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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며 - 왜 이렇게까지 하느냐는 질문 앞에서
1부 처음 배운 배리어프리 1. 버스표를 자르던 밤 | 2. 어머니의 한쪽 귀 | 3. 창피함은 어디에서 오는가 | 4. 망원동에서 부른 만세 2부 공연장 뒤편에서 배운 것들 5. 전화 한 통 이후, 소리를 보기 시작했다 | 6. 불을 끄자, 다른 감각이 들어왔다 | 7. 자막은 어디에 있어야 하는가 | 8. 수어통역사의 노트 필기 | 9. 마음보다 예산서가 먼저인 날 | 10. 장비 목록 너머의 얼굴들 3부 감각을 다시 배우는 사람들 11. 작은 반창고 | 12. 프로젝트 For Surviving | 13. 나는 스스로 존재하는 자 | 14. 가장 가까운, 가장 복잡한 존재 | 15. 외로움에 이름을 붙이는 일 | 16. 산은 산인데, 산이 아니로다 | 17. 음악감독의 예민함 4부 기술보다 먼저 도착한 사람 18. 화면은 마음을 대신할 수 있을까 | 19. 피규어를 만지는 손 | 20. 제도 안으로 | 21. 관객이 오래 머문 자리 | 22. 아직 도착하지 않은 감각들 | 23. 한 사람분의 길을 묶는 일 작가의 말: 첫 원고를 묶으며 부록: 작은 현장 사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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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는 나에게 복지를 가르친 적이 없다. 더욱이 배리어프리라는 말은 쓰지 않던 시절이다. 그러나 어머니는 매번 문 앞에서 몸을 조금 낮추었다. 이름을 부를 때도, 안부를 물을 때도, 무엇이 필요한지 확인할 때도 그랬다. 그것은 말로 배운 윤리가 아니었다. 사람을 만날 때 몸의 높이를 어떻게 조정해야 하는지, 도움을 주는 사람이 왜 더 조심해야 하는지, 나는 그 모습을 보며 깨우쳤다.
---p.23 창피함은 개인이 혼자 만들어내는 감정이 아니었다. 누군가의 시선, 반복된 말, 제도의 문턱, 불편을 말했을 때 돌아오는 표정들이 쌓여 마음 안에 자리잡은 장벽이었다. ---p.39 청각장애인이라고 해서 모두 같은 방식으로 음악을 만나지 않는다. 수어와 문자와 진동과 시각 정보 중 무엇이 필요한지도 사람마다 다르다. (…) 기술이 있으면 길이 열릴 것이라고 생각했다. 비싼 장치를 붙이고, 멋진 화면을 만들고, 좋은 의도를 가지고 있으면, 공연이 도착할 것이라고 믿었다. 그러나 공연은 장치만으로 도착하지 않는다. 공연은 사람에게 도착해야 한다. 그리고 사람에게 도착하기 위해서는 그 사람이 어떤 방식으로 세계를 만나는지 먼저 물어야 한다. ---pp.59-60 자막은 글자이지만, 한 사람의 시선이 공연 안에서 길을 잃지 않도록 문장으로 수놓은 길일지도 모른다. ---p.84 수어통역은 한국어 문장을 손동작으로 바꾸는 일이 아니었다. 그것은 한 장면의 관계와 감정과 리듬을 다른 언어의 구조 안에 다시 세우는 일이었다. ---p.86 누군가의 접근권이 누군가의 무급노동으로 해결되어서는 안 된다. 누군가가 공연장에 들어올 수 있게 하기 위해, 다른 누군가가 계속 자기 시간을 잃고, 자기 돈을 쓰고, 자기 몸을 갈아 넣어야 한다면, 그것은 오래 지속될 수 없다. ---p.101 질문들은 작업을 느리게 만들었지만 그 느림이야말로 필요한 일이었다. 배리어프리는 속도를 늦추는 일에서 시작될 때가 많다. 누군가 따라올 수 있도록, 아니 정확히 말하면 우리가 다름의 속도를 배울 수 있도록, 작업의 시간을 다시 조정해야 한다. (117-118쪽) 자폐성장애인, 발달장애인의 삶은 아동기에는 교육과 치료, 돌봄의 언어로 자주 언급된다. 그러나 성인이 된 이후의 삶은 쉽게 흐려진다. 부모가 나이 들고 돌봄의 체력이 줄어드는 시간, 직업과 주거, 관계와 여가의 문제가 현실로 다가오는 시간은 충분히 이야기되지 않는다. ---p.141 기술은 늘 빠르다. 새로운 프로그램이 나오고, 더 선명한 화면이 등장하고, 더 정교한 알고리즘이 사람의 표정과 목소리를 흉내낸다. ‘이제 이런 것도 가능하구나. 이제 사람의 상상도 이렇게 빨리 이미지가 되는구나’ 하며, 자주 감탄하게 되었다. 이렇게 기술은 빨라지는데, 나는 오히려 더딘 질문을 붙잡게 되었다. “인공지능이 만든 화면은 마음을 대신할 수 있을까?” ---p.171 이 원고는 나를 떠나 독자에게 갈 것이다. 어떤 사람은 어머니의 이야기에서 자기 가족을 떠올릴 것이고, 어떤 사람은 공연장이나 전시장에서 지나친 장면을 기억할지도 모른다. 내가 의도하지 않은 곳에서 멈추는 이도 있을 것이다. 그 멈춤에서 질문이 시작된다면, 이 긴 글을 묶은 시간이 헛되지 않을 것 같다. ---「작가의 말: 첫 원고를 묶으며」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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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장 뒤편에서 배리어프리를 배우다
2011년, 저자는 “청각장애인도 공연을 즐길 수 있을까요?”라는 전화를 받는다. 예술의 사회적 역할을 고민해왔으면서도 객석에서 누가 밀려나는지는 거의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는 고백이 거기서 시작된다. 당시 ‘수화 공연’은 노랫말을 따라 아름답게 움직이는 착한 몸짓으로 소비되고 있는 건 아닐까. 저자는 그런 의문을 품고 소리를 다른 감각으로 옮기는 방법을 찾아 나섰다. 베이스의 낮은 떨림은 바닥을 지나 몸으로, 드럼 박자는 빛의 깜빡임으로, 목소리의 높낮이는 색의 밀도로 바꿔보았다. 하지만 그 생각은 절반만 맞았다. 청각장애인이라고 모두 같은 방식으로 음악을 만나지는 않는다. 가사를 알고 싶은 사람이 있고, 무대에서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알고 싶은 사람이 있고, 공연의 구조를 미리 알아야 편안해지는 사람이 있다. 비싼 장치와 멋진 화면과 좋은 의도가 있으면 공연이 도착할 거라 믿던 저자는 이제 이렇게 말한다. 공연이 사람에게 도착하려면 그 사람이 어떤 방식으로 세계를 만나는지부터 물어야 한다고. 현장에서 가장 자주 들은 말은 “좋은 일이니까 조금만 도와주세요”였다. 저자 자신도 그 말을 수없이 했다. 그러다 끝내 이렇게 인정한다. “누군가의 접근권이 누군가의 무급노동으로 해결되어서는 안 된다.” 밖에서 보기에는 좋은 배려처럼 보여도, 실제 당사자에게는 불편하거나 부담스러울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배리어프리 작업은 당사자를 대신해 말하는 일이 아니라, 당사자의 속도와 감각을 함께 조정하는 일이어야 한다. _「부록: 작은 현장 사전」에서 감각을 다시 배우며 배리어프리를 배우다 시각장애가 있는 뮤지션 배희관에게 운동장에서 뛰어보자고 권했다가 그의 이마에 반창고를 붙여준 날이 있었다. 수어통역이 1~2초 늦게 따라온다고 여겨 상의 없이 영상을 잘라낸 날도 있었다. 저자는 이런 일들을 겪으며 같은 장애 안에서도 세계를 만나는 방식이 저마다 다르다는 것을 배웠다. 자폐성장애가 있는 정도운 작가는 사람들을 ‘래퍼’ ‘죽음’ ‘대머리’처럼 자기가 발견한 공통점으로 분류하다가, 어느 순간 ‘만난 사람’과 ‘만날 사람’이라는 새 분류를 만들어냈다. 발달장애가 있는 한부열 작가 곁에는 늘 어머니 임경신 선생님이 있다. 저자는 처음에 그 헌신을 어머니의 욕심이 아닐까 의심했다. 그러다 그것이 자신이 먼저 떠난 뒤에도 무너지지 않을 아들의 삶을 위해 기초를 다지는 일이라는 걸 알고 섣부른 판단을 뉘우친다. 자폐성장애인과 발달장애인의 삶은 어린 시절에는 교육과 치료, 돌봄의 언어로 자주 이야기되지만 어른이 된 뒤의 시간은 쉽게 흐려진다. 저자는 배리어프리가 그 뒤의 시간까지 함께 보아야 한다고 말한다. 기술보다 사람이 먼저 도착하는 배리어프리 “이 많은 수고가 실제로 몇 명에게 가닿는가.” 이런 생각이 들 때마다 저자는 입술을 깨물었다. 관객 수를 묻는 것처럼 들리지만 한 사람의 권리를 비용으로 환산하는 말이 될 수 있어서다. 그래서 질문을 바꾼다. 자막을 몇 명이 보느냐가 아니라, 자막이 필요한 사람이 공연 안에 머물 수 있느냐고. 실시간 자막은 청각장애 관객을 위해 출발했지만 결국 더 많은 관객에게 편리한 길이 되었다. 경사로는 유아차를 끄는 사람에게도, 쉬운 안내문은 낯선 공간에 처음 온 사람에게도 필요하다. 저자에게 문화는 남는 시간에 누리는 여유가 아니라 살아가는 시간을 버티게 하는 힘이다. 그래서 배리어프리는 이동권과 관람권을 넘어 좋아할 권리와 상상할 권리까지 품어야 한다. 그날 조명감독의 질문에 저자가 할 수 있던 말은 “누군가는 해야 하니까요” 하나뿐이었다. 이 책은 그 말이 미처 담지 못한 대답이다. 한 사람의 세상이 덜 밀려나도록, 한 사람이 좋아하는 것을 향해 갈 수 있도록, 한 사람이 자기 속도로 머물 수 있도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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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민 작가는 공연 및 영상 분야에서 예술감독으로 일하며 얻은 통찰과 경험으로 장애 예술과 융합 기술의 접점을 모색하는 작업을 해왔다. ‘배리어프리에 답하다’에서는 그런 작업이 어떤 계기로 시작되었는지, 그 과정에서 무슨 일들이 있었는지, 그리하여 궁극적으로 나아가려는 방향이 어디인지 설명하고 있다.
노년에 접어들며 장애와 비장애를 가르는 경계 같은 건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있다. ‘완벽한 인간’은 개념 속에만 존재하는 허구라는 것도. 우리 인간은 사소한 차이로 배열된 정신과 신체의 스펙트럼 위에서 이리저리 옮겨 다니는 존재일 테다. 결국 ‘배리어프리’는 자기 자신과 공동체 모두를 배려하려는 시도이다. ‘내가 아닌 다른 몸의 감각을 함께 느껴보고자’ 하는 작업을 지속해온 김경민 작가의 글은 현장에서 길어 올린 사실과 느낌으로 충만하다. 존중과 배려가 어쩌면 사랑보다 더 중요한 일임을 실감하게 한다. - 부희령 (소설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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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람분’이라는 단어가 읽고 난 뒤 뇌리에서 지워지지가 않는다. 어린 시절 방바닥에 앉아 버스표를 세어 묶었다는 저자. 사회복지 공무원이던 어머니가 누군가의 이동을 위해 나눠주던 종이였다. 그 지루한 반복이 훗날 공연장 뒤편에서 자막 속도를 재고 휠체어 동선을 다시 그리는 일로 이어진다.
그런 저자가 먼저 말하는 건 ‘실패’다. 시각장애가 있는 뮤지션에게 운동장을 뛰어보라 권했다가 이마에 반창고를 붙여주던 날, 수어의 1~2초 지연을 오류로 여겨 잘라낸 영상 편집… 좋은 의도가 곧 좋은 접근성은 아닐 수 있다는 문장이 이런 기록들 위에 놓인다. 한복판까지 들어간 사람만이 말할 수 있는 것들이 있다. 바로 그곳에서 김경민은 지금도 한 사람분의 길을 묶는 중이다. - 김성신 (출판평론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