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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말 | 다시 책상 앞에 앉는 일 · 4
1부 고래가 왔다‥11 | 소고기뭇국‥17 | 그 사람, 박윤정‥23 사과를 두고 온 시간‥28 | 쓰리 밥‥33 | 괜찮아?‥38 우산이끼‥43 | 고등동물의 비애‥47 | 고독도 때로는 소외를 느낀다‥51 2부 다시 그곳에 갈 수 있을까‥59 | 그리움은 그리움대로‥63 1월 초하루의 모놀로그‥68 | 웃으면 그 웃음소리 그대로인데‥71 놀이터 그네‥76 | 내가 그곳에 있었다‥80 술 한 잔 가득‥85 | 느리고 고요하게‥90 3부 노란 꽃‥97 | 몬스테라와 같이‥101 | 상처‥105 | 미음 한 그릇‥110 죽음에 대한 쓸데없는 생각‥114 | 내가 선택한 방식들‥119 신고왕‥124 | 움직이는 강의실‥129 | 비 오는 날의 칸타타‥134 4부 사고의 재구성‥141 | 용도폐기에 대한 분리불안적 태도‥146 이름에 관한 생각‥151 | 피사리‥157 | 나에게도 단골 술집 하나 있으면 좋겠다‥162 고양이 물루와 홍차‥167 | 출근‥173 5부 시를 읽는 시간‥185 | 수필은 밥이다‥190 | 낯선 골목을 산책하며‥195 즉자적 언어와 상상력의 한계‥200 | 소리‥205 심심 파적(破寂)‥210 | 껍질‥213 | 세모의 왜요?‥21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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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호망에 싸인 사과는 자세히 보니 아랫부분이 썩어가고 있다. 더 깊어지기 전에 다가가라고, 잘잘못 따지지 말고 손 잡아보는 건 어떠냐고, 재촉하는 것만 같다.
여직 한 공간에 있으면서도 모른 채 지내온 사과. 분명 이곳에 있다는 걸 알면서도 찾아내지 못한 그 사과를 나도 모르게 발견한 그날, 나는 우연찮게 관계의 지속과 마주하며 그것을 생각했다. 사람의 힘으로는 할 수 없다고 단정해버린 일들 중에는, 해보지도 않은 채 정의해버린 것들도 있었을지 모른다. 사과는 아직 그 자리에 놓여 있다. 이제는 버려야 할 때가 되었다. 내 고민도 언젠가는 해결이 되거나 흐지부지 잊힐 일이다. 나는 그 일을 당분간 어찌해보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다만 하릴없이 사과의 자리를 이쪽에서 저쪽으로 옮겨두듯, 아무 뜻 없이 생각을 굴려볼 뿐이다. 그 움직임에 맞춰, 사과도 나도 조용히 시간을 삼키고 있다. ---「사과를 두고 온 시간」 중에서 그 시절 그때, 어둑해지도록 자전거를 타던 나를 지켜보신 선생님은 “너는 뭐를 해도 분명히 해낼 애구나” 하며 믿음을 주셨다. 환경미화 준비를 하는 과정에서도 항상 우리 곁에 계셨고 학생들의 의견을 존중하되 참견은 하지 않으며 너희 생각대로 해보라고 자신감을 주셨다. 친구들은 선생님이 나를 좋아한다고 했다. 수업시간에도 나만 본다며 놀렸다. 나는 알 수 없는 기분에 휩싸여 혼란스러웠다. 기분이 아주 나쁜 것은 아니었는데 그렇다고 좋지도 않았다. 사실이건 아니건 선생님이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마침 선생님 자전거를 빌려 친구를 태우고 외곽도로를 달리다가 마주 오던 차를 피하면서 자전거를 박살내고 친구 손목이 부러지는 사고가 일어나기도 했지만, 그 일 때문이 아니라도 더는 선생님 자전거를 타지 않았다. 선생님이 부르면 대답을 피했고 수업시간에도 고개를 들지 않았다. 그렇게 철부지였던 나의 중학교 3학년 2학기가 어지럽게 지나갔다. ---「그리움은 그리움대로」 중에서 형부는 아버지의 좋은 술짝이었다. 돌아가시기 며칠 전 집으로 가고 싶다는 아버지를 형부가 함께 모셨다. 집으로 오신 아버지는 형부가 식구들 몰래 따라주신 소주 한 잔을 맛있게 드셨다. “한 잔 더 드릴까요?” 하는 사위 말에 “이제 되었네. 진짜 맛있는 술 한 잔이었어” 하셨다던 아버지. “병원에서 드시던 포도주보다 맛있지요?” 형부는 떨리는 목소리로 아버지를 바라보았다. “그게 내가 포도주슨지 왜 몰랐겠나.” 설핏 웃는 아버지 얼굴에 승리의 빛이 잠깐 스쳐지나갔다. 술은 많이 마시는 것보다는 거나하게 오를 정도가 돼야 진짜 술맛을 즐길 수 있을 때라고 하셨던 아버지. 마흔 끝자락에서 진짜 술맛이 어떤 것인지 알게 된 나는 아버지 살아계실 때, 마주 앉아 술 한 잔 함께하지 못한 아쉬움이 크게 남아 있다. 늘 콧잔등이 빨간 게 싫었고 휘청거리는 걸음걸이도 불안했다. 반주로 한두 잔이면 좋을 것을, 당시 아버지는 술이 과했다. 말려도 소용없었다. 당신이 알아서 드신다는데, 누구도 할 말을 잃었다. ---「술 한 잔 가득」 중에서 수필은, 아니 수필가들은 문학 앞에서 늘 품위와 품격을 앞세우고 자세를 바로 한다. 그래서 조금이라도 격이 떨어지는 듯한 문장과 마주치면 표정부터 굳어져, 금방 자신에게 맞춘 잣대를 들이댄다. 그리고 거침없이, 그 작가를, 자기 식으로 평가하려 든다. 그래서일까, 작가들은 그럴 듯하고 능숙하게 자신을 포장하며 더 깊이 숨어든다. 글뿐만 아니라 생활 속에서도 그렇다. 세상에 없는 착한 사람처럼, 가장 고결한 ‘그대’가 된다. 욕은 어디 갔든지 상스러운 말은 입에 담아본 적도 생각한 적도 없던 사람처럼 그들은 맑고, 몹시, 깨끗하다. 수필은 너무 드러내도 뭐라 하고, 얼마만큼 감춰도 내숭떤다고 나무란다. 솔직해라 하고 솔직하면 경솔하다고 하거나 잘난 체한다 하고, 어이없다며 혀를 차기도 한다. 성질 급한 나는 수필을 쓰다가 어쩔 수 없이 피해가야 할 것들과 만나면 갑갑해서 훌훌 벗어던지고 싶을 때가 허다하다. 그럴 땐 심호흡으로 나를 가다듬는다. 이만큼이나마 나를 달래주고 키운 건 수필이기에 살살 달래가며 더 깊이 그를 알아가려 노력 중이다. 내가 뭘 몰라 이러는 거지, 제대로 안다면 금방 이 굴레에서 자유로울 수 있지 않았을까. ---「시를 읽는 시간」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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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장 ‘고래가 왔다’에서는 뇌 시술 후 우울감에 빠진 둘째 언니가 이웃이 준 명태를 현관 지붕 철봉에 매달아 반건조 코다리를 만들고, 언니네 손주가 그 명태를 보고 “고래”라고 소리치는 장면을 통해 언니의 회복을 응원하는 따뜻한 시선과 희망을 그려낸 「고래가 왔다」, 보이스피싱으로 통장 잔고를 모두 잃고 극심한 좌절과 위염에 시달리던 작가에게 언니가 끓여준 소고기뭇국의 온기를 통해 상처를 견뎌내는 단단한 힘을 얻는 「소고기뭇국」, 사람들에게 마음을 쉽게 열지 못하는 작가에게 오랜 친구 홍이 다가와 건넨 “괜찮아?”라는 짧은 한마디가 단단하게 잠겨 있던 마음의 자물쇠를 풀어버리는 「괜찮아」를 읽을 수 있다.
제2장 ‘그리움은 그리움대로’에서는 중학교 3학년 시절, 처음 맡았던 학급 환경미화부장 시절과 자신에게 자전거를 내어주며 도전할 수 있도록 믿음을 주었던 담임 선생님에 대한 아련한 그리움을 담아낸 「그리움은 그리움대로」, 술을 즐겼던 아버지와의 추억, 그리고 아버지가 생전 가장 맛있게 들었던 마지막 술 한 잔의 의미를 되새기며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과 삶의 애수를 진솔하게 풀어낸 「술 한잔 가득」, 어느 날 창밖으로 주차장 옆 놀이터 그네에 책가방을 멘 채 미동도 없이 앉아 있는 초등학생 아이의 모습에서 과거 어두운 노을 속에서 아버지에게 버림받았다고 믿으며 눈물을 삼키던 어린 시절 자신의 모습을 떠올린 「놀이터 그네」를 만날 수 있다. 제3장 ‘미음 한 그릇’에서는 담석증 수술과 일주일간의 금식 끝에 마주한 미음 한 그릇을 통해 평소 가볍게 여겼던 일상의 음식과 건강, 그리고 지나쳐 온 시간에 대한 감사와 소중함을 느끼는 「미음 한 그릇」, 여행이나 독서, 인간관계를 맺을 때 사전에 정보를 알아보거나 재지 않고 일단 무모하게 부딪혀보는 자신만의 삶의 방식을 돌아보는 「내가 선택한 방식들」, 지인 ‘케이’가 안전신문고 앱을 통해 장애인주차구역 불법주차 등을 끈질기게 신고하며 몰염치한 행동에 ‘금융치료’라는 경고를 날리는 「신고왕」 등이 실려 있다. 제4장 ‘고양이 물루와 홍차’에서는 지인에게 빌려주었다가 큰 사고로 폐차 처분이 된 낡은 승합차를 보며 느끼는 복잡한 감정과 세상의 그 어떤 것도 온전한 내 것이 될 수 없다는 「용도폐기에 대한 분리불안적 태도」, 장 그르니에의 『고양이 물루』를 읽고 조카 집에서 키우는 노령묘 ‘홍차’를 떠올리며 쉽게 곁을 내주지 않는 동물과의 거리두기와 생명의 늙어감에 대해 차분하게 시선을 던지는 「고양이 물루와 홍차」, 눈 내리는 겨울날 뜨끈한 홍합 국물에 소주 한 잔을 기울이며 세상의 시름을 잊을 수 있고 온전히 내 편이 되어주는 너그러운 주인이 있는 단골 술집을 갖기를 소망하는 「나에게도 단골 술집 하나 있으면 좋겠다」 등이 담겨 있다. 제5장 ‘수필은 밥이다’에서는 수필을 “매일 먹어도 또 먹게 되는 밥”에 비유하며, 작가로서 자신의 부끄러운 치부, 글쓰기 태도와 수필에 대한 진정성을 고백한 「수필은 밥이다」, 예순 나이에 신문사 취재기자로 첫 조직생활을 시작하며 겪었던 상사의 질책과 상처, 그리고 이를 통해 비로소 깨닫게 된 ‘어른의 출근과 견딤’을 진솔하고 묵직하게 그려낸 「출근」, 오후 네 시에서 다섯 시 사이 자신의 문장이 가난해보일 때 자극을 받기 위해 시집을 펼쳐들어 시원한 ‘욕설’이나 파격적인 은유도 자유롭게 품어내는 시의 매력에 감탄하며 수필 쓰기의 답답함에서 벗어나려는 「시를 읽는 시간」이 돋보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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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복용 작가의 「심심파적(破寂)」을 잘 읽었다. 무덥고 긴 여름날, 동네 산책에 나서려다가 들고양이 형제와 조우한다. 그들은 서로 어깨를 툭 치거나 엉덩이를 살짝 건드리기도 하고 얼굴을 부비며 마당에 발라당 드러누워 느리게 딩군다. ‘저들도 나처럼 심심한 것일까’ 가진 것은 몸뿐. 장난감 없는 이상(「권태」)의 아이들도 대낮에 똥누기놀이를 한다. 어느 시인은 “하도나 심심해서 난초는 꽃을 피웠나보다”고 했다. 소재(고양이, 똥투기놀이, 난초)들은 주제 형성의 재료로써 ‘파적(破寂)’이라는 이미지의 형상화에 기여한다. 서로 다르게 떠오르는 이미지의 포착, 외계의 자극을 직관적으로 받아들이는 작가의 감각적 체험의 능력을 주목하게 된다.
「사고의 재구성」에서 나는 작가의 윤리의식을 읽는다. 로터리를 돌 무렵, 무언가 부딪친 느낌을 받았는데 낑낑거리는 소리가 났던 것도 같다. 다음날 그곳을 찾았을 때는 사고의 흔적도 없이 깨끗한 도로를 보는 “나의 눈빛만이 진실의 진실을 찾고 있었다”는 결미에서 옳고 그름을 다루는 규범윤리학과는 다른 도덕적 판단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묻는 메타윤리학의 한 과제를 떠올렸다. 놀라운 감수성과 엄격한 자기비판을 겸한 작가로 거듭난 한복용 작가에게 박수를 보낸다. 그의 수필집 『사과를 두고 온 시간』이 많은 독자와 만나기를 바란다. - 맹난자 (수필가, 한국수필문학진흥회 고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