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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희가 없는 행성에 도착했다
이슬기 저
싱긋 2026.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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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프롤로그

1부 얼어붙은 행성
변 본 놈이 범인 | 삶은 뜨거운 국밥처럼 넘어간다 | 모든 비극의 시작 | 가장 완벽한 서사 | 오라버니 | 멀쩡한 얼굴 | 칼끝을 둥글게

2부 갈라지는 행성
금이 가는 소리 | 세트장 안에서 | 나는 아직 시험받지 않았을 뿐이었다 | 모두가 처음이었다 | 환자가 되는 시간 | 엄마의 검은 비닐봉투 | 걷지 못할 수도 있다고 | 우리집이 세상 끝에 있구나 | 우아함에 대하여 | 골룸 비슷한 머리의 여자 | 마흔여섯번째 생일이 이렇게 간다 | 낡은 깃발을 따라서 | 나무를 붙잡고 버티는 법

3부 저무는 행성
가족이 아프다는 것 | 분홍 카네이션과 상추쌈 | 아빠의 악수 | 마지막 정거장 | 장례식장에서 | 보따리장수의 방

4부 다시 도는 행성
김태희를 모르는 행성에 도착했다 | 나의 쉰은 산정특례 종료와 함께 왔다 | 당신의 총명함 구독 서비스가 만료되었습니다 | ‘안녕하세요’라는 무례 | 이해할 수 없어도 다정할 수 있다 | 곁에 머무는 사람 | 알고리즘이 가르쳐주지 않는 빗속의 온도 | 극혐의 행성에서 살아남는 법 | 천하무적은 될 수 없다 | 서점에서 자란 아이 | 다시 살 수 있다면 | 사선에서의 기도 | 비장하지 않아도 되는 삶 | 잘 떠나는 사람 | 유채꽃이 흔들린다

에필로그

저자 소개 1

10년 가까이 강력계 사건과 죽음을 취재했다. 오랫동안 남의 마지막을 받아적다가, 몸이 아프고 난 뒤부터 자신의 하루를 적는다. 낯선 행성에 불시착한 이가 마주한 사람과 사랑, 그리고 매일을 살아내는 일에 대해 쓴 글로 경기콘텐츠진흥원에서 진행한 ‘2026 경기히든작가’에 당선되었다. 불암산 밑 작은 동네에서 초록이 짙어지고 바래는 것을 보며 살고 있다.

관련 분류

품목정보

발행일
2026년 11월 06일
쪽수, 무게, 크기
268쪽 | 120*188*20mm
ISBN13
9791124706398

책 속으로

나도 모르게 크게 숨을 들이마셨다가, 끝까지 내쉬었다. 마치 폐 속에 남은 부검실의 공기를 마지막 한 톨까지 밀어내려는 듯이. 겨우 문 하나를 사이에 두고, 저쪽은 냉기와 정적이었고 이쪽은 햇살과 바람이었다. 삶과 죽음은 어쩌면 그렇게, 늘 한 뼘 거리에서 서로를 등지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p.22

매일 죽음을 꿈꾸었다. 조용하고 서늘하며 평안하고 안전할 것 같은 그것. 하지만 그것이 정말 눈앞의 현실로 배달되었을 때의 공포는 전혀 다른 차원의 것이었다. 그동안 다시 깨고 싶지 않다고 칭얼거리던 그 숱한 밤들이 무색하게도, 나는 살고 싶다는 맹렬한 갈망으로 온몸을 떨었다. 그때 처음 알았다. 내 얼음판도 이토록 쉽게 금이 가고 깨질 수 있다는 것을. 나는 강한 사람이 아니었다. 다만 아직 시험받지 않았을 뿐이었다.
---p.73

저녁식사 시간, 식탁 위에는 엄마가 이고 지고 온 경동시장의 나물들이 가득 차려졌다. 나는 말없이 젓가락을 들어 나물들을 한 점씩 입에 넣고 오물오물 씹었다. 그날 처음으로 알았다. 엄마도 나처럼, 아무도 모르게 숨어서 우는 사람이라는 것을. 우리는 서로를 이해하지 못했던 것이 아니라, 서로의 우는 모습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던 것인지도 몰랐다. 소리 없던 엄마의 눈물이 나물 안에 다 절여져 있는 것 같아서 나는 그 짠맛을 삼키고 또 삼켰다.
---pp.88-89

그 숱한 날들, 손바닥에 새겨진 나무껍질의 감촉은 지금도 선명하다. 나를 살린 것은 어느 날의 기적이 아니었다. 거칠고 단단하던 그 나무들, 그걸 붙잡고 버틴 하루, 또 하루였다.
---p.129

병실 구석에서 그 이야기를 전해들으면서 우리는 소리 없이 어깨를 들썩이며 웃었다. 너무 짠하고 슬픈데, 또 너무 웃겨서 눈물이 찔끔 났다. 억장은 무너지는데 시트콤은 계속되는, 병실이란 원래 그런 곳이었다.
---pp.150-151

그런데 아빠는 우산을 건네는 대신, 빗물과 흙먼지가 뒤섞인 타일 바닥 위에 턱 하니 무릎을 꿇었다. 그러더니 대뜸 내 하이힐 뒤꿈치를 잡고 구두를 벗겨내는 것이었다. 그리고 당신이 챙겨온 헐렁한 고무 슬리퍼 안으로 내 맨발을 조심조심 밀어넣어주었다.
---p.164

“나는 뭐하느라고 저런 맛있는 것도 안 먹고 살았을까. 너희들은 먹고 싶은 거 다 먹고, 가고 싶은 데 다 가면서 살아라.” 어쩌면 그 읊조림이 당신이 우리에게 남긴 진짜 유언이었을 것이다.
---p.177

“그런데, 김태희가 누구죠?” 그 순간, 내가 믿어온 절대적인 세계에 쩍 하고 금이 갔다. 조금 전까지 침을 튀기며 열거했던 그 찬란한 수식어들이 공중에서 길을 잃고 흩어졌다.
---p.184

요즘도 누군가는 비염을 이야기하고, 누군가는 피부염을 이야기한다. 나는 이제 그 말들의 무게를 내 아픔으로 저울질하지 않는다. 우리는 저마다 끝내 바꿔 입을 수 없는 거친 옷을 입은 채, 각자의 삶을 버텨내고 있을 뿐이다. 이해한다는 말 대신 나는 이제 이렇게 말하기로 한다. 나는 당신의 아픔을 다 알지 못한다고. 그래도 당신 곁에 앉아 있고 싶다고.
---p.205

앞으로 내가 매일 톡 보낼게. 너는 답 안 해도 돼. 그냥 읽기만 해. 그날 이후 A는 정말로 매일 무언가를 보내왔다. 어느 날은 청과물시장을 지나다 찍은 초록색 사과 사진이었고, 어느 날은 편의점 비닐우산 사진이나 보도블록 틈에 핀 이름 모를 풀꽃 사진이었다.
---p.208

“하나님 잠깐만요! 저 잠깐만 집 좀 정리하고 오면 안 될까요?” 회개나 유언을 남기기엔 내 거실의 꼬락서니가 너무나 엉망이었다. 죽음 그 자체보다 무서운 건 남겨진 이들이 내 방을 정리하며 혀를 차는 환영이었다.
---p.240

출판사 리뷰

절벽 위 한 뼘의 찰나, 삶과 죽음을 가르는 시간

강력 사건 담당 기자였던 저자가 범죄 현장에서 본 삶과 죽음의 경계에는 오랜 시간도 거창한 동기도 없었다. 자신을 전과자라고 소문냈다는 원한으로 두 사람을 찔러 숨지게 한 범인, 기름값 몇만 원이 필요해 하필 문이 잠기지 않은 집에 들어선 강도. 저자가 마주한 범인들의 밑바닥에는 “오래 눌린 분노, 비뚤어진 모멸감, 누구도 제 손을 붙잡아주지 않았다는 고독한 기억”이 있었다. 삶과 죽음을 가른 것은 거창한 악마성이 아니라 아주 사소한 균열과 운의 엇갈림이었다. 10년 동안 그 위태로운 경계를 들여다보며 저자가 얻은 답은 하나다. 인간에게는 제 감정의 무게를 견뎌낼 단단한 얼음판 같은 힘이 필요하다는 것.

동전 앞뒷면 같은 생존율 50퍼센트,
반절의 희망과 반절의 절망

출산 후 저자는 10년 차 기자 생활을 접고 육아를 택했다. 사이렌 소리도 경찰서의 악다구니도 사라진 평온은 곧 낯선 행성에 떨어진 듯한 고립감으로 바뀌었다. “마음이 먼저 허물어져 있으니 몸이 지르는 비명 따위는 들을 여력이 없었던” 사이 암은 3기까지 자라 있었다. 생존율 50퍼센트, “살 확률이 동전 던지기와 같다는 말”이었다. 통증이 밀려올 때마다 저자는 길가의 나무를 붙잡고 버텼다. 지나가라, 제발 이 시간만 지나가라. 그러나 암은 폐로 번져 4기가 되었고, 투병중이던 저자는 폐암 4기 판정을 받은 아버지를 떠나보낸다. 딸이 암과 싸우는 와중이라 아픈 소리 한마디 내지 못하고 “앙다문 입으로 죽음을 향해 홀로 걸어”간 아버지를 향한 부채감은 읽는 이의 마음까지 먹먹하게 한다.

비장하지 않아도 괜찮은, 다시 시작되는 삶

5년이라는 긴 터널을 걸어나온 저자는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을 품은 채 생존자라는 새 이름표”를 달고 새로운 삶을 시작한다. 그러나 덤으로 얻은 삶이니 모든 순간 감사해야 한다는 마음은 어느새 버거운 “숙제”가 되었고, 죽음을 말하는 이에게 그럴 자격이 있는지 캐묻는 “심판자”가 되어 있었다는 고백도 이어진다. 그러다 찾아온 지극히 평범한 통증, ‘오십견’ 앞에서 저자는 자신이 보통의 사람들과 다르지 않음을 깨닫고 스스로 부여했던 특별함을 내려놓는다. 이 책은 타인의 고통을 이해한다는 말 대신 다정한 안부를 건넨다. “나는 당신의 아픔을 다 알지 못한다고. 그래도 당신 곁에 앉아 있고 싶다고.”

“이 행성에서 나를 살게 한 건 작고 사소한 손짓들이었다. 매일 아침 도착하던 안부 하나, 등에 닿던 입맞춤 하나, 침대에서 발견한 베개 하나. 그때는 미처 그 이름을 알지 못했다. 이제 나는 그런 것들을 사랑이라 부르기로 한다.” _「에필로그」에서

추천평

각 챕터가 저마다 다채로운 색채를 지녔다. 끔찍한 사건을 취재하는 강력계 기자의 일기였다가, 암 4기를 진단받고 고통 속에서 인간의 존엄을 고뇌하는 투병기였다가, 사랑하는 사람을 곁에서 떠나보내는 간병기였다가, 인생 전반을 돌아보는 회고록으로 자연스럽게 전환된다. 하지만 이 모든 이야기에는 한 인간이 좌절을 딛고 성장하며 나아간다는 공통점이 있다. 아마 기록이라는 행위가 그 힘겨운 시간들을 견디게 해준 버팀목이었으리라. 이제 진정한 인생의 봄을 맞으러 떠나는 그의 여정을 기꺼이 응원한다. - 남궁인 (응급의학과 의사, 『몸, 내 안의 우주』 저자)
사람 하나가 행성 하나라면 이 지구에는 사람의 수만큼 행성이 산다. 저마다의 지층과 결을 가진 그들이 태양의 빛을 한껏 받으며 자전과 공전을 하는데 이것을 지구인들은 인생 혹은 삶이라 부른다. 그렇다면 ‘이슬기’로 휘도는 행성은 어떤 모습일까. 그의 자리에 내리박힌 태양 빛의 결을 살짝 들춰보니 강력범죄 취재를 하던 기자와 누군가의 딸이자 엄마인 ‘슬기로운 행성’이 있다. 가스와 먼지로 가득한 우주에서 오롯이 저만의 빛을 내기 위한 혼신의 무늬들이 가득하다. 꼭 제 몸집만큼의 반사광을 내뿜으며 먼저 지구를 떠난 아버지의 행성과도 도킹할 수 있기를, 아팠던 자신의 몸에게도 쉼과 회복의 기운이 머물기를, 아이들에게 조금 더 어엿한 어미일 수 있기를 빌던 시간들이 고스란하다. 그래도 명랑과 꿈과 생기를 잃지 않기 위해 한껏 태양 곁으로 다가든 소행성 이슬기. 언젠가는 헤어졌던 과거의 시간과도 조우할 수 있기를, 조금 더 지구에서 튼튼하게 머물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 슬기로운, 아니 슬기다운 행성에서 김태희보다 더 미쁘게 빛나는 중이다. - 이은선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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