄한지를 설득력 있게 그려낸다. 이 소설이 특별한 이유는 단지 한민족의 아픈 역사를 재현하는 데 그치지 않고 과거와 미래를 연결하여 '우리'가 겪은 공동체의 모습과 책임 의식을 재현해냈기 때문이다. 강제징용과 이산, 차별이라는 비극적 현실 속에서도 서로를 의지하며 끈질기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통해 우리는 인류가 끝내 놓아서는 안될 희망과 연대의 가능성을 느끼게 된다. 특히 『슬픔의 틈새』는 이금이 작가가 그려온 '일제강점기 여성 디아스포라 3부작'의 마지막 작품으로, 여성들의 삶을 중심에 두고 세대를 이어 변화하는 시선과 선택을 섬세하게 포착함으로써 독자에게 더 넓은 공감과 사유의 공간을 열어 준다.
이금이 작가는 잊혀진 과거의 역사를 복원하는 데서 멈추지 않고 사할린이라는 경계의 공간에서 살아온 인물들의 이야기를 통해 그 시간을 현재와 미래로 이어 붙인다. 역사란 결코 멋 옛날의 이야기가 아니라 현재의 삶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는 이야기다. 그리고 그 깨달음은 사회가 구분 지어 놓은 수많은 일상 속 경계에서 보통의 사람들에게 각자의 자리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되묻게 한다. 주단옥을 비롯한 사할린의 인물들은 역사에 휩쓸린 희생자가 아니라, 각자의 선택과 고민 속에서 삶을 꾸려 나가는 주체적인 존재로 그려진다. 같은 출발선에 서 있었지만 서로 다른 방향으로 나아가는 이들의 모습은, 삶에는 하나의 정답이 없음을 담담히 증명하며 독자로 하여금 쉽게 판단하지 않고 끝까지 이해하려는 태도를 갖게 한다. 무엇보다 이 작품은 문학이 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역할을 다시 생각하게 한다. 타인의 삶을 따라가며 우리는 그들의 시간을 함께 살아 내고, 그 과정에서 과거의 고통과 현재의 우리가 결코 분리될 수 없음을 깨닫는다. “우리가 함께 연루된 이야기로서의 역사”라는 인식. 『슬픔의 틈새』는 그렇게 묻는다. 우리는 이 이야기를 단지 지나간 이야기로 남겨 둘 것인가, 아니면 지금 우리의 삶과 연결된 이야기로 받아들일 것인가. 그 질문 앞에서 이 소설은 오래도록 사라지지 않을 울림을 남길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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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옥 눈에는 등지느러미와 꼬리지느러미가 달린 듯한 섬의 모양새가 더 먼 곳으로 헤엄치려는 물고기 같았다. 그 물고기 모양의 섬은 남북으로 나뉘어 남쪽에만 붉은색이 칠해져 있었다. 그곳이 화태였다. 화태는 아버지가 계신 곳, 밥 세끼를 다 먹을 수 있는 곳, 마음껏 학교를 다닐 수 있는 곳이었다. 그곳에 가면 그 커다랗고 신비한 물고기가 자신을 등에 태워 더 넓고 멋진 세상으로 데려다줄 것만 같았다.
--- p.17 사할린은 원래 러시아 땅이었다. 1905년 러시아와의 전쟁에서 이긴 일본은 사할린의 남쪽을 넘겨받아 통치하기 시작했다. 일본은 선주민인 아이누족이 부르던 이름에서 따와 남사할린을 가라후토라고 명명했고, 조선 사람들은 한자의 음대로 화태라고 불렀다. 자작나무가 많은 섬이라는 뜻이었다. --- p.20 모든 게 아직 낯설기만 한 단옥은, 엄마가 조선 남자와 재혼해 사택촌에서도 학교에서도 외톨이였던 유키에와 대번에 친해졌다. 둘은 등하굣길과 학교에서 그림자처럼 붙어 다녔다. 단옥네 교실에는 치카파라는 아이누족 아이가 한 명 있었다. 아이누족은 러시아와 일본이 사할린을 차지하기 전부터 여기서 살아온 선주민이었다. 그런데도 치카파는 자기네 터전을 빼앗은 일본 애들에게 무시와 놀림을 당했다. 반에서 유일한 조선인이었던 단옥은 유키에가 없었으면, 자신도 치카파와 같은 처지가 됐을 거란 생각에 가슴을 쓸어내리곤 했다. --- p.37 소련군은 항구에 모여 있는 사람들에게 살던 곳으로 돌아가라고 지시했다. 사람들은 거칠게 항의하다 잡혀가거나 총에 맞아 죽기도 했다. 일본 사람들은 명령대로 돌아갔지만 대다수 조선인들은 발길을 돌리지 못했다. 항구 근처에서 지내며 귀국선이 오기만을 기다리다 지쳐 실성하거나 자살하는 사람도 생겼다. --- p.125 한국을 떠날 때 그는 고작 22개월이었다. 자기 삶에 대한 결정권이 전혀 없었던 아기는 엄마의 덧저고리 속에서 곤히 잠들어 있었다. 그런데도 영복은 그날, 새벽하늘에서 얼음 조각처럼 차갑게 빛나던 눈썹달을 실제로 본 것만 같았다. 자신을 업은 어머니와 형, 누나의 모습이 환히 떠올랐고, 짐을 들어 주러 따라왔던 할아버지의 발자국 소리까지 들리는 듯했다. 어머니의 되풀이되는 기억을 전수받으며 자란 때문이었다. 영복은 그렇게 고향에 대한 엄마의 아픔과 그리움을 자기 것인 양 심장에 아로새긴 채 살았다. --- p.239 사할린 상공에서 본 풍경은 온통 하얬는데 서울은 눈이 보이지 않았다. 12월 하순에 눈이 없다니. 단옥은 그것도 신기했지만 더 믿어지지 않는 게 있었다. “열흘 넘게 걸렸던 길을 세 시간도 안 걸려서 왔구나.” 단옥은 기차와 배를 번갈아 타며 일본을 거쳐 사할린으로 가던 길이 지금도 눈에 선했다. 유키에가 허탈해하는 단옥에게 웃으며 말했다. “세 시간도 안 걸린 게 아니라 50년이나 걸린 거 아니야?” --- p.38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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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금이 작가의 ‘일제강점기 여성 디아스포라 3부작’ 마지막 권 청소년판 출간!
“청소년문학은 어려움 가운데서도 궁극적으로 희망을 이야기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은 살 만한 가치가 있다고 보여 주는 것이다.” 1984년 새벗문학상에 당선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한 이금이 작가는 올해로 42년째 작가의 길을 걸어오고 있다. 그동안 동시대 어린이, 청소년의 삶을 깊이 들여다보는 작품들을 발표하며 한국을 대표하는 작가로 자리매김했다. 역사가 기억하지 않는 이들에 꾸준히 관심을 가지며, 직접 취재해 문학으로 조명하는 일을 이어 온 작가에게 ‘일제강점기 여성 디아스포라 3부작’은 필연과도 같은 작업이었다. 『거기, 내가 가면 안 돼요?』(사계절출판사, 2016)를 시작으로 『알로하, 나의 엄마들』(창비, 2020)에 이어 『슬픔의 틈새』를 마지막으로 완결된 이 3부작은 ‘낯선 타국으로 밀려난 여성들의 삶을 통해 기억과 역사, 정체성의 문제를 포착했다는 평가’를 받으며 안데르센 상 후보 선정 과정에서 중요한 참고 작업으로 거론되어 왔다. 2018년 IBBY 아너리스트 선정 이후, 작가는 한국인으로는 최초로 아동문학계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 상’ 글 부문에 두 번 연속 최종 후보에 오르며, 국제무대에 한국 아동·청소년문학의 존재감을 알리는 데 앞장서 오고 있다. 그 3부작의 완결인 『슬픔의 틈새』는 강제징용으로 탄광 노동자가 된 아버지를 찾아 사할린으로 떠난 열세 살 주단옥의 일생을 담는다. 지배 국가가 여러 번 바뀌어 온 사할린은 그 자체로 디아스포라적 역사성을 지닌다. 흩어진 사람들, 경계인을 의미하는 디아스포라는 어른과 아이 사이 어딘가에 걸쳐 있는 우리 사회 속 청소년을 떠올리게 한다. “공부를 이유로 많은 것을 유예당하는 청소년들이 이 책을 읽으며 인간과 삶에 대한 믿음을 느끼길” 바라는 작가의 마음을 담아 사계절1318문고로 『슬픔의 틈새』가 새롭게 독자들을 찾아왔다. “1945년 8월 15일은 조국이 해방을 맞은 날이지만, 사할린 한인들에게는 고향과 가족을 잃은 날이었다.” 작품은 1943년 3월, 단옥네가 고향 다래울을 떠나 남사할린(화태)으로 가는 장면에서 시작한다. 일본이 조선에 시행한 ‘국가총동원법’의 일환인 줄 모르고, 돈을 벌 수 있다는 말에 화태 탄광으로 떠난 아버지와 그런 아버지를 찾아 먼 길을 떠난 가족들 그리고 고향에 남은 또 다른 식구들까지. 그 누구도 돌아오기 위해 떠난 이날의 여정이 영원한 헤어짐이 될 줄은 몰랐다. 간신히 도착한 화태에서 아버지와 재회한 것도 잠시, 1944년 본토로의 ‘전환배치’라는 명령 하에 일본은 노무자들을 이중징용하면서 또다시 가족들과 갈라놓는다. 속수무책으로 가족들이 헤어질 수밖에 없던 건 비단 소설 속 단옥네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1930년대 후반, 일제강점기 당시 사할린 한인 1세대들이 겪은 실제 역사다. 한인들이 강제징용으로 떠나온 남사할린은 원래 러시아 땅이었다. 1905년 러일전쟁에서 이긴 일본은 사할린 남쪽의 통치권을 넘겨받아 40년간 지배했다. 당시 일본은 선주민이 부르던 이름에서 따와 남사할린을 가라후토라 명명했고, 조선인들은 한자 음대로 화태라 불렀다. 하지만 1945년 소련-일본 전쟁으로 남사할린은 다시 소련의 통치를 받았다. 몇 번이나 지배 체제가 바뀌는 동안 사할린의 한인들은 일본인도, 소련인도 당연히 조선인도 아니었다. 1945년 8월 15일, 조국이 일본으로부터 해방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지만 사할린 한인들의 삶은 달라지지 않았다. 항구에서 귀국선을 기다리던 조선인들을 찾아온 건 살던 곳으로 돌아가라는 소련군의 명령 그리고 일본의 스파이라는 누명과 핍박뿐이었다. 고향으로 돌아갈 때 문제가 될까 싶어 무국적자로 살아온 한인들에게 8월 15일은 또다시 조국에게 배신당한 날이 되었다. 그 뼈아픈 시간 속에서 한인들은 갈 수 없는 조국과 그곳의 가족들을 가슴에 묻고, 사할린에서 만난 사람들과 이웃하고 연대하며 살아가기 시작한다. 거스를 수 없는 역사 앞에서도 매일 먹여야 하는 식구들의 끼니와 자라나는 자식들의 뒷바라지라는 현실은 하루도 빠짐없이 찾아오기에, 1세대 한인들은 슬픔에만 머물러 있을 수 없었다. 역사와 사회가 만들어 낸 차별의 틈바구니 속에서도 누구보다 치열하고 성실하게 살아온 보통의 사람들이 전하는 울림 앞 세대가 그래 왔듯이 다음 세대의 여성들 역시 조국으로부터 받은 배신과 비관을 안고, 또다시 기약되지 않은 미래로 삶을 이어 간다. 소설은 그 길에 선 덕춘과 딸 단옥, 일본인 치요와 딸 유키에를 주요 인물로, 그들의 일대기를 1940년에서 2025년까지의 시간으로 펼쳐 보인다. 타국에서 부모 세대가 오직 살아남는 일에 매진해야 했다면, 자식 세대는 그 덕분에 조금이라도 생존 외에 자신의 삶을 살펴보며 살아간다. 사할린에서 살기 시작한 초반에 덕춘은 딸을 보면서 여정 중에 사라진 장남을 떠올린다. 딸이 학교에 다니고, 밥을 먹는 일조차 마땅히 아들이 누려야 할 일이라는 생각을 지우기가 어렵다. 덕춘은 사할린에서 아이를 낳을 때도, 곁에 있는 남편과 조선에 있는 시부모에게 사라진 장남을 대신할 아들을 안겨 줄 수 있기를 바랐다. 나이가 찬 딸을 시집보내지 않고, 공부를 시키면 주변에서 흉을 보는 시대였다. 그런 시대를 산 덕춘에게 공부를 재밌어하고, 하고 싶은 일에 대한 꿈을 꾸고, 결혼해서도 직장에 다니는 딸은 낯선 존재였다. 하지만 조선인으로 타국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성별에 관계없이 언어를 할 줄 알고, 스스로를 책임질 능력이 있어야 한다는 사실을 덕춘은 그 누구보다 피부로 느끼고 있었다. 그래서 단옥은 엄마가 먼저 사할린에서 조선학교에 다니라고 권하자 놀란다. 입덧하는 엄마를 타박하는 할머니에게 대들었다가 도리어 엄마에게 혼나고, 집안의 일들이 오빠 위주로 돌아갔던 생활에 익숙했던 단옥에게 덕춘의 제안은 큰 변화였다. 그 외에도 조선인, 한국인, 소련인, 고려인이 얽혀 사는 사할린에서는 누구도 차별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그 땅에서 단옥과 유키에는 서로에게 조선인과 일본인이 아니었다. 어느 순간부터 사할린에서 산 세월이 각자 조선과 일본에서 지낸 시간을 넘어서고, 그들에게 사할린은 떠나야 하는 타국이 아닌 발 딛고 살아가는 현재의 터전이 된다. 그곳에서 그들은 함께 유년 시절을 보내고, 부모나 형제에게 말하지 못하는 비밀을 털어놓고, 결혼을 해 아이를 키우면서 울고 웃는 삶의 순간을 나눈다. 민족과 국적을 떠나 새로운 공동체로 살아간 두 가족은 사회적 소수자로서 함께 아끼고 보듬으며 나아가는 길이 얼마나 단단하고 경이로운지를 보여 준다. 약 80여 년 전, 한국에서 1,700km가 떨어진 사할린에서 살아간 단옥네 이야기는 역사적 의미와 더불어 오늘날 우리의 삶과도 맞닿는 지점들이 많다. 작가는 작품에 주로 평범하고 불완전한 인물들을 내세운다. 『슬픔의 틈새』 속 인물들에 대해 작가는 “평범하지만 치열하고 성실하게 산 여성들, 그 힘든 삶 속에서도 꿈을 잃지 않았던 여성들의 삶이 저에게는 근대 지식인, 활동가 여성의 삶과 같은 울림으로 다가왔다”고 한다. 일본, 소련, 조선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채 역사의 틈바구니에서 평생을 살아오면서도 어떻게든 그 틈새 속 행복의 조각을 찾아낸 인물들의 모습은 오늘날 우리의 삶과도 별반 다르지 않다. 이 소설은 사회가 구분 지어 놓은 수많은 일상 속 경계에서 살아가는 보통의 사람들에게 그렇기에 함께 나아가자고, 흔들릴지언정 어떤 상황에서도 인간다움을 잃지 말자고 이야기한다. 과거와 미래를 연결하는 문학의 의미 “우리가 함께 연루된 이야기로써의 역사”라는 공동의 책임 의식 소설에서 인물들은 그저 역사 속에 놓인 개인이 아닌, 당당하게 자기 삶을 살아 낸 존재로 오롯이 서 있다. 작품은 두 가족의 일대기를 다루며 스무 명이 넘는 인물들의 삶을 보여 준다. 그들이 사할린으로 오게 된 이유는 비슷하지만, 세월이 지나면서 인물들은 저마다 다른 방향으로 나아간다. 어린 시절 사할린으로 온 단옥은 조국에서의 기억을 안고 있지만, 자식과 손주들이 있는 사할린을 떠나고 싶지 않아 한다. 반면 사할린에서 태어난 동생 광복은 한 번도 가 본 적 없는 한국에서 살고 싶어 한다. 유키에는 일본으로 돌아갈 몇 번의 기회가 있었음에도, 자신이 뿌리내린 곳에서 살길 원하며 사할린에 남았다. 이처럼 『슬픔의 틈새』 속 인물들은 삶에 대한 자기만의 고민을 선명하게 드러내며, 저마다 생명력 있는 모습으로 독자에게 전해진다. 작가는 혹여라도 인물들을 쉽게 판단해 버릴까 매 순간 경계하며, 직접 사할린으로 가 한인들의 목소리를 듣고, 작품의 배경이 된 지역을 발로 찾아다녔다. 그 결과 “이금이 작가는 이번에도 그 입구를 찾아냈다”는 강화길 소설가의 말처럼 작가는 또다시 과거와 현재를 잇는 길을 냈다. 문학으로 과거를 경험하는 일은 우리가 사는 세상이 나 혼자만의 것이 아닌 타인과 연결된 장소라는 감각을 상기시킨다. 그 감각은 어떤 과거로부터도 우리는 자유로울 수 없다는 책임을 지운다. 이 공동의 책임 의식은 조형근 사회학자의 말처럼 “흥미로운 타인의 이야기가 아닌 우리가 함께 연루된 이야기로써의 역사”로 사할린 한인들의 이야기를 대하게 한다. 우리는 그렇게 과거와 미래 사이에서 빚으로도, 빛으로도 연결되어 있다. 『슬픔의 틈새』는 국가와 사회가 외면해 온 우리 역사의 한 부분을 조명하는 동시에, 과거와 미래를 연결하는 문학의 의미를 진정성 있게 보여 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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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금이 작가는 이번에도 그 입구를 찾아냈다. 비록 슬픔이 끼어들고 비애가 머무를지라도, 앞서 걸어간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미래. 역시나 감탄스럽다. - 강화길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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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에게 끊임없이 배신당하면서도 절절하게 조국을 사랑한 사할린 한인들의 삶은 고향이란, 뿌리란 무엇인지 새롭게 질문하게 만든다. - 홍은전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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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책이 우리 가슴에 들어오면 놀라운 일이 벌어진다. 우리는 먼저 슬픔을 이해하고, 다음에는 그 틈새를 메꾸는 사랑과 기쁨을 이해한다. 그렇게 함께 살아간다. - 정혜윤 (PD,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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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이 사할린에서 살게 된 건 슬픈 역사 때문이지만, 이들은 그 슬픔에 머물지 않고 ‘슬픔의 틈새’를 찾아 뜨겁게 사랑하고 당당히 살았다. 한국의 민족사도, 일본의 민족사도, 소련-러시아의 거대한 역사도 이들의 삶을 온전히 포괄할 수 없다. 이들은 작은 틈새에서 살았던 경계인이지만, 그 틈새야말로 얼마나 찬란하고 당당한 것인지. - 조형근 (사회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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