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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문4
1장 고독한 천재의 탄생과 불꽃 1. 니체의 유년 시절15 2. 열정을 다 바친 니체의 연대기19 3. 쇼펜하우어의 사상적 영향23 4. 바그너(Wagner) 음악에 매료되다.28 5. 운명을 사랑한 사람33 2장 고통을 넘어 강철이 된 정신 1. 아포리즘((Aphorism)40 2. 나를 죽이지 못하는 고통은 나를 더 강하게 한다41 3. 悲劇的(비극적) 과거를 지우지 말라50 4. 병약했던 니체의 육체53 5. 짜라투스트라와 니체의 관계55 3장 神(신)이 죽은 자리, 허무가 피어나다 1. 神(신)의 죽음64 2. 神(신)의 죽음이 낳은 니힐리즘70 3. 신을 죽인 기독교를 비판77 4. 哲學者(철학자)들을 비판82 5. 기독교 奴隸(노예) 도덕을 비판86 4장 善惡(선악)의 경계를 넘어 망치를 들다 1. 위대한 正午(정오) 92 2. 善惡(선악)을 넘어서96 3. 진리를 여자로 비유한 니체101 4. 유럽교회 비판103 5. 기독교 原罪(원죄)를 비판110 6. 원죄를 비판하던 역사 속 신학자들114 7. 기독교 원죄 교리가 인간 심리에 미친 영향122 8. 浪漫主義者(낭만주의자)들을 비판134 9. 道德主義者(도덕주의자)들을 비판138 5장 超人(초인), 인간을 넘어서는 길 1. 超人(초인), Übermensch(위버멘쉬)144 2. 혹독한 자기 훈련158 3. 고통의 熟考(숙고)169 4. 地獄(지옥)의 돼지 새끼 사건175 5. 欺瞞(기만)을 폭로하는 그의 철학220 6. 普遍性(보편성)을 잃은 기독교 사상229 7. 善惡(선악)의 二原性(이원성) 기원232 6장 고독의 심연에서 운명을 사랑하다 1. 고독 禮讚(예찬)238 2. 병마와 함께한 고단한 니체의 삶. 243 3. 頂上(정상)은 위험하고 고독하다.255 4. 신의 죽음에 동참한 사상가들과 신학자들264 5. 엔도르핀, 도파민 없는 니체의 孤獨(고독)271 6. 운명을 사랑한 偉人(위인)들276 7장 낙타와 사자와 아이, 그리고 永遠回歸(영원회귀) 1. 무거운 짐을 지고 비척대는 광야의 낙타282 2. 사자의 咆哮(포효)와 제왕의 길284 3. 어린아이의 絶對(절대) 자유가 되어라.288 4. 巨人(거인)의 속삭임294 5. 노예근성에서 解放(해방)298 6. 永遠(영원) 回歸(회귀)306 7. 위대한 發見(발견)313 8. 니체에게 영향을 끼친 주역과 스피노자319 8장 모든 관계를 끊고 시대를 넘어선 니체 1. 관계의 오랏줄을 끊은 사람328 2. 바그너(Wagner)에게서 등을 돌리다332 3. 쇼펜하우어에게서도 등을 돌리다339 4. 보편적 사랑을 超越(초월)한 니체341 5 고독이 부른 病魔(병마)344 6. 안타까운 그의 죽음352 7. 소크라테스 죽음과 비교되는 니체의 정신357 8. 니체 철학과 기독교 신학은 원한 관계일까?360 9. 니체 철학이 現代人(현대인)에게 끼친 영향364 10. 기독교 문화에 숙제를 남긴 니체 철학370 *後記377 *참고문헌37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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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문
나는 유년 시절에 학업이 중단되는 不運兒(불운아)로, 학교 친구가 없는 고아였다. 막노동을 하는 머슴 친구가 몇 명 있었다. 뒤늦게 獨學(독학)으로 책을 가까이하면서 의식에 눈이 떠져, 인간은 평등하고 고유한 존재임을 알았다. 내가 살던 시골 마을의 새마을회관에 책들이 몇십 권 정도 진열되어 있었다. 주로 三國志(삼국지), 水滸志(수호지), 孫子兵法(손자병법), 박 계형의 청춘소설과 김 말봉의 소설, 기타 만화와 농민 잡지, 양계와 토끼 기르기 등에 관한 책들이 꽂혀 있었다. 그러나 마을 청년 중에 책을 읽는 사람은 나와 ‘추 문기’라는 사람뿐이었다. 이때부터 손에 책이 없으면 늘 허전하여, 마치 하오의 시장기와 같은 정신적 부족함을 느끼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14㎞ 떨어진 금산 시내의 基督敎(기독교) 장로님이 운영하는 ‘화신서점’이라는 곳에 드나들기 시작하면서 본격적으로 讀書(독서)를 시작했다. 유 조현, 정 비석, 함 석헌, 이 은상, 이 어령 등을 지나면서 역사문학에 心醉(심취)하였다. 그러던 중 기독교 神學(신학)을 공부하던 어느 날, 탈레스, 니체와 스피노자, 쇼펜하우어, 소크라테스, 플라톤, 칼 융 등을 읽게 되었다. 뭔가에 심취한 듯하였으나 너무 어려웠고, 누구 앞에서 그 이야기를 꺼내려 하면 혀가 입안에서 맴돌 뿐 한마디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 나이가 50세를 넘으면서 성경의 印封(인봉)이 다 떨어지고 나니, 저절로 人文學(인문학)과 西洋哲學(서양철학)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이제야 그들의 사상이 좀 보인다. 이제는 말할 수 있다. 예수 사상을 이해하고 나서부터 나는 바깥세상에 눈을 돌렸다. 그동안 교회라는 울타리에서 젊은 시절 위안을 받은 것은 사실이다. 그런데 그 울타리는 나에게 무서운 獨善(독선)의 절대주의와 구원을 빙자한 폭 좁은 감옥이었으며, 결국 나는 우물 안의 개구리가 되고 말았다. 내가 50년을 겪어온 기독교는, 한 손에는 劍(검), 한 손에는 코란을 들고 부르짖는 무슬림과 전혀 다를 바 없는 절대적 독선으로 비쳤다. 또한 성직자들의 ‘야누스(Janus)’적 마인드와, 자신들도 모르는 사이 규정지어 놓은 ‘쥬다이즘(Judaism)’의 自繩自縛(자승자박) 속에 갇혀 있었다. 具體的(구체적) 설명은 각 장에서 이해를 도울 것이다. 나는 기독교의 善惡(선악) 문제를 50년 이상 反證(반증)하며 살아왔다. 내가 니체를 재해석하려 붓을 든 것은, 인생의 황혼기에 그의 사상을 나의 지인들에게 풀어 전해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지난해에는 소크라테스 評論(평론)을 출간하였고, 마지막으로 니체를 택하여 그의 사상을 알기 쉽게 조명해 보려 한다. 나의 사명은 그에 대한 오해를 조금이나마 벗겨주는 데 있다. 그를 미치광이나 정신병자로만 인식하는 보수적인 사람들에게, 냉철하면서도 밝은 그의 사상을 다시 조명해 주고자 미력하나마 붓을 들었다. 1889년 1월 3일, 이탈리아 카를로 알베르토 광장에는 찬 바람이 몰아치고 있었다. 광장 한켠에 낡은 외투를 입은 초라한 중년 사나이가 흐트러진 콧수염을 기른 채, 멍한 눈으로 거리의 어느 光景(광경)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때 무거운 수레를 끌고 가는 마차와 마부가 보였다. 마부는 채찍으로 늙은 말을 사정없이 후려치고 있었다. 무거운 짐에 힘겨워 말이 비척거리자, 마부는 더욱 세차게 채찍을 가했다. 그때 사나이는 비명을 지르며 말에게 달려가 그 목을 껴안고 큰 소리로 울기 시작하였다. 사람들이 하나둘 모여들어 수군거렸다. 어떤 이는 “미친 사람이군!” 하며 조소했고, 어떤 이는 고개를 흔들었으며, 또 어떤 이는 “별사람 다 봤군!” 하며 웃었다. 그러나 사나이는 말을 놓지 않은 채 중얼거렸다. “미안하다. 얼마나 힘든가. 이해한다.” 그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슬피 울었다. 그때 셋방 주인이 와서 그를 말에게서 떼어놓고 집으로 데려갔다. 그는 돌아가면서도 채찍을 맞던 늙은 말을 계속 돌아보며 무엇인가 중얼거렸다. 그는 훗날 精神病者(정신병자)라는 꼬리표가 붙은 니체였다. 그 광장에 내가 있었어도 아마 그리했을 것이다. 니체 사상의 핵심에는 몇 가지 키워드가 있다. 그중 너무나도 유명한 아포리즘(Aphorism)이 바로 “神(신)은 죽었다”라는 말이다. 기독교인들은 이 짧은 말 한마디에 소름이 돋아, 두말할 필요도 없이 그를 이단아로 규정해 버린다. 그러나 이 말은 단순히 神(신)의 존재를 부정한다는 뜻만은 아니다. 니체는 이를 통해 기독교적 도덕과 전통적인 종교의 유산, 그리고 기존 가치 체계의 崩壞(붕괴)를 선언하고자 했다. 또한 인간은 스스로 새로운 가치를 창조하여 거친 세상을 힘 있게 살아내야 한다고 보았다. 이를 그는 ‘힘에의 의지(Wille zur Macht)’로 설명하였다. 즉 생명의 원동력은 단순한 생존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넘어 더 높은 상태로 나아가려는 힘과 의지에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자기 초월과 성장의 추구를 그는 創造的(창조적) 극복의 과정으로 보았다. 그가 말한 超人(초인)은 기존의 도덕을 넘어 자신만의 가치를 창조하는 이상적인 인간상이다. 또한 고통마저 긍정하며 자신의 운명을 사랑하는 아모르 파티(Amor Fati)적 태도 역시 니체 사상의 特徵(특징)이다. 또 하나의 주요 개념은 永遠回歸(영원회귀)다. 삶의 모든 순간이 무한히 반복된다 하더라도, 그 삶을 있는 그대로 긍정할 수 있어야 한다는 끈질긴 사상이다. 힘들이지 않고 어찌 용병이 만들어지며, 챔피언이 만들어지겠는가? 이는 ‘디오니소스적(Dionysian)’ 정신으로 볼 수 있다. 니체는 인간을 동물에서 超人(초인)으로 나아가기 위해 자신을 극복해야 하는 존재로 보았으며, 이러한 선언으로 기존 철학의 틀을 顚覆(전복)시켰다. 구체적인 논증은 각 장에서 서술할 것이다. 이 책을 인연이 닿아 읽게 된 독자들에게 한 가지 양해를 구하고 싶다. 알다시피 니체의 사상은 난해하고 一貫性(일관성)을 파악하기 쉽지 않다. 더욱이 이 책은 소설이나 산문집이 아니다. 철학적으로 意識(의식) 水準(수준)이 낮은 내가 용기를 내어 붓을 잡았으나, 니체를 평론하는 일은 매우 어려워 반복적인 언급이 많을 수밖에 없음을 이해해 주기 바란다. 그러한 반복은 그의 아포리즘을 독자의 의식 속에 더욱 깊이 각인시키고자 함이며, 그것 또한 이 책을 쓰는 목적 중 하나이다. 나는 그의 예리한 통찰과, 인간이 만들어낸 종교적 原罪(원죄)의 굴레를 부숴버리는 망치를 휘두르며 자유를 선언한 이 철학자의 위대한 배짱에 매료되었다. 또한 고독이 불러온 병마 앞에서 엔도르핀(Endorphin) 한 방울 없이 죽음을 향해 가는 그의 모습을 안타까운 마음으로 바라본다. 나는 普遍性(보편성)을 얻지 못한 그의 고독한 思念(사념)을 마치 내 것인 양 讚美(찬미)하며, 니체 사상과 기독교 神秘主義(신비주의) 사상의 만남을 하나의 숙제로 삼아 그 접점을 찾아 魂神(혼신)을 기울이려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