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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의 말_ “내가 존경하는 사람이 바로 내 꿈이다” (이문재 시인)
초대의 말_ 장현리 포도밭으로 놀러 오세요 (류기봉) 1. 행복이 익어가는 장현리 포도밭 장현리 포도밭의 서른한 번째 봄 / 아버지의 전정가위 / 풀밭 위의 점심식사 / 바람난 포도나무 단순함이 주는 행복 / 시인의 아내로 산다는 것 / 시인과 농부 / 아련한 추억 속의 설날 2. 포도는 내 애인이자 자식이다 속 타는 포도밭 / 포도나무도 다이어트를 한다? / 새벽이슬 먹은 포도 / 불량 포도가 더 맛있다 나무들의 사춘기 / 립스틱 짙게 바르고 / 곰팡이 삼형제에 맞서기 / 중신아비 바흐 나무도 눈물을 흘린다 3. 인생도 포도알처럼 영글어간다 류기봉과 유기농 / 포도나무는 왜 모차르트를 좋아할까? / 생애 첫 해외여행 / 흙사랑, 생명사랑 천사는 온몸이 눈으로 되어 있다 / 커피 한 잔과 포도 열다섯 송이 나무가 짊어진 무게 / ‘애플데이’에는 사과가 없다 / 아름다운 노년 / 마음의 밥 4. 참 소중한 인연들 다시 만난 국어 선생님 / 포도밭 작은 예술제 / 시인이 된 포도나무 / 그리운 김춘수 선생님 주말농장의 흙 이야기 / 달빛그늘 아래서 술을 마시다 / 반달을 사랑한 여인 나를 ‘육봉 선생’이라 부르는 친구 / 헛개나무 만세! / 속살은 위대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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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아버지는 전정가위를 내게 물려주고 빈손만 남으셨다. 가위를 잡았던 손의 손금은 다 닳아서 보이지 않을 정도다. 얼마 전 읍사무소에서 지장을 찍는데 지문이 안 나와서 몇 번을 다시 찍어 직원들에게 민망했다고 아버지는 수줍게 말씀하셨다. 지문은 뭉개졌어도 이제는 포도향이 짙게 배어 있을 아버지의 손. 나는 잠든 아버지에게 다가가 가만히 당신의 손을 쓸어본다. ‘자기가 힘들게 싹 틔우고 키운 잎을 가을이 되어 땅에 내어줄 때 나무는 가장 행복하단다.’ 아버지는 내게 그렇게 말씀하시는 것 같다.
_ 아버지의 전정가위 밭에 널려 있는 게 풀이라는 음식이다. 자연농법으로 농사짓는 밭에서 자랐으니 스트레스도 받지 않고 자란 이런 풀들을 뜯어서 쌈을 싸 먹는다. 그야말로 산야채 쌈밥이다. 쌈 위에는 철 따라 영그는 까마중이나 뱀딸기를 올리면 영양도 만점이다. 나의 점심식탁은 포도밭이고 풀들은 최고의 음식이 된다. 포도밭에서 꿀맛 같은 점심을 먹으면서 내 시도 포도밭의 풀처럼 누군가에게 영혼을 살찌우는 음식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행복한 상상에 잠긴다. _ 풀밭 위의 점심식사 나는 포도나무에게 포도주도 먹이고, 포도즙도 먹이고, 포도순으로 만든 녹즙도 먹이고 있다. 제 몸에서 난 것이자 제 몸의 밥이니 약으로 삼는 것이다. 자연은 그렇게 순환한다. 그런 순환의 세상에 필요 없는 것은 없다. 필요 없다면 조물주가 왜 힘들여 만들었겠는가. 포도밭 일은 복잡할 것 같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매우 단순하다. 그 단순함 속에서 우주와 자연의 진리는 더 분명하게 보인다. _ 단순함이 주는 행복 이런 가뭄은 처음 본다. 우물을 파서 양수기로 퍼 올리지만 나무들에게는 턱없이 부족하다. (…) 포도밭에는 가뭄이 최악의 재해다. 타들어가는 포도밭을 보고 있으면 내 마음도 깊게 타들어간다. 그래서 가뭄은 나무를 생과 사를 가늠할 존재의 기로에 서게 한다. 흙도 윤기가 없이 푸석푸석하다. 그런 흙에서는 생장력이 강한 잡초들도 잘 자라지 못한다. 이때의 애타는 심정을 농부 말고 또 누가 알 것인가. _ 속 타는 포도밭 우리 포도밭은 관행농법처럼 나무 밑을 파서 거름을 넣지 않는다. 뿌리가 손상을 입을 뿐 아니라 발효가 되지 않은 거름은 뿌리에게도 해로울 수 있다. 땅을 파지 않고 연못에 잉어 밥 주듯 거름을 땅에 흩뿌린다. 발효가 되지 않은 거름은 지렁이와 미생물이 분해한다. 미생물에 의해 잘 정제된 거름은 나무가 천연의 밥으로 먹게 되어 나무는 튼실하게 성장하여 맛있는 과실을 맺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자연의 선순환이다. _ 포도나무도 다이어트를 한다? 나는 지렁이 배설물을 이용해서 다양한 실험을 해보았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흙 없이 지렁이 배설물만으로도 작물을 훌륭하게 키울 수 있었다. 당근, 무, 배추를 약 한 번 쓰지 않아도 윤기가 흐르고, 즙도 풍부하고, 향이 짙었으며 단맛이 강하게 났다. 지렁이의 배설물은 본질적으로 흙이다. 흙이 지렁이의 몸을 거쳐 나오면서 건강을 되찾은 것이다. _ 곰팡이 삼형제에 맞서기 간혹 포도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어깨가 무너지는 나무도 있다. 그래서 아버지는 봄이면 철사로 포도나무를 일으켜 세우고 나무 무게도 줄여보려고 하지만, 생명이 다한 포도나무를 다시 살릴 수는 없다. 그런 나무들을 보고 있으면 가슴이 아프다. 25년 동안 한 해도 거르지 않고 내게 옷을 사주고, 집을 주고, 학비도 대주고, 시인이 되게 해준 포도나무들. 지금은 내 자식들의 학비를 위해서 묵묵히 일하는 포도나무가 그저 안쓰럽기만 하다. _ 나무가 짊어진 무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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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한 흙에서 건강한 인생을 배우다
무엇보다 류기봉 포도밭의 가장 큰 미덕은 건강함이다. 포도밭의 흙을 조금만 들춰도 크고 건강한 지렁이들이 활개를 치며 흙 속을 돌아다닌다. 건강한 흙에서만 볼 수 있는 특별한 모습이다. 류 시인은 “흙이 건강해야 포도나무가 건강하고, 결국 그 열매를 먹는 사람도 건강해진다”고 믿는다. 그래서 류기봉 포도밭의 확고한 원칙 중 하나가 바로 유기농법이다. 이 포도밭의 포도나무들은 화학농약을 한 방울도 구경하지 않은 자연산 포도를 생산한다. 그러나 그도 처음부터 유기농법을 시작한 것은 아니었다. 평상시처럼 포도밭에 제초제를 뿌리던 여름 어느 날, 갑자기 이상한 경험을 하게 된다. 분무기로 뿜어대는 물살에 들풀들의 흐늘거림이 마치 자신을 향해 “살려달라”고 애걸하는 몸부림으로 보였던 것이다. 이 일을 계기로 그는 포도밭에서 소중한 깨달음을 얻었다. 바로 “풀들도 생명이 있다. 그러니 구원을 주고 사랑을 해주어야겠다. 이것이 기독교에서 말하는 예수님의 사랑이고, 동학의 생명사상”이라고. 이렇게 시작한 유기농법은 출발부터 시행착오가 많았다. 농약을 치지 않고 농사를 힘들게 짓다보니 어느 해에는 5000평의 포도밭에서 포도수확을 고작 200만원어치밖에 거두지 못했다. 다행히 이제는 포도나무들도 화학비료가 아닌 자연비료에 잘 적응해서 맛좋고 영양 만점인 류기봉의 유기농 포도들을 많이 생산해내고 있다. 사람의 몸으로 들어가는 먹을거리를 생산하는 농부로서 그는 이제 자신 있게 말한다. “건강한 흙에서 건강한 포도가 나오고, 건강한 사람이 건강한 인생을 낳는다.” 문화의 향기가 흐르는 류기봉 포도밭 또한 류기봉 포도밭에는 문화의 향기가 물씬 풍긴다. 포도밭 한쪽에 놓인 중고 카세트에서는 바흐, 모차르트의 클래식 음악이 흘러나온다. 김춘수, 박완서, 정현종, 이문재 등 20여 시인들의 포도나무 앞에는 문인들의 친필 시가 걸려 있다. 매년 포도 수확철인 9월 첫 번째 주말에는 문인들과 일반손님들을 초청해 ‘포도밭 작은 예술제’를 열고 있다.(올해로 9회째를 맞는다. 아래 별첨 참고) 이 행사는 프랑스의 포도축제를 둘러본 (2)김춘수 선생님의 제안으로 시작되었다. 이 날에는 한 해 포도수확을 축하하고, 문인들의 시 낭송과 그림전시, 흙 밝기 등 다양한 행사가 펼쳐진다. 포도와 함께 익어가는 가을을 맞아 열리는 포도밭의 문화축제를 통해 자연과 사람, 그리고 문화가 하나 되는 소중한 시간을 갖고 있다. 땅에 뿌리박은 농부의 고달픈 삶, 그래도 살아가리라 “유기농을 하는 농부들은 이중삼중의 어려움을 겪고 있다. 화학농법에 길들여진 부모 세대로부터 외면당하고 실패할 확률도 많다. 성공해도 돈벌이가 되지 않는다. 유기농은 자기와의 외로운 싸움이다.” 이문재 시인의 말처럼 류기봉은 이 땅에서 농부로 살아가는 고달픔과 어려움도 토로한다. 한?칠레 자유무역협정이 체결된 날이 갑자기 ‘애플데이’로 둔갑하여 농부들의 눈물을 감추고, 가정환경조사서에 농부 아빠가 창피해서 몰래 시인이라고 적어놓는 딸내미를 보며 정신이 퍼뜩 나기도 한다. 또 배고픈 농부이자 시인 남편을 대신해 항상 일을 해온 아내의 모습을 지켜보는 힘없는 남편은 남모래 눈물을 흘린다. 그러나 그는 희망을 버리지 않는다. 영혼을 살찌우는 시인, 또 몸을 살찌우는 포도농사를 짓는 농부, 이 두 삶이 류기봉 자신을 든든한 나무뿌리처럼 받치고 있기 때문이다. “기봉아, 나무에게 너무 많은 짐을 짊어지게 하지 말거라. 욕심 부리지 않고 다 가볍게 사는 게 좋은 거다.” 농부시인 류기봉은 오늘도 아버지의 말씀을 가슴에 새기며 장현리 포도밭의 행복한 지킴이로 살아가리라 굳게 다짐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