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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화 눈 먼 소녀 ㅣ 밀레이 그림
2화 오필리어 1부 ㅣ 미친년은 왜 머리에 꽃을 꽂나? 3화 오필리어 2부 ㅣ 비오는 날 미친년이 날뛰는 이유 4화 오필리어 3부 ㅣ 미친년이 웃는 이유 5화 악몽 ㅣ 퓌슬리 그림 6화 이카로스가 떨어진 곳의 풍경 ㅣ 브뢰겔 그림 7화 고흐의 소녀와 뭉크의 절규 8화 새를 먹는 소녀 ㅣ 마그리트 그림 9화 상처 입은 남자 ㅣ 쿠르베 그림 10화 푸줏간 ㅣ 아르첸 그림 11화 죽은 사람을 누인 침대 ㅣ 뭉크 그림 12화 참회하는 막달레나 ㅣ 라 투르 그림 후기 수록 도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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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海 구역에 빠진 손가락에게 초롱 빛이 꺼진 아귀가 다가와 그림을 보여 달라고 한다. 초롱불 달린 아귀는 스스로 이미지를 만들고 그 이미지로 살아가는 예술가에 대한 비유다. 저자에 따르면 손가락의 단순화된 모습은 독자의 감정이입을 쉽게 유도하기 위한 것이라고 한다.
1화에서 손가락은 밀레이의 <눈 먼 소녀>를 아귀에게 보여주며 앞이 보이지 않는 캄캄한 상황에서도 무지개처럼 멀리 걸려있는 ‘희망’을 잊지 말자고 넌지시 말해준다. 2화~4화는 <오필리어>를 통해 본 ‘미친년 코드’다. ‘꽃, 물, 웃음’ 이라는 세 가지 코드를 동원하여 살펴본 결과는 “네(미친년)가 미친 것이냐? 우리가 미친 것이냐?”라는 반문. 철저히 자연과 단절되고 목표를 향해 달려가기만 하는 우리의 모습이 '자연스러운(natural)' 미친년의 눈으로 풍자된다. 5장 ‘악몽’-퓌슬리 그림에서는 목적 없는 삶과 희망 없는 현실이 이미 ‘악몽’임을 말한다. 6화 ‘이카로스가 떨어진 풍경’-브뢰겔 그림. 이카로스는 헛된 꿈에 겁 없이 다가가 화를 자초한 인물로 해석되지만, 손가락은 전혀 다르게 본다. 오히려 자신의 내면으로, 자신에 대한 질문으로 깊이 다가갈수록 우울과 절망의 나락으로 추락하게 되는 현실을 읽어내는 것이다. 졸업, 돈, 안정된 생활…. 그 자명함을 의심하고 질문에 질문을 거듭할수록 날개는 녹아내린다. 브뢰겔의 그림 한 귀퉁이에 보일 듯 말 듯 추락하고 있는 이카로스 따위, 누구도 돌아보지 않는다. 결국 이런 사회가 미친년이 비웃는 목적 없는 현대인들을 만들어내고 악몽에 쫓기도록 하는 것 아닐까. 7화 ‘고흐의 소녀와 뭉크의 절규’에서 손가락은 고흐의 <트렝케타유의 다리>와 뭉크의 <절규>가 비슷한 배경과 구도를 갖고 있음을 발견해낸다. 인상주의와 표현주의에 대한 설명이 이어지고 두 그림의 주인공이 공유하고 있는 개인의 처절한 슬픔과 고통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다. 8화는 마그리트의 <새를 먹는 소녀>를 통해 초현실주의를 다룬다. “셔츠를 찾으려고 옷장을 열다가 사자를 발견하는 마술과 같은 놀라움, 그것이 초현실주의다”라는 프리다 칼로의 말을 옮기고 있지만, 손가락은 초현실주의에 대해서도 색다른 해석을 내놓는다. “자신을 새로 발견하도록 비쳐주는 거울”이라는 것이다. 그렇게 보면 소녀 주위의 형형색색 새들은 소녀의 이루지 못한 꿈들을 나타내고, 무표정하게 새를 씹어 먹는 소녀는 꿈을 잃은 이들의 초상이 되는 것이다. 쿠르베의 <상처입은 남자> 또한 ‘칼’로 상징되는 관계 속에서 피 흘리기보다 스스로 선택한 고독 속에서 미소 짓는 현대인의 모습이다.(9화 ‘상처 입은 남자’-쿠르베 그림) 후반으로 접어들면서 손가락의 내밀한 고백이 쏟아진다. ‘순대 속’처럼 똑같은 일상, 무의미와 공허, 그리고 피로로 점철된 것이 삶이라면 순대 자르듯 한 칼에 내려쳐버리고(10화 ‘푸줏간’-아르첸 그림), 차라리 밝은 녹색을 띤, 저 편안해 보이는 죽음의 침대로 가는 게 낫지 않을까?(11화 ‘죽은 사람을 누인 침대’-뭉크 그림) 물론 앞서 말한 대로(1화 <눈 먼 소녀>) ‘희망’이 있다. 그러나 손가락은 ‘쉬운 희망’을 말하지 않는다. 그 희망이란 기껏해야 달콤한 미약이거나, 어쩌면 최후의 저주일지도 모르는 것이다. 이리하여 마지막 12화는 참회하는 막달레나가 켜둔 촛불처럼 흔들리는 손가락의 내면이 독백 내레이션과 함께 그대로 드러난다. 죽음의 침대와 무지개 빛 희망 사이에서 손가락은 어떤 것도 가리키지 않았다. 그리고 암전 속에서 사라져간다. 마지막 페이지의 어둠 속에서, 이제 홀로 남은 독자들이 선택의 주인공이 되는 것이다.(12화 ‘참회하는 막달레나’-라 투르 그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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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해에 빠진 손가락과 초롱 불 꺼진 아귀의 그림 이야기
『그림 보여주는 손가락』은 '우울해'(우울의 바다)에 빠져 있는 손가락, 먹이를 유인할 초롱 빛이 꺼져 위기에 처한 아귀, 이 두 캐릭터가 주인공이다. 모두 어딘가 부족하고 상처를 지닌 이 둘은, 고흐나 뭉크가 그린 덜 알려진 작품들을 통해 나아갈 길에 대한 고민과 삶과 죽음의 문제 등 '우울한' 대화를 나눈다. 어찌 보면 우울해는 인터넷의 비유다. 모든 것을 클릭 한 번으로 얻을 수 있지만 감각적 욕망과 피상적 관계만이 난무하는 '정신적 히키코모리('은둔형 외톨이'라는 뜻의 일본어)'들의 세계. 『그림 보여주는 손가락』은 그렇게 부유하는 외톨박이들의 슬픔과 고독을 네티즌들의 어법(패러디, 합성 이미지 등)과 만화 형식으로 표현해 네티즌들의 열화 같은 공감을 끌어낼 수 있었다. 기존의 명화 해설서가 명화 자체에 대한 설명 중심으로만 접근했다면 『그림 보여주는 손가락』은 그림을 통해 우울해에 바진 외로운 청춘을 따뜻하게 위무하는, 전염성 높은 감동을 주고 있다는 점에서 돋보인다. 명화를 바라보는 개성적 시각, 새로운 만화적 형식 등이 돋보이는 『그림 보여주는 손가락』은 여러 특징을 가지고 있다. 그 가운데 가장 주목할 만한 것은 네티즌들의 참여와 공동작업의 경험이다. 각 에피소드 (총 12화)마다 독자들이 보내온 개성 넘치는 덧글들은 그 자체로 풍부한 감상 자료로서, 어느 네티즌의 표현에 의하면 "새로운 눈이 돋아나는" 경험을 공유하게 만들었다. 그 소중한 교감의 흔적들은 저자가 책의 각 에피소드 말미에 수록한 '덧글/작가 이야기 및 관련 미술관 사이트'에 고스란히 남아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