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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부 잃어버린 낙원은 국가 이전의 농촌공동체였다
잃어버린 낙원도 유토피아도 농촌공동체였다 『노자(老子)』의 저자는 농민공동체 속의 노자(老者)들이다 제2부 국가·시장·분권을 넘어 나라란 무엇인가―가야사를 읽으며 가야연맹의 정체성을 다시 생각한다 지역 전통축제와 그 정체성의 계승 학교급식―시장의 논리를 넘어서 들에서 보는 친환경농업정책 지역갈등의 원흉은 중앙집권적 국가권력이다 분권운동을 넘어 기권(棄權)자치로 제3부 농업의 포기, 민주주의의 포기 농업의 위기, 생명의 위기 우포늪보다 더 중요한 습지는 논이다 석유전쟁 다음엔 식량패권전쟁 온다 농지법 개악 행보 중단하라 지금도 남의 땅, 쌀농사까지 빼앗겼다 사람과 땅은 한 가족 한 생명이다 해설 | 농사꾼 천규석의 지역 자립공동체 철학 | 이찬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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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부 ‘잃어버린 낙원은 국가 이전의 농촌공동체였다’에서는 「창세기」에 기록된 태초의 낙원 ‘에덴’의 모델이 되었던 지역이나 콜럼버스를 위시한 유럽인들에게 발견, 파괴되기 전의 아메리카가 자연발생적 농촌공동체로서의 낙원이었으며, 도연명이 「도화원기」에서 묘사한 ‘무릉도원’과 토머스 모어가 상상한 ‘유토피아’도 모두 농촌공동체이거나 농업에 기반을 둔 도농공동체였음을 밝히면서, 인류가 꿈꾸는 이상적 세계가 농업공동체 밖에서 이루어질 수 없는 것임을 주장한다. 농업공동체만이 인류에게 평화와 지속 가능한 풍요를 약속한다는 것이다. 더불어 지금 우리가 당면한 자원 고갈, 청년 실업, 비정규직 문제 따위도 모두 농업공동체의 구현을 통해서 해결될 수 있는 것이므로 농업을 외면한 진보는 얼마 못 가 망하고 말 것이라는 것이 필자의 입장이다. 그뿐 아니다. 저자는 농업이라고 다 좋은 것이 아니어서, 유기농이라도 기계에 의존하는 기계농이나 비닐하우스에서 대량으로 이루어지는 상업농은 오히려 생태계의 파멸을 앞당길 뿐 진정한 생태농이라고 할 수 없으니, 자급농 수준의 규모와 방식으로 돌아가자고 역설한다. 이어지는 『노자』가 고대 중국의 농촌공동체의 사상을 담고 있는 저작이라는 해석도 자급농 수준의 소농 농촌공동체로 복귀하는 것이 우리의 살 길이라는 저자의 신념을 사상적으로 뒷받침하기 위한 논거인 셈이다.
제2부 ‘국가,시장,분권을 넘어’는 평소 시장경제와 중앙집권화된 ‘국가’ 체제의 문제점을 지적해왔던 저자의 철학이 함축적으로 담긴 글이다. 첫머리에 실린 두 꼭지는 가야사에 관한 것인데, 중앙집권국가로 이행하지 못하고 부족연맹 단계에 머물다 이웃 국가에 멸망한 가야에 대한 저자의 애정과 향수가 엿보인다. 농경에 기반을 두고서 평화로운 수운 교역을 통해 번영하던 가야의 소국들이 중앙집권국가로 이행하지 않은 것이 ‘정체’라고 부를 수 없다고 보는 시각이 독특한데, 진정한 민주주의와 평화주의는 중앙집권화된 국가가 아니라 소규모 공동체에서나 이루어질 수 있다는 것이 거듭되는 저자의 주장이다. 중앙집권국가의 위험성, 시장의 폭주에 대한 성찰, 서울 중심주의에 대한 비판 뒤에, 3부에서는 본격적으로 농업문제가 거론된다. 농업의 위기는 곧 생명의 위기임을 환기하면서, 우리 농업을 살리는 일에 힘을 기울여야 함을 주장하는 저자의 목소리에는 도대체가 파탄 직전의 농민과 농업을 외면하는 정부와 관련 기관에 대한 답답함과 분노가 서려 있다. 이미 상당히 많은 부재지주들의 농지임대차가 관행화되어 헌법상의 경자유전과 소작 금지가 사문화된 마당에 농업법인을 통한 도시민의 농지 소유를 허용하는 방향으로 농지법이 개정되는 현실에 맞서 농지 소유 상한제의 재도입을 요구하고, 농산물 수입 개방이라는 위험한 현실을 온몸으로 맞으며 결국 식량을 무기로 한 전쟁이 찾아올 것임을 예견하는 저자에게, 다가올 미래는 어둡다. 천규석은 말한다. 앞으로 최후의 1인까지 계속될 농민의 이농은 농민의 자발성과는 전혀 무관한 구조적 폭력에 강제당하는 것이라고. 이농이 아닌 자연감소만으로도, 10년 이내에서 인구 통계에서 농민이 자취를 감출 농민멸종시대를 우리는 살고 있다. 우리는 이를 과연 농민만의 문제라고 말할 수 있을까? 농민공동체의 희생과 해체를 기반으로 한 경제적 풍요는 이미 세계 곳곳에서 지속 불가능한 것임을 드러내고 있다. 더구나 이것이 환경?생태적으로 지속이 불가능한 것들이라면, 이야기는 다시 한 번 크게 달라질 수밖에 없다. 40여 년을 농사꾼으로 살아온 이 절박한 목소리가 우리 모두를 살리는 길이라면, 우리는 이 농사꾼 철학자의 목소리에 귀기울일 필요가 있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