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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내 인생의 마지막 일 년이 시작되다
2. 내 항해의 부표, 나는 그것을 따라가야만 한다 3. 모든 순간이 삶이다 4. 내 인생은 현재의 삶, 그 이상이다 5. 죽음은 나를 삶에 더 가까이 다가가게 한다 옮긴이의 말 그 이후의 이야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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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루게릭 병이라고 확신해요.” “정말 알고 싶으신가요?”
“아니, 알고 싶지 않은 것 같아요.” 나는 자신 없이 대답한다. “오늘은 제 생일이고 파티를 여는 날이니까요.” “오, 그렇군요! 쉰 살 생일선물로는 엄청납니다.” “그 말은 제가 루게릭 병에 걸렸단 뜻인가요?” “그래요. 아니면 특이한 종류의 파킨슨 병일 수도 있고요.” ...... 나는 오늘 파티에서 반드시 해야 할 일 한 가지를 더 적는다. 아무에게도 오늘 일을 말하지 않기, 재미있게 즐기고 고통은 내일로 미뤄두기. --- pp.43~4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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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기치 않은 일이 생기지 않는 한 나는 루게릭 병 때문에 죽을 것이다. 내가 택할 길은 두 갈래뿐이다. 드러누워서 비통한 심정으로 죽음을 기다리거나 이 불행한 상황에서 가치있는 무엇인가를 만들어내는 것, 이 둘 중 하나를 택해야 한다. 진부하게 들릴지 모르겠으나 나는 긍정적으로 모든 것을 바라보기로 했다. 내가 갈 길은 두 번째 길인 것이다. 나는 지금 마주하고 있는 이 순간을 살아야 한다. 내게 밝은 미래란 없다. 그러나 밝은 현재는 있지 않은가. 어린아이들은 이렇게 오직 현재만을 살아간다. 나중에 오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러므로 나는 어린아이처럼 웃는다. 주체할 수 없을 만큼......
그동안 나는 성인으로서의 내 삶이 종국에는 괜찮을 거라고 생각해왔다. 우선 앞에 닥친 일들을 해결해놓으면 결국 내 삶 전체가 괜찮아질 거라고, 그렇게 생각했다. 그러나 이런 식의 생각을 더 이상은 할 수 없게 되었다. 이상한 것은 요즘, 내가 불치병을 앓고 있는 지금에 와서 아주 기쁜 순간을 만끽한다는 것이다. 예전에는 느껴본 적이 없는 그런 기쁨을. 지금까지 내게 있어서 행복은 한결같은 그 무엇이 아니었다. 그러나 이제는 행복이 변하지 않는 무엇으로 되어가고 있다. 그것이 내가 웃는 이유다. 그리고 이런 변화가 연수마비와 관계가 있다면, 그렇다면 그것은 루게릭 병이 내게 안겨준 축복일 것이다. --- pp.97~9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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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일 초에 한 번씩 사는 거야.” 구스타프가 살며시 속삭인다.
“뭐라고 했니?” “일 초에 한 번씩 산다고.” “어디서 그런 말을 들었어?” “아무 데서도 안 들었는데? 지금 그냥 생각해낸 거지.” 구스타프는 계속 말을 이어간다. “그러니까 엄만 앞으로 백만 번, 천만 번 더 살게 되는 셈이야.” “그래, 일 초에 한 번씩, 모든 순간이 삶이지.......” 내가 아들의 말을 따라 되뇌인다. --- pp.118~11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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폰투스는 우리끼리 눈을 깜박이며 나눌 수 있는 말을 만들어보고 싶어한다.
“엄마, 눈을 세 번 깜박이면 ‘사랑해’란 뜻이야. 알았죠?” 폰투스는 눈을 세 번 깜박인다. 나도 폰투스를 쳐다보며 눈을 세 번 깜박여준다. 그런데 깜박이는 내 눈꺼풀 사이로 흘러내리는 눈물을 주체할 수가 없다. “엄마, 두 번 깜박 하는 건 ‘응’이란 뜻이고, 한 번 길게 깜박 하면 ‘아니야’란 뜻이야.” 폰투스가 앞으로 연습을 무척 많이 하게 될 거라고 말해서 나는 눈을 두 번 깜박여주었다. --- p.1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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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게릭 병이 찾아오기 전까지 울라 카린 린드크비스트(이하 울라 카린)는 스웨덴의 잘 나가는 방송국 앵커로, 저명한 외과의사의 아내이자 네 아이의 어머니 역할을 하느라 바쁘지만 행복한 삶을 영위해왔다. 남달리 일에 대한 열정이 많았던 그녀는 매사를 완벽하게 해내려 했으므로 늘 분주했다. 이렇듯 숨 가쁘게 살아온 그녀였기에 갑작스럽게 닥친 죽음 앞에서도 절망하지 않고 그 누구보다 치열하게 죽음과 대면하여 죽음을 삶의 한 과정으로 받아들 수 있었는지 모른다.
이 책의 가장 훌륭한 미덕은 그 간결성에 있을 것이다. 인간적인 과시나 속임수는 모두 벗겨내고 한없이 내밀한 속내만 남겨 놓아서 독자들은 글에서 눈을 뗄 수가 없다. 행간마다 울라 카린은 발가벗은 모습으로 누워 있다. 현실에서 벌어지는 일들과 내면의 상념을 경계 없이 넘나드는 지은이의 서술방식. 행갈이도, 부연설명도 없이 과거의 추억을 마치 지금 이 순간에 벌어지는 일처럼 펼쳐놓은 군더더기 없는 문장을 읽다 보면 지은이에게는 과거의 기억도 생생하게 살아 있는 현재임을 이해하게 된다. 그리고 간결하게 응축된 문장 속에 녹아 있는 삶과 죽음, 사랑에 대한 성찰을 마주하면 죽음을 앞둔 지은이의 삶이 곧 우리 모두의 삶임을 깨닫게 된다. 어느 날, 빨래집게를 도저히 눌러서 벌릴 수 없게 되자 자신의 몸에 이상이 생겼음을 처음으로 알아차린 울라 카린. 그녀는 자신의 몸에 루게릭이라고 의심할 만한 증세들이 하나둘씩 나타나는데도 치유할 수 있는 다른 병일 거라고 애써 부정한다. 그러다가 쉰 번째 생일날 확진이 내려지고, 자신이 루게릭을 앓는 환자가 되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면서부터는 깊은 슬픔에 빠져든다. 발병 원인이 전혀 밝혀지지 않은 루게릭 병은 확진이 내려진 지 18개월 안에 50%의 환자들이 목숨을 잃는 불치병이다. 아침과 저녁의 상태가 확연히 다를 만큼 빠른 속도로 악화되어 가는 울라 카린은 사랑하는 이들과의 이별을 생각하며 번민하기 시작한다. 죽음을 단순한 소멸이 아니라 이승에서 맺은 모든 관계가 끊어지는 고립에서 오는 외로움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한편으로 그녀는 가족들에게 짐이 되거나 부끄러운 존재가 될까봐 불안해하거나 분노를 터뜨리기도 한다. 그렇게 그녀 생애의 마지막 일 년이 시작된다. “누군가가 죽는 것은 남아 있는 우리들이 삶을 더욱 소중히 여기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라는 버지니아 울프의 말처럼 인간다운 존엄성을 지키며 아름답게 생을 마감한 울라 카린의 삶과 죽음은 지금 어딘가에서 시한부 생을 살고 있는 환자들, 그 환자들 곁을 지키는 가족과 사랑하는 사람들, 나아가 사랑과 희망을 찾아 헤매는 영혼들과 이 시대의 모든 어머니들에게 따뜻한 위로와 희망을 안겨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