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沈從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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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천四川에서 호남湖南으로 가는 길에 관가에서 닦은 도로 하나가 동쪽으로 나 있다. 이 길을 따라 가노라면 호남 서쪽 경계 부근에 다동茶?이라 불리는 작은 산성이 나타난다. 거기에 작은 강이 하나 흘러 지나가는데 강가에는 작은 흰 탑이 세워져 있고 그 탑 밑으로 외딴 인가가 한 채 보인다. 이 집에 한 노인과 여자애 그리고 누렁 개 한 마리가 함께 살아가고 있었다. --- p.15
바람과 햇빛 속에서 취취는 커갔다. 볕에 그을은 피부는 가무잡잡하고 푸른 산과 푸른 물만을 보아온 두 눈은 수정처럼 맑았다. 자연이 길러내고 가르쳤는지라 그녀는 순진하고 발랄하며 작고 귀여운 들짐승같았다. 마냥 착하기만 해서 산마루에 서 있는 아기 사슴처럼 세상 잔인한 일들은 생각조차 해본 적 없고, 근심을 해본 적도, 화를 내본 적도 없었다. 종종 나룻배에서 낯선 사람이 자기를 바라보기라도 할 양이면 맑은 눈망울로 그를 빤히 쳐다보다 금방이라도 깊은 산 속으로 도망갈 듯한 자세를 취하곤 했다. 그러다 손님에게 별다른 나쁜 마음이 없다는 걸 알고 나면 다시 태연히 물가에서 장난치며 놀았다. --- pp.19~20 아버지는 두 아들이 아주 어릴 때부터 큰아들은 모든 면에서 자기와 닮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런데도 사랑은 둘째에게 점점 더 갔다. 이런 은근한 속마음 때문에 그는 맏이를 천보天保라 이름짓고 둘째를 나송儺送이라 이름지었다. 그 뜻으로 말하면, 하늘이 보호하는 사람은 인간사에 있어서 때로 안 맞아 삐걱거릴 수도 있지만, 이곳 풍속에 따라 나신儺神이 보낸 사람은 결코 무시할 수 없다는 의미였다. 나송은 매우 수려한 외모를 지니고 있었다. 다동의 뱃사람들은 그의 아름다움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몰라 ‘악운岳云’이라는 별명을 달아주었다. 비록 누구도 제 눈으로 직접 악운을 본적은 없지만 대개 연극에 나오는 청년 악운과 비슷한 분위기를 느꼈기 때문이었다. --- pp.37~38 “둘째 도련님이 어찌하여 제가 여기 강가에 있는 걸 아셔요?” 취취가 묻자 그 사나이가 웃으며 대답했다. “강에서 오리를 잡아가지고 와서 알리던데. 부두에서 보았다면서. 그리고 호의로 집에 와서 할아버지를 기다리라 했다가 되레 욕까지 먹었다고 하던데.” 취취는 놀란 소리로 물었다. “그 둘째 도련님이 누구예요?” 사나이가 놀라 도로 물었다. “둘째 도련님도 모르니? 강가 거리의 나송 도련님 말이야, 바로 악운이라는 사람이지. 그분이 나더러 너를 집으로 데려다주라고 했는데!” --- p.56 취취는 하루하루 몰라보게 커가고 있었다. 무의식중에 뭘 말하고서는 얼굴까지 빨갛게 물들었다. 시간은 그녀를 자라게 할 뿐 아니라 얼른 크라고 재촉하는 듯했다. 마치 다른 어떤 일에 책임을 지게 하려는 듯. 취취는 얼굴에 분을 바른 새색시를 보는 것이 즐겁고 그녀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 것이 좋았다. 들꽃을 꺾어 머리에 꽂거나 노래를 듣는 것이 기분 좋았다. 다동 사람들의 노래 속 애절한 부분의 의미도 이제 알게 되었다. 그녀는 가끔 외로운 듯 바위 위에 홀로 앉아 구름이나 별을 바라보곤 했다. --- pp.74~75 취취는 이 낯선 사람의 호의가 뭔지 잘 알 수 없었다. 왜 꼭 자기 집에 가서 구경하라 하는지도 몰랐다. 그녀는 입을 다물고 조용히 웃었다. 그리고 나룻배를 돌렸다. 집 쪽 기슭에 배를 댄 후 문득 보니 그 사람이 강 건너 작은 산에서 누굴 기다리듯 떠나지 않고 있었다. 취취는 집으로 돌아와 아궁이에 불을 지폈다. --- p.99 “자네 생각엔 취취가 좋다 하는데 내가 마다할 것 같은가?” “아니에요. 저희들 생각엔 노인장이 승낙을 하시면 취취가 그냥 따를 것 같은데요.” “그렇게 말해선 안 되네. 이건 취취의 일일세!” “그녀의 일이긴 합니다만 아저씨께서 주관하실 일이죠. 해가 뜨나 달이 뜨나 3년 반 노래 불러주는 게 아저씨 말씀 한 마디보다 못하다는 걸 다들 알거든요!” “정 그렇다면 이렇게 해보자고. 큰도령이 사천 동쪽에서 돌아오면 아버님께 분명히 말씀드리고, 그리고 나는 말이지, 먼저 취취한테 묻는 걸세. 취취가 만일 3년 반 동안 노래를 들어야만 직성이 풀려 그 노래하는 사람을 좋아할 것 같으면 내 다시 자네를 불러 큰도령더러 구불구불 가기 힘든 말 길을 택하라고 권하도록 하겠네.” --- pp.107~108 “일이 성사만 되면 참 좋겠네! 새 방앗간을 혼수로 한다던데 그렇다면야 일꾼 열 두는 것보다 낫지.” 옆에서 누군가가 물었다. “둘째 도령은 어떻대요? 좋다 한대요?” 누군가가 소리를 낮춰 말했다. “둘째 도령은 이미 말했대요. 만나볼 필요 없다고. 우선 방앗간 주인이 되고 싶지 않다고 했대요!” “악운 도령이 직접 말하는 걸 들은 거예요?” “다른 사람한테서 얻어들었어요. 그리고 또 나룻배 사공이 좋다나 뭐라나 하더라슴군요.” “바보도 아닌데 방앗간을 마다하고 나룻배를 갖겠다 말하다니!”--- p.111 모든 것은 시간 속에서 변하게 마련이다. 이 집안의 조용하고 평범한 일상도 연이어 밀려오는 나날 속에서 벌어지는 여러 가지 일들로 인해 깨지고 있었다. 순순 선주 댁에서는 천보 도령의 일을 둘째가 알게 되었고 둘째 나송도 자신의 마음을 형에게 알렸다. 고락을 함께 한 두 형제는 알고 보니 모두 사공 노인의 외손녀를 사랑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런 일은 이 고장에서 그리 드문 일도 아니었다. --- p.127 둘째 도령은 노래부를 기회가 있었는데도 다시는 벽계저로 가지 않았다. 15일이 지났다. 16일도 지나고 17일이 되었다. 사공 노인은 더는 참을 수가 없어 성 안의 강가 거리 쪽에 가서 그 젊은이를 찾아보려 길을 나섰다. 사공 노인이 막 성문 옆에서 강가 거리 쪽으로 들어서려는데 마침 지난번 큰도령 중매쟁이로 왔었던 마병 양씨를 만났다. 그는 노새 한 마리를 끌고 성 밖으로 나가려는 참이었다. 양씨는 사공 노인을 보자 덥석 손을 잡으며 말했다. “아저씨, 알려드릴 일이 있어요. 마침 성 안으로 잘 오셨네요.” “뭔 일인데?” “천보 큰도령이 배를 타고 하류 쪽으로 내려가다가 자탄에서 사고가 났어요. 눈깜짝할 사이에 여울 아래 소용돌이에 빠져들어 그만 죽었대요. 아침에 순순 선주 댁에서 이 소식을 들었는데 둘째 도령은 아침 일찍 그리로 갔다는군요.” --- pp.152~153 사실을 말하자면 둘째 도령은 아버지와 한바탕 말다툼까지 하고 도원으로 가버린 것이었다. 선주는 호방하고 시원시원한 사람이지만 첫 아들을 그렇게 간접적으로 죽게 만든 처녀아이를 둘째 아들의 아내로 맞아들이고 싶지는 않았다. 이는 아주 명백한 일이었다. 이 고장 풍습대로라면 젊은이들 일에 어른들이 이래라 저래라 관여하지는 않았다. 둘째 아들이 취취를 사랑하고 취취 역시 둘째 아들을 좋아한다면 선주 자신도 애증이 얽힌 이 결혼을 끝끝내 반대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런데 뭔지 모르지만 사공 노인이 이 일에 지나치게 열중하는 것을 보고 이들 부자는 오히려 그에게 오해가 생겼던 것이다. --- p.181 깜짝 놀라 허겁지겁 달려가보니 흰 탑은 이미 무너졌고 벽돌만 무더기로 어지럽게 흩어져 있을 뿐이었다. 취취는 어찌 할 바를 몰라 겁에 질린 목소리로 할아버지를 연달아 불렀다. 그러나 할아버지는 일어나지도 않았고, 대답도 없었다. 급히 뛰어가 침대 곁으로 가서 한참을 흔들었으나 할아버지는 꼼짝도 하지 않았다. 사공 노인은 비가 멎고 천둥번개가 사라질 때쯤 이미 저세상으로 떠났던 것이다. 취취는 울음을 터뜨렸다. --- p.18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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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산이 사는 뜻을 내게 묻기에, 대답 없이 웃으니 마음이 절로 한가해라. 복사꽃 강물에 흘러서 아득히 사라져, 별도로 인간세상 아닌 천지가 있어라. ― 이백의 시〈산중에서 속인에게 답하다〉
유행이나 시류에 관계 없이 환상적이고 순결한 ‘낙원’의 이미지는 사람들을 강하게 매료시킨다. 잃어버린 유년의 기억 혹은 이상향에 대한 절절한 그리움을 담아낸 문학작품들이 오랜 시간 독자의 사랑을 받는 것은 바로 그 때문이다. 우리에게 〈소나기〉 속 산골마을이 순수하고 때 묻지 않은 공간의 원형으로서 자리잡고 있다면, 중국에서는 『변성』의 공간이 그러하다. 강이 산을 감돌아 흘러가는 작고 조용한 마을. 언덕 위에 세워진 흰 탑 아래 외따로 서 있는 집 한 채. 그곳에 살며 나룻배를 끌어 사람들을 건네다주는 사공 노인과 바람과 햇빛 속에서 자라는 그의 손녀 그리고 그들 곁을 지키는 누렁 개 한 마리. 내지 않아도 될 삯전을 내겠다고 고집을 피우는 손님과 한사코 받지 않겠다며 사양하는 사공……. 중국 전원문학의 최고봉 향토색 짙고 유연한 문장으로 독자를 사로잡는 이 작품 『변성邊城』은 중국 고유의 이상향을 드러낸 전원문학의 최고봉이다. 아직 문명의 손때가 묻지 않은 한 시골 마을을 배경으로 사공 노인과 손녀 취취 그리고 그녀를 둘러싼 두 젊은이의 엇갈린 사랑을 그려낸 이 소설에서, 작가 심종문은 자연에 순응해 사는 삶의 풍요로운 아름다움을 미려하고 애잔하게 보여준다. 심종문이 『변성』을 완성한 것은 작가로서 완숙한 경지에 도달했던 1930년대 초반이었다. 제국주의의 침탈로 황폐해진 현실 속에서 개인 삶의 건강성이 무참히 훼손되던 그 시대. 심종문은 역사의 거대한 수레바퀴에 짓눌리지 않은 자잘한 행복을 통해 당대 보통 사람들을 위무하고 싶다는 소망으로 이 작품을 탈고했다. 하지만 사회변혁을 외치는 목소리와 사실주의 풍조가 휩쓸었던 당시 문단에서 『변성』의 빼어난 예술성은 제대로 평가받지 못했다. 북경대에 재직하던 시절에는 “입장이 없는 기녀 작가”라는 벽보가 나붙었고, 문화대혁명 기간에는 자본주의 반동작가로 낙인찍혀 문단에서 쫓겨나기도 했다. 걸작은 모진 시련을 견딘 후에 그 진가가 돋보이는 법이다. 짧지 않은 어둠의 터널을 빠져나오자 『변성』이 지닌 몽환적이고 비의적인 풍격을 예찬하는 독자가 늘어갔고 그의 문학세계는 국제적으로 재평가되기 시작했다. 1988년 심종문이 노벨문학상 최종심 후보에 오르면서 세계적으로 읽히기 시작한 이 작품은 홍콩의 저명한 시사주간지 〈아주주간亞洲週刊〉이 발표한 ‘20세기 중국소설 100강强’에서 노신의 『납함訥喊』에 이어 2위를 차지했다. 작품을 완성한 것이 1934년 봄이었으니, 지루하리만치 긴 시간을 견뎌 제 가치를 인정받은 셈이다. 오래된 미래를 위한 사랑의 송가 이야기는 사천과 호남 두 성의 접경인 다동성茶?城 인근 나루터로부터 시작된다. 무릉도원이란 바로 이런 곳을 두고 말하는 것 아닐까 싶은 그곳에 50년 간 나룻배를 끌어온 사공 노인과 손녀가 함께 살고 있었다.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의 결실로 태어난 아이는 작은 들짐승처럼 귀엽고 싱싱하게 자랐다. 취취翠翠라는 이름을 가진 이 소녀에게 돌아오는 명절만큼 즐거운 것은 없었다. 자연의 품속에서 살아온 그녀가 성 안에서 만난 문명의 활기와 속도는 잊을 수 없을 정도로 짜릿했다. 뿐만 아니었다. 그러니까, 2년 전 단오 때였다. 왁자한 축제의 어스름 속에서 취취는 나송儺送이라는 청년을 만났다. 묘한 감정이 봄바람과 함께 그녀를 스쳤지만, 티 없이 순진하게만 자라온 소녀는 그게 무언지 깨닫지 못했다. 다만 그날의 일을 떠올리며 때때로 알 수 없는 기분에 사로잡힐 뿐……. 나송 역시 취취에 대한 연정을 키워가고 있을 무렵, 그들은 서로를 향한 징검다리를 건너기도 전에 어긋나기 시작했다. 나송이 멀리 떨어진 고장에서 명절을 보냈던 해에 그의 형인 천보天保가 우연히 그녀와 마주쳤던 것이다. 형제의 마음은 동시에 한 소녀에게로 달음질쳤다. 얽힌 감정은 예기치 않은 비극을 불러왔다. 취취의 마음이 나송에게로 향하고 있다는 사실에 낙담한 천보는 긴 뱃길에 올랐다가 죽음을 맞이하고, 마을의 지주나 다름없는 순순 선주 부자에게 이 사건은 씻을 수 없는 상처가 되었다. 가련한 손녀가 행여 자기 어머니의 불행을 답습하지는 않을까, 걱정에 사로잡힌 할아버지는 나송과 취취를 맺어주기 위해 갖은 애를 썼지만 한 번 비틀린 운명의 끈을 풀어내기에 그의 노력은 턱없이 무력했다. 자신이 모든 일을 그르쳤다는 죄책감이 사공 노인의 몸과 마음을 아프게 짓눌렀다. 그리고 어느 폭우가 쏟아지던 밤, 며칠이나 앓아누웠던 노인은 마치 비에 씻겨가듯 숨을 거두고 말았다. 취취는 혼자 남튾다. 할아버지의 죽음은 이제껏 깨닫지 못했던 소녀 안의 감정을 또렷하게 일깨웠다. 하지만 나송은 그곳에 없었다. 소설의 마지막 구절이 오랫동안 마음에 남아 아른거리는 것은 흡사 잃어버린 기억을 떠올려주듯 순정한 이 사랑 이야기가 부디 비극으로 끝나지 않기를, 소녀의 기다림이 너무 길지는 않기를 바라는 간절함 때문일 것이다. “어쩌면 그 사람은 영원히 돌아오지 않을 수도 있다. 또 어쩌면 바로 ‘내일’ 돌아올지도 모른다.” 정재서 교수의 번역으로 새롭게 태어난 『변성』 심종문은 국내에서도 적지 않은 애호가를 거느린 작가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대표작인 『변성』이 그동안 국내 독자들과 제대로 된 번역본으로 만나지 못했던 이유는 소설 특유의 향토색 짙은 방언과 몽환적이고 아련한 분위기를 독자들에게 섬세하게 전달하기 어렵다는 이유가 컸다. 『산해경 역주』와『이야기 동양신화(1,2)』등으로 잘 알려진 이화여대 정재서 교수는 시적 비유 가득한 이 소설을 번역하며, 단어 하나하나의 숨결과 행간의 아취를 독자들이 생생하게 느낄 수 있도록 3년여에 걸친 긴 시간 동안 공력을 들였다. 설명이 필요한 부분에 주석을 다는 것은 물론, 홍콩 및 대만 등지에서 발간된 여러 개의 판본을 대조하고 『중한대사전』의 오류를 잡아낼 정도로 꼼꼼하게 원고를 어루만져 만들어낸 한국어판 『변성』은 걸작의 감동을 순도 높게 전달한다. 황소자리 ‘중국 현대소설선’ 세 번째 책으로 『변성』을 선정하며 황소자리에서 그동안 산발적으로 소개되는 데 그쳤던 중국 근현대 명작들을 제대로 번역 출간하자는 취지로 ‘중국 현대소설선’ 시리즈를 기획한 이래 세 번째 목록으로 『변성』을 올리는 것은, 중국 현대문학에 대한 우리의 편향된 시각에서 벗어나 보다 넓은 시야를 확보하는 데 이 소설만큼 훌륭한 작품이 없기 때문이다. 역자인 정재서 교수 역시 우리가 『변성』을 읽지 않는다면 중국 현대문학의 아주 중요한 측면을 외면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단언한다. 이 사랑스러운 소설을 읽으며, 독자들은 우리가 잃어버린 낙원, 삶의 건강성을 선명히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모쪼록 이번 책이 젊은 세대들에게 심종문의 작품뿐 아니라 중국 문학을 제대로 알리는 신호탄이 되기를 간절히 바라며, 황소자리에서는 『가(1,2)』『낙타샹즈』『변성』에 이어 우리가 제대로 만날 수 없었던 중국 현대 명작들을 시리즈로 출간할 계획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