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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어판 서문
머리말 1 비혼 · 저출산 시대에 남자는 어떻게 하면 넘어오는가 인기 짱 일본 꿈의 저출산 대책 저출산과 가족 해체 ‘후지야’화하는 일본과 육아 전략 조혼 지향 프로젝트 사부리 신 2 일을 한다는 것 『젊은이는 왜 3년 만에 직장을 때려치우는가』를 읽다 비정규 고용에 대해 자신을 위해 일해서는 안 된다 뜻하지 않게 의욕이 없어졌다 ― 창조적 노동자의 비애 ‘무인도 규칙’을 알고 있습니까 캐리어 교육론 3 매스컴의 이야깃거리 매스컴 리터러시와 트릭스터 낫토 스캔들과 매스컴의 몰락 변명 대장이 되었습니다 매스컴의 매너에 대해 배가의 즐거움과 어휘에 대해 쿨한 매스컴 4 세계화 시대의 부작용 여효의 로하스 총 규제와 헌법 수정 박사학위를 팝니다 싱가포르의 고민 계층사회 프랑스 내셔널리즘과 집단성 주제를 알라 5 공동체의 작법 혼자 먹기의 행복 먹을 것의 금기에 대해 아이들 손에 닿게 해서는 안 되는 것 성적 금기에 관한 생각 건강이란 뭐지 적을 만들지 않는 테크닉 전쟁의 규칙 6 죽음과 사랑에 대한 고찰 자살하는 아이들 축소하는 자아라는 병 회화에 나타난 에로스와 타나토스 죽음을 둘러싼 두 가지 고찰 올바른 장례식이란 애신애린 당신 없이는 못 살아 맺음말 특별좌담회 : 간섭이 뭐가 나빠! 맞선은 지구를 구한다 해설 옮긴이의 글 |
Tatsuru Uchida,うちだ たつる,內田 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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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를 노리는 포인트는 ‘재능'이라는 말 한마디다. “당신에게는 재능이 있군요, 다른 사람들은 몰라도 난 알아볼 수 있어요.” 눈을 칩떠보면서 45도 비스듬한 시선에 플러스, ‘가나푱 포즈’를 취하면 우선 80%의 남자는 넘어온다고 단언해도 좋을 것이다. 세상 남자의 80%는 자신에게 재능이 있고, 그것이 세상에서 정당한 평가를 받지 못한다는 데 분노를 느끼고 있다. 그래서 이 한마디에 맥없이 농락당한다. …… ‘재능’으로 넘어가지 않는 남자도 넘어가고 마는 게 ‘외모’에 대한 칭찬이다. 모든 남자는 자신의 외모에 알 수 없는 자신감을 갖고 있다. ‘이런 얼굴을 좋아해주는’ 여성이 세상 어딘가에 있을 거야… 이런 어이없는 기대를 가슴에 품지 않고서는 남자는 1초도 살아갈 수 없는 애달픈 생물이다. 그러니까 “너에게는 특별한 재능이 있는 것 같아…”라는 말로 넘어오지 않는 남자도 “나, 네 외모가 마음에 들어”라는 말에는 순식간에 무너진다. _31~33쪽
나는 이전에 왜 일본에서는 이슬람 원리주의자의 테러가 일어나지 않는가에 대해 고찰했는데, 그때 일본에서 테러를 저지르면 ‘테러리스트 친구로부터 따돌림을 당하기’ 때문이 아닐까라는 추리를 내놓은 적이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일본에서 테러를 저지르는 것은 ‘어린애 팔을 비트는’ 일만큼 쉽기 때문이다. 일본이 국가의 안보를 유지할 수 있는 것은 일본이 ‘아주아주 러블리한’ 나라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테러리스트도 가끔은 한숨 돌리고 싶은 법이다. 그럴 때 가족 여행을 간다면 어디로 갈 것인가. _45쪽 가족이 없는 편이 경쟁에 유리하다고 사람들이 판단했기 때문에 가족은 해체된 것이다. 거꾸로 가족이 있는 편이 살아남는 데 유리하다고 판단한다면, 모두 앞 다투어 가족의 유대감을 다질 것이다. ……“르완다에서 가족 사랑을 누리는 것과 일본에서 소비생활을 누리는 것 중 어느 쪽이 좋아”라고 묻는다면, 누구든 “학살당할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가족끼리 서로 돕는 것보다 고독할지언정 윤택한 소비생활을 누리는 것이 좋아”라고 대답할 것이다. 나라도 그쪽을 택할 것이다. 가족 해체는 평화에 대한 비용이다. _56~57쪽 ‘개인적 노력의 성과는 개인이 점유해도 좋다’는 것은 생존경쟁이 거의 없는 시대, 자원의 분배 경쟁에서 패배하더라도 굶어죽지 않는 안전한 시대에만 적용할 수 있는 ‘특별한 룰’이다. 이른바 ‘온실 속의 룰’이다. 패자가 되어도 목숨을 빼앗기지는 않는다는 ‘편안한’ 사회에서만 ‘자기 이익의 추구를 최우선으로 여기는’ 삶의 방식을 허용받을 수 있다. 그 이외의 모든 경우에는 노력의 성과를 점유해서는 안 되고, 늘 타자와 더불어 나누지 않으면 안 되는 ‘무인도의 룰’이 적용된다. _112쪽 ‘자신의 일’과 ‘타인의 일’ 사이에 경계선을 확실히 그었으면 하는 요청은 불가피하게 그들의 노동조건을 악화시킬 따름이다. 본인들은 그 점을 전혀 깨닫지 못하고 있다. 원래 ‘자신의 일’과 ‘타인의 일’ 사이에는 경계선이 없다. 경계선을 억지로 그으려고 하면 일을 분할하고 단위화할 수밖에 없다. ……공동 작업으로 어수선하게 진행하던 작업을 분담하여 경계선을 확실히 긋고 단위화하면 당연히 그 일은 ‘단순노동의 반복’이 될 수밖에 없다. ……본인들은 잘 인식하지 못하는 것 같은데, 구직자가 ‘보람 있는 일’로서 ‘단위화된 일’을 찾을수록 그들을 부리는 임금은 저렴해진다. 고용자들은 이런 시스템을 최대한 활용하고 있다. _113~115쪽 ‘자아의 축소’ 또는 ‘자아의 순화’는 우리 시대의 병이다. 현재 우리 시대는 자기 결정, 자기 책임, 자아 찾기, 자기다움의 탐구, 내 나름의 취향이랄까… 이러한 빈말에 사로잡혀 있다. ……일본인들은 가족을 파괴하고 커플을 해체하고 모래알갱이가 되어버린 개인이 (미래를 담보로 저당 잡히기만 하면 얼마든지 빌려주는) 대출금을 향락적으로 탕진하는 것을 거의 모든 ‘국민의 의무’인 것처럼 엄숙하게 실천했다. _253~254쪽 당신 없이는 살 수 없다. 이것이 우리가 외부로 발신할 수 있는 가장 순도 높은 사랑의 말이다. 나는 ‘you’의 수를 얼마나 늘리는 것이 가능한가, 그것이 공동으로 살아가는 인간의 사회적인 성숙도를 나타내는 지표라고 생각한다. ‘그 사람이 없어서는 살아갈 수 없는 인간’의 수가 많은 것이야말로 ‘성숙’의 지표인 것이다. _286쪽 가시마 : 지금 결혼을 못하고 적령기를 넘긴 여자는 여성 편집자로 대표되는 고학력 엘리트, 그러니까 비교적 우수한 유전자를 가진 사람들이잖아요. 결혼 못하는 남성은 추남이거나 빈털터리고요, 이 점을 생각하면 그런 두 부류의 사람들이 자손을 남길 수 없다는 말이 돼요. 우치다 : 과연 그렇군요. 가시마 : 그러면 어떤 현상이 일어날까요 우선 추남의 씨가 줄어들 테니 꽃미남이 좀 늘어날지도 몰라요, 그러나 머리가 좋은 여자들도 출산을 안 하니까 머리는 좀 나빠지겠지요. 그래서 앞으로는 조금씩 미남이 늘면서 머리는 나쁜 아이들이 점차 많아질 것이라고 대 예언을 하는 바입니다.(웃음) ---본문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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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립’보다 ‘고립’을 선택하는 사회의 우울한 자화상
1인 가구 500만 시대, 이제 나 혼자만 잘 먹고 잘 살 수 있는 시대는 끝났다! 우리 시대의 진지한 멘토 우치다 타츠루, 결혼 가족 직업에 대해 사색하다 우리 시대의 진지한 멘토 우치다 타츠루의 『혼자 못 사는 것도 재주』가 출간됐다. 우치다 타츠루는 『하류지향』이나 『절망의 시대를 건너는 법』 『레비나스와 사랑의 현상학』 등의 책으로 이미 국내에서는 꽤 알려진 일본의 비평가이자 철학자다. 올해 7월 『절망의 시대를 건너는 법』 출간을 맞아 방한, 조선일보와 인터뷰를 갖기도 했다. 이 책은 2000년대 중반 우치다 타츠루가 자신의 개인 블로그에 올린 40편의 글을 결혼, 가족, 직장이라는 키워드로 엮은 것이다. 정치에서 패션에 이르기까지 당시 떠들썩하게 지면을 채웠던 뉴스를 비롯해 대학 강의에서 학생들과 다룬 다양한 문제를 망라하고 있다. 애초 이 책은 도쿄대 연구교수이자 저명한 페미니스트인 우에노 치즈코의 『독신의 노후』라는 책에 대한 답가로 썼다. 우에노 치즈코는 부양해줄 가족 없이 노후를 맞이한 사람들에게 혼자 살아갈 수 있는 노하우를 제시했다. 하지만 우치다 타츠루는 “혼자서도 잘 살아갈 수 있다는 발상 자체가 안전하고 풍요로운 사회를 전제로 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물론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으면 가사노동이나 돌봄 서비스를 돈으로 해결할 수 있고, 독신생활을 그럭저럭 유쾌하게 만들어갈 수 있을지 모른다. 실제 1980년대 이후로 지금까지 사람들은 ‘자신의 욕망을 실현하며 살기’, ‘자신의 라이프스타일을 고수하며 살기’를 인생 최대의 목표로 삼아왔다. 이웃을 자신의 자아실현을 방해하는 타자인식하는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현대인들은 점차 연대에 대한 감각을 잃어갔다. 하지만 한국도 1인 가구 500만 시대를 맞아 혼자서 모든 것을 해결하는 시대는 끝났다. 리스크가 높은 사회에서 친족이나 지역사회의 도움 없이 독신으로 살아가는 일은 쉽지 않다. 이 책은 ‘자립’과 ‘고립’은 다르며 리스크 사회에서 ‘자립’을 추구할 작정으로 ‘고립’을 선택하는 것은 생존전략상 아주 불리하다는 논의를 펼친다. 저자는 “젊은이들이 ‘혼자서 살아가는’ 노하우를 익히는 것보다 ‘타자와 공생하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고 공생을 위한 노하우를 배우는 쪽이 훨씬 더 나은 생존 전략”이라고 주장한다. 경제적 자립이 어려워져 가까운 사람과 뭉치지 않으면 살아가기 힘든 시대를 맞이하고 있다는 것이다. 더 이상 풍요롭지도, 안전하지도 않은 사회에서 자립이 어떤 양상을 띠는지, 자립을 달성하기 위해 개발해야 할 인간적 자원은 무엇인지 등등 저자는 현행 시스템의 문제점을 날카롭게 지적하고 앞으로 우리 공동체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한다. 저출산과 가족해체, 비정규직 확대와 교육 의료의 붕괴… 오늘날 개인으로 산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우치다 타츠루는 현대 사회의 특징을 개인의 원자화와 글로벌화라는 두 가지 키워드로 설명한다. “개인의 원자화란 시민들이 다양한 전통적 유대를 잃어버리고 각자 따로따로 살아가는 것을 가리킨다. 말하자면 자기실현을 위해 늘 자기 결정을 내리는 동시에 그 결과는 오롯이 자기 책임으로 돌리는 삶의 방식을 말한다. 누구에게도 의존하지 않고 실패의 책임을 전가하지 않는 대신 내가 얻은 것은 누구와도 나누지 않는다. 따라서 친척도 지역사회도 필요 없고 필요한 것이 있으면 화폐를 가지고 시장에서 상품으로 구입하면 된다는 사고방식이다.” 글로벌화란 상품 자본 인간 정보가 국경을 넘어 초고속으로 이동하는 것을 가리킨다. 국어를 내던지고 영어를 공용어로 사용하며 통화, 도량형, 경제적 체제를 세계적으로 동일하게 만들 뿐만 아니라 소비자의 가치관과 욕망, 라이프스타일을 비롯해 노동자의 규율과 임금도 세계적인 동일화를 꾀하는 것이 바로 글로벌화다. 결국 국민국가를 해체하여 세계시장으로 편입하겠다는 말이다. 저자가 이 책에서 논의한 것은 주로 개인적인 차원에서 벌어지는 ‘원자화 현상’이다. 일인 가구가 급증하는 가운데 점차 혼자 일하고 혼자 누리고 혼자 식사하는 현상이 두드러지면서 사회는 이러한 개인을 자립적인 인간으로 규정하고 라이프스타일의 이상적 모델로 권장하고 있다. 가족 해체, 저출산 문제, 그리고 비정규직, 의료와 교육의 붕괴 같은 사회적 문제들은 모두 이러한 사회적 맥락 속에서 생겨났다. 하지만 인간은 누구나 병에 걸리고 상처를 입기도 하고 나이를 먹으면서 생산성이 떨어진다. 혼자서 살아간다면 이런 일들이 닥쳤을 때 사회의 최하층으로 전락을 위기를 오롯이 홀로 짊어지게 될 것이다. 저자는 그런 리스크를 피하기 위해서라도 집단 구성원이 서로 돕고 보살피는 시스템을 만들어 나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물론 자본주의 입장에서 볼 때 이런 상호 부조의 시스템은 시장경제에 치명적일 것이다. 경제성장이나 수익 증대, 주가상승과는 아무런 관련도 없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저자는 경제 시스템이란 것도 어디까지나 인간의 행복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지 자본주의 체제를 유지하기 위한 것은 아니라면서 본말이 전도되어서는 안 됨을 강하게 환기시키고 있다. 사회적 리스크를 회피하는 ‘인기 짱’ 러블리 전략 이 책에서 특히 흥미로운 부분은 ‘인기 짱 일본’(36쪽)에서 『캔캠CanCam』이라는 일본 패션잡지를 통해 바라본 일본 사회다. 현재 일본에서 『캔캠』은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로 인기를 구가하고 있다. ‘잘나가는 남자의 사랑을 독차지하기 위한 노하우’가 콘셉트인 『JJ』에 비해 『캔캠』 잡지의 전략은 만인에게 조금씩 사랑받는 노하우를 제시하는 데 있다. 말하자면 소위 잘나가는 한 남자가 아닌, 모두에게 인기 짱인 비결을 알려주는 것이다. 그래서 ‘엄청난 인기’의 타깃은 결혼 대상의 남성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저자는 이 잡지의 독보적인 인기 신드롬을 보면서 일본 사회가 이미 리스크 사회로 접어들었음을 감지한다. 『캔캠』의 인기는 이제까지 ‘나다움’을 내세우며 자신의 관점을 관철시키는 개인적 태도가 생존 전략상 반드시 유리하지 않다는 인식으로 국민적 합의가 형성되어가고 있음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약육강식의 글로벌 사회’에서 ‘자기다움’을 주장하며 삶을 즐길 수 있는 자는 오로지 ‘강한 개인’뿐이다.” 이런 사회에선 “이긴 자는 계속 이기고 지는 자는 계속 지는 현상”이 계속되기 때문에 단기적으로 사회는 소수의 승자와 압도적인 다수의 패자로 양극화될 것이다. 결과적으로 “나 정도의 재능으로는 아무리 발버둥 쳐도 사회적 승자가 될 가능성이 없다”는 사실을 앞 세대의 ‘패배’로부터 학습한 젊은 세대는 “강자가 전부 차지하는” 경쟁 시스템보다 “약자라도 살아갈 수 있는” 공생형 사회가 살아남기 위해 유리하다는 판단을 내린 것이다. 바로 『캔캠』의 인기 현상은 약자가 살아남는 법으로 주위의 모두로부터 조금씩 사랑받는 전략을 택할 수밖에 없는 사회에 대한 방증이다. 더 나아가 이러한 인기 짱 전략은 전쟁 포기와 군대 미보유를 규정한 일본의 ‘헌법9조’와도 관련된다. 사실 일본의 헌법9조는 국제관계 속에서 “인기 짱 도톰한 입술”이다. “나는 여러분에게 절~대로 위해를 가하는 일이 없을 겁니다. 우후~♡”라는 의사표시나 마찬가지인 것이다. 이런 식으로 우치다 타츠루는 일본이 국제관계에서 국가안보를 유지할 수 있는 것도 일본이 “아주아주 러블리lovely한” 나라이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말하자면 일본인은 ‘러블리’에 의해 리스크를 회피하고 있다. ‘자신을 위해 일해서는 안 된다’ 슈퍼 유아독존을 향한 일침 우치다 타츠루의 모든 저작에는 '타자의 윤리학'이라 불리는 레비나스의 사상이 뿌리내리고 있다. 이 책의 2장 ‘자신을 위해 일해서는 안 된다’는 레비나스의 사상을 쉽게 설명하면서 노동의 본질을 해명한다. 졸업을 앞두고 학생들은 구직 활동에 전력으로 질주한다. 하지만 거기에는 ‘자신을 위해’라는 동기밖에 없다. 구직 활동이 끝나고 직장에 들어가면 더 이상 노동할 동기가 존재하지 않음을 깨닫고 젊은이들은 경악한다. 저자에 따르면 이는 현재 청년들이 구직 동기와 노동의 동기를 구분하지 못하는 데서 오는 혼란이다. 노동의 의미는 “우리의 노동성과를 향유하는 타자가 존재한다”는 사실에서 이끌어낼 수밖에 없다. 노동은 본래 선물이다. 이미 누군가에게 받은 선물에 대한 반대급부의 책무 이행이다. 노동은 출발점부터 “타자를 위한 것l'un pour l'autre”이다. 하지만 요즘 젊은이들은 일을 ‘자기표현’ 혹은 ‘자기실현’ 같은 것쯤으로 생각한다. 노동은 자기표현도, 예술적 창조도 아니라 무엇보다 의무다. ‘니트’(취업에 대한 의욕이 없는 15세~34세 사이의 청년 무직자를 이르는 말)와 ‘프리터’(직장에 얽매이지 않고 자기가 편한 시간에 아르바이트를 하고 남는 시간에 좋아하는 일은 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을 지칭하는 말)는 자신을 창조적 노동자로 보는 젊은이들의 말로다. 자기 일을 타자들로부터 분리시키고 누구의 지시도 받지 않는 독립적인 노동 영역을 확립하면 일할 자유를 얻을 거라 착각하지만, 그 대가로 동료 노동자와 연대할 기회를 상실하고 노동조건은 악화되며 노동의 동기 자체를 잃어버릴 수도 있다는 점은 깨닫지 못한다. 저자는 “결국 그들이 손에 넣게 되는 것은 사실 과로사할 자유일지도 모른다”고 일침을 놓는다. ‘로하스’, ‘지속가능한 자연 파괴’를 합리화하는 라이프스타일 로하스란 LOHAS(Lifestyles of Health & Sustainability), 즉 “건강하고 지속 가능한 라이프스타일”을 말한다. 이는 10년쯤 전 미국에서 새로운 라이프스타일로 떠오른 모토다, 흔히들 로하스 하면 유기농 식품을 먹고, 요가나 명상에 열중하고, 나무로 지은 집에 살고, 주말에는 농장을 찾아 나서고, 플로베르를 읽으면서 모차르트를 듣는 자연 친화적인 생활을 떠올리기 쉽다. 하지만 사실 로하스 운동은 지속적으로 자연을 ‘착취’하기 위해 지구 환경을 살려두자는 기치로 만들어졌다. 자원이 유한한 지구에서는 자본주의가 과도하게 자본주의적이지 않는 편이 안정적으로 기능한다. 지구 환경도 사실 살려놓는 게 득이 되니 살려두자는 논리다. 문제는 ‘왜 미국인가’라는 것이다. 저자는 이를 미국의 개척정신으로 인한 심각한 자연 환경의 위기 상황에서 찾고 있다. 북미 대륙의 발견과 함께 미국이란 나라는 자연의 착취라는 근원적인 욕망과 함께 자연을 파괴해왔다. 하지만 이러한 광기는 오래 가지 않아 막을 내리는 법, 200여 년이 지나자 미국의 자연 환경은 사막화의 벽 앞에 섰다. ‘로하스 운동’이란 것도 사실 계속 이렇게 가다가는 큰일 나겠다고 뒤늦게 깨달은 미국이 대량생산, 대량소비, 대량폐기의 문화를 조금 늦추는 것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돈이면 다 되는 세상에서 ‘돈으로 살 수 없는 것’의 가치를 말하다 국제 관계론에서는 과당경쟁에서 패하는 것과, 경주가 이루어지는 원형 경기장 자체가 붕괴하는 규모의 파국에 이르는 것을 리스크라고 부른다. 우리는 사회 질서의 유지를 위해 이 두 가지 리스크를 모두 고려해야 한다. 지금까지는 시스템 자체에 대한 사유 없이 시스템 내의 경쟁 구도에만 혈안이 되어왔다. 이는 사람들이 시스템에 대한 지나친 낙관 속에서 살아왔음을 보여준다. 그렇다면 시스템이 붕괴했을 때 과연 살아남을 생존전략을 갖추고 있는가 저자는 이에 대해 회의적이다. 이 책의 정치적 목표는 “현행 사회질서를 원활하게 기능하도록 하고 비판을 받아들여 이를 개선하는 것을 자기의 임무로 생각하는 사람들을 어떻게 일정 정도 확보할 것인가”에 있다. 아무리 공동체의 필요성을 강조해도 시스템에 대한 비판만 난무할 뿐 대안을 제시하거나 책임을 지려는 사람이 없으면 그 공동체는 유지되지 않을 것이다. 사회질서에 대한 비판이 생산적이기 위해서는 비판을 받아줄 당사자가 필요하다. 이 책의 제목처럼 저자는 “혼자 살 수 없는 것”을 적극적인 의미의 능력으로 파악하고자 한다. 개인주의가 만연한 사회에서 타자와 공생할 수 있는 능력, 이웃을 사랑하는 능력, 그리고 자기 안의 타자를 인정하는 능력을 갖춘 인간은 많지 않기 때문이다. 저자는 “공적인 기반의 시스템을 조정하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인간이야말로 자립한 인간이자 시대가 요청하는 인간상”임을 강조한다. 저자가 힘주어 말하는 공동체의 추구 또한, 좀 더 나은 삶과 좀 더 나은 미래를 지향하는 사회 변혁의 열망뿐 아니라 “내가 있을 곳은 여기”라는 마음으로 평안하게 있을 수 있는 자리, 스스로의 가치를 인정받고 실현할 수 있는 자리에 대한 본연적인 욕구까지 담아내고 있다. 우치다 타츠루의 논의는 한국 사회에 대한 이야기로 들린다. 아마도 우치다 타츠루의 논의가 최근 국내에서 주목을 받고 있는 이유일 것이다. 한국과 일본뿐만 아니라 전 세계가 공동체와 가족의 해체로 몸살을 앓고 있다. 신자유주의적 세계관에 사람들이 동의하고 충실한 결과다. 그런 까닭에 이러한 공동체와 개인들이 겪고 있는 실존의 위기는 외부적 요인도 있지만 그들 스스로 초래한 것이기도 하다. 공존의 필요성을 역설적인 문장으로 풀어내는 우치다 타츠루의 논의가 가진 진정한 함의는 바로 여기에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