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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디의 유산
작가의 말_ “간디 선생님, 나는 당신이 필요합니다” 프롤로그_ 인도에서의 10년, 간디와 함께한 평화 순례 1장 내 삶이 나의 메시지입니다 2장 삶의 목적은 봉사입니다 3장 진리는 영혼을 살찌우고 비진리는 영혼을 좀먹습니다 4장 밥상 변화가 세계 혁명의 시작입니다 5장 섹스, 조심하십시오 6장 우리는 신(神)의 거울입니다 7장 기도는 아침을 여는 열쇠요, 밤을 닫는 빗장입니다 8장 스티브 잡스가 날 나답게 잘 봤습니다 9장 종교, 신과 자신의 실현이 목적입니다 10장 붓다의 뜻을 실천하십시오 11장 예수 향기를 더욱더 조용히 뿜어냅시다 12장 비폭력 혁명은 계속되어야 합니다 13장 병은 자연법칙을 깨트리는 데서 오는 것입니다 14장 육체노동을 하지 않는 사람은 사회의 기생충입니다 에필로그_ 내 삶의 비밀을 알려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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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나도 어디서 그런 용기가 나왔는지 그때는 몰랐고 그것을 생각할 겨를도 없었습니다. 내 말을 듣자마자 역무원들은 내 가방을 기차 밖으로 던지고 아예 나를 기차에서 쫓아내 내팽개치더군요. 많은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말이죠. 그리고 기차는 떠나 버렸습니다. 그날 밤 역무실에서 밤을 지새웠어요. 잠이 올 리가 없지요. 그런데 이상한 것은 그런 수모와 멸시를 당하고 나니까 오히려 내 삶과 세상이 뚜렷하게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면서 그 밤에 잠 못 이루며 ‘나는 이제 무엇을 할 것인가? 어떻게 해야 되는가?’ 지금 표현으로 하면 나의 다르마, 즉 의무를 깊이 생각했습니다. 남아프리카에서 나의 권리를 위해 싸울 것인가 아니면 인도로 돌아갈 것인가를 고민했습니다. 그때 ‘나의 의무는 이것을 피하는 것이 아니라 저항하는 것이다. 이것을 완수하지 않고 인도로 돌아가는 것은 비겁한 일이다’라는 믿음이 생겼습니다. 그리고 ‘나에게 닥친 곤경은 극히 일부분에 불과하다. 피부색에 대한 편견이라는 백인들의 뿌리 깊은 질병을 보여 주는 하나의 증상이다. 가능하다면 이 병을 뿌리 뽑기 위해 노력해야만 하고, 그 과정에서 있을 고통을 견뎌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잘못된 것을 고치기 위해, 즉 피부색에 의한 편견과 차별을 없애기 위해 노력하기로 결심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역무원들이 너무도 고마워요. 나를 나 되게 하는 계기를 만들어 주었으니까요.” ---「1장, 내 삶이 나의 메시지입니다」중에서
진리에 대한 대화는 끝이 없을 것 같습니다. 오늘 대화를 마치면서 한 가지 가벼운 마음으로 묻고 싶습니다. 다소 당돌한 질문으로 들릴 수 있을 텐데요, 진리의 길을 영원한 청년으로 걸어가신 선생님! 그런 진리 추구의 삶은 행복하셨습니까? “하하~ 나를 웃음 짓게 하는 질문이군요. 행복해지고 싶나요? 그러면 진리와 관련해 내가 행복한 삶의 비밀 하나를 알려드리지요, 행복의 열쇠는 진리를 추구하는 삶 자체에 있습니다. 곧 진리를 받드는 삶이 행복한 삶입니다. 나는 인도의 종(servant)이 아니라 진리의 종으로 살았다고 자부합니다. 진리의 길이 바로 나와 이 세계를 위한 평화의 길입니다. 나는 삶에서 줄곧 마음의 아름다운 평화를 느껴 왔습니다. 이런 나의 삶을 누가 행복하지 않았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3장, 진리는 영혼을 살찌우고 비진리는 영혼을 좀먹습니다」중에서 단식이 사회 변화를 일으키는 힘과 무기, 비폭력 저항이 될 수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우리 사회를 보면 단식을 마치 하나의 사회 정치적 이벤트로 남발하는 경향을 보게 됩니다. 그래서 단식 저항 이후 거기에 맞는 변화가 뒤따르지 않는 것을 보면 좀 씁쓸하기도 하고요. “단식 저항에 대해 결론적으로 말씀드리면, 단식은 인간의 노력으로는 완전히 속수무책일 때 사용하도록 신이 우리에게 내려 주신 유일한 무기입니다. 단순히 음식을 먹지 않는 것으로 단식을 시작하고 끝내는 것이 아닙니다. 무조건 단식한다고 자신과 사회의 변화가 일어나는 것도 아닙니다. 단식은 일차적으로 자신과 신(神)과의 관계 회복을 위해서 하는 일입니다. 철저하게 자신을 비우는 행위이고 그것을 통해 신이 감동하면 세계는 변화될 것입니다. 그래서 계속 강조하지만 단식은 음식을 먹지 않는 그 이상의 뜻이 있는 것입니다. 단식의 가장 큰 몫은 기도, 즉 신과의 영적 친교입니다.” ---「4장 밥상 변화가 세계 혁명의 시작입니다」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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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대 다수의 최대의 행복’이란 말에 담긴 서구 사상의 오류
간디는 서구인들이 ‘행복’을 ‘경제적 풍요’의 뜻으로 받아들이고, 인간의 의무를 최대 다수의 최대의 행복과 최대 풍요를 증진시키는 것이라고 주장한 사상을 염려한다. ‘물질적 행복’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소수의 희생은 잘못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당연시해 버리기 때문이다. 또한 현대 문명은 인간의 물질적 욕구를 무한할 정도로 증폭시키고, 기계화를 통해 수백만의 사람들을 짓밟고 육신을 위축시키며 소외시키고 있다고 비판했다. 소수 인간만이 혜택을 받는 산업화의 대안은 대량생산이 아닌 ‘대중에 의한 생산’에 있다는 것이 간디의 분명한 철학이었다. 저자는 우리가 사회변화를 갈망하고 불의한 사회에 대해 흥분하면서도 행동을 주저하는 이유는 책임감이나 의무감의 결여에서 오는 것이라는 진단을 하며, 간디의 ‘직접행동’이라는 표현을 신선하게 받아들인다. 간디가 산업화의 첨단을 달리며 인도를 착취하는 영국에 대항해 주체적이고 적극적인 길로 들어서 자기를 헌신하게 된 배경이 읽히는 대목이다. 그 문제 해결에 대한 고민으로부터, 간디는 문명의 진정한 발전을 위한 대안으로 ‘필요의 감소’를 말하고 무소유 자립정신을 실천하고자 했다. 간절한 기도 없이 세상일을 도모하는 자는 자신과 세상을 불행하게 만든다 인간의 탐욕을 끝없이 증폭시키는 현대 문명에 대항하여 간디는 끊임없는 자기 쇄신의 길을 걸었다. 그 노력은 자연스럽게 간디의 영성을 고양시켜 주었고, 폭력적 현실을 이겨 내는 유일한 방법은 이기적 욕망을 극복하고 두려움에 굴복하지 않는 자기 훈련이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그런데 그 훈련은 이성과 인간적 의지만으로는 성공하지 못한다는 진리를 간디는 평생에 걸친 자기 수행을 통해 깨달았다. 간디는 세상을 바꾸기 위한 노력을 하면 할수록 먼저 자신이 변화되어야 함을 절실히 알았고, 사욕을 버리고 겸손되게 진리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언제나 일을 그르치게 된다는 사실을 알았다. 간디는 자신을 비우고 진리를 따르며 행복 안에 사는 방법으로써 언제나 기도를 강조하였다. 그는 하루를 기도로 시작해서 기도로 마쳤으며, “나는 정치인이 되고픈 성자가 아니라 성자가 되고픈 정치인이다”라고 자신의 신앙심을 표현했다. 간디는 다른 종교에 대해 개방적인 태도를 갖고, 진리와 신에 헌신하는 내용의 기도문이라면 존중하고 받아들였다. 사람들은 기도를 특정 종교의 특별한 종교 행위로 여기는데, 간디의 말과 삶을 통해 기도란 종교 여부를 떠나 삶을 온전하게 살아가려 하는 사람들의 일상이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한편 기도하지 않은 한 혼의 힘은 생길 수 없고, 자신과 사회의 변화는 더더욱 요원하다는 사실도 직시하게 된다. 간디는 기도가 일상적 행위에 질서와 평화와 안정을 가져오는 유일한 수단이라고 인정했다. 하지만 간디는 잘못된 교리에 얽매여 진정한 신의 뜻과 어긋난 삶을 살고 또 그러한 가치를 설파하는 현대 종교를 강도 높게 비판하였다. 자신을 깨달아 아는 자만이 모든 집착에서 해방되어 자유로워진다 간디를 정치인 혹은 독립투사 정도로만 아는 사람들은 그의 깊이 있는 사상과 실천력 넘치는 힘이 바로 기도의 삶에서 비롯되었다는 사실을 지나치기 쉽다. 간디에게 기도는 생활화된 예배였다. 그의 긴 생애 동안 밥을 굶은 적이 많아도 기도를 거른 적은 단 하루도 없었다. 그는 신과의 대화로서 하루를 시작하고 또 그 기도로서 하루를 마쳤다. 오늘날 자신들의 욕구를 무분별하게 증대시키고 있는 사람들은 마치 자신들이 중요하고 참다운 지식을 촉진하는 것으로 착각하고 있다. 그 오만함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이성의 사유를 넘어서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기도하고 인류 안에서 행동해야 함을 간디는 알았다. 인간의 가슴 속에서는 빛의 세력과 어둠의 세력이 끝없이 싸움을 벌이는데 의지할 수 있는 기도의 닻을 지니지 못한 사람은 어둠의 희생물이 되기 쉽다. 반면에 기도하며 자신을 돌아보는 사람은 자신과 세상과의 관계 속에서 평화를 유지하므로, 변화된 성품과 행동에 의해서 세상을 변화시킬 힘을 갖게 된다. 그리하여 간디는 죽음에 대한 집착에서도 자유로웠고, 자신의 죽음까지 예측했다. 그는 자신이 누군가에 의해 암살당할 것이라는 사실을 여러 차례 밝혔으며, 그때 분노의 흔적 없이 조용히 미소를 띠고 죽기를 바란다고 얘기하였다. 간디가 암살당하던 1948년 1월 30일, 그는 여느 날처럼 새벽 3시 30분에 일어나 기도를 드린 뒤 일을 시작하였다. 그 모습을 지켜본 사람이 건강을 염려하자 간디는 자신의 죽음을 미리 보기라도 한듯 말했다고 한다. “내일이면 내가 여기 없을지도 모르지 않습니까?” 그리고 간디는 그날 오후 암살당하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