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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내면서
한국 조각계의 거목 김세중 ㅣ 김영나 전후 김세중의 생각 ㅣ 최열 고독하지만 행복했던 예술가 김세중 ㅣ 김동훈 김세중의 종교 조각 - 미와 진리를 향한 조형 언어 ㅣ 최태만 예술적 창작과 종교적 고백의 겹침 - 김세중의 여인 조각상들 ㅣ 김정희 김세중 기념 조형물의 이미지 형성 요소 ㅣ 조은정 신의 부름으로 조각의 짐을 진 김세중 ㅣ 신현중 김세중 연보 |
김영나의 다른 상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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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 세종로 네거리에 우뚝 선 「충무공 이순신 장군상」을 모르는 사람은 아마 거의 없을 것이다. 현재 대한민국 상징적 이미지의 하나가 된 「충무공 이순신 장군상」은 오늘도 높은 자리에 서서 늠름한 모습으로 한국인의 삶을 지켜보고 있다.
이 유명한 이순신 장군상을 조각한 예술가가 바로 책의 주인공 김세중이다. 그는 「충무공 이순신 장군상」뿐만 아니라 여러 다양한 기념 조각, 종교 조각, 순수 조각 등을 제작하여 다방면에서 자신의 예술 세계를 확장했고 그 과정에서 많은 이에게 예술적 감화를 끼쳤다. 그는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학장, 한국미술협회 이사장, 국립현대미술관 관장 등을 역임하여 미술계의 발전에 이바지한 공로 또한 지대한 예술가였다. 이같은 김세중의 다양한 업적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조각가로서 그가 남긴 발자취를 찾기 위한 움직임은 다소 부족했던 감이 있다. 김세중이 미술계에 미친 영향을 고려할 때 그의 삶과 작품 세계를 재조명하는 작업은 우리 예술계를 정리하는 측면에서도 반드시 필요하다. 올해는 조각가 김세중이 세상을 떠난 지 꼭 20년이 되는 해로 오는 9월 13일부터 성곡미술관에서 「김세중조각상20주년기념전」이 개최될 예정이다. 이에 맞추어 7명의 필진이 김세중의 예술 세계를 추적해 간 본서의 출간은 더욱 의미가 깊다. 김세중은 한국 조각계에 길이 남을 위대한 작품을 다수 창작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규모가 큰 조형물이 많아 전시 공간 확보가 곤란한 이유 등에서 생전에 따로 개인전을 가진 적이 없었다. 따라서 본서는 창작 생활 40년 동안 김세중이 남긴 작품들을 총망라하여 보여준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깊다. 한평생을 예술에 대한 열정 하나로 살아온 위대한 조각가 김세중의 예술 세계를 하나하나 되짚어 보면서 예술가로 산다는 것의 의미를 생각해 보고, 동시에 창작의 고통을 기꺼이 짊어진 한 예술가의 삶의 여로와 그 삶이 잉태한 작품을 성찰할 수 있는 소중한 기회를 가질 수 있을 것이다. 조각가 김세중은 누구인가 1928년 경기도 안산에서 출생한 김세중은 18세 때 시인 릴케가 쓴 『로댕 어록』을 읽고 감동을 받아 조각가의 길을 걷기로 결심하였다. 서울대학교 조소과 제1기생으로 입학한 그는 당시 교수로 재직 중이던 장발의 영향으로 가톨릭에 입교하였는데 이는 그가 이후 일생에 걸쳐 종교 조각을 탐구하는 계기가 되었다. 대학 졸업 이후 프랑스 유학을 계획했던 그는 6ㆍ25 전쟁으로 꿈을 접을 수밖에 없었고 피란 시절 마산 성지여고에서 미술교사로 제직할 때 같은 학교 국어교사로 있던 시인 김남조를 만나 1955년에 결혼하였다. 김세중이 본격적인 작품 활동을 시작한 것은 서울대학교 전임강사로 임명된 1954년 이후로 30년이 넘는 창작 기간 동안 「충무공 이순신 장군상」을 비롯한 다양한 공공 조형물과 종교 조각, 순수 조각 등을 창작하였다. 그러나 그의 예술적 행보는 순수 예술가로서의 활동에만 그치지 않았다.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교수로서 후학들을 양성하는 데도 큰 공적을 세웠고 한국미술협회 이사장, 국립현대미술관 관장 등을 역임하면서 미술 행정가로서도 많은 업적을 남겼다. 작품 창작과 미술 행정 양 방면에서 괄목할 업적을 남겼던 김세중은 1986년 58세 되던 해에 지병과 과로로 인해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