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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봄꽃과 다투지 않는 국화를 사랑한다
이유진
동아일보사 2001.0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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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빠리 망명객 이유진의 삶과 꿈』으로 개정판이 출간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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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1. 깨달음
삶은 지속된다
봄꽆들과 앞을 다투지 않는 국화를 사랑한다
지선(至善)은 유유하고, 명랑하며, 자유롭다

2. 저항
울타리를 뛰어넘다
레드 콤플렉스라는 미망

3. 꿈을 찾아서
햇살 눈부신 대낮에 술이 당겼다
파리 유학, 더 넓은 세상을 품다
대부님, 나의 대부님
청춘의 이면
성숙이 제일이다
좀 쉽게 살지 그래요

4. 인간에 대한 믿음
진리는 소박하다
지금은 우리 서로 눈짓으로 신호할 때
한영길 사건을 기억하는가
"선생님은 금강산을 뎡말 사랑하시는군요"

발문 : 슬프고 따슷하고 맑고 고운 - 신경림

저자 소개

저자 : 이유진
중국 작가 루쉰의 말처럼 인생에는정상궤도란 것이 있으련만 나는 여지껏 그걸 알지 못하고 있다.
1939년 평양에서 태어나 45년 해방 직후 여섯 살 때 부모를 따라 38선을 넘어 서울에 정착했다. 63년 초 서울대 문리대 심리학과를 졸업하고 그 해 4월 파리로 유학, 소르본느대에서 심리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유학생 시절 중국시당에서 접시닦이, 가르쏭(급사), 콩나물, 숙주나물, 화장품 장사, 고나광 안내, 통역, 번역 따위를 했고, 73년 이후에는 병원 근무, 심리치료소 경영, 노동자 생활, 프랑스 문부성 근무, 엽서 장사를 하다가 90년대 초 택시운전을 마지막으로 직장생활을 청산했다.

한국의 억압적 제도에 환멸과 모멸감을 느끼던 나는 여기 프랑스에 와서 한껏 유쾌했다. 통행금지도 없고, 지문날인도 없고, 불심 검문도 없었다. 학문이나 사상, 정치, 그 어느 영역에도 터부가 없었다. 구속이 없고 강제가 없었다. 언젠가 군부독재가 종식되고 참다운 민주주의가 확립되면 구국하리라고 희망하면서 반독재 민주화운동을 하다가 79년 8월 뜻밖에 '북괴공작원' '아동인질범'의 누명을 쓰게 되었다. 당시 내 나이 마흔이었다. 이후 귀국하지 못하고 파리에서 고국을 그리며 20여 년을 보냈다.
그 사이 우리나라에도 광포한 군사정권이 사라지고, 시민 각자의 개인적 가치와 인간적 존엄성을 소중히 여기는 건강한 민주주의가 정착돼가고 있다고 들었다. 불가에서는 "오늘날 같은 천박한 세상을 살려면 거침없는 지혜를 가져야 한다"고 말한다. 부디 여러분 모두 봄꽅들처럼 앞다투어 피려고 하지 말고 인고의 시간을 견디며 때를 기다릴 줄 아는 국화가 되시기를...

품목정보

발행일
2001년 05월 31일
쪽수, 무게, 크기
344쪽 | 625g | 크기확인중
ISBN13
9788970902289

책 속으로

늘그막에 어머님 모시고 내 자란 서울땅에서 어릴 적 동무들과 비내려 적막하고, 눈 내려 오붓하고, 햇빛 쨍쨍하여 쓸쓸한 날이면 술 한잔 기울이며 내 내라 말로 소소한 이야기나 주고 받으며 사는 게 소원이지만, 한국말도 못하고 환경이 조금만 바꾸어도 불안해하는 준경이가 아름다운 혹으로 내 삶에 엉겨붙어 있으니 그 작은 소원도 한낱 꿈일 뿐이다. 이래저래 나는 죽을때까지 부모님께 못난 죄인이다. 내세에는 자식도 말고 자유도 말고 내 삶의 진실 같은 것도 다 말고 어머님 아버님 자식으로 살겠노라고 헛된 다짐뿐 나는 부모님께 드릴 말이 없다.

--- p.32

'네 생각이 그렇다면 그렇게 할 수밖에 더 있겠냐?'
그것이 우리 부자의 마지막 밤이었다.

'네가 그랬다. 그렇게 자존심이 강했어. 말도 못하는 어린아인데도'
어머니는 이해하신 것이다. 내가 왜 당신 곁으로 돌아올 수 없는지. 왜 당신을 혼자 두려고 하는지. 어머니는 당신 스스로에게 자식의 선택이 어쩔 수 없는 것임을 그렇게 다짐하고 계신 것이었다. 사내고 뭐고 자식이란 어머니 앞에서는 언제나 비 맞은 새끼새 같은 것이다.

'선생님이 금강산을 뎡말 사랑하시는 것 같아 (금강산 한시집을)드리는 거야요'
정성에 나는 감격했다.

--- p.268, 269, 327

내가 오기 얼마 전에는 한 유학생이 굶어 죽은 사건이 있었다. 그는 프랑스에서도 수재들만 다닌다는 정치대학을 다녔다. 돈이 없는 그는 이틀에 한 번 대학식당에 갔다. 대학식당에서는 빵을 얼마든지 공짜로 준다. 그는 한 끼 밥을 먹고 빵을 몽땅 집어다 그걸로 다섯 끼를 때웠다. 딱딱해진 빵을 수돗물에 담가서 푹 적신다음 뜯어먹었다. 출세를 보장한다는 정치대학 졸업장을 따고 그는 영양실조로 세상을 떠났다. 그에게는 돈 잘 버는 금발의 애인이 있었다. 그녀는 장례식장에서 만난 한국 사람을 붙들고 한국 사람이 이렇게 깨끗한 줄 몰랐다고, 유럽 사람이었으면 진작 자기에게 돈 얘기를 했을 거라고, 돈 버는 애인을 두고 굶어죽다니 이 사람 바보 아니냐고, 서러워서 통곡을 했다.
그는 나와는 다른 길을 선택한 것이다. 나 같으면 공부할 시간을 줄이고 일단 먹고 살 궁리부터 했을 텐데 그는 굶더라도 먼저 공부를 마치는 쪽을 택한 것이다. 어느 쪽이든 삶은 쉽지 않다. 아이가 태어나면서부터 내 공부는 도무지 진척되질 않았다. 3~4년 만에 학위를 따서 서울로 돌아갈 생각이었는데 이 상태라면 언제 공부가 끝날지 아득하기만 했다. 혼자라면 정치학교를 다녔다는 그 친구처럼 굶어죽을 각오로라도 덤벼볼 텐데 이제 나는 혼자가 아니었다.

---p. 170

출판사 리뷰

"좋은 일을 하고, 그런데도 모함을 받다니… 그건 훌륭한 일이다."
독일 작센 지방의 츠비카우 시청 벽에 라틴어로 새겨진 이 구절은 파리 망명객 이유진(62)씨의 삶을 압축하는 말이기도 하다. 그는 자서전 <나는 봄꽃과 다투지 않는 국화를 사랑한다>에서 자신의 삶을 뒤틀리게 한 사건들을 사실감 있게 보여주고 있으며, 지난한 삶에서도 불의와 타협하지 않고 동양정신에 귀의하기까지의 과정을 서정적으로 그리고 있다.

그는 서울대 심리학과를 졸업하고 파리 5대학(소르본대)에서 따기 어렵기로 소문난 심리학 박사학위를 받았지만 박정희 정권에 반대하는 민주화운동을 벌이면서 귀국과 멀어지게 됐다. 1980년 김대중 내란사건 당시에는 김대중 구명운동을 벌였으며 반정부 잡지 등을 발간하기도 했다. 그가 민주화 운동에 뛰어든 동기는 단순했다. 한국의 억압적 제도에 환멸을 느끼던 그는 자신의 세대에 독재가 끝나야 자식 세대가 행복할 수 있을 거라고 판단했던 것이다. 또한 불의에 항거하는 지식인의 양심을 거부해서는 안 된다는 정의감 때문이었다.

그의 삶을 결정적으로 바꾼 사건은 79년 이른바 '한영길 사건'이었다. 프랑스 문부성 등에서 일하던 그는 대학 후배인 한영길씨의 프랑스 망명을 돕다 중앙정보부에 의해 '북괴 공작원' '아동인질범'으로 매도된 것이다. 그러나 이 사건은 20년 넘게 묻혀 있다가 지난해 동아일보 주간동아 한겨레 MBC CBS 등 각 언론에서 조명하면서 실체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2000년 남북 정상이 가진 6·15선언 직후 방영된 'MBC 스페셜'에서는 현지 취재를 통해 이 사건의 실체를 보여줬다. 방영 뒤 시청자들의 요청으로 재방송까지 한 이 프로그램에서 취재팀은 △이씨의 조직 계보도에 프랑스인 지인들과 대부, 수녀까지 포함돼있는 점에 의혹을 제기하고, △한씨의 프랑스 임시망명증과 딸을 맡긴다는 서류 △당시 프랑스 신문들의 문제제기와 당시 파리 특파원 주섭일씨의 증언 등을 담아냈다.

이씨는 '한영길 사건' 뒤인 81년 방북제의를 받고 '서울도 가지 못하는 마당에 고향인 평양이나 방문하겠다'며 제의에 응한다. 그러나 그는 북한에 한달 간 머물면서도 75년 취득한 프랑스인이라는 신분증 덕분에 북한 체제에 비판적일 수 있었으며 다만 사랑한 것은 고향 사람들이었다. 위 두 사건으로 그는 한국에 들어오지 못하고 지금까지 입국제한자로 분류돼 있었다. 두 사건 모두 공소시효(15년)가 지났지만 국가정보원에서는 그가 귀국하려면 소명절차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이씨가 프랑스 국적자이지만 과거에 국가보안법을 어겼기 때문에 귀국 이후의 범법 가능성을 고려해 그런 형식을 밟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씨는 소명절차를 완강히 거부하고 있다. 자신이 죄를 짓지 않았는데, 그런 절차를 밟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는 것이다. 소명절차를 거부하는 것은 분단이데올로기라는 장애로 인해 20년, 30년 간 귀국이 지연되고 있는 해외민주인사들의 문제이고 역사를 바로잡는 일이라고 그는 말한다.

이씨의 문제는 지금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던져주는가. 발문을 쓴 신경림 시인은 이렇게 표현했다. "문민정부를 거쳐 국민의 정부가 들어서, 바야흐로 민주주의 세상이 되었다고 하나, 생사람을 하루아침에 빨갱이로 몰아 잡아 가둘 국가보안법이 엄존하는 이 나라가 과연 사람이 사람 노릇을 하며 사람답게 살기에 충분한 세상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아직도 이유진 같은 사람이 한 명이라도 더 있다면 이제 우리는 공범이 되는 것 아닌가."라고. 한편 이유진씨는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측에서 초청해 5월하순경 26년만에 그리운 고국에 들어올 예정이었으나 상황이 바뀌어 귀국을 망설이고 있다. 지난해 말 임동원 전 국정원장이 민주평통 관계자들과 만나 소명절차를 거치지 않아도 된다고 발언했으나 최근 국정원 관계자는 입장을 번복, 소명을 강제하진 않지만 희망한다고 알려왔기 때문이다.

장애인 아들과 지선(至善)
불행은 한꺼번에 온다는 말은 이유진씨를 비켜가지 않았다. 간첩사건 이후 시름이나 잊자고 가진 아이가 선천성 장애아로 태어나고(80년), 아버지(83년)와 정신적 지주였던 대부(84년)를 여의면서 그는 더없이 힘든 세월을 보내게 된다. 더욱이 노모 홀로 고국에 계시지만 찾아뵐 수 없다는 자괴감에 그는 "내세에 가서는 철저하게 이기주의자가 되어 어머니 슬하를 떠나지 않겠다"고 절규한다.
아들이 장애아라는 사실을 알고 그는 매일 독한 보드카를 마시며 삶의 고통을 잊고자 했다. 그러던 그가 아들의 장애를 가슴으로 받아들인 것은 정신병에 시달린 니체를 무한한 사랑으로 감싸안은 어머니의 일화, 자신의 아들보다 장애 정도가 더 심한 다른 부모의 사랑을 알게되면서부터였다. 이후 그는 아들에게 자신이 그랬듯이 "남의 기색이나 눈치 보지 말고 하기 싫은 일은 하지 말아라"고 가르쳐 '모자라지만 줏대 있는' 청년으로 길러냈다. 그는 '자존심의 등뼈'는 한번도 굽히지 않은 사람이다. 그래서 파리 생활은 더욱 힘들었다. 유학초기인 20대엔 돈이 궁해 중국집에서 하루에 1500여 개의 접시를 닦기도 했다. 파리 관광안내원, 불어번역, 엽서장사, 화물노동자 노릇도 했고, 과로와 영양부족으로 쓰러져 그만 뒀지만 택시운전도 4개월 가까이 했다.

준경군이 태어난 다음해 그는 직장을 그만두었다. 척추에 이상이 생겼고, 아이를 돌보려는 마음 때문이기도 했다. 직장을 그만두고 그는 경제적으로 궁색해져갔지만 고전의 숲에 빠지면서 마음 큰 부자가 되어갔다. 예컨대 그가 책에 인용한 퇴계의 글귀는 마치 그 자신의 신념을 이야기하는 듯하다. 쉰이 넘도록 좋은 집 하나 없었던 퇴계에게 고을 원님이 "이렇게 누추한 집에서 어떻게 사느냐"고 묻자 퇴계는 "습관이 되어 괜찮다"고 했고, 벼슬 자랑하는 사람에게는 "나에게는 학문이 있다"고 응수했으며, 돈 자랑을 하는 사람에게는 "나에게는 의리가 있다"고 답하며 조금도 기가 꺾이지 않았다. 인생의 쇠퇴기에 이르러 그가 토로하는 삶의 교훈담은 단순 명쾌하다. 실패하면 실패할수록 자신의 마음에 자유와 안정과 용기를 준 것은 결국 참된 것, 바른 것 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런 결론에 도달한 뒤 고전은 그에게 참되고 아름다운 세계를 보여주었다.
무엇보다 그의 마음에 뿌리깊게 박힌 사상은 <대학>에 나오는 '지어지선(止於至善, 줄여 至善이라고도 함)'이다. 지극한 선의 경지에 들어가 머문다는 뜻의 지어지선은 그가 '모자란' 아들을 마음으로 받아들일 때 처음 절감한 말이었다. 보통 아이들보다 백 배, 천 배 손이 가기 때문에 부모의 마음도 오롯이 깃들여서 '모자란' 자식이 결국은 부모의 영혼과 하나로 묶이는 그 지선의 사랑을 준경군이 그의 가슴에 심어주었다. 어쩌면 준경군은 지선의 경지를 깨닫게 하기 위해 하늘이 보낸 선물인지도 모른다고 그는 생각하고 있다. 그래서 그에게 지선은 유유하고 명랑하고 자유로운 의미로 다가왔다.

그가 지금 비록 자유롭게 고국에 들어오지도 못하고 인생에서 줄곧 실패만 해왔지만 이 자서전에서 유쾌한 시선으로 자신의 과거를 되돌아볼 수 있는 것도 바로 삶과 연결된 그 선(善)의 세계 때문이다. 그는 '선은 곧 생명'이라고 말한다. 어떤 고난에도 굴하지 않고 착하게 사는 것은 그 자체가 이미 일종의 행복이라고도 한다. 그래서 그의 삶에서 '선(善)의 궤도는 우주의 궤도처럼 아름다운 것'이 됐다.
리뷰 총점 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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