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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과의사 김종성 영화를 보다
김종성
동녘 2006.05.15.
베스트
뇌과학 top20 18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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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1장 영화로 뇌 이해하기
1. 심술궂은 친구, 편두통 _ 디 아더스
2. 식물인간의 비극 _ 그녀에게
3. 뇌에 구멍이 생기는 공포의 광우병 _ 한니발
4. 폐인으로 가는 길, 전두엽 절제술 _ 지난여름 갑자기, 프롬헬
5. 말을 잃어버린 실어증 _ 넬
6. 음악가의 뇌는 특별한가? _ 아마데우스

2장 우리가 움직이는 법
1. 안락사, 살인인가 자비인가? _ 밀리언 달러 베이비
2. 마음의 병, 히스테리성 마비 _ 라임라이트
3. 근육이 꼬이는 근긴장이상증 _ 오아시스
4. 투렛병, 나는 욕쟁이 _ 듀스 비갈로
5. 숨 쉬는 마네킹의 고통, 파킨슨병 _ 사랑의 기적

3장 기억, 망각 그리고 치매
1. 우리들의 기억을 위하여 _ 메멘토, 첫 키스만 50번째
2. 망각의 여로 _ 올드 보이, 페이첵, 거미숲
3. 암흑 속으로, 알츠하이머병 _ 아이리스, 봄날은 간다, 내 머리 속의 지우개
4. 낮과 밤이 뒤바뀐 기면증 _ 4인용 식탁

4장 임상 시험과 의학계의 논란
1. ALD, 지방산이 안 잘라져요 _ 로렌조 오일
2. 임상 시험의 윤리 _ 도망자
3. 대체 의학, 난치병의 그림자 _ 그린 마일
4. 뇌 이식 vs. 얼굴 이식 _ 존 말코비치 되기, 페이스오프

5장 뇌로 풀어 본 인간 행동의 비밀
1. 스토킹은 괴로워 _ 미저리, 스토커
2. 폭력의 본질 _ 아메리칸 사이코, 박하사탕
3. 동성애자의 뇌는 다른가? _ 빅터/빅토리아, 쓰리 오브 하트, 번지 점프를 하다, 왕의 남자
4. 21세기의 역병, 에이즈 _ 필라델피아, 보이즈 온 더 사이드
5. 사랑의 선택_ 러브 액츄얼리, 권태
6. 우리는 어떻게 사랑하나? _ 욕망의 모호한 대상, 사랑할 때 버려야 할 아까운 것들, 파리에서의 마지막 탱고

저자 소개

저자 : 김종성
경기고등학교와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현재 울산대학교 의과대학 교수 및 서울아산병원 신경과 과장으로 재직 중이다. 인간의 정신 세계에 매료되어 프로이트와 융을 즐겨 읽었고, 뇌의 현상으로 인간을 풀이하는 데 관심을 두고 신경과를 전공으로 택했다.
함춘의학상(2001), 우수의과학자상(2002), 분쉬의학상(2003) 등 여러 의학상을 수상했고, 《동아일보》, 《신동아》 등에서 ‘최고의 신경과 명의’로 선정되었다. 또한 150편의 국외 논문을 포함한 250편의 논문을 저술한 학구파 의사이며 《뇌졸중의 모든 것》, 《뇌졸중 119》, 《뇌에 관해 풀리지 않는 의문들》, 《춤추는 뇌》 등과 일반인을 위한 책도 부지런히 저술했다.
제2회 의사문학상(수필 부문 수상작 《춤추는 뇌》) 및 제1회 보령의사수필문학상(수상작 〈안락사에 대하여〉)을 수상하는 등 틈틈이 문학의 세계에도 발을 디디던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영화와 뇌의학을 접목시키려는 새롭고 흥미로운 시도를 하고 있다.

품목정보

발행일
2006년 05월 15일
쪽수, 무게, 크기
300쪽 | 472g | 크기확인중
ISBN13
9788972975007

책 속으로

알리샤나 리디아와 같은 상태를 우리는 '식물인간 상태'라고 부른다. 뇌가 심각하게 손상된 이런 환자들도 생물체로서의 기본 기능은 가능하다. 그들은 숨을 쉬고, 잠을 자고 깨곤 한다. 손발도 어느 정도 움직일 수 있으며 얼굴을 찡그리기도 한다. 눈도 깜박이고, 귀에 대고 손뼉을 치면 깜짝 놀란 표정을 짓는다. 눈을 멀쩡하게 뜨고 있으므로 금방이라도 우리에게 말을 걸 것만 같다. 하지만 그 이상은 불가능하다. 그들은 말을 할 수도 알아들을 수도 없으며, 결코 사람을 알아볼 수 없다. 판단이나 계산, 추리를 할 수 없음은 물론이다. 즉, 하나의 생물체로서는 기능을 하지만 인간으로서의 기능은 할 수 없다.

--- '그녀에게' pp.26~27

우리가 보고 듣고 경험한 것을 기억하기 위해서는 해마라는 부위가 필요하다. 그렇다면 레너드는 양쪽 해마의 기능이 모두 소실된 사람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바깥에서 가해진 충격으로 다른 곳은 멀쩡한데 오직 해마만 선택적으로 심하게 손상된다는 것은 상상하기 힘들다. 분명 뇌의 다른 부위도 함께 손상될 것이고, 이에 따라 다른 인지 기능도 저하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레너드 같은 사람은 오직 영화 속에만 존재할 수 있다.

--- '메멘토' p.137

출판사 리뷰

우리시대 최고의 신경과 명의가 밝히는 영화 속 뇌 이야기
뇌는 우리에게 언제나 이해하기 어려운 존재였지만 최근 발달된 과학 기술로 그 신비가 하나씩 벗겨지고 있다. 그 결과 뇌가 곧 우리 자신임을 알게 되었고, 이러한 시각은 자신을 바라보는 새로운 눈을 만들어 주었다. 우리는 어떻게 생각하고 어떻게 사랑하고 어떻게 미워하는가? 이 책은 예로부터 철학적 담론에 그쳤던 이러한 질문들을 영화를 이용해 뇌과학적으로 풀어 쓴 독특한 영화 에세이다.

함춘의학상, 우수의과학자상, 분쉬의학상 등 국내외 여러 의학상을 수상하고 ‘최고의 신경과 명의’에 선정된 적도 있으며, 지난 2002년 대한의사협회가 노벨의학상에 가장 근접해 있는 한국인 중 한 명으로 지목하기도 한 저자는, 현재 서울아산병원의 신경과 과장으로 있다. ‘뇌가 곧 사람이다’ 할 정도로 뇌의 중요성은 어느 누구도 부인할 수 없고 최근 뇌 관련 질환이 급속하게 증가하고 있지만 일반인들에게 뇌는 여전히 접근하기 어려운 분야다. 이 책에서 저자는 영화를 빌어 뇌에 관한 이야기를 친근하고 흥미롭게 풀어 감으로써 지루하고 어렵다는 뇌에 대한 통념을 날려 버린다.

사실 많은 사람이 눈치 채지 못하지만 영화에는 뇌 이야기가 꽤 많이 나온다. 하긴 우리의 모든 행동이 뇌의 활동에 의한다는 것을 생각하면 당연한 이야기일 수도 있다. “영화가 우리 사회에 핀 꽃이라면 이 토양에 아직 핀 적이 없는 또 하나의 수줍은 꽃송이를 피워 올리고 싶다”고 말하는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일반인들이 뇌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히길 원한다.

그런데 ‘왜 하필 또 영화인가?’라는 질문을 할 수도 있다. 영화의 힘이 커지면서 너도나도 영화를 이용해 뭔가를 해보고자 하는 현실에서 이 책이 그런 영화의 단물을 이용한 식상한 영화 에세이는 아닌지 생각해 본다. 하지만 식상하다는 것은 낯설지 않다는 의미도 된다. 뇌는 앞서도 말했지만 보통 지루하고 어려운 전문가들의 영역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낯선 뇌와 익숙한 영화가 만난다면, 상호보완을 통해 어려운 뇌는 갑옷을 벗은 듯 한결 가벼운 소재가 되고 익숙하다 못해 식상해진 영화는 기존의 틀에서 벗어난 새로운 영화 읽기라는 또 하나의 영역을 만들어 낼 수 있다. 익숙함과 낯섦의 조화가 이뤄낸 상승 작용은 고스란히 읽는 이에게 전달되어 신선한 책읽기를 선사할 뿐 아니라 알아야 하지만 알지 못했던 지식들도 자연스럽게 전달할 수 있다.

물론 이러한 것은 둘을 한 책에 묶어만 둔다고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그 둘을 유기적으로 엮어내는 저자의 힘이 필요하다. 의사문학상(수필 부문 수상작 《춤추는 뇌》)과 보령의사수필문학상(수상작 〈안락사에 대하여〉) 등으로 이미 글솜씨를 인정받은 저자는, 영화와 뇌라는 두 바퀴의 조화와 균형을 통해 책이라는 수레를 이끌어가고 있다. 영화 비평가 못지않은 날카로운 시선과 뇌의학 전공자라는 전문성에, 문장력까지 갖춰 한 꼭지 한 꼭지 읽는 데 막힘이 없다.

고전부터 최근작까지 섭렵한 저자의 영화에 대한 박식함과 애정을 엿볼 수 있는 이 책에는 영화를 보는 듯한 사실감과 재미를 주기 위해 원색의 다양한 영화 사진을 실었다. 그리고 깔끔하게 정리된 뇌 관련 일러스트는 인간 행동의 비밀을 푸는 열쇠인 뇌의 메커니즘을 좀 더 쉽게 이해하게 도와준다. 가벼운 마음으로 그저 재미있는 영화 스토리를 따라가다 보면 고구마 줄기를 뽑아 올리듯 자연스럽게 끌려오는 뇌 이야기에 자신도 모르게 빨려들 것이며, 책을 다 읽을 즈음에는 어느새 뇌의학 전반에 걸친 풍부한 상식으로 무장된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영화 속에서 뽑아낸 뇌에 대한 궁금증
치매에 걸리면 왜 최근 기억은 몽땅 잊어버리고 과거의 기억만 또렷할까? 5분밖에 기억 못하는 게 현실에서 가능할까? 식물인간이 아이를 낳을 수 있을까? 어떻게 뇌를 잘라 냈는데도 고통을 못 느낄까?

영화를 보다보면 스토리와는 상관없는 궁금증을 느끼게 된다. 이 책은 가려운 부분을 긁어주듯 영화를 보면서 올라오는 이런 궁금증에 시원한 답을 제시한다. 《메멘토》의 주인공이 5분밖에 기억하지 못하는 것은 해마가 손상되어서고, TV와 영화에서 봐온 치매 환자의 기억 미스터리는 기억 저장 장소의 차이 때문이라는 것. 또한 《그녀에게》에서 식물인간 상태의 알리샤가 아이를 낳을 수 있는 것은 인간의 뇌 기능은 정지되었지만 그 외 다른 몸의 기능은 정상적으로 유지되기 때문이고, 《한니발》에서 뇌를 일부 잘라내도 고통을 못 느끼는 것은 뇌에 통증 섬유가 없어서라는 것 등 이 책을 읽다보면 영화 속 의문들이 자연스럽게 풀린다.

알리샤나 리디아와 같은 상태를 우리는 ‘식물인간 상태’라고 부른다. 뇌가 심각하게 손상된 이런 환자들도 생물체로서의 기본 기능은 가능하다. 그들은 숨을 쉬고, 잠을 자고 깨곤 한다. 손발도 어느 정도 움직일 수 있으며 얼굴을 찡그리기도 한다. 눈도 깜박이고, 귀에 대고 손뼉을 치면 깜작 놀란 표정을 짓는다. 눈을 멀쩡하게 뜨고 있으므로 금방이라도 우리에게 말을 걸 것만 같다. 하지만 그 이상은 불가능하다. 그들은 말을 할 수도 알아들을 수도 없으며, 결코 사람을 알아볼 수 없다. 판단이나 계산, 추리를 할 수 없음은 물론이다. 즉, 하나의 생물체로서는 기능을 하지만 인간으로서의 기능은 할 수 없다. ―《그녀에게》p.26~27

우리가 보고 듣고 경험한 것을 기억하기 위해서는 해마라는 부위가 필요하다. 그렇다면 레너드는 양쪽 해마의 기능이 모두 소실된 사람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바깥에서 가해진 충격으로 다른 곳은 멀쩡한데 오직 해마만 선택적으로 심하게 손상된다는 것은 상상하기 힘들다. 분명 뇌의 다른 부위도 함께 손상될 것이고 이에 따라 다른 인지 기능도 저하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레너드 같은 사람은 오직 영화 속에만 존재할 수 있다. ―《메멘토》p.137

이러한 사실에서 우리는 단기 기억(최근 기억)과 장기 기억(오래된 기억)은 각각 뇌의 다른 곳에 저장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예컨대 우리가 어떤 여성을 보았을 때 그 여성의 잔상은 시각 중추인 후두엽에 잠시 남는다(순간 기억). 당신이 이 여성에게 관심이 없다면 그 기억은 금방 지워진다. 그러나 만일 이 여성이 무척 아름다웠다면, 혹은 이 여성을 여러 차례 보게 된다면 그 모습은 나름대로 중요한 정보로서 ‘해마’에 있는 기억 세포들에 의해 한동안 기억된다(단기 기억). 하지만 해마에 저장된 기억 역시 영구적인 것은 아니며 언젠가는 사라진다. 만일 그 여성이 당신의 아내가 되었다면, 즉 매일같이 당신의 뇌를 자극하는 중요한 존재라면, 아내의 기억은 해마가 아닌 신피질로 옮겨져 장기간 저장된다(장기 기억). 이처럼 기억은 그 지속되는 시간에 따라 단기 기억과 장기 기억으로 나눌 수 있다. ―《메멘토》p.139~140

베일리 부부에게 암운이 드리운 것은 어느 날 아이리스가 같은 말을 반복하기 시작하면서부터이다. 이는 아이리스의 기억력이 저하되었다는 의미다. 일반적으로 알츠하이머병에서는 기억에 관계하는 부위인 해마가 가장 먼저 손상되기 시작한다(기억과 해마에 대해서는 《메멘토》편에 자세히 적었다). 따라서 기억력 감퇴가 초기 증세로 시작하는 경우가 많다. (중략) 일반적으로 뇌 질환으로 생긴 기억 장애는 최근 기억이 소실되고 장기 기억(옛날 기억)은 나중까지 유지되는 경향이 있다. 영화가 끝날 무렵까지 아이리스는 존이 남편이라는 사실은 아는데, 이는 그녀의 뇌에 40년 동안 기억된 장기 기억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녀는 현재 영국의 수상 이름을 물어보는 의사의 질문에 대답을 하지 못한다. ―《아이리스》p.158

이처럼 병과 관련된 인간 뇌의 변화 외에도 이 책에서는 인간의 행동에 대한 여러 궁금증을 풀어준다. 예를 들면 동성애자는 왜 동성에게 마음이 끌리는지(p.255~256, 258), 인간의 폭력성은 어디에서 기인한 것인지(p.243~244, 248), 사람들이 사랑을 하면 뇌에 어떤 변화가 생기는지(p.283) 등 인간 행동과 관련된 모든 이야기를 흥미로운 영화 속에서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

논쟁의 지점을 놓치지 않는 작가의 시선
안락사, 대체 의학, 임상 시험, 동성애 등은 사회적으로 민감한 주제다. 종교, 정치, 전통적 가치관 등이 복잡하게 얽힌 민감한 사안들을 저자는 영화 이야기를 하면서 자연스럽게 거론한다. 강한 어조로 주장을 펼치기보다는 문제의 지점과 여러 조건 속에서 고려해야 할 부분, 사람들의 인식 전환 등을 찬찬히 거론하면서 읽는 이들에게 생각할 거리를 던져 준다.

그렇다면 영화에서처럼 이런 환자를 안락사시키는 것은 어떨까? 우리나라에서는 생소한 개념이지만 네덜란드에서는 안락사가 일반적으로 행해진다. 2004년 한 해에만 무려 1,886명의 불치병 환자들이 의사에 의해 안락사를 당했다. 이와 같은 일이 가능한 것은 의료 시스템과도 무관하지 않다. 네덜란드는 세계 어느 나라보다도 무상 의료가 잘 시행되고 있다. 따라서 안락사의 결정이 보호자의 경제적 어려움 때문은 아니며 순전히 환자의 삶의 질이라는 차원에서 결정된다. 그러나 우리나라 같은 곳에서는 다른 변수가 개입할 가능성이 있다. 보호자의 경제적 어려움으로, 혹은 보호자끼리의 갈등에 의해 환자가 죽음을 원하지 않는데도 안락사 혹은 치료 종결을 택할 가능성이 있으며, 이것은 엄연한 타살로 봐야 한다. ―《밀리언달러 베이비》p.89

하지만 《나는 현대 의학을 믿지 않는다》라는 책을 쓴 로버트 멘델존 박사는 이처럼 엄격한 심사를 하고 있음에도 일부 임상 시험에서 데이터 조작이 이루어지고 있음을 지적한다. 특히 제약회사에 고용된 의사들은 동료 의사들의 데이터를 회사에 유리한 쪽으로 유도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부작용을 일부러 적게 보고하여 약을 열심히 팔고, 나중에 부작용이 발견되면 약을 거두어 가는 일부 제약회사의 행태를 지적하며 그는 냉소적으로 이렇게 말한다. “현대 의학의 불문율에는 이런 것이 있다. 신약은 부작용이 알려지기 전에 재빠르게 팔아 치워라.”(중략) 이 영화는 그러나 여러 해 전 화제가 되었던 한 씁쓸한 사건을 떠올리게 한다. 하버드대학교 의과대학 학장이었던 로버트 에버트 박사는 제약회사 스큅 사의 상품인 미스테크린의 판매 정지를 해제해 달라고 미국 식품의약청을 설득한 적이 있었다. 에버트는 “나는 단지 최선의 충고를 해 주었을 뿐이다”라고 하며 제약회사로부터 금품을 받았다는 사실을 부정했지만, 스큅 사는 그에게 거액의 돈을 지불했음을 인정했다. 결국 에버트 박사는 스큅 사의 이사로 취임했고 나중에 가서야 15,000달러 상당의 주식을 받았다는 사실을 시인했다. ―《도망자》p.202~203

흥미로운 연구 사례의 적절한 활용
보통 ‘뇌’ 하면 해부학적 뇌를 떠올리면서 알 수 없는 용어들로 가득 찬 전문가들만의 영역이라고 생각한다. 영화와 뇌의학의 접목을 시도하고 있는 이 책은 흥미로운 여러 실험 결과나 연구 사례를 통해 뇌의학이 그렇게 딱딱하고 어려운 학문이 아님을 보여 준다. 예를 들면, 사람들을 공포로 몰아넣은 인간 광우병(스펀지형 뇌증)에 대한 이야기에서 저자는 스펀지형 뇌증의 전파 경로에 대한 새로운 사실을 밝혀낸 가이두섹의 뉴질랜드 원주민 이야기로 독자의 흥미를 끌고 있다. 또한 인간다운 삶을 원했던 매카피 사건이나 인종차별적인 임상 시험의 비윤리성을 드러낸 터스키기연구소의 매독 실험, 나치의 생체 실험 등에 대한 이야기는 흥미를 넘어서 사회적 가치 판단의 기준이 무엇인지 생각하게 한다.

하버드대학교 의과대학에서 소아과를 전공했던 가이두섹은 군복무 중 바이러스학을 공부한 것이 계기가 되어 남태평양의 오지를 돌아다니며 원시 부족의 풍토병을 연구하고 있었다. 당시 뉴기니의 산간 지방에 사는 원주민 포어 족에는 ‘쿠루’라는 괴질이 유행했다. 앞서 말했듯 이 병은 인간에게 나타나는 스펀지형 뇌증의 하나이다. (중략) 가이두섹은 쿠루의 원인으로 이 고장 사람들의 이상한 풍습을 지목했다. 이들에게는 돌아가신 부모를 기리기 위해 부모의 시신을 먹는 풍습이 있었다. 가이두섹은 부모의 뇌를 먹음으로써 쿠루가 자식에게 전파되는 것으로 생각했다. 이 부족에서는 일반적으로 여자가 부모의 뇌를 먹고 남자는 근육을 먹기 때문에 쿠루 환자의 대부분은 여자였다. ―《한니발》p.40

한편 1930년대 미국 공중위생국과 터스키기연구소가 공동으로 진행한 소위 ‘터스키기 연구’ 역시 임상 연구에 대한 논란을 촉발시킨 유명한 사건이다. 이 연구는 흑인 매독 감염자들이 많이 사는 알라바마 주의 메이컨 카운티에서 시행되었는데, 원래의 목적은 당시 개발된 약인 네오살바르산의 치료 효과를 검증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연구가 진행되는 동안 대공황의 여파로 자금이 부족해졌고 연구는 뜻하지 않은 방향으로 흘러갔다. 연구자들은 흑인 매독 환자 399명을 선택한 후, 치료를 하지 않은 자연 상태의 매독 경과를 관찰하기로 작정했다. 따라서 이들에게는 아무런 치료가 시행되지 않고, 계속해서 질병의 경과만 추적되었다. 매독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신경계를 침범하는데 연구자들은 매독의 신경계 침범 여부를 알기 위해 척추천자를 시행해서 척수액을 검사했다. 하지만 척추천자는 통증이 오래 지속되는 후유증을 남기거나, 드물지만 뇌압이 상승되어 있는 환자라면 이 시술로 인해 사망할 수도 있는 등 결코 안전한 검사가 아니다. (중략) 더욱 큰 문제는 연구가 진행 중인 1940년대에 개발된 페니실린은 분명히 매독에 치료 효과가 있었음에도(페니실린은 아직까지도 매독 환자에게 투여되고 있는 약이다) 자연 경과를 관찰한다는 이유로 선택된 환자들은 이런 치료를 받지 못했다는 데 있었다. 물론 피험자들은 효과가 있는 약이 있음에도 자신들이 치료 받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전혀 알지 못했다. ―《도망자》p.199~200

전문 비평가 못지않은 날카로운 분석
이 책을 읽다보면 전문 영화 비평가 못지않은 날카로운 분석에 깜짝깜짝 놀라게 된다. 사물을 보는 과학자의 날카로운 눈과 영화에 담긴 의미들을 세세하게 들춰낼 수 있는 의사의 손을 가지고 있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고전과 최근 영화를 넘나드는 해박하고 폭넓은 영화에 대한 안목과 지식 그리고 날카로운 분석이 돋보이는 이 책은, 41편의 영화가 구슬처럼 매끄럽게 엮여 영화의 숨은 의미들이 독자들 앞에 낱낱이 펼쳐진다.

겉보기에 공포 영화를 표방하고 있는 이 영화는 실은 언제나 갈등이 존재하는 나와 타자의 관계에 대한 성찰을 담고 있다. 부자와 가난한 자, 백인과 유색인, 교육받은 자와 그렇지 못한 자, 기독교도와 이슬람교도……. 서로를 공존할 수 없는, 혹은 두려운 타인으로 바라보는 이 세상의 갈등. 그리고 이러한 문제는 오직 서로의 실체를 정확히 이해함으로써 풀린다고 역설한다. 육지와 격리된 외딴 섬, 육중한 문으로 외부와 차단된 저택, 바깥세상을 가리는 짙은 안개 등 이 영화에 나오는 많은 소재는 타인과의 단절을 의미한다. 리디아의 실어증, 아이들의 햇빛 알레르기, 타인의 존재나 소음에 의해 악화되는 그레이스의 편두통 등과 같은 일련의 질병들 역시 은근히 이런 주제를 강화하고 있다. ―《디 아더스》p.21

또한 영화에 7분간 삽입된 또 하나의 단편영화 《애인이 줄었어요》는 그 자체로 완벽한 구성을 갖추고 있다. 화학 약품을 잘못 먹어 점차 체격이 작아지던 남자는 결국 여자의 질을 통해 자궁 속으로 걸어 들어간다(이 장면은 방사선 물질을 쪼인 후 점차 체격이 작아지는 주인공의 심리 상태를 다룬 SF 영화의 걸작 《작아지는 사나이》를 연상시킨다). 남자의 마지막 안식처로서의 자궁의 위치를 확인하는 이 흑백 무성영화는 좌절한 가운데 알리샤와 하나가 되고 싶었던 주인공의 심리를 탁월하게 묘사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격렬한 직업은 남자의 것, 희생적인 사랑은 여자의 몫이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 여자의 직업은 투우사이며, 이들을 희생적으로 돌보는 사람은 남자이다. 게다가 이 중 한 사람의 직업은 간호사이다. 고정관념을 깨는 이런 발상들은 《내 어머니의 모든 것》, 《하이힐》로 이어지는 감독의 페미니스트적 취향을 보여 준다. ―《그녀에게》p.32~33

이러한 긴장감 감도는 사건의 소용돌이 속에 유약해 보이기만 하는 수사관 애버라인은 영화의 또 다른 매력이다. 그의 모습은 그동안 우리에게 익숙한 기존 수사관들과는 사뭇 다르다. 아놀드 슈워제네거나 브루스 윌리스의 거친 힘이나 능숙하게 무기를 다루는 솜씨도 없고, 숀 코널리처럼 지략과 유머를 겸비한 것 같지도 않다. 여성처럼 연약해 보이는 육체에, 소년 같은 무심한 표정을 지니고 있는 그는 환각 상태에서 창녀들의 죽음을 영화 예고편처럼 바라보는 ‘육감적인 행동’을 보인다. 조니 뎁의 이러한 ‘중성적’ 수사관의 모습을 우리는 이미 《슬리피 할로우》의 이카보드 크레인에서 본 적이 있다. 그러나 비록 연약하지만 성실한 태도, 그리고 거리의 여인 메리 켈리(헤더 그레이엄 역)를 있는 그대로 존중하는 모습에서 조니 뎁은 오히려 ‘귀여운 남자’의 매력을 한껏 풍긴다. ―《프롬헬》p.5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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