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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말
〈고쳐서 나가는 곳〉 희곡 본문 작품 및 작가 소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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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가진 배들이 모이는 곳, 부산 영도 대평동
1970년대 중반 부산 영도 대평동. 바다를 오가며 낡고 상처 입은 배들이 수리를 위해 항구로 들어온다. 배에 붙은 조개껍데기와 녹을 떼어내고, 오래된 페인트를 벗겨내고, 다시 칠하는 일이 이곳 사람들의 생업이다. 영도에 들어온 스무 살 송엽도 어디서든 일을 구해 살아가려 한다. 그러나 여자라는 이유로 배에 오르지 못하고, 기술도 연고도 없다는 이유로 일자리를 얻기가 쉽지 않다. 다방을 거쳐 고모네 식당에서 일하던 송엽은 그곳에서 망치를 들고 배를 고치는 여자들을 만난다. 높은 작업대에 올라 철판을 두드리는 만선과 길자, 부연. 그들의 망치 소리는 송엽이 처음으로 자기 삶을 향해 한 걸음 내딛게 하는 계기가 된다. 낯선 항구는 그렇게 송엽이 다시 살아갈 방법을 배우는 장소로 바뀐다. 기록되지 않은 여성 노동자, ‘깡깡이 아지매’ 깡깡이는 선박 표면에 붙은 녹과 묵은 페인트, 조개껍데기 등을 쇠망치와 도구로 제거하는 작업이다. 철판을 두드릴 때 나는 ‘깡깡’ 소리에서 이름이 비롯되었고, 당시 이 일을 주로 맡았던 여성들은 ‘깡깡이 아지매’라 불렸다. 선박 수리에는 반드시 필요한 노동이지만, 작업 환경은 거칠고 위험하다. 여성들은 높은 작업대에 매달려 쇳가루와 기름 냄새, 소음 속에서 일한다. 남성 중심의 조선산업이 성장하던 시절, 이들의 기술과 몸이 감당한 노동은 충분히 기록되지 않았다. 작품은 이들을 고된 시대를 견딘 희생자로만 바라보지 않는다. 만선은 일의 속도와 대가를 판단하는 반장이며, 길자와 부연 역시 자신의 기술로 생계를 이어가는 노동자다. 웃고, 다투고, 서로를 놀리며 일하는 이들의 모습에는 노동의 고통만큼이나 자부심과 생활의 활력이 살아 있다. 말을 잃었던 송엽, 망치 소리 속에서 목소리를 찾다 영도에 처음 도착한 송엽은 자기 생각을 쉽게 말하지 못한다. 이름을 불러도 대답을 망설이고, 원하는 것이 있어도 좀처럼 입 밖으로 꺼내지 못한다. 그런 송엽이 처음으로 큰소리로 외치는 말은 “저도 깡깡이 할래요!”다. 만선의 청락부에 들어간 송엽은 바닥에서부터 망치질을 배운다. 동료들의 빠른 손놀림을 따라가지 못하던 처음과 달리, 차츰 맡은 일을 해내고 자신의 노동으로 돈을 번다. 기술을 익히는 동안 다른 사람의 질문에 답하기만 하던 송엽은 스스로 바라는 것을 말하기 시작한다. 처음에는 제각각이던 네 사람의 망치 소리가 하나의 박자로 모이듯, 송엽의 목소리도 동료들의 소리와 함께 힘을 얻는다. 이 작품에서 망치질은 단순한 노동의 몸짓을 넘어, 자기 삶을 자기 입으로 말하기 시작한 사람의 변화가 된다. 배의 녹과 사람의 상처, 고친다는 말의 의미 바다를 다니는 배에는 어김없이 녹이 슨다. 멀쩡해 보이는 철판에도 상처가 생기고, 그 틈으로 녹이 퍼진다. 다시 바다로 나가려면 겉을 덮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오래된 녹과 상한 부분을 찾아내 벗겨내야 한다. 송엽이 겪어온 삶에도 쉽게 떨어지지 않는 상처가 남아 있다. 송엽은 망치질을 하며 철판에 들러붙은 녹을 떨어뜨리려 하지만, 동시에 자기 삶에 들러붙은 두려움과 과거로부터 벗어나기를 바란다. 〈고쳐서 나가는 곳〉이라는 제목은 배를 고치는 조선소를 가리키면서, 상처 입은 사람이 다시 자기 삶을 움직일 수 있게 되는 과정을 뜻한다. 고친다는 것은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만드는 일이 아니다. 상처를 마주하고, 다시 떠날 수 있는 힘을 얻는 일이다. 더 높이 올라가고 싶은 사람들의 이야기 깡깡이들은 경험을 쌓을수록 더 높은 작업대에 올라간다. 높이 올라갈수록 위험하지만, 그만큼 기술을 인정받는다는 뜻이기도 하다. 처음에는 바닥에서 일하던 송엽에게 높은 곳은 스스로 벌어 살아갈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다. 그러나 송엽이 어렵게 일궈낸 생활 앞에 과거의 관계가 다시 모습을 드러난다. 주변 사람들은 저마다 옳다고 믿는 방법을 권하지만, 그 말이 언제나 송엽이 바라는 삶과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작품은 누군가의 보호 아래 머무는 것과 스스로 살아갈 곳을 결정하는 일이 어떻게 다른지 질문한다. 더 높은 곳에 도달하는 것만큼 중요한 것은 어디로 갈지 자기 힘으로 선택할 수 있는 자유다. 거친 노동 현장에서 피어나는 연대 만선과 길자, 부연은 완벽한 사람도, 처음부터 서로의 아픔을 모두 이해하는 사람도 아니다. 때로는 다투고 잘못된 판단을 내리며, 송엽이 지닌 상처를 알아보지 못하기도 한다. 하지만 함께 일하며 쌓인 시간은 이들이 서로의 삶에 조금씩 귀 기울이게 만든다. 작품은 노동 현장을 낭만화하지 않는다. 여성 노동자들은 위험한 환경과 부당한 대우, 몸이 망가지는 고통을 견뎌야 한다. 그럼에도 이들은 자기 기술에 자부심을 지니고, 필요한 순간에는 서로의 편에 서기 위해 움직인다. 이들이 만들어내는 연대는 거창한 선언이 아니다. 함께 일하고, 잘못을 고쳐 보고, 한 사람이 자기 삶을 포기하지 않도록 구체적으로 돕는 행동이다. 배를 고쳐 다시 바다로 내보내는 일은 결국 서로에게 다시 나아갈 길을 열어주는 일과 겹쳐진다. 동아연극상 신인연출상 수상작, 무대에서 희곡집으로 〈고쳐서 나가는 곳〉은 2023년 서울문화재단 예술활동창작지원 사업에 선정되어 같은 해 9월 연극실험실 혜화동1번지에서 초연되었다. 박주영은 이 작품의 극작과 연출을 맡아 제60회 동아연극상 신인연출상을 수상했다. 이후 작품은 2024년 제4회 세계여성공연예술축제 폐막작으로 부산 영화의전당 무대에 올랐고, 2026년 9월에는 국립정동극장 세실의 〈창작ing〉 공연으로 다시 관객을 만났다. 2026년 공연에서는 윤자라는 인물을 더해 세대에 걸친 여성들의 삶을 확장했다. 희곡집은 무대에서 들려오던 망치 소리와 인물들의 대사를 활자로 다시 만나는 자리다. 단단한 철판을 두드리는 소리 아래 가려졌던 여성들의 이름과 삶, 지워지지 않기를 바랐던 이야기가 한 권의 책에 담겼다. 시놉시스 1970년대 중반, 부산 영도 대평동. 스무 살 송엽은 인천을 떠나 아무 연고도 없는 영도로 들어온다. 일자리를 찾아 다방과 식당을 전전하던 송엽은 배의 녹과 묵은 페인트를 망치로 벗겨내는 여성 노동자, ‘깡깡이 아지매’들을 만난다. 만선과 길자, 부연이 거대한 배에 올라 망치를 휘두르는 모습에 마음을 빼앗긴 송엽은 자신도 깡깡이를 하고 싶다고 외친다. 만선의 청락부에 들어간 송엽은 망치질을 배우고, 높은 작업대에 오르는 날을 꿈꾸며 조금씩 동료들과 가까워진다. 함께 일하고 웃고 다투는 사이, 송엽은 잊었던 목소리를 되찾고 자기 힘으로 살아갈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품는다. 그러나 과거로부터 송엽을 찾아온 사람이 영도에 나타나면서 어렵게 시작한 새로운 일상이 흔들리기 시작한다. 자신이 선택한 삶을 계속 이어갈 것인가, 다시 과거로 돌아갈 것인가. 거센 비바람이 몰아치는 조선소에서 송엽은 자신의 삶을 결정해야 하는 순간과 마주한다. 배를 고쳐 바다로 내보내던 여자들은 이번에는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