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소장하고 있다면 판매해 보세요.
|
00_ 회의적으로 철학하기
01_ 유희 02_ 화폐 03_ 지인 04_ 역할 05_ 연대성 06_ 여행 07_ 기술 08_ 관계 09_ 법률 10_ 교육 11_ 사회적 계급구조 12_ 여가 13_ 체험 14_ 학문 15_ 정치 16_ 가정 17_ 전통과 관습 18_ 종교 19_ 문화 20_ 수집 21_ 인식의 요구 I:세계상 22_ 인식의 요구 II:경이감 23_ 건강 24_ 삶의 예술과 아름다움 25_ 사랑 26_ 도덕 27_ 외부세계의 확실성 I:회의적 가설 28_ 외부세계의 확실성 II:통 속의 뇌 29_ 자유 30_ 권력과 제도 31_ 죽음 32_ 웃음 33_ 자기확실성 |
|
우리는 회의적으로 되물어보아야 한다. 나에게 능동적 행위만을 허용하고 수동적 상태를 허용하지 않는 자유란 도대체 무엇인가? 나에게 능동적 행위만을 요구하고 내가 수동적 유희를 통해서도 즐거움을 얻을 수 있다는 사실은 무시하는 자유란 도대체 어떤 자유인가? 그런 자유는 아마도 불완전한 자유임에 틀림없다.
--- p.38 |
|
어떤 조건이면 다수의 행복을 위해 한 사람이 죽어야 한다는 마음이 생길 것 같은가? 다수의 행복을 위해서는 독재자를 처형해야 마땅하다는 주장에 바로 동의할 수 있는가? 만약 그렇다다면, 어째서 수많은 관중의 즐거움을 위해, 즉 그들의 행복을 확실하게 고조시키기 위해 사람을 경기장의 사자밥으로 내던지는 것 또한 정당하다고는 생각하지 않는 것인가? 당신이 이러한 논리에 깜짝 놀라는 것도 도덕적 선입관 때문이 아닐까?
--- p.98 |
|
보기 좋게 잘 가꾼 인체라는 미의 획일적 이상이 전 지구적 현상으로 나타난다는 것은 많은 것을 시사한다. 미의 이러한 발전은 아마도 미를 자유롭고 개인적으로 결정하는 것에 불리하게 작용할 것이다. 일상적 인간관계에서가 아니라 단지 텔레비전이나 영화에서 주로 접하게 되는 육체미는 사람들에게 어떤 결과를 가져올 것인가? 사람들이 이 때문에 추(醜)를 혐오하게 될까? 자기 몸을 누가 봐도 아름답다고 인정할 정도로 가꾸는 것이 규범이나 보편적 유행에 대한 노예적 굴종을 의미하는 것은 아닐까?
--- p.190 |
|
의심을 허용하지 않는 사회
“믿음이란 긍정적인 태도일 가능성이 크고, 의심이란 부정적일 태도일 가능성이 크다.” 물론 그렇다. 그러나 항상 그런 것은 아니요, 특히 툭하면 ‘믿음’을 들이대는 사회 분위기라면(예컨대 대한민국) 의심이란 ‘비판적 사고’의 다른 이름으로서 반드시 갖추어야 할 지적 태도라고 보아도 무리가 아닐 것이다. 의심할 능력을 상실한 사회는 위험하다. 근거 박약한 믿음으로 더 이상 노력하지 않고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는 사람들은 위험하다. 특히, 국익(國益)과 같은 추상적 개념 앞에서 제 수준의 믿음을 내세우는 태도는 엄청난 사회적 손실을 초래한다. 한국인의 종교에 대한 집착, 황우석 사태, 월드컵에 대한 광적인 열기 등이 사례일 것이다. 결국 우리는 의심을 허용하지 않았기 때문에, 의심할 줄 몰랐기 때문에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 막는 경우가 허다하다. 의심을 불신과 동일시하는 사회는 불행하다. 의심은 축복이다 지금은 하나의 이념에 복종해야 하는 전제적 왕조시대가 아니다(적어도 이론적으로는). 우리에게는 자유롭게 사고하고 자유롭게 판단하고 자유롭게 의심할 권리가 있다. 그리고 의심은 놀랍게도 우리의 마음을 여유롭고 평안하게 해주며 우리의 인식세계를 더욱 넓고 풍요로롭게 해준다. 의심은 죄악이 아니라 축복이며, 공연한 트집이나 딴지가 아니라 치열한 고민과 정신적 노동의 결과물이다.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고? 스위스 출신의 젊은 철학자 안드레아스 우르스 좀머는 『의심의 기술』에서 그 비밀을 밝힌다. 의심에도 기술이 필요하다 『의심의 기술』은 저자가 머리말에서 밝힌 대로 회의주의 철학을 위한 작은 사례집이다. 저자는 우리가 아무 생각 없이 접하는 일상들에 의심의 시선을 던질 것을 주문한다. 수동적으로 TV 오락 프로그램을 보며 낄낄대는 게 왜 나쁜가? 한 장의 지폐가 우리에게 제공하는 선택은 과연 얼마나 가치 있는 것이었는가? 여행을 떠나서 과연 여행사가 광고하는 만큼 일상으로부터의 탈출과 자아의 새로운 발견에 성공했는가? 당신이 배워 알고 있는 지식 중 정말 확실한 건 몇 개나 되는가? 의심하라, 의심하라, 의심하라. 제목 그대로 이 책은 의심에 필요한 기술을 제공한다. 저자의 안내에 따라 구체적인 의심을 연습하면서, 우리는 지금껏 신봉하고 있던 가치관의 허상을 발견하고 새로운 사유의 관점을 예리하게 다듬을 수 있다. 의심의 철학, 즉 철학사조의 하나로서의 회의주의는 스스로의 지식이 없음을 인정하고 긍정이나 부정 어느 쪽의 평가에도 가능성을 열어두며 판단을 유보하기로 결정하는 것이 마음의 평정을 가져온다고 주장했다. 이건 복잡한 세상사로부터 도피하여 자기만의 평온만을 추구하는 무책임한 지식인의 발언으로 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현대외 회의주의자들은 마음의 평정을 얻기 위해서가 아니라 세계에 대한 인식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 모든 것을 의심한다. 가타부타 섣부르게 판단부터 내리기보다는 양쪽의 가능성을 충분히 숙고하며 의심하는 쪽이 훨씬 지혜로운 자세 아니겠는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