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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dy Andr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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멕시코 만에 위치한 작은 섬, 작가 앤디 앤드루스는 자신의 집 앞마당에서 나치 유물을 발견한다. 그 놀라운 물건에 앤디는 물건의 정체와 주인을 추적한다. 그러던 중 자신이 사는 섬 해안에서 벌어진 전대미문의 역사적 사실을 듣게 되고, 평범해 보이던 이웃들의 영화 같은 사연이 펼쳐진다.
1942년 여름, 미국 선박이 멕시코 만에서 독일 잠수함 U보트에 의해 처참하게 공격당하는 사건들이 발생한다. 어느 날, 역시 한 대의 U보트가 미국 선박을 공격했다. 그런데 선장과 그의 부하인 요제프는 민간인을 구하고 배만 침몰시킨 자신들의 행동에 만족스러워한다. 한편 자신들은 독일 군인이지 나치가 아니라는 그들을 나치 당원이자 이 배의 감시원인 슈나이더가 지켜보고 있다. 한편 독일군에게 남편을 잃은 헬렌은 이 섬에 정착한다. 늘 불면증에 시달리는 헬렌은 한밤중에 해안에서 생명이 꺼져가는 요제프를 발견한다. 슈나이더에게 반나치로 몰려 총을 맞고 바다에 빠진 것이다. 헬렌은 그가 독일군이라는 것을 알고는 분노하여 그에게 주먹을 날린다. 요제프는 그런 헬렌 앞에서 그저 미안하다고 울며 가족의 이름을 외쳐댈 뿐이다. 헬렌은 그 모습에 머릿속이 복잡해져 그만 요제프를 집으로 데려 온다. 그리고 끊임없이 요제프에게 증오를 드러내면서도 치료를 돕는다. 헬렌이 일하는 카페의 주인인 빌리와 마거릿은 굳게 닫힌 헬렌의 마음에 가슴이 아프다. 다운증후군을 앓는 그들의 아들 대니는 서른 살에 어린아이의 지능밖에 없지만 헬렌의 상처를 인지한다. 그는 그녀에게 미워하는 사람을 용서하라고, 하느님께 줘버리라고 단호히 말한다. 상처가 회복된 어느 날 요제프는 자신은 ‘나치’가 아니라 ‘독일인’일 뿐이며, 자신의 가족들은 영국군의 폭격으로 죽었다고 말한다. 그런데 영국 공군을 교육한 사람이 헬렌의 남편이다. 이제 그들은 서로의 상처를 알아보고 보듬으며 자신들의 미래를 꿈꾸기 시작한다. 유창한 영어실력으로 영국인인 냥 그 섬에 정착한 요제프 앞에, 어느 날 슈나이더가 나타난다. 요제프를 죽이려는 슈나이더는 헬렌을 볼모로 요제프 집으로 향한다. 헬렌은 두려움에 요제프를 구하지 못하는 자신을 자책하고, 요제프는 헬렌을 향한 슈나이더의 총구 앞에서 사랑하는 헬렌에게로 몸을 던진다. 그 순간 보안관 대리 완이 나타나 산탄총으로 슈나이더의 손목을 날려버린다. 다시 시점은 현재. 작가(앤디 앤드루스)는 뉴먼 부부에게 찾아가 자신이 찾은 나치 유물의 주인이 아니냐고 묻는다. 언제나 세상에서 가장 행복해 보이던 노부부는 담담하게 자신들의 과거를 밝힌다. 그리고 그들이 서로를, 세상을, 나아가 자신을 용서하고 얻은 행복 앞에 만족스런 눈물을 흘린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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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서에 관한 짧은 필름”, 그 문학적 매력
이 소설에서는 한 편의 영화가 결코 작지 않은 스케일로 시작된다. 2차 대전을 배경으로 독일의 잠수함 U보트가 출몰하고 시체가 해안가로 떠밀려 내려온다. 그런데 장소는 유럽이 아닌 미국 멕시코 만에 위치한 작은 섬마을이다. 미국에서도 2차 대전의 전투가 벌어졌다는 사실, 게다가 거기에 놀라운 이야기가 숨어있다는 것만으로도 작품의 시작이 심상치 않다. *픽션과 논픽션을 결합한 작가의 새로운 시도 이런 배경은 결코 작가의 상상력으로만 형성된 게 아니다. 작품은 액자소설 형식을 취하고 있는데, 소설의 중심 스토리인 액자의 바깥에는 앤디 앤드루스가 직접 등장한다. 저자가 현재 가족과 살고 있는 곳 역시 바로 소설 속 배경인 앨라배마와 플로리다의 접경지역, 멕시코 만에 위치한 섬이다. 작가는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현재와 과거를 추리 방식으로 연결시키며 이야기를 전개하고 있다. 저자가 이렇게 픽션과 논픽션을 결합시키는 것은, 독자에게 메시지를 흥미롭게 전달하려는 의도적 혼란이며 몰입장치이다. 따라서 독자는 영화 같은 주인공들의 삶을 ‘현재’와 닿아있는 현실감 있는 이야기로 받아들이며 동화된다. 책장을 덮는 순간 이 이야기가 얼마나 보편적인 우리네의 감정이고 우리 주변의 사정인지 깨닫는 것이다. *원제 “성자들의 섬”과 “용서”의 관계 이 작품의 원제는 “성자들의 섬”(Island of Saints)이다. 작품 속 배경이 ‘섬’이요, 거기서 ‘용서’를 통해 ‘성자’의 숭고함에 도달한 사람들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국판은 좀 더 직설적인 제목을 택했다.) 배경이 되는 섬은 내륙과의 거리만큼이나 바깥세상의 복잡함, 불신과는 거리가 멀다. 그곳 주민들은 대문 없이 살던 우리 조상들처럼 자동차에 키를 꽂아놓은 채 돌아다니고, 장난으로 사기를 치기도 하고, 별 사고가 없다면 피해자들마저 함께 그 장난을 즐긴다. 그러나 이 책의 제목이 “성자들의 섬”이 되는 사건이 펼쳐진다. 독일군에게 남편을 잃고 이 섬에 정착한 헬렌, 전쟁 중 가족을 잃고 동료에게 총을 맞아 이 섬 해안가로 떠밀려온 독일군 요제프가 만나면서 이 소설의 본격적인 이야기가 진행된다. 그 둘은 세상에 분노하고 언제나 화가 나 있다. 그런 주인공들을 주민들이 이해하고 수용한 이유는 주인공들이 자신들과 다르기 때문이 아니다. 그 둘은 성인으로서 세상에 발을 내딛자마자 무섭게 달려드는 세상의 시련에 겁먹고 상처받은 우리들의 모습이다. 자신의 의지와 열정 여하에 상관없이 닥치는 시련은 분하고 억울하기만 하다. 복수하고 싶지만 방법이 없다. 이런 모습은 상황의 차이일 뿐 사실 우리의 모습이며 그곳 주민들의 모습이다. *평범한 사람들의 성화(聖化) 다행히도 주인공과 등장인물들은 저마다 고통과 절망 속에서 힘겨워하면서도, 어느 순간 상대를, 세상을, 그리고 무력한 자신을 ‘용서’함으로써 행복을 얻어낸다. 이런 보통사람들의 성화(聖化)야말로 작가가 늘 보여주려 하는 인간성에 대한 신뢰이다. 세상은 어차피 사람들에게 행복을 거저 주지 않는다. 행복과 불행이 반드시 상황의 크기에 비례하는 것이 아니라면, 증오와 상처를 딛고 우리를 행복하게 만드는 방법은 타인과 자신을 있는 그대로 ‘용인하는’ 방법일 수도 있다. 작가는 누구나 관용과 용서를 행할 수 있고 “성자”가 될 수 있다고 본다. 이 작품에서 가장 평범하고도 비천한 등장인물은, 다운증후군으로 서른 살의 나이에도 어린아이의 지능으로 살아가는 ‘대니’이다. 작가는 대니의 입을 빌려 말한다. “용서는 용서하려는 그 대상을 하느님께 맡겨버리는 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