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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서문 | 기도가 끝나도 동행은 끝나지 않는다1장 | 아침, 하나님께 가장 먼저 말을 걸다2장 | 낮, 하나님과 함께 이 하루를 살아가다3장 | 밤, 오늘을 맡기고 평안히 쉬다해설 | 하루를 하나님과 시작하고, 보내고, 마친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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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tthew Hen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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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한 뒤에야 드러난다나는 정말 하나님께 맡겼는가이 책을 처음 펼치면 오래된 기도서처럼 보인다. 아침에는 하나님께 기도하고, 낮에는 그분을 기다리며, 밤에는 하나님 안에서 쉬라는 권면. 신앙생활을 오래 한 사람에게는 이미 여러 번 들어본 말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 그러나 원문의 논리를 따라가며 한 문장씩 다듬을수록 이 책의 중심은 다른 곳에 있다는 사실이 선명해진다. 매튜 헨리가 집요하게 묻는 것은 기도를 어떻게 시작하고 무엇을 말할 것인가보다, 기도한 사람이 그다음 순간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였다.그 사실을 가장 선명하게 보여준 것이 ‘화살’의 비유였다. 화살을 쏜 사람은 시위를 놓았다고 돌아서지 않는다. 화살이 어디를 향하는지 끝까지 바라본다. 헨리는 기도도 그렇게 하라고 말한다. 기도한 뒤 내 마음이 어떻게 달라졌는지 살피고, 하나님의 뜻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었는지 돌아보며, 주변의 섭리가 어떻게 움직이는지 바라보라는 것이다. 여기서 기도에 대한 관점이 달라진다. ‘아멘’은 기도의 종료 버튼이 아니다. 아멘 이후부터 그 기도를 살아내는 시간이 시작된다. 하나님께 염려를 맡겼다면 다시 그것을 움켜쥐지 않는 것, 응답이 더딜 때 성급히 하나님보다 앞서가지 않는 것, 내가 원하는 결과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 자신을 맞출 준비를 하는 것. 이것까지가 기도다. 그런 의미에서 『하나님은 나의 일상에 계신다』는 기도 시간을 늘려주는 책이라기보다 기도와 일상 사이에 끊어진 선을 다시 이어주는 책에 가깝다.맡기고, 기다리고, 놓아주는 하루하나님과 동행하는 가장 현실적인 연습 헨리는 하루를 거창한 영적 사건으로 채우지 않는다. 오히려 누구에게나 반복되는 아침과 낮과 밤을 붙든다. 아침에는 아직 일어나지 않은 하루를 하나님께 먼저 내놓는다. 오늘 만나게 될 사람, 해야 할 일, 예상하지 못한 위험, 마음속 염려까지 아직 현실이 되기 전에 하나님께 가져간다. 하나님이 우리의 사정을 이미 아시는데 왜 굳이 기도해야 하느냐는 질문에도 답한다. 기도는 하나님께 새로운 사실을 알려드리는 일이 아니다. 우리를 움직여 하나님의 자비를 받을 준비를 하게 하는 일이다.낮이 되면 신앙의 초점은 ‘기도’에서 ‘기다림’으로 옮겨간다. 그러나 헨리가 말하는 기다림은 손을 놓는 일이 아니다. 할 수 있는 일에는 힘써 순종하되, 내 손에 없는 결과까지 통제하려 들지 않는 것이다. 한 시간 뒤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도 모르면서 너무 많은 미래를 미리 살지 않고, 기도한 뒤에는 하나님이 어떻게 일하시는지를 바라본다. 그리고 밤에는 다시 놓아준다. 오늘 받은 것을 감사하고, 잘못한 일을 돌아보며, 끝내 해결하지 못한 것은 하나님께 돌려드린다. 여기서 헨리는 잠까지 신앙의 문제로 끌어온다. 잠드는 동안 우리는 일할 수도, 판단할 수도, 심지어 자신을 지킬 수도 없다. 매일 밤 인간은 자기 통제권을 잠시 내려놓는다. 그래서 잠은 단순한 휴식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내가 깨어 있지 않아도 하나님은 깨어 계신다는 사실을 몸으로 받아들이는 시간이다.이 책이 보여주는 하루의 리듬은 그래서 단순하다.아침에는 맡긴다.낮에는 기다린다.밤에는 놓아준다.그리고 다음 날 다시 시작한다.신앙은 몇 번의 강렬한 체험으로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 평범한 하루를 반복해서 하나님께 연결하는 과정이라는 것이 헨리가 보여주는 경건의 실제다.오래 믿을수록 낯설어지는 질문이 책의 묘한 힘은 새로운 교리를 제시하는 데 있지 않다. 이미 안다고 생각했던 신앙의 문장을 한 단계 더 밀어붙이는 데 있다. 하나님이 모든 것을 아시는데도 왜 기도해야 하는가.기도로 맡겼다면 왜 다시 걱정을 들고 다니는가.하나님을 기다린다는 것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는 뜻인가.30년을 교회에 다닌 사람에게도 이 질문들은 의외로 쉽게 대답되지 않는다. 헨리는 ‘하나님과 동행하라’는 익숙한 말을 추상적인 경건의 언어에 남겨두지 않는다. 일할 때, 식탁에 앉을 때, 책을 읽을 때, 사람을 만날 때, 세상 소식을 들을 때, 여행할 때, 혼자 있을 때, 잠들 때까지 끌고 내려온다. 그 결과 동행은 감정이나 분위기가 아니라 하루를 운영하는 방식이 된다. 더욱이 이것은 책상 위에서 만든 경건 이론이 아니었다. 헨리는 25년 동안 함께했던 사람들을 떠난 뒤 이 글을 썼고, 그들에게 이 책을 선물하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면 출간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서문에 밝혔다. 자신이 곁에 없더라도 그들이 아침부터 밤까지 하나님과 살아가기를 바랐던 것이다. 이번 한국어판에 저자의 실제 삶을 다룬 해설을 덧붙인 이유도 여기에 있다. 헨리는 남들에게만 이렇게 살라고 말한 사람이 아니었다. 자신도 기도로 하루를 시작하고, 일어나는 사건 속에서 섭리를 살피며, 밤에는 하루를 돌아보는 삶을 반복해서 연습했다. 그래서 이 책을 다 읽고 남는 질문은 “나는 기도를 얼마나 하고 있는가?”가 아니다. 더 근본적인 질문이다. “나는 기도가 끝난 뒤에도 그 기도대로 살고 있는가?” 『하나님은 나의 일상에 계신다』가 300년이 지난 지금도 낡지 않은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우리에게 부족한 것은 어쩌면 더 많은 기도법이 아니라, 이미 드린 기도를 오늘 하루로 살아내는 법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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