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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시간의 한국사 여행 1
도전과 응전, 새 길을 열다, '선사시대'에서 '고려'까지
김정남
노느매기 2015.08.28.
베스트
청소년 역사/인물 top100 27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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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1부 선사 시대

제1시 한반도에서 석기를 사용한 사람들
1. 최초의 인류는 누구였을까?
2. 구석기 시대에 일본을 걸어서 갔다?
3. 한반도에 살았던 구석기인들은 누구였을까?
4. 구석기인들은 어떻게 먹고 살았을까?
도구의 사용은 인류만의 특징이다?/인간이 처음 사용한 도구는?/인류가 불을 사용하다!/튼튼한 집이 필요 없던 구석기인들
5. 신석기 혁명을 일군 새로운 사람들
농사는 어떻게 시작됐을까?/목축은 어떻게 시작됐을까?
6. 신석기인들이 도전을 통해 꿈꾸던 삶, 풍요
따뜻한 자연환경이 신석기인들에게 준 선물, 지혜를 쓰게 하다/농사의 시작으로 죽이 탄생하다/토기 사용이 가져온 먹거리 혁명
7. 정착 생활의 시작, 가족 중심의 마을 공동체 형성
신석기인들이 살아 숨쉬던 움집은 어떠했을까?/패션 감각을 지닌 신석기인들의 멋내기/자연은 신앙을 잉태하고, 족외혼은 부족 사회를 열다

제2시 청동기와 최초의 나라 고조선
1. 먹고 남은 식량이 어떻게 계급 사회를 만든 것일까?
2. 청동제품이 지배층의 전유물이 된 까닭은?
청동기는 어떻게 개발됐을까?/비파형 동검과 세형 동검, 고조선의 관계는?/청동 거울은 거울이 아니다?/청동 방울은 신을 부르는 도구?/청동제 농기구는 없다?
3. 정복자에게 필요한 것은 무력이 아닌 권위?
정복당하지 않으려면 방어 시설을 갖추어야 한다/전쟁에서의 승리도, 패배도 하늘의 뜻이라니!
4. 청동기인들은 무슨 생각을 하며 살았을까?
청동기인들이 사용한 생활 도구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가족 구성원이 늘어나고 남자의 역할이 중요해지다/청동기인들이 바위그림을 통해 표현하고자 한 것은?
5. 고인돌은 지배층의 무덤일까?
청동기인들이 묻혀진 돌널무덤, 전국에서 발견되다/고인돌의 왕국, 세계 고인돌의 40%가 우리나라에 있다
6. 곰이 우리 조상의 어머니?
7. 단군 조선과 위만 조선은 모두 고조선인가?
고조선의 세력권은 어디까지?/위만과 그 무리는 고조선계 동이족일까?/8조법을 통해 본 고조선 사회는?
8. 위만 조선 VS 한나라, 전쟁의 승자는 어디?

제3시 철과 함께 탄생한 여러 나라들
1. 고조선 이후 등장한 군장 국가와 연맹 왕국
철이 청동보다 늦게 만들어진 이유는?/국가의 발전 단계는 어떠했을까?
2. 건국 신화에 담긴 초기 국가의 역사적 상황은 어떠했을까?
초기 국가와 관련된 역사적 기록들/동명왕이 부여의 시조라면 해부루와 해모수의 관계는?/해모수와 유화의 아들 주몽, 고구려을 세우다/비류와 온조는 정말 형제였을까?/박혁거세와 알영의 결혼은 어떤 의미일까?/김해 김씨와 김해 허씨는 한 핏줄?
3. 제가들에게 죽임도 당하는 허약한 왕의 시대, 연맹 왕국
부여는 관직 이름에 집짐승의 이름을 삼다/고구려를 이룬 5부족은 어떤 부족인가?/연맹 왕국으로 성장하지 못하고 고구려에 흡수된 옥저와 동예/삼한의 천군, 어떤 존재인가?
4. 부여의 목축 생활에서 윷놀이가 유래되다
5. 풍습이 비슷하면서도 다른 이유는?
부여에서는 질투하거나 투기만 해도 부인을 죽였다/고구려의 서옥제, 옥저의 민며느리제가 생겨난 이유는?/두레는 삼한 때 만들어진 공동 노동 조직이었다
6. 하늘에 제사를 지내며 풍요를 빌다!

2부 삼국과 남북국 시대

제4시 한강을 둘러싸고 숨가쁘게 전개된 외교와 전쟁들
1. 왕권 강화와 중앙 집권 체제의 강화는 어떤 관계인가?
특정 가문이 왕권을 독점하다/왕권과 정복 전쟁과의 관계는?/왕권과 율령의 관계는?/불교를 받아들인 이유는?
2. 왜 왕권의 강화가 국력의 증대로 나타났을까?
고구려는 정복 전쟁을 통해 발전했다/백제는 고이왕 때 중앙 집권 체제의 기반을 마련했다/신라는 내물왕 때 김씨가 왕위를 독점했다
3. 철의 나라, 가야의 시작과 끝
금관가야가 초기 가야 연맹을 주도하다/가야가 멸망한 원인은?
4. 백제 근초고왕, 왜와 외교 관계를 맺고 해상 왕국으로 우뚝 서다
근초고왕이 고구려의 고국원왕을 전사시키다/근초고왕이 왜왕에게 칠지도를 하사한 이유는?
5. 동북아시아의 강자로 떠오른 고구려
광개토 대왕, 정복을 통해 다민족 국가를 세우다/장수해서 붙여진 이름 장수왕, 많은 업적을 남기다
6. 다시 일어서는 백제, 부흥을 꿈꾸다
무령왕릉의 주인공, 22담로를 설치하다/근초고왕에 비견할 만한 위대한 군주, 성왕
7. 가장 늦게 성장한 신라가 삼국의 주도권을 차지하다
국명으로 ‘신라’, 왕명으로 ‘왕’을 확정하다/신라의 통치 뼈대를 만든 법흥왕/동지에서 적으로, 나라의 이익을 앞세운 진흥왕의 배신
8. 삼국의 전쟁 터, 한강의 현장 속으로

제5시 고구려 ? 백제의 마지막 전쟁과 신라의 삼국 통일
1. 중국 세력도 정복하지 못한 대제국 고구려
중국을 통일한 수나라가 고구려를 정복하지 못한 이유는?/당나라의 정복 야욕이 고구려의 저력 앞에 무릎을 꿇다
2. 삼국 통일의 성과는 신라의 외교술인가?
김춘추의 지략으로 신라와 당나라 간에 동맹이 맺어지다/계백과 결사대가 항전했으나 사비성이 함락되다/연개소문이 죽고 정권 다툼 속에 평양성이 함락되다/신라가 고구려의 부흥 운동을 지원한 이유는?/신라의 삼국 통일은 무조건 칭찬할 것인가, 덮어놓고 비판할 것인가?
3. 고대 국가의 성곽과 궁궐은 어떠했을까?
고구려, 자연 조건을 이용해 성곽을 쌓다/백제, 단단히 다진 흙을 쌓아 토성을 만들다/신라, 돌과 흙을 섞어 성곽을 쌓다/발해는 당나라의 장안성을 본떠 상경성을 짓다

제6시 신라와 발해의 남북국 시대
1. 왕권이 강해야 나라가 발전하는 걸까?
통일 신라와 발해, 남북국 시대를 열다/김춘추가 진골 출신으로는 처음으로 왕위에 오르다/신문왕이 진골 귀족을 숙청하고 왕권을 강화하다/전국을 9주 5소경으로 정비하다/관료전을 지급하고 녹읍을 폐지하다
2. 만주를 차지한 발해 제국, 고구려 부흥을 꿈꾸다!
대조영이 고구려 유민과 말갈인을 이끌고 발해를 세우다/무왕, 문왕, 선왕으로 이어지면서 해동성국으로 성장하다/발해가 고구려 계승을 내세운 이유는?
3. 왕을 죽이고 차지한 왕위, 결국 죽임을 당해 내려오다
무열왕계가 끝나고 내물왕계의 왕위 계승이 다시 시작되다/무열왕계 김헌창이 반란을 일으키다/해상왕 장보고가 왕위 쟁탈전에 휘말려 죽다/농민들은 적고적이 되거나 봉기를 일으키다
4. 진골 귀족 VS 호족, 역사의 승자는?
지방 세력으로 성장한 호족/호족의 지원으로 성장한 선종/골품제에 저항한 6두품

제7시 신분에 따라 사는 세상이 다르다
1. 신분제는 지배층의 권력 유지용 제도?
귀족, 평민, 노비의 세 신분이 살아가는 길/ 신라 지배층의 신분 제도, 골품제
2. 고대 국가의 살림법
삼국은 백성에게 똑같은 세금을 걷었다?/식읍과 녹읍이 귀족의 경제 기반인 이유는?/민정문서, 왜 작성했나?/고대 국가의 세금 제도는?
3. 고대 사회의 경제 생활은 어떠했을까?
철제 농기구와 소를 이용해 농사를 짓다/삼국이 수입한 물품은 누구를 위한 건가?/9세기 동아시아의 국제 무역을 주도한 나라는?/중국과 일본에서 인기 있던 발해의 수출품은?
4. 통치 조직은 귀족의 신분 유지를 위한 제도인가?
왕과 귀족 간의 연합 정치로 마련된 통치 조직은?/발해는 독자적인 통치 체제를 마련했다
5. 아름다운 남자들의 모임, 화랑도

제8시 고대로 떠나는 문화 여행
1. 고대 사회에서 최고의 지식인층은 유학자?
우리나라 사람은 언제부터 한자를 사용했을까?/유교는 지배층의 학문이었나?
2. 신선이 사는 땅, 그곳이 명당
삼국 시대에 도교가 귀족들 사이에서 유행한 까닭은?/풍수지리설이 새로운 세상을 열다
3. 교종은 안정기, 선종은 혼란기에 성행했다?
호국 불교가 생겨난 이유는?/교종이란?/해골물을 마시고 원효가 깨달은 것은?/화엄 사상을 전파하고 천축국을 순례한 승려들/선종이란?
4. 현실 세계와 부처의 세계가 어우러진 곳, 사찰
신라의 황룡사, 백제의 미륵사, 고구려는?/현생의 부모와 전생의 부모를 위해 지은 사찰은?
5. 종교는 같아도 나라마다 부처의 모습이 다른 이유는?
6. 나라마다 탑의 모양이 다른 이유는?
석가모니의 무덤, 탑/아름다움의 극치, 미륵사지 석탑과 당나라 양식을 본뜬 분황사 석탑/석가탑과 다보탑이 나란히 서 있는 이유는?/승려들의 무덤, 승탑/진리의 빛을 비추는 석등
7. 아기를 넣어 만들었다는 전설의 종은?
8. 무덤 양식은 민족의 이동 경로를 알 수 있다?
고분 벽화와 모줄임천장 구조를 갖춘 고구려의 무덤/석촌동 돌무지무덤을 통해 알 수 있는 고구려와 백제의 관계는?/돌무지 덧널무덤에서 많은 껴묻거리가 출토된 이유는?/죽어서도 살았을 때처럼 살기 위한 염원, 고분 벽화
9. 고대인들의 염원이 담긴 금관
10. 첨성대는 천문대였을까?
11. 발해의 문화는 국제적, 국가의 정체성은 고구려
12. 한반도인들이 건너가 일군 고대 일본의 문화
삼국인과 가야인들이 일본인들에게 전해 준 문화는?/삼국 문화와 닮은 일본 문화

3부 고려 시대

제9시 동터 오는 제국, 고려
1. 왕건은 어떻게 통일 왕조를 열었나?
견훤과 궁예가 나라를 세워 후삼국 시대를 열다/궁예 VS 왕건, 승자의 기록만 남는다/가족 간의 불화로 후백제는 망하고, 왕건은 통일을 이루고!
2. 호족이 세운 나라 고려, 태조 왕건의 선택은?
훈요 10조에 담긴 태조의 정책은?/왕건이 29명의 부인을 둔 이유는?
3. 빛나거나[光], 미치거나[狂], 그 광종이 일군 황제국 고려
4. 성종이 일군 어진 정치의 근본은 백성? 귀족?
최승로의 시무책에 담긴 내용은?/유교의 정치사상을 바탕으로 한 왕과 귀족의 연합 정치/중앙 집권 체제가 확립되지 않은 이유?/고려 시대 중앙군은 직업 군인이 많았다?
5. 담판 VS 전쟁, 담판이 전쟁의 승리보다 값진 이유는?
6. 여진에 대한 사대는 백성을 위한 실리인가, 권력 유지를 위한 방책인가?
7. 문벌 귀족 VS 신진 관료, 문벌 귀족 사회가 동요되다
왕의 외할아버지이자 장인인 이자겸, 핏줄보다 권력이 우선인 문벌 귀족 세상/묘청이 서경 천도를 통해 꿈꾸었던 것은?
8. 문신 VS 무신, 개혁 없는 정변은 독재를 부른다
문벌 귀족을 몰아내고 무신이 정권을 잡다/60여년 간 최씨 무신 정권이 유지될 수 있었던 이유는?
9. 신분 상승 VS 신분 해방, 상승은 있어도 해방은 없는 신분제 사회

제10시 몽골 지배와 새로운 정치 세력이 나타나다
1. 몽골이 고려를 정복하지 못한 이유는?
몽골이 고려를 침입하다/고려 정부가 강화도로 수도를 옮긴 이유는?/몽골과 강화를 맺었으나, 삼별초는 대몽 항쟁을 계속하다
2. 혼혈인 왕이 등장한 원 간섭기
몽골이 직접 지배한 지역은?/원 간섭기, 왕의 이름에 ‘충’자가 들어간 이유는?/원나라는 고려의 여자와 해동청 보라매를 좋아했다
3. 원나라의 줄을 타고 오른 권문세족, 그 탐욕의 끝은?
4. 개혁 군주에서 비운의 군주로 전락하기까지, 공민왕의 행보
쌍성총관부를 무력으로 수복하고 기황후의 오빠 기철을 몰아내다/신돈을 등용하여 억울하게 노비가 된 사람들을 풀어주다/공민왕의 개혁이 실패한 이유는?
5. 이성계를 성장시킨 세력은 홍건적과 왜구?
6. 이성계의 위화도 회군, 반역자 아니면 권력자의 갈림길!
7. 신진 사대부가 과전법을 실시하고 고려를 멸망시키다
다수의 온건파 사대부 VS 소수의 급진파 사대부/급진파 사대부가 과전법을 실시한 이유는?

제11시 고려 시대 사람들은 어떻게 살았을까?
1. 고려 피지배층은 어떻게 살았나?
고려 시대 백성은 백정이었다/공노비는 급료를 받고 일을 했다?/농민의 공동체 조직인 향도는 어떻게 변화했나?
2. 고려 지배층은 어떻게 살았나?
나라를 움직인 지배층의 변천/신분 상승의 지름길, 과거제/새로운 신분의 등장, 중류층이 알고 싶다!
3. 이혼도 재혼도 비교적 자유로웠던 고려의 여성들
‘장가 간다’는 결혼 풍습은?/아들 딸 편견 없던 고려, 딸도 피를 받은 자식일 뿐!
4. 전시과 체제는 왜 마련됐나?
관리가 살아야 나라도 산다/시대 변화에 따라 제도도 변천해야 산다/전시과는 어떻게 운영됐나?
5. 백성이 살아야 나라 경제도 산다
백성은 나라의 근본, 백성의 근본은 농업/겨울에도 시원한 삼베옷을 입는 백성에게 목화솜을 선물한 문익점
6. 고려 시대에도 해외 무역이 활발했다?
관청 수공업에서 민간 수공업으로/도시를 중심으로 발달한 상업/승려 의천이 화폐 발행에 주요 공로자/국제 도시, 벽란도

제12시 유교와 불교 속에 꽃핀 고려 문화
1. 고려의 보수적 유학과 혁신적 유학은?
유교 정치사상을 통치 이념으로 삼다/학생들은 사학 12도를 선호한 이유는?/성리학은 수용 초기에는 개혁적 ? 실천적 성향이 강했다
2. 유교적 역사관과 민족적 역사관의 차이는?
“삼국사기”에 담겨 있는 뜻은?/민족의 시조와 영웅을 되살리는 역사책이 편찬되다
3. 백성의 정신을 지배한 불교, 불교를 지배한 국가
왕자이며 승려인 의천이 추구한 불교 사상은?/고려인의 축제, 연등회와 팔관회
4. 지눌이 개혁 운동을 통해 창시한 불교 교단은?
5. 왜 송나라 귀족이 고려청자를 극찬했나?
6. 불화가 최고의 미로 탄생한 이유는?
7. 고려의 불상과 탑의 특징은?
다양하고 개성 넘치는 고려만의 불상을 만들다/화려한 양식의 다각다층 석탑을 만들다
8. 고려 건축이 단아한 아름다움을 지닌 이유는?
9. 세계 최고를 다투는 고려의 인쇄술
팔만대장경은 어떻게 만들어졌나?/세계 최초로 금속활자를 발명하다

저자 소개

저자 : 김정남
서울 영동중학교와 경문고등학교를 거쳐 한양대학교 사학과와 같은 과 대학원에서 석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대진여자고등학교에서 역사를 가르치고 있다.
일방적 강의식 수업에서 TV의 역사 관련 다큐멘터리, 스페셜 등을 수업 목적에 맞게 재편집해 교실 속으로 끌어들이면서 느낌과 감동이 있는 수업을 실시하고자 직접 역사 교육용 콘텐츠를 제작하여 서울 청소년 교육미디어 축제나 서울특별시 교육방송 연구대회에서 상을 받기도 했다. 또한 서울특별시 교육연구정보원에서 주관하는 학교 단위 수업방법 개선팀 연구 활동을 세 차례 진행하면서 모두 우수 사례로 선정되었다.
지금은 교실에서 역사토론이나 독서토론 수업에 대해 관심을 갖고 다양한 방법을 모색하고 있으며 학습자 중심 역사 체험 학습 모형 개발에도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2014학년도부터 서울특별시 교육청 지정 역사교육 연구학교를 운영하면서 “역사문화답사의 기초 지식”, “문화유산과 소통하는 서울역사문화답사 1·2권”을 연구팀과 함께 펴냈다. 또한 안동·영주 지역 답사, 영월 단종애사 답사, 일본 나라·교토·오사카 한민족사 답사 등을 학생들과 함께 하며 역사토론과 문화 등을 통해 소통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관련 분류

품목정보

발행일
2015년 08월 28일
쪽수, 무게, 크기
344쪽 | 456g | 150*210*30mm
ISBN13
9791195381715

책 속으로

신석기인들은 곡물을 재배하여 어떻게 먹었을까? 낟알을 그냥 씹어 먹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들이 남긴 유물을 통해 음식을 가공해 먹었음을 알 수 있다. 그 유물이 갈돌과 갈판이다. 신석기인들은 넓적한 갈판을 만들어 그 위에 도토리나 곡식을 놓고 둥근 막대 모양의 갈돌로 갈아 껍질을 벗기기도 하고, 가루로 만들었다. 가루에 물을 부으면 부풀어 올라 양이 많아지고, 또 이것을 익히면 먹기에 부드럽고 맛도 있으며 배가 편안하다는 것을 알게 됐을 것이다. 이렇게 해서 원시적인 '죽'이 탄생했다. 죽을 쑤어 먹을 수 있었던 것은 물과 불, 그리고 신석기인들이 만들어낸 토기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 pp.28-29

금와왕 이야기에서 금와왕의 금은 황금 금(金)이다. 다른 말로 쇠 금(金)이기도 하다. 즉, 부여 세력은 철기 문화를 가진 세력임을 알 수 있다. 왕위 계승이 아버지(해부루)에서 아들(금와)로 계승되는 것을 통해서 왕권도 어느 정도 안정됐다는 사실도 알 수 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난데없이 재상 아란불이 수도를 옮기자고 한 것이다. 그래서 동 바닷가로 가서 동부여를 세웠다. 이 시기에 어떠한 일이 벌어졌던 것일까? 어쩌면 해모수와 해부루 간에 권력 다툼이 생겼을 수 있다. 둘 다 성이 ‘해(解)’라는 사실을 통해 이들은 친족 집단이거나 형제 관계일 것이다. 즉, 해부루가 해모수와의 권력 다툼에서 패한 후 이동하여 동부여를 건국한 것으로 추정해 볼 수 있다. --- p.69

왜 6두품을 중용했을까? 신라에서 최고의 지식층인 6두품 세력은 유교의 ‘천명사상’(天 하늘 천, 命 명령 명, 思想: 왕권은 하늘이 부여했다는 논리로 왕권의 신성함을 강조하는 사상)과 충(忠, 신하는 왕에게 봉사를 다해야 한다는 유교 윤리)을 강조하며 왕권을 정당화시켰기 때문이다. 그래서 신문왕은 유교를 확산시키기 위해 ‘국학’(國 나라 국, 學 배울 학: 유교를 나라의 학문으로 배우는 학교)을 설립했다.
신문왕 때 강력한 왕권을 바탕으로 전제 왕권이 성립됐다. 전제는 왕이 마음대로[專 오로지 전] 통제한다[制 통제할 제]는 뜻으로, 왕의 독재 권력을 나타낸다. --- p.147

고려 시대 귀족 집안들은 고위 관료나 왕실 등 가문의 수준이 비슷한 집안끼리 서로 혼인을 했다. 이러한 혼인 관계를 통해 권력과 부를 독점했는데, 이를 ‘문벌 귀족’이라 한다. 대표적인 문벌 귀족으로는 해주 최씨(최충), 경주 김씨(김부식), 안산 김씨(김은부), 파평 윤씨(윤관), 경원 이씨(‘인주 이씨’라고도 함)가 있다. 특히 경원 이씨의 이자연은 문종에게 세 딸을 시집보냈다. 이때부터 이씨 가문은 순종, 선종, 예종, 인종 때까지 여러 왕비를 배출했다. 경원 이씨 가문은 이자겸 때 이르러 최고의 권력을 누렸다.
여기서 잠깐 고려의 근친혼에 대해 살펴보자. 고려 시대 왕실은 가까운 친척끼리 결혼하는 것을 장려했다. 이를 근친혼이라 한다. 특히 고려 초기에는 왕자와 공주들끼리의 결혼이 많았다. 이는 태조 왕건이 왕권을 강화하는 방식으로 채택한 혼인 형태이다. 그래서 3대 광종은 배다른 자신의 누이와 결혼을 했고, 이후 형인 혜종의 딸, 즉 조카와도 결혼을 하여 많은 자식을 낳았다. 이러한 근친혼은 관례적으로 행해졌으며, 후기로 가면서 사라졌다. ---pp.247-248

김부식 등 개경 세력은 묘청의 주장이 임금을 속이는 것이라고 비난하며, 추수철을 들어 천도만은 막고자 했다. 이에 묘청은 인종의 마음에 확신을 주기 위해 대동강에 기름 묻힌 떡을 가라앉게 하고 햇볕에 기름물이 반짝이는 모습을 연출하여 서경은 용이 사는 곳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이 연출은 곧 거짓으로 드러났다. 결국 인종은 개경 세력의 주장을 받아들여 서경 천도를 중지하고 칭제건원과 금국 정벌을 수용하지 않았다. 이에 묘청은 1135년에 나라 이름을 ‘대위’(大 큰 대, 爲 될 위: 큰 나라라는 뜻), 연호를 ‘천개’(天 하늘 천, 開 열 개: 하늘, 즉 세상을 크게 연다는 뜻)로 하여 난을 일으켰다. 김부식 등 개경 세력은 정지상 등 서경 세력을 제거하고 군대를 동원해 난을 진압했다. 이로써 서경 천도 운동은 실패로 끝이 났다. --- p.252

삼별초는 진도에 용장산성을 쌓아 또 하나의 고려 정부를 세우고 일본에 외교 문서를 보내기도 했다. 그래서 당시에는 개경의 고려 정부와 진도의 고려 정부가 있었다. 진도의 고려 정부는 남해안과 전라도 일대에 영향력을 미칠 정도로 세력이 커졌다. 몽골에 짓밟힌 많은 백성이 진도의 정부를 지지했다. 이곳에서 삼별초는 여러 차례 개경의 정부군을 맞아 승리를 거두었지만, 결국 고려와 몽골 연합군의 공격을 받아 배중손이 전사했다. 김통정이 남은 무리를 이끌고 제주도로 가서 항파두리성을 쌓고 계속 저항했다. 삼별초는 1273년 고려와 몽골 연합군의 대대적인 공격을 받아 진압됐다. 이로써 4년에 걸친 삼별초의 항쟁은 막을 내렸다. --- p.266

쿠빌라이로부터 고려 왕으로 책봉(冊 문서 책, 封 봉할 봉: 임명한 문서)된 원종은 쿠빌라이에게 중요한 제안을 했다. 원나라 황실과 고려 왕실 간에 혼인하자는 것이다. 이 제안은 무신 권력자의 힘이 남아있던 고려 정부에서 원나라 황실의 힘을 배경으로 왕권을 강화하려는 의도였다. 그래서 쿠빌라이의 딸 제국 공주와 원종의 태자(후에 충렬왕)의 결혼이 이루어졌다. 이때부터 고려는 원나라의 사위국(공주의 남편을 부마로 불러서 부마국이라고도 함)이 됐다. 비록 원나라의 간섭을 받았지만, 사위란 지위는 원나라 귀족들의 고려 정부에 대한 간섭을 막는 역할도 했다. --- p.268

북에서 홍건적이 침입해 왔다면, 남 해안으로는 왜구가 침입해와 백성을 괴롭혔다. 그렇다면 왜구는 누구인가? 14세기 초 일본에서 가마쿠라 막부(幕府, 무신들의 우두머리인 장군이 실제 통치권을 행사하는 정치 형태)가 붕괴되면서 일본은 남북으로 갈라져 무인들끼리 싸웠다. 전쟁 때문에 살기 어려워진 일본인들이 떼를 지어 많은 배를 이끌고 중국 동남부 해안과 고려로 침입하여 노략질을 일삼았다. 이들은 마을을 습격하여 식량을 빼앗고 사람들을 죽이거나 잡아다 노예로 팔았다. 이러한 해적 무리를 왜구(倭 왜나라 왜, 寇 도적 구)라고 한다. 일본에서는 이후 무로마치 막부가 성립되어 사회 혼란이 진정됐으나 왜구의 활동은 근절되지 않았다. 왜구의 약탈은 조선 시대에도 지속됐다. 명나라의 경우 남왜북로(南倭北虜)라는 말이 생길 정도로 15~16세기에 남으로는 왜구의 침략과 북으로는 몽골, 타타르 등 북방 민족의 침략에 시달렸다. --- pp.280-281

고려 여성은 이혼이나 재혼에서도 자유로웠다. 부부가 서로 합의하면 이혼할 수 있었다. 기회가 되면 재혼할 수도 있었고, 자식이 있는 여자가 재혼하면 새 남편은 아내의 자식에게 재산을 상속(相 서로 상, 續 이을 속: 서로 잇게 한다는 말로 자식들에게 재산을 분배해 주는 것)해야 했다. 관직에 나아가는 데에도 재혼한 아내의 자식은 어떤 차별도 받지 않았다.

--- p.301

출판사 리뷰

쉽게 풀어쓴 한국사 이야기_ 아하~ 그래서 그랬구나!

교과서는 제한된 쪽수 안에서 역사를 다루어, 압축과 요약이 필수이다. 즉 핵심 위주의 서술이 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중요한 역사적 사건만 다루다보니 역사의 흐름이 단절된 경우가 많다. 이러한 교과서의 단점을 극복하기 위해 핵심 내용을 풀어 해설하였고, 사건과 사건의 인과 관계를 서술하여 역사에 대한 이해도를 높였다.
36시간의 한국사 여행은 교과서의 정석을 바탕으로, 핵심적 내용을 쉽게 풀어쓴 역사 이야기이다. 마치 귀로 듣는 것처럼 옛 사람들의 이야기가 술술 머리와 가슴으로 스며올 것이다. 풀어쓴 한국사 이야기의 묘미는 바로 생생한 설명에 있다.

교과서에서 다하지 못한 해석의 묘미가 담겨 있다. 고려 시대 일반 백성을 백정이라고 부른다. 그에 대한 이야기를 간략히 설명하였다.
“고려 시대 양민(良 어질 양, 民 백성 민: 착한 일반 백성)의 대부분은 농민이었다. 이 시대의 농민은 백정이라고 불렸다. 백(白 흰 백)은 아니다, 없다는 뜻이고, 정(丁 장정 정)은 군역을 진 사람(직업 군인의 성격)을 가리킨다. 즉, 백정은 군역을 지지 않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당시 군역은 군사로서의 의무를 비롯해서 귀족들이 관직에 나아갈 의무, 향리의 기인역(향리의 자제가 중앙 관청에서 10년 정도 머무르며 잡역에 종사하는 의무) 등의 직역을 뜻한다. 이런 직역에는 응당 나라에서 대가를 지급한다. 대개 군인전, 전시과, 기인전 등이 지급됐다. 백정은 이런 직역이 없는 일반 백성을 뜻했고, 이들은 직무가 없는 대신 조세의 의무가 있었다.”

역사는 다양한 사료를 통해 생성된다고 볼 수 있다. 유물, 유적, 문서 등등 그런 것을 통틀어 사료라고 한다. 그 사료에는 많은 사람의 증언도 담겨 있고, 신화나 전설 등 입으로 전해지는 다양한 이야깃거리도 있다. 이러한 사료를 해석하여 역사적 사실에 대한 이해도를 높였다. 다음은 주몽의 고구려 건국 신화에 대한 해석이다.
“주몽은 누구인가? 주몽의 어머니 유화는 하백의 딸이다. 하백의 하(河)는 강 이름을, 유화의 유(柳)는 버드나무를 나타낸다. 버드나무는 강가에서 많이 자란다. 이러한 것으로 미루어 볼 때 주몽의 외가 쪽은 강(우발수-압록강 추정)을 무대로 세력을 떨치던 집단으로 추정된다. 주몽의 아버지는 해모수이다. 태양을 의미하는 해와 발음이 같은 해(解)씨 성의 해모수는 하늘의 자손이라고 여기는 북부여의 우두머리였다. 하백이 해모수의 아이를 임신했다는 이유로 유화를 버렸다는 것은 하백과 해모수 간에 영토를 놓고 다툼이 있었다는 것을 암시한다.”

그런데 아무리 재밌는 역사이야기라 하더라도 이야기만 지속되면 지루할 수 있다. 이러한 지루함을 막기 위해 이야기 속에 담긴 궁금증을 찾아 그에 대한 해설을 곁들이며 역사의 재미를 돋우었다.
“왜 첨단 기술을 이용한 청동제 농기구는 만들지 않은 것일까? 그것은 청동의 특성에서 찾아볼 수 있다. 청동은 높은 열이 필요하지 않아 철보다 먼저 발견되긴 했으나, 청동에 사용되는 구리와 주석이 귀하다 보니 청동을 많이 만들 수가 없었다. 그래서 청동제품은 대개 지배층의 소유였다. 게다가 청동제가 단단하지 않아 돌과 별반 다르지 않으니, 굳이 비싼 청동으로 농기구를 만들 필요가 없었다. 또한 농사지어 얻은 소득보다 전쟁을 통해 획득한 소득이 더 많다면, 지배층은 농기구 개발보다 성능 좋은 무기를 개발하여 전쟁에서 승리하고자 힘쓸 것이다.”
“말이 거울이지 정확하게 모습이 보이지 않는 이러한 청동 거울은 왜 만든 것일까? 당시 청동 거울은 거울의 기능보다는 족장의 권위를 나타내는 상징물이었다. 청동 거울 고리에 끈을 끼워 목에 걸고 거울 부분을 태양 쪽으로 비추면 빛이 반사됐다. 마치 족장의 가슴팍에서 태양빛이 쏟아져 나오듯이 보였을 것이다. 태양을 숭배한 청동기인들의 눈에는 족장이 태양의 힘을 가진 것처럼 보였다. 이처럼 청동 거울은 정치적 지배자의 권위를 표현하는 데 쓰인 도구였다.”

그리고 해석은 해석으로 끝내지 않았다. 바로 역사적 사실을 통해 독자와의 소통을 유도했다. 묻고 답하고 다시 물으며 독자 스스로 생각할 수 있는 여지를 던져 주었다.
“그렇다면 도구를 제작하고 사용하는 것은 사람만의 문화일까? 영국의 동물학자인 제인 구달 박사가 관찰한 침팬지는 길고 가느다란 나뭇가지를 개미굴에 넣어 개미낚시를 했다고 한다. 이외에도 까마귀류나 해달 등 여러 동물도 도구를 사용한다는 사실이 목격되기도 했다. 그러나 동물들은 인간처럼 목적에 알맞게 도구를 가공하여 사용하지는 못한다. 인간만이 목적에 따라 다양한 도구를 제작하여 사용할 수 있기에 문화를 이룩할 수 있는 것은 아닐까?”

또한 상식처럼 알고 있는 문화재에 대한 이해도를 높였다. 특히 유물과 유적에 붙여진 명칭은 그저 암기로 습득한 것이었을 뿐 어떤 연유로 붙여진 명칭인지 확실히 아는 바가 별로 없다. 이런 역사적 상식에 대한 깊이를 더해 지식의 솔솔한 재미를 알게 하였다. 다음은 탑이란 명칭의 유래와 신앙의 대상이 되는 이유가 담겨 있다.
“탑은 석가모니의 무덤이다. 원래 인도에서 무덤을 이르는 말인 ‘스투파’가 중국에 들어와서 ‘탑파’가 됐고, 이 말이 줄어들어 ‘탑’이 됐다. 탑 안에는 석가모니의 사리(시신을 화장할 때 나오는 좁쌀만 한 크기의 구슬)가 들어 있다. 이를 진신사리(眞 참 진, 身 몸 신: 진짜 석가모니 몸에서 나온 사리)라고 한다. 이외에 법신사리도 있다. 법신은 진리[法 법 법, 진리를 나타냄]의 몸[身 몸 신]이라는 뜻으로, 법신사리는 석가모니를 상징하는 것들이다. 탑에는 법신사리를 대신 넣기도 했다. 예를 들어 석가모니의 가르침인 불경, 석가모니가 쓰던 물건, 금·은·옥과 같이 귀중한 것들을 진신사리 대신 넣었다. 따라서 탑은 부처를 상징하는 것이기에 사찰의 중심에 위치하고 신앙의 대상으로 숭배된다.”
또한 많은 유물을 토해낸 옛 무덤에 대해 우린 얼마나 알고 있을까? 그저 상식적으로 들어왔던 그 명칭에 대해 확실한 개념을 알려준다.
“무덤과 관련해서 진흥왕릉, 무용총, 김유신묘라는 말은 들어 보았을 것이다. 능(陵 언덕 릉, 언덕처럼 꾸민 무덤)은 무덤의 주인공이 확인된 경우 붙이는 명칭이고, 총(塚 무덤 총, 산꼭대기 총)은 무덤의 주인공이 누구인지 모르지만 벽화 등 특징적인 것이 있는 무덤일 때 붙인다. 묘(墓 무덤 묘)는 신분이 임금이 아닌 일반 신하들의 무덤을 나타낸다.”

알고는 있으나 분명하지 않았던 유물, 유적의 명칭이나 유래, 역사적 사실의 깊이 있는 설명이 역사의 재미를 이끌 것이다.

어려운 역사적 용어를 한자풀이로 해석_ 아하~ 그런 거구나!

1980년대 이후 세대는 한자를 잘 모른다. 물론 2000년대 이후는 더욱 그럴 것이고, 그렇다고 1960~70년대 세대라고 한자를 잘 아는 것도 아니다. 생활에서 한자를 접할 기회가 거의 없게 되면서 한자는 그저 어려운 글자일 뿐이다. 하지만 우리 옛 사람들은 한자를 주로 사용해왔다. 물론 지식층에 한해서만. 역사가 대체로 그들이 남긴 자료에 의해 이루어진다고 할 때 한자는 아주 중요한 역사 지식의 하나인 셈이다. 더욱 역사적 사실을 알아보려면 수많은 역사적 용어를 접하게 된다. 그 용어가 한자이다. 한자 표기 없이 한글로만 제시되어 있어 역사에 대한 이해는 더욱 어렵다. 그것은 교과서도 마찬가지이다. 수많은 한자식 용어의 나열로 인해 앞뒤 맥락을 찾거나 역사적 사실의 인과 관계를 파악하기가 쉽지 않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36시간의 한국사 여행이 시작된 것이다. 역사적 용어에 대해 한자어만 제시한 것이 아니라 한자를 뜻풀이함으로써 그 용어가 가지는 뜻을 정확하게 알 수 있도록 하였다. 이를 통하면 역사적 개념을 이해하기가 쉬워진다. 이러한 한자풀이를 통한 역사적 개념에 대한 이해는 중학교, 더 나아가 고등학교 한국사 공부에 큰 도움이 될 것으로 본다.
단순히 용어로만 외우던 것을 한자풀이를 통해 보면 그 개념이 쉽게 잊혀지지 않을 것이다. 간단한 예로 진대법과 식읍, 녹읍의 풀이에서 찾을 수 있다.
“진대법은 봄에 끼니를 잇지 못하는 백성을 구하기 위해[賑 구휼할 진] 나라의 곡식을 빌려 주는[貸 빌릴 대] 제도[法 법 법]이다.”
“식읍은 왕족이나 공신이 먹고[食 먹을 식] 살기 위해 주는 고을[邑 고을 읍]이고, 녹읍은 귀족 관료에게 봉급[祿 녹봉 녹]으로 지급한 고을[邑 고을 읍]이다.”

역사적 용어 외에도 책 이름과 같은 고유명사에 대한 한자풀이를 통해 내용뿐만 아니라 당시 상황까지 유추해 볼 수 있도록 했다.
“원 간섭기에 이암이 원나라의 농업 서적인 “농상집요”를 들여와 소개했다. 이 책은 농사[農 농사 농]와 뽕나무[桑 뽕나무 상]를 짓는 데 중요한 농사법[要 중요할 요]을 모아 놓은[輯 모을 집] 것이다. 당시 중국과 고려에서 농사와 양잠(養 기를 양, 蠶 누에 잠: 누에를 기름)에 관심이 많았음을 보여준다.”

또한, 역사적 용어의 특징을 찾아 당시 역사적 상황을 이해할 수 있도록 했다.
“여기서 잠깐! 무신 정권의 권력 기구를 보면 중방, 도방, 정방, 서방 등, 모두 ‘방’(房 관아 방) 자가 붙었다. 왜 무신 정권의 권력 기구에 ‘방’ 자가 붙은 걸까? 원래 ‘방’은 관리들이 회의하던 공간을 뜻한다. 무신 정권기에 나라의 주요 관청들이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했기 때문에 회의하던 공간에서 나라의 주요 사항이 모두 결정된 것이다.”

역사적 용어에 대한 한자의 뜻풀이는, 용어에 대한 명확한 내용과 개념에 대한 이해를 높여준다. 하지만 여기서 그치지 않고 역사적 사실의 전후 관계와 맥락을 파악할 수 있게 한다. 이로써 역사적 흐름을 암기로써가 아니라 이해함으로써 터득하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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