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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글을 열며
용호비결의 특징 수행학적 인체론 바라돌을 상징하는 구궁 용호란 무엇인가 용호에서 구궁으로 2. 수행의 자세와 폐기 너무나 쉽고 간단한 길 혼란스러운 단의 세계 수단지도와 대학지도 수행의 바른순서 참동계와 용호비결 깨달음으로 가는 바른길 용호비결의 그 한마디 3. 폐기를 위한 실천조목 마음을 고요하게 하라 단아하게 앉아라 눈은 아래를 보라 눈은 코의 흰빛과 상대하라 숨길에 병풍을 치라 코는 배꼽을 향하라 면면하게 마시고 미미하게 토하라 신과 기는 배꼽아래 상주하게 하라 지식과 호흡의 단계 폐기 초기에 나타나는 현상들 뜻으로 현빈규를 열어라 폐기를 위한 생활수행 4. 정기와 풍사에 대하여 정기와 풍사로 보는 인간의 모순 형화를 넘어 기화의 세계로 풍사가 고황에 들면 죽음의 기한을 물리친다 솥의 세발처럼 서 있어야 할 기 5. 폐기에 대하여 폐기에서 기를 부리는 일 1차폐기 - 육근의 힘을 태워 기운의 힘으로 2차폐기 - 기운마저 태워서 혼의 힘으로 숨과 의념으로 이궁을 잡아라 이궁을 단련하는 여러방법들 이궁의 화기를 내리고 감궁의 수기를 올려라 폐기에서 일어나는 몸의 감각 잘못된 폐기 수행의 오류 6. 태식에 대하여 태로부터 났으니 태로 돌아가라 폐기안에 태식이 있다 태를 움직이는 구궁기로식 7. 주천화후에 대하여 주천이란 무엇인가 화후란 무엇인가 온기란 무엇인가 작은 주천과 큰 주천 화후를 돌리는 법- 문무진퇴의 법 주화입마에서 생기는 병증 8. 땅의 살림을 거두고 하늘 문으로 글을 맺어 다음을 준비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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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의 알갱이들을 느낄 정도로 떨어뜨리라는 것이다. 숨을 천처히 쉰다는 것은 그 떨어뜨리라는 것이다. 숨을 천천히 쉰다는 것은 그 떨어지는 시간이 상당히 길다는 것을 말하다. 한 번 떨어지고 두 번 떨어지고 자꾸 떨어져서, 구름이 피어나듯 피어났다가 사라지게 하는 것을 말한다.
나올 때는 숨이 나오는지 안 나오는지 잊어버리면 저절로 길을 따라 나오게 된다. 숨은 코뿐만 아니라, 피부로도 나오고 머리나 발 그리고 손으로도 나온다. 나올 때는 숨만 혼자서 나오지 않고 물기 따위를 동반해서 나오기도 한다. 우리 몸을 얼핏보면 물 한 방울, 공기 방울 하나 들어가지 못하는 막힌 표면으로 보인다. 그러나 우리 몸은 구멍들이 숭숭 나 있는 대롱들의 합이다. 이 대롱들이 너무 미세해서 현미경이 아니면 보이지 않지만, 가만히 보면 구멍천지다. 그러므로 공기는 얼마든지 드나들 수 있고, 물도 드나들 수 있으며, 그 밖에 다른 것도 드나들 수 있다. 숨은 하나의 생명이다. 숨도 하나의 생명이어서 시작하는 머리와 끝나는 꼬리가 있다. 숨의 머리가 들어와 그것이 아랫바라돌에 도달하고, 그 꼬리마저 거기에 도달할 때 그때야 비로소 한 숨의 절반이 끝났다 할 수 있다. --- p. 12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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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누구나 용호비결을 체계적으로 이해하여 거기에 담긴 동양(한국)특유의 인간론을 이해하도록 일생생활에 이르는 영역까지 포함해 과학적 이해의 대상이 되게 했다.
이 풀이본에서는 무엇보다도 '왜'라는 질문을 집요하게 던진다. 그리고 그 이유를 차근차근하게 밝혀가고 있다. 요컨대 이 풀이본은 수행을 수행학으로 이끌어올리고 있으며, 수행학으로부터 동양적(한국적) 인간론을 찾아내어 그것이 어떤 것인지 보여주고 있다. 그 과정에서 이해하기 어렵던 개념들이 풀어되었으며, 다양한 편견들에 대한 논박이 이루어지기도 한다. 물론 그런 관점을 뒷받침하기 위한 실천적인 경험과 이론적인 전거들도 넉넉하게 동원된다. 동양의 의학세계와 사상적 관점이 수미일관하게 풀이되고 있으며, 지금까지 쉽게 지나치기만 했던 인체 현상들도 새로운 각도에서 이해의 영역으로 다가왔다. 모든 사상에서 바탕을 이루는 것은 인간론이 아닐까? 인간론에 의해 뒷받침되지 않는 한, 체계적인 동양학이라는 것이 가능한 것일까? 이 풀이본은 그런 관점에서 동양학의 바탕을 밝히는 데 주력한다. 물론 그런 관점을 뒷받침하기 위해 천문과 지리를 살피기도 하며, 유불선의 여러 관점을 이어놓기도 한다. 아울러 풀어옮긴이가 직접 수행해오면서 느끼고 깨달은 경험을 바탕으로 탄탄하고 차근차그하게 용호비결을 풀이했다는 것만으로도 이 책의 의의는 넉넉할 것으로 생각한다. 또 동양학은 이제부터라도 인간론, 그것도 인체론에 바탕을 둔 인간론에서부터 그 토대를 다시 놓아가야 할 것이라는 명제만으로도 그 의의는 더욱 크다고 스스로 생각해볼 따름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