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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머리말

1. 세계촌과 세계촌 주민들
실패한 혁명|배우를 찾아라|우리도 텔레비전처럼|미디어에 출연하고 싶은 사람들을 위한 조언

2. 아성을 쌓아라
새로운 지형론에 관해 알아야 할 몇 가지 것들|실습: 저녁 뉴스를 어떻게 준비할까|노 맨스 랜드|숫자, 믿을까 말까|비야, 비야 내려라|전쟁 보도의 교훈|육감? 6감

3. 뉴스 이데올로기
투명성|쇼를 비평하는 사람도 쇼를 한다?|여론 왕국

4. 경계경보
일어나지 않을 일도 경계하게 하라|“아무것도 잊지 않았다, 아무것도 배우지 않았다”|일상의 끈을 잡고

결론을 대신하여
암흑, 그 심연의 가능성

저자 소개 1

플로랑스 오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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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lorence Aubenas

시사 주간지 《누벨옵세르바퇴르Le Nouvel Observateur》의 대기자Grand Reporter로, 1961년 벨기에에서 태어나 1984년 저널리즘 부문의 그랑제콜인 CFJ(Centre de Formation des Journalistes)를 졸업했다. 1986년 프랑스의 유명 일간지 《리베라시옹Liberation》에 입사한 후 이라크, 르완다, 코소보, 알제리, 아프가니스탄 등 분쟁지역 취재를 도맡아 국제 문제 전문 대기자로 활약했다. 2005년 1월 5일 총선을 앞둔 이라크 현지 상황을 취재하던 중 통역을 맡았던 후세인 하눈 알 사디와 함께 이라크 저항세력에 피
시사 주간지 《누벨옵세르바퇴르Le Nouvel Observateur》의 대기자Grand Reporter로, 1961년 벨기에에서 태어나 1984년 저널리즘 부문의 그랑제콜인 CFJ(Centre de Formation des Journalistes)를 졸업했다. 1986년 프랑스의 유명 일간지 《리베라시옹Liberation》에 입사한 후 이라크, 르완다, 코소보, 알제리, 아프가니스탄 등 분쟁지역 취재를 도맡아 국제 문제 전문 대기자로 활약했다.

2005년 1월 5일 총선을 앞둔 이라크 현지 상황을 취재하던 중 통역을 맡았던 후세인 하눈 알 사디와 함께 이라크 저항세력에 피랍되었다가 157일 만에 석방되어 전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당시 전 프랑스가 오브나의 석방을 위해 애썼는데, 프랑스 사상 처음으로 40개 신문사 편집장들이 모여 매스미디어를 통해 그녀의 석방을 지원할 것을 결의하기도 했다.

2009년 7월부터 세계 감옥 감시 기구L’Observatoire International des Prison의 대표도 맡고 있다. 지은 책으로는 미겔 베나사야그와 함께 쓴 『저항하는 것, 그것은 창조하는 것』과 그 외에 『오해, 우트로 사건』『위스트르앙 부두』 등이 있다.
저자 : 미겔 베나사야그(Miguel Benasayag)
철학자,정신분석학자이다. 아르헨티나 등 남미에서 게릴라 운동 투사로 활동했으며, 아르헨티나에서 수년간 수감 생활을 했다. 석방된 후 프랑스로 망명했다. 이후에도 꾸준히 정치 운동을 했으며, 철학자?정신분석학자로 변신한 후 수많은 책을 써내고 있다. 〈프랑스 퀼튀르〉 방송의 주요 논객으로 활동하다가 너무 정치적이라는 이유로 자리를 물러나야 했다. 파리 근교 쿠르뇌브에 있는 ‘4천 시테’라는 시민 대학에 참여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는 『그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아르헨티나 감옥에서 들려오는 낮은 목소리』 『유토피아와 자유, 인간의 권리: 이데올로기?』 『행복 비판』 『개인 신화』 『체 게바라, 신화에서 인간으로, 그 왕복』 등이 있다.
역자 : 류재화
고려대학교 불문학과를 졸업하고, 출판 편집자로서 여러 해 일했다. 이후 프랑스 스트라스부르 마르크 블로크 대학에서 비교문학 석사 및 DEA 과정을 마치고, 지금은 파리 소르본 대학에서 문학 박사 논문을 준비하고 있다. 주간지 〈시사저널〉 파리 통신원으로 일하면서 이따금 프랑스 소식을 전하고 있으며, 문학 및 인문 학술 도서를 번역하고 있다. 옮긴 책으로는 『신화와 예술』 『고대 로마의 일상생활』 『레비스트로스 미학 에세이-보다 듣다 읽다』 『붓을 든 소녀-화가의 딸, 라비니아 폰타나 이야기』 등이 있다.

품목정보

발행일
2006년 08월 17일
쪽수, 무게, 크기
152쪽 | 234g | 크기확인중
ISBN13
9788990048745

출판사 리뷰

다양성 속 담합
여행 시기가 용케 맞아 우연히 모이게 된 비행기 승객들처럼 전 지구의 모든 나라, 세계 각지에 사는 사람들은 이른바 ‘시사(時事)’라 일컫는 내밀한 환경 속에서 매일 팔꿈치를 맞대고 서로 붙어 앉아 있다.
각 신문마다, 각 텔레비전 채널마다 자기만의 색깔과 어조, 스타일을 가지는 것은 당연하다. 그런 의미에서 〈르피가로〉와 CNN, 〈엘파이스〉와 〈오랑〉은 전혀 다른 것이다. 같은 사건을 놓고도 각자의 분석 혹은 시점이 근본적으로 대립하는 경우가 많다.
이렇듯 겉으로는 다양성을 갖고 있지만, 그 안을 들여다보면 모종의 담합이 숨어 있다. 모든 것을 다 말할 수 있지만, 반드시 같은 것을 이야기한다는 조건에서 말이다. 런던에서 도쿄까지 세계의 모든 신문은 일반적으로 같은 사건을 다룬다. 힐러리 클린턴의 정치적 노선에 동의를 하든 안 하든, 전 세계 언론은 합창이라도 하듯 1999년 힐러리 클린턴의 미국 상원의원 출마 뉴스를 하나같이 다뤘다. 그러니 워싱턴의 해외 주재 특파원들은 이 ‘주제’를 어떤 방식으로 접근해야 좋을지, 즉 어떻게 하면 그 주제를 더 우상 파괴적으로 비출 수 있을지, 어떻게 하면 경쟁 매체보다 더 웃기게 혹은 더 심각하게 그릴 수 있을지 고심하느라 머리를 싸맸다. 스타가 될 사람을 지명하는 것은 미디어적 합의 속에서 이뤄진다.
아날학파(1929년 프랑스의 역사학자인 L. 페브르와 M. 블로크에 의해 창간된 〈사회경제사 연보〉를 중심으로 형성된 학파로, 정치보다는 사회, 개인보다는 집단, 연대보다는 구조를 역사인식의 기본 골격으로 삼아야 한다는 것이 이 학파의 정신이다) 같은 방식을 취하면서 기자들은 그 대단하신 인물들이 없어도 배가 출항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었다. 신문, 언론의 경험담들을 보면 기자들은 현실 세계 속에 깊이 몸을 담그려는 시도, 즉 무성한, 예기치 못한 세상사 속으로 기꺼이 들어가려는 시도를 해온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이런 시도는 횡단 여정이라는 한 참여 과정에 불과하다. ‘리포터’(re-porter: 다시 가지고 오는 자)는 참 얄궂게도 자신의 일이 어쩔 수 없는 주관성에서 출발하기 때문에 ‘환원 불가능성’을 안고 있음을 잘 안다. 보고 및 취재 상황에서 그 누구도 옆 사람과 같은 것을 보지는 않는다. 오히려 세계의 다양성과 대면하면서 기자들은 자기 고유의 독특한 주관이 앞서 나가도록 그냥 놔두며 신문을 거대한 ‘일기장’ 같은 것으로 바꿔놓는다.

배우를 찾아라: 방리유 청년 혹은 미디어제니
언론이 하고 있는 쇼는 나비넥타이를 맨 마술사가 하얀 토끼를 호주머니에 넣고 있는 것과 비슷하다. 마술사는 자신이 속임수를 쓰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맨 앞줄에 앉아 있는 부인을 무대 위로 올라오게 한다. 그러고는 토끼를 반 토막 내거나 구석에 앉아 있는 한 남자 어깨 위에 햄스터가 나타나게 할 것이다.
잘 알려지지 않은 사람을 연단 위로 불러내는 것이 언론으로서는 마지막 비장의 카드이다. 이 간택의 영광을 입은 자들도 목소리가 다 같은 것은 아니다. 이름도 변한다. 그들은 이 동네 아니면 저 동네에 산다. 그런데 그들의 얼굴은 우리에게 알려지지 않았지만, 그 인물 유형은 왠지 익숙하다. 우리는 그들이 신문이나 텔레비전에 나오는 즉시 알아본다. ‘습격당한 버스 기사’, ‘익명을 원하는 정부 자문관’에 이어 ‘불행한 삶을 사는 젊은 예술가’, ‘소액 사건 단독 판사’, ‘쿠바에 파견된 서방의 외교관’, ‘정치 망명자’, ‘이라크 택시 기사’ 등 줄지어 나온다. 텔레비전 뉴스 하단에 나오는 자막에는 일반적으로 인터뷰이(interviewee)의 이름이 뜨는데, 신분증명서 역할을 하는 그런 이름 대신에 이런 문구를 읽는 일도 허다하다. ‘방리유(Banlieu: 이민자들이 주로 사는 파리 외곽 지대. 외곽이라는 단순한 뜻이지만 프랑스 이민 문화의 다양한 사회적 문제를 연상시키는 상징어가 되었다) 청년’, ‘실업자’ 혹은 ‘반유럽인’. 이렇게 자상하게 설명해주는데 오늘 무엇을 봐야 하는지, 무엇을 들어야 하는지 당장에 알아채지 못할 시청자가, 독자가 얼마나 있겠는가?
프랑스에서 이런 연기에 두각을 나타내는 이라면 아마 ‘방리유 청년들’일 것이다. 이들은 ‘레테르’대로 해낸다. 실제로 시험해봐도 틀리는 법이 없다. 평소에 시테(cite: 방리유 주민들이 주로 사는 아파트촌)는 선잠이 든 듯 고요하다. 그런데 이때 기자 한 명이 도착한다. 그러면 경계주의보 발령이다. 이 단순한 출현에 순간 몇몇 청년들은 미디어를 위해 특별히 ‘포맷’된, 단지 그 기자들만을 위해 준비한 특별 포즈를 취해준다. 모두 합해서 2분 30초 안에 일어나는 단막극이다.
‘포토제니’라고 말하듯 시테 거주자들의 범주에 속하는 이런 ‘미디어제니’는 언론에서 이런 구역을 다루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부분적으로 보여준다. 방리유 젊은이들이 없는 시테는 그야말로 죽음이나 기다리는 양로원과 다름없다. 이제는 그 무엇으로도 이 소외감을 잘라낼 수 없다. 한 방향으로만 몰아가는 미디어의 영향으로 오늘날 프랑스인에게 방리유는 외국인 출신, 일자리도 없는 청년들을 가리키는 말이 되어버렸다.

언론 작업의 원칙
언뜻 보면 언론 작업의 원칙은 간단해 보인다. 물론 발표할 수 있고,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것이 기사로 채택된다는 어떤 규칙은 있다. 아마 가장 유명한 것이라면 지리적 인접성이라는 낡을 대로 낡은 태곳적 규칙일 것이다. 최종 배당되는 기사 크기는 사망자 수보다 사건이 일어난 장소와 신문사 본부 사이의 거리에 따라 정해진다. 인도나 아프리카에서 탈선으로 일어난 대형 열차 사고는 지면에 끼어들 틈도 없겠지만, 마르세유에서 발생한 열차 사고보다는 파리 리옹 역에서 일어난 열차 사고가 전국지 1면을 장식하기가 쉽다.
언론에는 훨씬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을, 부각하기 훨씬 좋은 일화적인 것을 걸러내는 정교한 여과기가 있다. 가령 1999년 7월 스트라스부르 유럽인권위원회 법정에서 ‘프랑스’가 형을 선고받았는데, 이 사건이 대대적으로 언론의 표지를 장식한 적이 있다. 파리 남부 외곽 보비니 경찰서에서 한 마약 밀매범이 1991년 경찰들에게 폭행당하고 강간당한 적이 있다. 그때까지 그런 사건으로, 같은 이유로, 같은 법정에서 형을 선고받은 유일한 나라가 있는데, 바로 터키였다. 그러나 이 판결은 보도가 되지 않아 아무도 모르는 채 넘어갔다. 인간적으로 봤을 때 기자들은 두 사건 모두에 마음이 동했을 테지만 하나는 그들을 놀라게 만들었고, 다른 하나는 아니라는 것이다.
선의냐 악의냐를 넘어서 기자들은 이런 식으로 동시에 두 가지 메시지를 전달한다. 첫 번째는 가시적으로, 프랑스가 ‘고문’을 해서 형을 받았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그 뒤에 숨겨진다. 이 숨겨진 두 번째 의미는 일반적으로 음각을 통해서만 나타나는 것으로, 대놓고 발화되는 일은 거의 드물다. “터키에서라면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고, 그렇다고 해도 비정상적인 것이 아니다. 하지만 어떻게 프랑스 같은 민주주의 국가에서, 그것도 경찰서 안에서 강간 폭력이 일어날 수 있단 말인가. 정말 말도 안 되는 일이다!” 달리 말해, 기자들이 참조하는 일종의 리히터 지진계가 암암리에 있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기자들은 자기만의 항해를 하면서 자기에게 흥미 있는 것을, 그가 보기에 가장 근본적인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을 찾아 나서고 발견한다. 기자의 주요한 강박관념은 상황을 재현해주고, 모든 것을 설명해줄 수 있는 요소들의 총합 혹은 그 요소를 찾는 것이다. 그것이 한 인물 유형, 한 테마가 될 수 있다. 그래서 보통 이란은 여자들이 당면한 어려운 상황이나 언론의 자유 문제를 다룰 때 언급된다. 영국은 왕실 스캔들의 나라, 벨기에는 한동안 미소년 연쇄 강간 살인범 마르크 뒤트루(1990년대 벨기에에서 일어난 세계를 경악시킨 사건. 이 사건 이후 소아성애, 즉 페도필리아에 관한 논쟁이 더욱 가열되었고, 유아 성범죄만큼은 극형에 처해야 한다는 비난 여론이 일었다. 현재까지도 마르크 뒤트루에 대한 재판이 진행중이다)의 나라가 되었다.
반면 문화사적 관점에서 보면 언론 읽기를 통해 공공 여론이 한 사회의 중심적 신화들에 어떻게 붙었다가 떨어져 나오는지를 볼 수 있다. 외국에 나가 취재하는 기자는 그 지역 미디어의 다소 아이러니한 잡지 기사 하나를 가지고 시작하는 일이 많다. 하지만 현지 동업자들이 모아놓은 정보들을 그대로 되풀이하지는 않는다. 현지 특파원이라면 그가 방문한 나라의 신문들이 명확하게 쓰지 않은 것을 부각시키는 데 더 애를 쓴다. 이게 바로 그 유명한 제2의 의미다. 덴마크에서 한 욕심 많은 간호사가 요양소에서 연쇄 살인을 저질렀을 때, 코펜하겐의 한 주요 일간지는 ‘홀로코스트’라는 제목을 뽑았다. 이런 격앙된 감정을 보면서 한 외국인 기자는 “덴마크 언론의 충격은 사회보장제도가 이 나라의 가장 성스러운 제도라는 것을 보여준다”고 판단했다.
냉전 시대 이후 지형학적 분할 법칙: 노 맨스 랜드
지구가 양 진영으로 나뉘어 싸우던 냉전 시대에는 서로가 한마디로 말해 정복해야 할 땅이었다. 각 지역마다 세계 분할의 쟁점지가 되었고, 상대를 공격해 조금의 땅뙈기라도 얻어내야 했다. 거시적 의미에서 오늘날은 권력 실전이 전혀 다른 법칙을 따른다. 새로운 지형학적 분할 법칙을 따르고 있는 것이다.
세계는 더 이상 자기네 나라의 깃발을 앞세우고 출전하는 전장이 아니다. 지금은 바리케이드 쳐진, 만질 수 없는 아성(牙城)이라는 최상의 안전지대들로 재분배되어 있다. 그 아성 둘레로 ‘노 맨스 랜드’(no man’s land: 무인 지대)라는 모호한 지대들이 계속해서 펼쳐진다. 그리고 아성 안의 안전을 위해 잠재적인 위협들, 이른바 이민 물결, 급증하는 폭력, 경제 폭락 등의 현상들을 무인 지대들끼리 서로 훑어본다.
새로운 힘의 장치는 프랙탈(fractal) 방식으로 존재한다. 독특한 형태의 이 지형학적 분배는 가장 큰 것에서 가장 작은 것까지, 달리 말해 대역적인 세계 차원에서 국소적인 한 가정의 개인 차원에 이르기까지 무한대로 재생산된다. 만질 수 없는 나라, 즉 ‘노 맨스 랜드’가 있고 그 내부에 도시들이, 다시 도시 안에 동네들이 프랙탈 속성을 띠고 같은 방식으로 계속해서 분할되어 펼쳐지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사건이 아성 안에서 혹은 ‘노 맨스 랜드’에서 일어나면 취재도 알아서 결정되고 방향도 잡힌다.
‘노 맨스 랜드’가 수출하는 것은 뭐든 희미하고 반드시 수상쩍다. 1999년 봄 알바니아 쿠커스에 있던 코소보 알바니아계 난민 캠프 가운데 여섯 개가 각각 서로 다른 나라 정부에 의해 조직, 관리되고 있었다. 아랍에미리트인도 참여했다. 그런데 에미리트계 군인들이 그곳에 온 첫 달부터 텐트촌 한가운데에 모스크(이슬람 사원)를 짓고, 여자들에게 이슬람 머플러를 나눠줬다. 여자들은 그것을 써도 되고 안 써도 되었다. 그러자 당장에 서방 언론들은 이것이 전형적인 이슬람 근본주의자의 행동이며 한술 더 떠 성전의 전야를 알리는 것이라고 규탄하기에 급급했다. 그런데 거기에서 2킬로미터 떨어진 곳에서는 이탈리아 군인들이 다른 캠프를 맡고 있었다. 그 캠프 지대에서는 매주 아주 전통적인 의식 속에서 경건하게 미사가 치러지고 있었고, 성직자 옷을 입은 사제들은 캠프촌 지역을 지치지도 않고 부지런히 측량하러 다니느라 여념이 없었다. 그런데 이런 것은 단 하나의 토막 기사 거리도 안 되었다.
코소보 알바니아계 난민들은 이슬람교도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이탈리아 가톨릭 인사들의 태도가 에미리트계 군인들의 태도보다 훨씬 더 공격적이고 문제 삼을 만하다. 하지만 서구인 기자에게 이탈리아는 무너뜨릴 수 없는 아성이다. 이탈리아 사제들의 행동은 인류애적인 것이다. 하지만 아랍에미리트는 알 수 없는 모호한 지대다. 그들은 압제를 선전, 선동한다. 한 지대에서 나온 행동과 다른 지대에서 나온 행동은 똑같지만 같은 가치를 가지는 것은 아니다.

‘만져서 알 수 있는’, ‘양으로 잴 수 있는’
앵글로색슨계 언론은 ‘W의 법칙’이라는 것을 만들었다. 왜(Why)? 어디서(Where)? 언제(When)? 누가(Who)? 오늘날 보도될 만한 뉴스란 이 의무적 검시 사항을 반드시 따라야 하는데, 각 세부 사항은 뼈를 잘 바른 다음 수량화되어 숫자와 통계 등으로 발표된다. 그래야 소통될 만한 가치가 있는 ‘보도 기사’가 되는 것이다.
1998년 가을, 허리케인 ‘미치’가 온두라스를 강타했다. 기자들은 그 재해가 일어나자마자 현장에 몰려가서는 이 나라를 완전 드라마처럼 묘사했다. ‘7000여 명이 목숨을 잃었고, 원조는 턱없이 부족하다.’ 모두가 만족한다. 허리케인을 계량통에 집어넣을 수 있으니 됐고, 게다가 이 계량통은 중요한 숫자를 정확히 표시해주지 않는가. 여러 개의 제로를 모으는 것보다 ‘큰 이야기’ 하나를 연구하는 것이 훨씬 가치 있고, 충격 효과가 있어서 볼거리도 보장한다. 몇 주가 흐르면 감정은 가라앉는다. 구호 단체들이 오고, 새로운 정보들이 제공되면서 처음 발표된 희생자 통계 수치는 점점 내려간다. 어떤 특파원은 이제 “그렇게 많은 사망자를 여태껏 본 적이 없다”며 옛일을 추억한다. 그런데 갑자기 새 허리케인이 들이닥친다. 그러나 이번에 언론들은? 만일 숫자가 부풀려진 것이었다면? 기자들은 ‘대홍수 속의 대홍수’를 밝히기 위해 온두라스를 향해 다시 출발한다.
진실을 말해야 하고, 숫자를 보여줘야 한다는 생각이 앞선 이 피해 마을 지역의 시장은 희생자 수를 더 늘려서 말해야 한다는 것을 그냥 단순하게 알고 있었다. 그는 마이크를 들고 덤덤한 목소리로 왜 사망자 수를 부풀렸는지 얘기했다. “우리 지역에 희생자가 얼마나 되느냐고 물어왔어요. 끔찍한 수를 대야 기자들이 움직일 것이고, 그래서 피해 규모가 보도되면 구호의 손길이 올 거라고 생각했죠. 아무도 안 올까봐 무서웠습니다.”
이 온두라스의 시장이 ‘조작’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정말 허리케인이 있었고, 허리케인에 무릎을 꿇은 이 나라는 또 몇 해 동안 그런 일을 당하게 될지 모른다. 그런데 기사에 대한 강박관념이 몸을 감싼다. 인터뷰이나 기자들도 진실이 튀어나오도록 현실을 정보 세계로 꾸미려고 한다. ‘만져서 알 수 있는’, ‘양으로 잴 수 있는’, 그래야 확실하게 보장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을 요구하면서 언론 매체는 가장 두려워하고 꺼리는 것을 스스로 야기한다. 그것은 바로 통제할 수 없는 혼란, 아무도 제어할 수 없는 숫자들의 전쟁이다.

전쟁 보도의 교훈: 현장 취재원과 가상 현장 취재원
서구 언론의 경험으로는 티미소아라 이전과 이후가 있다. 1989년 겨울까지 기자들이 조금 불신하는 것이 하나 있었는데, 그것은 자기 눈으로 직접 본 것이었다. 기자라는 직업을 가진 사람들에게는 항상 ‘현장’에 대한 숭배감이 있고, 계속 그렇게 해오면서 얼마간은 현장감에 대한 신뢰를 다져왔다.
그런데 티미소아라는 전환점이었다. 기자들의 이런 신념에 금을 가게 한 것이다. 루마니아 독재자 차우셰스쿠가 몰락하던 순간, 기자들은 하나같이 이를 악물고 수십 년간 이어진 독재 기간 동안 이중으로 철통같이 잠겨 있던 암흑의 나라 루마니아를 향해 날아갔다. 드디어 압제를, 아니 압제가 어떠했는지를 ‘보게’ 될 것이다! 직감적으로 기자들은 지금까지 감춰졌던 것의 표상물이 될 만한 것, 즉 비밀스러운 정부 조작이나 숨겨진 부정 따위를 찾아 나섰다.
루마니아인들이 기자들을 안내해 대규모 처형이 있었다고 소문이 돌았던 산업 도시 티미소아라, 그 시체 유기 장소에 이르렀을 때까지는 적당한 수준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 루마니아 수장의 비밀스러운 악행이 만천하에 드러났다. 밟으면 당장에 비틀어지면서 소리가 날 것 같은 해골 20여 개가 발견된 것이다. 텔레비전 채널이 총출동해 해골을 촬영했다. 당시 거의 모든 뉴스 채널이 루마니아 소식을 제1보로 다루며 뉴스를 시작했을 정도였다. 그곳의 영상들이 촬영과 거의 동시에 본부 편집실에 도착했다. 이와 같은 직접성, 무매개성 덕분에 루마니아 현장이 거의 실시간으로 런던, 파리, 뉴욕 등 전 세계 언론 편집실로 옮겨졌다. 편집주간부터 기자 연수생까지 다들 자신이 갑자기 현장 취재원이 된 것 같은 착각에 빠졌다. 이어 차우셰스쿠 독재하의 반체제 인사들을 연상시키는 ‘수천 구의 시체 더미’ 소리가 통신사들의 전화선을 타고 흘러 들어왔다. 그런데 실제로 티미소아라에 나가 있던 기자들은 자신들이 직접 눈으로 확인한 것, 즉 20여 점의 유해만을 고집했다. 그러나 그들의 주장은 편집실 본부에 있던 가상 현장 취재원들의 확신에 밀려 무시되고 말았다. 그들은 현장에 없었지만 직접 ‘본’ 것 같고, 직접 ‘들은’ 것 같은 인상을 받았던 것이다. 텔레비전 앞에 앉아 현장 기자가 보내온 보고문을 분석하면서 파리의 편집장은 이런 말을 날린다. “우리처럼 좋은 자리를 못 잡아서 그랬을 거야.” 어마어마한 시체 더미에 대한 발표는 이런 식으로 진행되었다.

투명성
“여러분이 보기에 이 세기에 가장 주목할 만한 일은 무엇입니까?” 핵분열, 우주 정복, 유전자 조작, 백신 등을 단호하게 밀어내고 우리 현대인은 기꺼이 ‘대중매체’라고 대답한다.
고전적 이데올로기는 대중매체를 메시지 전달 도구 정도로 생각했다. 그런데 지금은 이런 기능이 역전되었다. 전파 그 자체가 수단이 아닌 목적이 되었다.
미디어적 담론을 비판적으로 보는 눈들은, 다시 말해 고전적 이데올로기는 대중매체의 힘과 그 구조의 무게를 평가절하한다. 매체가 정말 수단에 불과한 것이라 해도, 구조주의자가 설명하듯 그 수단 자체가 모든 이야기의 토대이자 골격임을 주시할 필요가 있다. 더욱이 대중매체는 스스로 주장하듯 모든 이야기를 절대 비껴가지 않는다. 어떤 이데올로기를 이야기하는 것, 그 자체가 하나의 이데올로기다. 전해주는 자, 전달자라는 원래의 정의에서 벗어나 이제 대중매체는 진정 하나의 세계관, 이데올로기가 되었다. 사회의 각 분야가 이 새로운 이상을 지향하기 위해 조직되었다. 새로운 이상이란 한마디로 ‘드러내기’다.
편집실 내부에서도 취재는 여전히 고결한 영역 가운데 하나이다. 감정적인 사안일 수 있고, 언론이 만들어낸 신화와 어떤 함수관계가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언론의 블랙박스는 ‘스캔들’이다.
옛날 정치부 기자들 역시 국회의원, 권력자들과 함께 일했지만 그들은 이런 영역과는 거리가 멀었다. 이 ‘스캔들’부에서는 한 정책을 놓고 말도 안 된다고 소란을 피울 수 있고, 국회에서 결정한 사안을 우스갯거리로 만들 수도 있다. 모든 것을 쓸 수 있고, 고발할 수 있다. 하지만 어떤 정치가가 자기 직무를 다하지 않았다고 해서 곤경에 처하는 경우를 오늘날 서구에서 누가 상상이나 할 수 있겠는가. 정치권에서 정치가는 이미 경기에 불참한 지 오래다. 정치인과 정당을 요동치게 만드는 것은 재현의 세계에 가입했느냐의 여부이다. 절대 배신당하지 않을 수 있는 유일한 이데올로기로서 투명성은 자신의 존재를 더욱 뚜렷이 드러내고 있다.
이런 절대적 투명성 조사는 불투명성을 제거하는 것이 아니라, 그림자 혹은 몰이해라는 암흑 지대를 만들어내면서 그 불투명성을 오히려 강화한다.

“아무것도 잊지 않았다, 아무것도 배우지 않았다”: 똑같은 상황의 되풀이
1999년 여름 코소보의 상황이 여전히 호전되지 않던 즈음, 프랑스 언론은 1944년 6월 10일 프랑스-독일 SS부대에 의해 642명이 학살된 오라두르 쉬르 글란 사건을 새롭게 조명했다. 초토화된 마을, 말살당한 주민들. SS부대는 그 지역의 해방 작전을 개시했다. 학살극이 있고 나서 몇 주 후 그 지역을 방문한 드골 장군은 이 비극을 훗날 기억할 수 있도록 초토화 상태 그대로 보존하라고 명령했다. 그래서 그렇게 했다. 그리하여 오라두르는 프랑스인의 기억 속에 빛나는 길잡이 전조등이 되었다. 그런데 잠깐 1814년의 프랑스로 돌아가 보면, 앙시앵 레짐의 망명 귀족들처럼 우리는 아무것도 잊지 않았고, 아무것도 배우지 않았다.
지금 1944년 오라두르 생존자들의 증언을 1999년 코소보 생존자들의 증언과 함께 놓고 읽으면, 반세기의 간격을 두고 똑같은 상황이 되풀이된 것 같다. 전개 상황만이 아니라 행동 하나, 단어 하나까지 너무나 흡사해 지우개로 증언자들의 이름과 사건 연도만 지우면 두 사건이 서로 혼동될 지경이다.

암흑, 그 심연의 가능성
뉴스는 보도되는 즉시 이중적인 위상을 갖는다. 처음에는 믿을 수 없는 일, 정말 획기적인 일로 환영받는다. 그러나 바로 이어서 이젠 설명할 수 있고, 그다지 획기적인 일도 아니다. 익숙한 기사들 속에 잘 분류되어 들어간다. 유로 통화 개시, 프랑스 사이클 대회 결승점, 보스니아 전쟁, 비디오 게임 따위의 기사들과 같은 가공 거푸집 안에 뒤섞여 하나의 ‘사건’이 하나의 ‘뉴스’로 변형된다. 전문가들의 의견에 복종하고, 사설에 의해 해석되고, 한 주인공에 의해 구체화되고, 통계학과 연대학으로 측정되어 이 ‘돌리’에 관한 모든 사건은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다른 사건들의 길고 긴 리스트에 던져져서 ‘최근 일어난 가장 재앙적인 사건’, 광기의 시험관 혹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자’ 등의 히트 퍼레이드에 합류한다. ‘이미지’가 된, 현실 세계에서 추출된 이 사건은 대중매체 사회 최후의 경향을 대변하는 것으로, 혹은 대변하지 않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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