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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펴내며|오주석
김홍도의 삶과 예술 Summary 조선의 화가, 김홍도 김홍도가 살았던 세상, 김홍도의 자리 1. 김홍도의 가계家系 2. 김홍도의 명名, 자字, 호號 분석 3. 김홍도의 인물과 예술 4. 김홍도의 생활상 편년으로 본 김홍도의 생애 1. 조숙했던 천재 화원 2. 풍류로운 찰방 생활 3. 금강산 외 명승 사경寫景 4. 다난했던 현감 시절 5. 노년 무렵 빛과 그늘 화선 김홍도를 기린 사람들 주註 / 연보 / 참고문헌 / 찾아보기 |
吳柱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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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도의 생애에 대한 편년적 고찰을 마치면서 최근 발견된 자료를 통하여 그의 말년 생활 모습을 엿보기로 한다. 그것은 「단원의 산수 병풍 여섯 폭에 붙이는 서문」인데 남주헌南周獻(1769~1821)의 『의재집宜齋集』에 실려 있다.
단원 김홍도 군은 그림 그리기를 너무나 좋아해서 그 작품을 구하는 이가 있으면 조금도 인색하게 굴지 않았다. 그런 까닭에 온 나라 안에 가득한 것이 모두 그의 그림이었다. 나 역시 그를 안 지가 여러 해 되는데, 다른 그림 한 폭을 얻으면 곧 그에게 물어 그가 좋다고 한 연후에야 소장하였다. 그러므로 내가 비록 그림을 모르지만 좋은 그림을 본 것이 가장 많다. 그는 내가 그림 좋아하는 걸 비기어 말하기를 왕휘지王徽之가 대나무 좋아하는 것과 같다고 하였다. 내 일찍이 머리 병풍을 만들어 그의 산수 그림을 원했더니 그는 쾌히 승낙했는데, 그러나 석 달이 되도록 그리지를 않았다. 내가 매양 독촉하였더니 그는 웃으면서 말하기를, “그림이 어찌 억지로 됩니까? 나는 내 흥을 기다릴 뿐입니다”라고 하였다. 어느 날 그가 크게 술에 취하여 스스로 수묵을 갈아 막 붓을 휘두르려고 생각을 가다듬는데, 어떤 고관이 말을 보내어 맞아들이고자 하였다. 군은 붓을 내던지고 누운 채로 심부름꾼을 문밖으로 내치고는 말하기를, “어떤 속된 선비가 내 그림의 흥취를 망치려 하는가.” 하더니, 갑자기 다시 벌떡 일어나 앉아 그림을 그렸다. 붓을 휘두르는데 그저 뜻이 가는 곳이면 태산이 그 앞에 나타나기도 하고, 큰 바다가 그 뒤로 보이기도 하며, 풀, 나무, 새, 짐승과, 구름과 아지랑이 서린 풍류로운 달이며, 사계절 아침저녁의 변화하는 모양이 모두 눈앞에서 엇갈리고 뒤섞이며 가슴속을 시원스럽게 씻어내는 듯하였다. 잠깐 만에 그림이 완성되니 해는 아직도 한참이 남았다. 내가 장난삼아 말하기를 “그대의 그림은 신이 붙었구려. 훗날 내가 그대를 위하여 화사전畵師傳을 짓겠소.” 하니, 그는 사양하며 말하기를 “공公께서는 괜한 말씀 마십시오. 공의 문장과 나의 그림 가운데 어느 것이 뛰어납니까? 지금 세상에는 이미 내 그림을 모르는 이가 없습니다. 하지만 나는 사대부들에게서 공의 문장이 품격 있는 고문古文이라고 하는 말을 들었습니다. 어찌 나를 위하여 이 그림을 평해주시지 않습니까.” 하므로, 내가 굳게 허락하였다. 얼마 안 있어 그가 선계仙界로 올라가게 되니 훌륭한 화가 또한 세상에 끊기게 되었다. 드디어 병풍 여섯 폭에 짧은 글을 붙여 묵은 약속을 지키려 한다.346 남주헌은 글머리에서 ‘나라 안에 가득한 것이 모두 단원 그림이었다’고 말하고, 그것은 무엇보다도 김홍도 자신이 그림 그리기를 너무나 좋아했던 까닭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김홍도가 아무 때나 누구에게나 그림을 그려주었던 것은 아니었는데, 일례로 높은 벼슬아치의 초청을 단호하게 거부했던 일화를 들어서 도도했던 예술가로서의 자부심도 함께 부각시키고 있다. --- p.330~33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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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이 펴낸 『단원檀園 김홍도』의 세 가지 좋은 점은 이렇다!
첫째, 판형을 키워 ‘김홍도의 화첩’을 보는 느낌이 들게 하였다. 예로, 본문 145쪽에 나오는 <규장각도>는 규장각이 있는 창덕궁 비원이 속속들이 들여다보이는 크기이다. 김홍도가 그린 1776년 작 <규장각도>에 지금 규장각의 경치를 대어보면 그간에 규장각이 어떻게 달라졌는지 조목조목 비교할 수 있을 정도이다. 이처럼 크고 시원한 도판이 본문을 읽느라 행간에 빠져 헤매던 눈길을 탁 트인 화면畵面으로 이끌며 갑갑함을 걷어내고, 그림 설명만으로는 부족한 글맛을 잘 보완하고 있다. 이외의 그림에서도 원래의 색감을 살려 가능한 한 진본眞本에 견줄 만한 근사치로 보여주었다. 이렇게 해서 텍스트보다는 그림이 우선인, 김홍도의 화첩에 가까운 『단원檀園 김홍도』가 되었다. 둘째, 『단원檀園 김홍도』의 저본底本이 된 『(탄신 250주년기념 특별전 논고집) 단원 김홍도』의 체제와 표현 방식 가운데 장점을 취했다. 첫째의 예로, 구판舊版에서 장章 제목으로 쓰인 ‘김홍도라는 사람 / (부제) 김홍도의 예술’을 ‘김홍도라는 사람, 김홍도의 예술’로 바꿨다. 뒤의 제목은 『(탄신 250주년기념 특별전 논고집) 단원 김홍도』에서 사용된 제목으로, 앞의 것보다 오히려 본문의 내용에 부합되는 제목이다. 이와 같은 장 제목들을 일일이 대조해보고 본문의 내용에 맞게 바로잡아, 독자들의 책 읽기에 길잡이가 되도록 하였다. 그리고 둘째의 예로, “……‘약 삼십 년간 나라의 그림 관계 일은 모두 김홍도로 하여금 주관토록 하였다’고 회고했다. 김홍도의 활동기간은 정조 재위 이십사 년을 중심으로 영조 말년과 순조 초년에 해당한다. 그 대부분인 영조英祖 말년(정조의 세손 시절)과 정조 연간의 찬란한 문예부흥기에 국왕이 삼십 년 동안 각별하게 총애해 나라의 그림 일을 모두 주관케 했다…….”와 같은 문장의 숫자 표기를 저본과 비교하여 그대로 따랐다. “……‘약 30년간 나라의 그림 관계 일은 모두 김홍도로 하여금 주관토록 하였다’고 회고했다. 김홍도의 활동기간은 정조 재위 24년을 중심으로 영조 말년과 순조 초년에 해당한다. 그 대부분인 영조英祖 말년(정조의 세손 시절)과 정조 연간의 찬란한 문예부흥기에 국왕이 30년 동안 각별하게 총애해 나라의 그림 일을 모두 주관케 했다…….” 이처럼 본래의 저술 의도를 충분히 살려놓았더니 가독성도 훨씬 높아졌다. 셋째, 극히 드물기는 하나 구판舊版의 잘못된 부분을 바로잡았다. 예로, 360쪽 주2의 『표롱을첨??乙?』은 저본과 구판에 『표롱을참??乙懺』이라고 되어 있으나 앞의 것이 맞다. 저자가 개정판을 준비했다면 반드시 바로잡았을 부분이다. 저자를 대신하여 편집자가 저작권자와 상의하여 고쳤다. 그 외에도 몇 군데 손을 본 부분이 있으나 따로 표시하지는 않았다. 이는 모두 학계에서 인정되는 사실에 비추어 잘못된 부분을 바로잡은 것에 불과하나, 『단원檀園 김홍도』의 순도를 조금 더 높였다고 할 만하다. ―『단원檀園 김홍도』는 어떤 책인가? 잘 알려진 대로 『단원檀園 김홍도』는 지은이가 생전에 ‘김홍도는 우리나라의 옛 화가 중에서도 가장 뛰어난 분 가운데 하나다. 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그 예술적 성과를 넘어서서 이분의 인간적인 매력이 아주 풍부하다는 사실이다. 김홍도의 예술부터가 비단 그림 솜씨로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글씨, 문학, 음악 등 각 방면에 걸치는 것이었지만, 그 관련 기록의 행간에 엿보이는 인물의 됨됨이가 어느 때는 사랑스러운가 하면, 또 어느 때는 품격이 도도하기 그지없다. 이러한 훌륭한 선인을 생각하고 그 자취를 찾아다니는 작업은 그 자체로 크나큰 행복이었다.’라고 쓴 것처럼 김홍도의 면면을 두루 살펴보게 한다. 우선 『단원檀園 김홍도』는 김홍도의 전모를 크게 세 층위에서 다루고 있다. 1) 당대의 화가 가운데서도 여러 방면의 그림을 가장 잘 그리고, 게다가 글씨까지 잘 쓴 서화가의 면모, 2) 시를 잘 짓고, 악기를 잘 다룬 풍류인의 면모, 3) 사람 됨됨이가 호쾌하면서 일방 섬세한 선인의 면모 등이다. 이처럼 『단원檀園 김홍도』는 예술가이면서 조선시대 사람인 김홍도의 모습을 한 폭의 초상화로 그려 어느 한 부분 놓침 없이 드러낸다. 아울러 사료를 집대성한 후 선별하여 인용한 덕에 ‘김홍도와 한 시대를 산 조희룡, 이인문, 강세황, 홍길주의 김홍도보다 후대 오주석의 김홍도가 더 사실적으로 와 닿는다.’ 이 책의 뛰어난 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