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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에 싸여
뜻밖의 여인 연민의 개울가에서 새로운 세대 꽃잎은 떨어지고 절망의 늪 꿈속을 헤매며 번뇌의 숲을 헤치고 굴복이냐 싸움이냐 굴레에서 벗어나 영원한 이별 불협화음 무당의 춤 할아버지의 죽음 쫓겨난 사람 죽음과 탄생 결단의 날 작별을 위하여 뱃머리에 서서 역자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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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온몸이 심하게 떨려왔다.
‘내일 펑러산의 첩으로 간다’는 말이 가죽채찍처럼 머리를 세차게 내리쳐 머리가 곧 깨져버릴 것 같았다. 문을 나서자 비참하게 울부짖는 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았다. 갑자기 눈앞이 캄캄해지고 주변이 쥐죽은 듯 고요해졌다. 이 망망한 하늘과 땅 사이에 도대체 내가 갈 곳은 어디인가? 그는 넋을 잃은 사람처럼 어둠 속을 배회했다. (…) 그는 이제야 겨우 깨달았다. 밍펑이 조금 전 자기를 찾아온 것은 죽는 것보다 더한 고통을 안고 자기에게 구원을 청하러 온 것이라고. --- p.8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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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저우씨의 방에서 조그만 가족회의가 열렸다. 모인 사람은 저우씨, 쥬에신 부부, 수화 그리고 쥬에후이였다. 모임은 쥬에후이 혼자서 나머지 사람들에게 심문당하듯 몰리는 상황이었다. 회의라고는 해도 처음부터 쥬에후이에게 쥬에민의 거처를 말하고 쥬에민을 데려오라 강요하기 위해 모인 것이었다. 그들은 그럴 듯한 온갖 말로 쥬에후이를 달랬고 심지어는 그 혼사를 취소시키는 데 모든 힘을 다할거라는 말까지 나왔다. 그러나 쥬에후이는 완강하게 버텼다.
--- p.17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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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 물론 나는 형을 사랑해요. 과거에 우리는 서로 이해할 수 있을 정도로 가까웠지요. 하지만 지금은 너무 멀어졌어요. 형은 나보다 형수님과 메이 누님을 더 사랑하셨지요. 그런데 형은 어째서 다른 사람들이 그들을 짓밟도록 내버려두고 심지어 형수님을 그렇게 참혹한 지경으로 몰아넣었습니까? 그때 형이 조금만 더 용감했더라면 형수님을 구했을 게 아닙니까! 하지만 지금은 너무 늦었어요. 그런데도 뭐가 부족해서 또 나에게 형을 따르라는 겁니까? 형! 나도 형을 사랑하지만 이 점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어요. 형도 이제부터 제발 그런 말로 내게 권유하지 마세요. 형을 원망하고 원수로 여기지 않도록 말입니다.”
--- p.28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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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세대의 몰락, 새 세대의 부상
『가』의 배경이 되는 대지주 가정은 그 자체로 작은 봉건 왕국이다. 모든 가족들 위에 제왕처럼 군림하는 할아버지, 그런 할아버지에게 굽신거리며 비위나 맞추려 드는 비열한 숙부들, 허울 좋은 부잣집 도련님으로 태어났지만 정작 자신이 원하는 것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쥬에후이 삼형제와 그 사촌들…. 이들을 중심으로 바진은 봉건제도에 찌든 구세대가 몰락하고 신문화로 무장한 젊은 세대들이 부상하는 모습을 조명한다. 급진적이고 열정에 넘치지만 다소 경솔하고 부주의한 막내 쥬에후이는 생각보다 행동이 앞서는 청년으로, 급변하는 당시 사회에서 가장 필요로 했던 인물상이라고 할 수 있다. 신문화를 신봉하면서도 온건한 태도를 유지하는 둘째 쥬에민은 섣부르게 행동하지 않으면서도 현실적으로 자신의 사랑을 끝까지 지켜낸, 영민한 인물이다. 그리고 권위에 복종하는 것으로 가정의 화목과 자신의 평안을 얻으려는 첫째 쥬에신은 학교에서 신문화를 배운 엘리트 청년이었으나 원치 않는 결혼과 장손으로서의 책임 앞에서 너무도 쉽게 자신의 의지를 꺾고 낡아빠진 가부장제의 족쇄에 갇혀버렸다. 쥬에민과 쥬에후이에게 있어서 가족들의 어떤 불합리한 요구에도 저항할 줄 모르는 쥬에신은 난관을 함께 극복해야 할 동지라기보다는, 맞서 싸우고 저항해야 할 대상이다. 쥬에신은 무거운 짐을 지고 삶을 지탱하기 위하여 안간힘을 썼지만, 결국 동생들의 믿음을 잃었을 뿐 아니라 사랑했던 두 여인―메이와 아내 우이쥬에―을 고통 속에서 떠나보내야 했다. 그러나 쥬에후이와 쥬에민이 봉건예교의 수호자인 조부와 숙부들의 권위에 반항하며 새로운 세계를 자신들의 삶으로 구체화시키는 과정에서 쥬에신과의 극적인 화해가 이루어진다. 쥬에신은 그동안 자신을 짓눌렀던 삶의 무게를 떨쳐버리고, 집을 떠나고 싶어하는 쥬에후이를 가족들 몰래 배에 태워 보낸다. 이 화해의 지점에서 할아버지의 권위는 무너지고, 숙부들의 추하고 진실하지 못한 행동으로 표상되는 구세대는 새로운 세대에게 자신들의 자리를 내준다. 바진은 쥬에후이 형제들뿐 아니라, 그들을 둘러싼 여성들의 삶으로도 시대의 변화를 또렷이 보여준다. 집안의 반대로 쥬에신과 헤어질 수밖에 없었던 메이는 남은 삶을 완전히 포기한 채, 무기력하게 자신의 생이 끝나기만을 기다린다. 쥬에후이와 사랑했던 하녀 밍펑이 펑러산의 첩으로 가길 거부하며 적어도 자신의 죽음을 스스로 선택했던 것과는 달리, 메이는 그녀를 억압하는 권위에 단 한 번도 저항하지 못했다. 죽음이 나약한 그녀를 거두어갈 때까지 그녀의 삶은 고통으로 얼룩져 있었다. 그러나 그녀의 비극적인 삶이 아무것도 남기지 못한 것은 아니었다. 제 2의 메이가 되지 않겠다는 결심으로 무장한 친은 결국 사랑을 쟁취하고 용감하게 사회에 발을 내딛는다. 윗세대의 요구에 이리저리 이끌려다니던 쥬에신과 메이의 시대는 가고, 고통스러운 현실을 극복할 방법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 외엔 없었던 밍펑의 시대도 이윽고 막을 내렸다. 세계인의 필독서로 자리잡은, 중국 문학의 고전 바진은 1904년에 태어나 101세의 나이로 삶을 마감할 때까지 중국 근현대 100년을 고스란히 온몸으로 겪어내며 거짓 없이 역사를 증언해온 ‘인민작가’다. 『가』는 바진의 출세작이자, 그를 문화대혁명의 깊은 수렁으로 끌어내린 작품이기도 하다. 조반파들은 이 소설을 ‘인민의 독초’라며 바진을 모질게 질타했다. 이 작품에는 당대 젊은이들이 처한 현실과 그들이 갈망하던 꿈의 세계가 생동감 있게 펼쳐진다. 봉건적 권위로부터 사랑을 지켜내고자 하는 청년들의 투지와 낭만 그리고 신문화에 대한 주인공들의 열망과 고뇌가 녹아 있는 『가』는 당대가 원하는 감성과 지성, 용기와 판타지를 충족시키기에 충분했다. 이 책은 단숨에 신문학 최초의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1980년대에 『가』는 한국의 수많은 젊은이들에게도 자유와 새시대를 향한 열망을 불어넣은 필독서로 널리 알려졌고, 학생들은 대학 중국어학과의 강독자료를 구해서 읽을 정도로 열성을 보였다. 홍콩의 〈아주주간〉에서 선정하는 ‘중국문학 100선’에서 언제나 최상위를 차지하는 『가』는 중국문학을 이해하기 위해 반드시 읽어야 할 고전으로 세계 각국에 번역되어 읽히고 있다. 『가』는 그동안 저작권 계약 없이 산발적으로 소개되는 데 그쳤던 중국의 근현대 명작들을 제대로 번역 출간해, 우리 교양의 지평을 넓히자는 취지로 기획된‘황소자리 출판사’의 ‘중국 현대소설선’시리즈 첫 번째 책이다. 황소자리에서는 ‘격류삼부작’인 『봄春』『가을秋』과 선총원의 『변성』등을 비롯, 우리에게 널리 알려지거나 이제껏 소개되지 않는 중국 현대 명작들을 연이어 출간할 계획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