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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사에게 인사도 하지 않은 채 집을 나온 고양이
빼꼼 열려 있는 현관문으로 고양이 한 마리가 조용히 집을 나선다. 집사에게 작별 인사도 하지 않은 채 밖으로 나온 고양이는 낯선 풍경에 정신이 혼미하다. 이내 집 냄새는 희미해져 가고, 고양이는 거리 생활에 녹아들기 시작한다. 잠잘 곳이나 먹을 것을 찾는 법도 터득하고, 바깥 생활에 대해 모르는 게 거의 없어졌을 즈음 고양이는 자기 이름이 무엇이었는지 더 이상 기억이 나지 않는다. 집사와 지낼 때는 분명 이름이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그저 밖에 사는 다른 고양이들처럼 도둑고양이, 길냥이, 들냥이 등으로 불릴 뿐이다. 고양이는 ‘나도 이름이 있으면 좋겠어.’라는 생각에 이른다. 고양이는 이름을 찾을 수 있을까? 이름을 잊은 그대에게 고양이는 어디선가 불어오는 짭조름한 바람 냄새에 문득 집사와 함께 살던 때보다 더 오래된 어린 시절 엄마와 함께 지내던 바닷가를 떠올린다. 그리고 추억 속 냄새를 따라 버스를 타고 떠난다. 다다른 곳은 작은 시골 마을이다. 그곳에서 녹슨 철문 안을 무심코 들여다보는데, 마당에 있던 할머니가 마치 먼 길을 떠났다 돌아온 아들을 대하듯 고양이를 반긴다. 드디어 이름을 불러 줄 사람을 만난 것일까? 안타깝게도 잠시 뒤 할머니는 아들에게 주려던 가자미를 탐냈다는 이유로 고양이에게 사정없이 빗자루를 휘두른다. 그렇게 쫓겨난 고양이는 가족을 아끼는 마음을 알 리 없는 자신의 처지를 다시 한 번 깨달았을 뿐이다. 과연 고양이는 이름을 가질 수 있을까? 어른과 아이가 함께 보기 좋은 〈더 같이그림책〉 시리즈로, 떠돌이가 된 고양이의 이름 찾기 여정을 그린 『고양이 멸치』는 이름이란 관계가 지어질 때에야 비로소 얻을 수 있는 것임을 보여 주는 그림책이다. 집사와 함께 지내던 고양이인지라 이름은 분명 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집을 나간 고양이는 다시 집으로 돌아가지 않고 새로운 이름, 새로운 관계를 찾아 떠돌이 생활을 한다. 그리고 가장 본능에 가까운 모습이 되어서야 새 이름으로 불리게 된다. 실패한 꿩 사냥 끝에 고양이는 “어차피 이름 없는 고양이에게는 그냥 평범한 하루였으니까.”라는 담담한 한마디를 남기지만, 모든 것을 내려놓고 나서야 눈앞에 떨어진 멸치를 발견하고, 운명의 상대를 만나게 된다. 이름이 있다는 것은 누군가 먹을 것을 준다는 뜻이고, 이름이 있다는 것은 배고프지 않다는 의미라는 고양이의 말을 기억한다면 이제 고양이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이제는 우리 스스로의 이름을 생각해 볼 차례이다. 나의 이름은 무엇이고, 어떻게 불리고 있는지 말이다. 고양이의 시선을 담은 그림 『고양이 멸치』 복잡한 도시에 살던 고양이가 집을 떠나 자신의 본능을 깨닫고 이름을 얻게 되는 과정을 역동적으로 그린 『고양이 멸치』는 장면마다 다른 색감과 시점으로 고양이의 감정을 전한다. 강렬한 황금빛 거리와 비 오는 푸르스름한 골목 등 차갑고 무심한 도시와 그곳의 사람들을 닮은 반면 바닷가 마을의 맑은 청록과 주황, 선명한 초록과 흙빛은 고향에서 느낄 법한 편안함을 선사한다. 고양이의 눈높이에서 보이는 사람들의 다리, 높은 옥상에서 내려다보이는 도시 풍경, 벼 포기 사이로 꿩을 살피는 장면들은 특히 유화의 질감이 느껴지는 두툼한 결의 그림으로 표현되어 있다. 인상파 화가의 그림을 떠올리게 하는 하늘과 빛의 흐름이 아름답고, 등장인물들의 과장된 표정과 만화처럼 컷을 나눈 꿩과 개구리 대목은 속도감과 리듬을 살려 생동감을 준다. 『바삭바삭 갈매기』의 전민걸 작가가 만든 쓸쓸하면서 따뜻하고 웃기고도 아름다운 또 하나의 세계 속에서 노란 눈의 검은 고양이 멸치가 이름이 필요한 그대를 기다리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