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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의 글
1. 나는 살아 봤다 2. 빛과 그림자 3. 장애물을 넘어서 4. 나누기 5. 캠프 생활 6. 하루하루 7. 헌사 8. 삶의 승리 후기 불공평 위에 세워진 세상을 변화시키기: 공동체의 발전 |
Sœur Emmanuelle
엠마뉘엘 수녀의 다른 상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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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눔과 사랑, 그리고 희망의 씨앗
예순두 살. 사회에서 은퇴한 엠마뉘엘 수녀에게는 편안한 노후생활, 평범한 수녀의 생활이 기다리고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가 택한 곳은 카이로의 넝마주이들이 모여 사는 극빈촌. 어느 누구도 감히 도둑질, 여자들에 대한 심한 차별대우와 범죄가 들끓는 그곳에 가는 ‘모험’조차 하지 못하는 곳이었다. 하지만 처음 만난 그곳의 모든 가난은 그를 바닷물의 소용돌이처럼 빨아들였다. 그는 넝마주이들과 생활하기 위해 염소우리를 마다하지 않았고, ‘성모 마리아 장’ 날에 시장에 가기 위해 30여 명이 한 수레에 빽빽하게 실려 가는 것도 기쁨으로 여겼다. 벼룩과 구더기를 친구로 맞이할 수 있는 ‘배짱’도 길렀으며, 그곳에 유치원과 교육 시설 등을 짓기 위한 기부금을 마련하기 위해 전세계를 돌아다니는 것을 거부하지 않았다. 엠마뉘엘 수녀가 제일 먼저 한 일은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이었다. 아이들은 글자를 배울 수도, 자연을 접할 수도, 자신들의 충동을 억제해 자살을 막을 수 있는 방법도 알 수 없었다. 그는 이러한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고, 동물원과 나일 강에 데리고 가고, 자연에 나가 그때까지 ‘꽃 한 송이 꺾어본 적이 없는’ 아이들에게 꽃을 구경시켜 주었다. 캠프-캠프의 목적은 아이들 스스로 자신들이 사는 동네를 더욱 활기차게 만드는 것이었다-를 열어 아이들에게 깨끗하게 바뀐 자신들의 모습을 볼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주기도 했다. 이 모든 것이 아이들에게는 새로운 세상을 만나는 기회였고, 새로운 세상을 꿈꿀 수 있는 기회였다. 이렇게 엠마누엘 수녀는 그들에게 희망의 씨앗을 심어주었던 것이다. 하지만 엠마뉘엘 수녀가 빈민촌의 사람들을 가르치기만 했던 것은 아니었다. 이들은 가난하고 헐벗었지만 늘 자기 것에 만족해하고 즐길 줄 알았다. 아이들은 또 자신보다 못한 사람들에게 나눔을 베풀 줄 알았으며, 가족을 위해 자신을 기꺼이 희생할 줄 알았다. 이를 보며 엠마뉘엘은 깨달았다. “인간의 마음은 수수께끼다. 풍족한 사람들은 더 많은 것을 갖고자 잠을 잃을 지경이지만, 반면 아무것도 없는 빈털터리, 즉 구두수선공들과 넝마주이들은 자기 사는 곳에 만족해하고 노래까지 부른다.” 다만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사랑과 사람이었다. 엠마뉘엘 수녀는 모든 사람이 사랑할 수 있고 사랑받을 수 있다는 것과 인간의 존엄성을 일깨워주었고, 이를 깨달아가는 그들의 얼굴에서는 점점 미소와 행복이 피어났다. 엠마뉘엘 수녀의 노력은 어느 한 순간에 찾아오기보다 사람들이 사랑의 진정한 의미를 깨달아가는 만큼 서서히 결실을 맺어갔다. 1971년 유럽인들이 은퇴를 시작하는 나이에 빈곤과 결연히 싸우기 위해 빈민촌으로 들어가서 사랑으로 기적을 만들어낸 엠마뉘엘 수녀의 이야기는 사람들에게 그야말로 살아 있는 전설로 여겨지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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넝마주이 수녀, 넝마주이의 어머니!
엠마뉘엘 수녀는 빈민구호단체인 ‘엠마우스’의 창시자 피에르 신부와 함께 프랑스인들이 ‘가장 존경하는 인물’ 가운데 한 사람이다. 1908년 벨기에 브뤼셀에서 태어나 스무 살 때 수녀가 되어 이 땅에서 소외되고 가난에 억눌려 사랑의 의미조차 깨닫지 못한 사람들과 함께하면서 가난이라는 멍에를 벗어던지게 도와준 그의 삶은, 가난과 복음을 전파했던 프란치스코 성인과 ‘살아 있는 성인’으로 불렸던 마더 테레사의 삶과 닮아 있다. 가난한 사람들과 함께 살면서 자신을 바쳐 그들을 섬기고, 그들과 함께 기쁨과 고통, 절망과 사랑을 함께 나눔으로써, 사랑의 실천이 어떤 것인지를 감동적으로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이 책은 엠마뉘엘 수녀가 이집트의 수도 카이로의 빈민촌에서 넝마주이들과 함께 23년을 살면서 겪은 충격적인 삶의 체험으로, 그가 어떻게 ‘넝마주이 수녀’, ‘넝마주이들의 어머니’가 되었고, 또한 프랑스인들로부터 왜 그렇게 많은 사랑과 존경을 받는지 알려주는 책이다. 3,000여 명의 영혼이 살아가고 또한 죽어가는, 암담한 비애의 중압감이 느껴지는, 나무 잎사귀 하나, 꽃 한 송이, 새 한 마리 없고, 축축한 땅바닥에 메마른 종려나무잎으로 지붕을 대신한 집들이 즐비한, 진흙탕 길을 오가며 쥐가 들끓고 질병이 그치지 않는 극빈촌에서, 버림받은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면서 학교를 세우고, 협동조합과 무료진료소를 만들어 그들의 삶을 바꾸어놓은 이야기이다. 그리고 그가 헌신적인 사랑, 그러나 유머로 채색된 넉넉한 사랑을 통해 차별과 학대로 고통 받던 여성들과 미래를 꿈꾸지 못했던 아이들에게 웃음과 희망을 주고, 인간이 얼마나 존엄한가를 일깨워준 이야기이다. “나는 인생을 살아 보았다!” 가난과 함께 그들은 많은 아픔을 지니고 있었다. 남녀 차별, 여성 학대, 종교간의 벽과 차별 등은 그들을 더욱 비참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그들은 늘 자기 것에 만족해했으며, 아이들은 자기보다 못한 사람들에게 나눔을 베풀 줄 알았고, 가족을 위해서 자기를 희생할 줄도 알았다. 빛과 그림자가 공존하는 그곳도 사람들이 사는 곳이었다. 다만 사랑이 부족했을 뿐. 엠마뉘엘 수녀는 그렇게 그곳에 넝마주이들의 미래를 바꾸어줄 희망을 심어주었던 것이다. 스무 살에 공부를 마치고 고향으로 돌아오는 뱃전에서 담배를 피우며 젊은 남자의 끈질긴 구애를 밀어내던 아름답고 젊은 여인은 이후 평생을 이렇게 사랑을 실천하고 살며, “어린아이들이 인생을 살아가도록 격력해주고, 그들을 도와주었던 일, 그렇게 사는 것은 뛸 듯이 기쁜 일”이었다고 지난날을 회상하고 있다. 산다는 것이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지 몸소 깨달은 그 여인은 자신의 묘비에 이렇게 적고 싶다고 한다. “그녀는 인생을 살아 보았다”라고. 엠마뉘엘 수녀는 1993년 은퇴해서 한때 우울증을 겪지만 활발한 활동으로 곧 병을 떨쳐버렸다. 이후 프랑스 남부에 살면서 명상과 적극적인 미디어 활동을 통해 사람들에게 ‘사랑’의 중요성을 전파하고 있다. 이러한 공로로 2002년 프랑스 정부로부터 레지옹도뇌르 훈장을 받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