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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자 서문
저자 서문 프롤로그_ 마음의 제국을 건설하자 제1부 내가 본 한국인, 한국사회 애팔래치아의 봄_Appalachian Spring 양자학과 한국의 계약관행_Quantum Law 카메라를 보면 웃으세요_Smile for the Camera 대학가요제에서 본 한국의 신세대_The Winning Band 은행에서 겪은 한국 과학기술의 문제_The Banking Scandal 세계 일류의 한국음식_World Class Food 구미호_The Nine-Tailed Fox 정교한 한국의 사물놀이_Sophisticated Drumming 제주도가 주는 환상_Moving to Jeju 가족의 가치_Family Values . 추모돼야 할 남산_Namsan Remembered 제2부 시장경제 원리를 따르는 과학, 교육만이 살아남는다 아인슈타인 티킷_Einstein Tickets 로봇들의 습격_Attack of the The Robots 유비쿼터스 배용준_The Ubiquitous Bae 무엇이 생명인가_The Great Tower 챔피언들의 아침식사_Breakfast of Champions 제2의 기회_Second Chance 비트의 기사들_Knights of Bits 새로운 결의_New Resolution 암흑기_The Dark Age 우리는 매우 자랑스러웠다_We Were So Proud ‘국립대 법인화’라는 폭풍우_The Perfect Storm 플래시 메모리_Flash! 일출 너머에 이르려면_Beyond the Rising Sun 과학 하는 딸들_Daughters of science 비상_high flight 제3부 세계 속에 우뚝 서는 한국을 꿈꾼다 바퀴벌레 세계화_Cockroach Globalization 가지 않은 길_The Road Not Taken 중국은 블랙홀?_Black Holes in China 인터내셔널 맨_The International Man 루트키트 해킹_Root Kit Hack 핵페기물 사회_The Nuclear Waste Society 변호사들을 죽이자_Let? Kill the Lawyers 우리 골프장은 어떻게 됐습니까?_What About Our Golf Course? 나도 자동차가 있었으면_I Wish I Had a Car 제너럴 모터스여 안녕!_Farewell to General Motors 하늘의 트럼펫들_Trumpets of the Sky 나의 탄띠_My Ammo Belt 동북아의 ‘중간 왕국’ 한국_The Middle Kingdom 정신 나간 사또_The Crazy Judge 한국인, 다음 ‘영웅’을 느긋하게 기다려라_Replace Your Radios 민주주의의 아이들_Democracy? Child 인공폭포 옆에서_By a waterfall 에필로그_The Thousand Eyes of Nigh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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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이 거부한 노벨상 수상자 로버트 러플린]
국내 최초의 노벨상 수상자 출신 외국인 총장 로버트 러플린. ‘과학계의 히딩크’라는 기대를 한몸에 받으며 카이스트를 초일류 대학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했지만, 한국은 그의 연임을 반대했다. 카이스트 교수들은 한국상황을 모르는 외국인 총장이 그들의 의견을 무시한 채 과도한 개혁을 추진했다고 했고, 언론에서도 비전은 좋았으나 리더십이 부족했다며 질책과 아쉬움을 표현했다. 그러나 러플린의 개혁은 애시당초 성공할 수 없는 것이었다. 카이스트 교수들은 물론 교직원들까지 처음부터 그를 이름뿐인 총장으로만 생각했을 뿐 총장의 의견을 들으려고도, 의견을 제시하려고도 하지 않았다. 국가기관의 뿌리깊은 악습과 관행들을 고치고 카이스트를 세계적인 대학으로 탈바꿈 시키고자 이사회가 교수들의 의견수렴 없이 외국인 총장을 선임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국립대의 안정성을 해칠 수 있는 러플린의 과감한 혁신정책은 외국인 총장에 대한 카이스트 내부의 반발을 더욱 심화시켰다. 러플린 총장은 무엇보다 대화와 논의를 하고 싶었다고 한다. 그의 생각을 알리고 그들의 의견이 어떤지 듣고 싶었다고 한다. 그렇게 해서 개혁을 추진하고 문제를 풀어나가고자 했다. 그러나 이런 의도와는 달리 카이스트는 그들만의 리그 안에서만 의사소통을 했다. 왜 카이스트 내부에서 열리는 회의들은 모두 러플린 총장이 출장중일 때만 진행됐을까? 결국 외국인 총장은 개혁의 시도조차 해보지 못한 채 2년 만에 쓸쓸히 한국을 떠나게 됐다. 그는 앞에서는 말하지 않고 뒤에서만 얘기하는 그들을 보며 무척이나 안타깝고 힘들었다고 한다. “나는 ...... 그 과정에서 한국인들의 정서를 이해하게 됐다. 그 정서 중 하나는 ‘눈물 너머의 비애’였다. 이 비애는 마치 없는 것처럼 가장하기보다는 서로 조금씩 터놓고 대화할 수 있는 작은 결심과 약간의 웃음만으로도 가볍게 사라질 수 있는 정서이기도 했다” - <프롤로그> 중에서 대화를 통해 적극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려 했던 총장과, 평소 앞에서는 의견을 제시하거나 불만을 나타내지 않은 채 결국 교수진의 일괄사퇴라는 최후의 방법을 쓰며 사태를 해결하려 했던 카이스트. 과연 러플린 총장의 연임실패 원인을 리더십의 부족 때문이라고만 할 수 있을까? [한국은 개혁보다 평화를 선택했다] “한국은 개혁보다 평화를 선택했다!” 연임이 거부되고 난 뒤 러플린 총장은 이 한마디를 남겼다. 그리고 카이스트의 문제는 과학이나 논리적인 문제가 아닌 정치적인 문제라고 밝힌 바 있다. 이 말이 뜻하는 바도 의미심장하지만, 무엇보다 흥미로운 건 이 말 이외에 러플린 총장의 의견이 대중들에게 제시된 적이 거의 없다는 사실이다. 카이스트로부터 철저하게 외면당한 러플린 총장은 그의 의견을 대중들에게 알리고 설명할 기회를 갖지 못했다. 소위 ‘카이스트 문제’는 대부분 카이스트 교수와 교직원들로부터 제공된 내용을 기반으로 대중들에게 알려졌고, 그들의 얘기만을 들었던 언론에서도 카이스트의 입장을 대변한 내용들만을 보도할 수밖에 없었다. 러플린 총장과 직접 인터뷰했던 몇 안 되는 보도내용들이 그간 카이스트 측을 통해 보도된 내용들과 극명하게 다른 것도 이 때문이다. 게다가 러플린 총장에게 있어 대중들과의 유일한 의사소통 수단이었던 신문 칼럼 연재도 연임이 거부되기 2주 전 갑작스레 중지되었다. 러플린 총장은 칼럼연재가 한국국민들의 생각을 알고 자신의 생각을 알리는 데 무척 도움이 됐었다고 한다. 그러나 그는 그의 생각을 알릴 마지막 수단까지 잃었다. 원대한 비전과 혁신적인 로드맵으로 개혁을 시도하고자 했던 그는, 결국 내부는 물론 외부와도 단절된 고립무원의 상태로 지낼 수밖에 없었다. 이런 상황 속에서 무엇을 할 수 있었을까? 객(客)으로 지낼 수밖에 없었던 2년 동안 그가 보았던 한국의 현실과 미래는 무엇일까? [한국을 떠나며 그가 남기는 깊은 통찰의 메시지] 아쉬움을 뒤로 한 채 그는 떠나게 됐고, 외롭고 힘들게 지낸 한국생활에도 불구하고 앞으로도 카이스트 총장 상담역으로 한국 과학과 교육의 발전에 힘쓰겠다고 말하는 등 변함없는 관심과 애정을 보였다. 임기를 마치며 그는 한국에서 보고 느낀 점들을 바탕으로 이 책을 썼다. 그가 추진하고자 했던 혁신, 총장으로 재임하면서 보았던 한국의 현실과 미래, 과학과 교육의 나아갈 길, 그리고 대중에게 결코 드러나지 않았던 그의 생각과 와전됐던 사실들을 이 책 속에 모두 솔직하게 풀어놓았다. 그는 가볍게 쓴 글이라고 했지만, 그 내용과 의미하는 바는 결코 가볍지 않다. 이 책에서 그는 우리가 보지 못하고 있는 문제들을 생각하게 하고, 경쟁력 있는 미래를 위해 진정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지를 깊은 통찰력으로 제시해주고 있다. 세계화의 위기는 점점 더 심각해져 가고, 경쟁력 없이는 퇴출당할 수밖에 없는 위협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그의 메시지가 시사하는 바는 크다고 하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