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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농지개혁의 역사사회학적 고찰
2. 미군정기의 농업문제와 토지정책 3. 농지개혁의 사상 전통과 농정이념 4. 입법과 실행과정을 통해 본 남한 농지개혁의 성격 5. 농지개혁 전후의 대지주 동향 6. 농지개혁의 생산성 증대효과 분석 7. 남북한의 농지개혁 비교연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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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만 정부는 농림부팀을 중심으로 독자적인 농지개혁법 초안을 작성하기도 하였으나. 실제로 농지개혁법을 결정할 권한을 지닌 쪽은 국회였다. 정부와 미국의 의지는 입법권을 쥐고 있는 국회의 결정과정을 통해서만 실현될 수 있었다. 1940년대 후반의 시점에서 미국의 한국 정치에 대한 영향력이 압도적이었다고는 해도, 그 영향력은 한국 정치의 기본 구도에 영향을 미칠 수 있을 뿐, 구체적인 입법과정에 작용할 수는 없었다. 문제는 대통령 이승만 역시 자신의 확실한 지지기반을 국회에 가지고 있지 않았다는 점이다
각종 법안,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 활동 등에서 확인되듯이. 국회는 정부와 항상 충돌하였으며, 이에 대해 정부가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방법은 제적이었다. 농지개혁법안의 작성과 결정의 주체는 정부나 미국이 아니라 국회였다. 1949년 3월, 국회 본회의에서는 농림부안이나 기획처안을 참고자료의 수준에서 활용하였을 뿐, 산업노농위원회가 자체적으로 작성한 방안('산업위원회안')을 축조 심의하는 방법으로 농지개혁법을 만들게 된다. --- p.15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