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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나는 가수가 되었다. 많은 사람이 한 푼도 내지 않고 노래를 들을 수 있는 가수가 된 것이다. 돈을 들이지 않으면 아무런 가치가 없다고들 믿는다. 하지만 나는 돈을 들이지 않는 것이야말로 정말 소중하다고 생각한다.
--- p.1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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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사실 느긋하게 살지 못한다. 세상은 긴장하며 사는 사람들로 가득 차 있다. 이들은 두려움을 가져다주는 모든 것을 불안해한다. 사랑, 삶, 죽음, 질병, 가난을 두려워하고 자유와 자기 자신조차도 두려워한다. 느긋함이야말로 마법과 같은 말이다. 인간이 살 수 있는 세월은 두 자리 숫자에 불과하다. 이것은 너무 짧은 세월이다. 별것 아닌 두려움으로 헛되이 보내기에는 너무 짧은 시간이다.
--- p.9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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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려움이 몰려와 문을 거칠게 두드릴지라도, 나는 냉혹하게 문 밖에 세워 둘 것이다. 내 마음에는 두려움이 발 들여 놓을 만한 공간이 없다. 그곳은 두려움으로부터 해방된 공간이다. 그러나 두려움을 파괴하지 못하면 언젠가는 나의 마음으로 밀려들기 마련이다. 내가 허락하지 않아도 두려움은 기회를 끈질기게 기다리고 있다.
--- p.94-9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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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현실보다 그들이 만들어 놓은 허상을 좋아해요. 그 허상은 자기 자신으로부터 나온 것이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거든요. 결국 그들은 다른 사람들에 대해 만들어 놓은 허상을 사랑하면서 그 사람을 정말 사랑하고 있다고 믿는 거지요. 그러니까 진리의 바람이 허상을 휩싸고 있는 안개를 몰고 가버리면, 사랑이라고 여기고 있던 그 허상도 날아가 버리고 말지요.”
--- p.199-20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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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 얼마나 고통을 이겨 낼 수 있나 당신을 시험하거든,
마음의 평안을 잃지 말고 굽힐 줄 모르는 평정의 힘으로 모든 문제를 풀어 가라. 그 힘에 감명을 받은 운명은 당신의 인생을 바꾸어 놓을 것이다. 당신이 곧 운명의 기운을 움직이는 한 부분이며 그것이 바로 당신의 미래를 좌우하리라. --- p.27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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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사랑에 빠지는 것과 진정한 사랑의 차이를 이제 알 것 같다. 사랑에 빠지게 되면 삶은 활력을 얻는다. 정신적으로 고양되기도 하고 때로는 희망적이기도 하다. 하지만 과거의 내가 바뀌는 것은 아니다. 진정한 사랑만이 인간을 근본적으로 바꾸어 놓고, 진실한 사랑이 무엇인지 알게 된다.”
거리의 악사 마누엘은 공연 중에 만난 프라우케와 함께 살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는 아래층에 사는 얀과 린다를 알게 되고 우정을 나눈다. 그때까지 마누엘은 사랑에 대하여 자신의 자유를 간섭받지 않는 선 안에서만 가능한 것이라고 여겼으며, 프라우케의 경우 성적인 의미가 강했다. 마누엘과 프라우케는 한 번의 말다툼을 계기로 서로 겉돌게 되고, 프라우케가 2년 전 헤어진 남자 친구를 다시 만나면서 2주간의 동거는 깨진다. 프라우케와의 이별로 상심해 있던 마누엘은 ‘나비의 집’이라는 식물원에서 조에를 만나고 그녀가 자신의 꿈속에 나타났던 나비 가면의 주인공임을 깨닫는다. 그리고 다른 여자들을 사귈 때와 달리 조에와 함께 나누는 생활을 꿈꾸게 되고, 진실한 사랑을 찾았다고 확신한다. 일상을 어처구니없는 것으로 만들어 버리는 신문의 기사들과 주인공의 심정을 객관적으로 담보해 주는 철학자들의 잠언들이 경쾌한 팝송 가사들과 어울려 진정한 인생과 진실한 사랑에 대해 변주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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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자신을 찾는 여정에서 진실한 사랑과 만나다
한스 크루파는 『영원과 하루』에서 안정된 직장을 스스로 그만두고 거리의 악사로 떠도는 주인공 마누엘을 통해 무의식 속에 자리 잡고 있지만 잘 알아볼 수 없는 인생의 진실과 거짓에 대해 이야기한다. 마누엘의 일터이기도 한 대도시 거리를 오가는 분주한 보행자들의 모습과 베란다에서 내려다본 집 앞 풍경, 그리고 시간을 보내기 위해 읽는 신문 기사들은 마치 분실물처럼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인생에 파고드는 인생의 거짓이나 다름없어 보인다. 그에 비해 작가 자신이 경험한 70년대를 들려주는 듯한 얀의 이야기들은 인생의 진실에 대해 구체적으로 떠올리게 한다. 그래서 얀과 마누엘이 나누는 돈과 권력이 지배하는 현실과 쾌락주의적 사회, 이성을 앞세운 물질주의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은, 나는 누구인가, 내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은 어떤 세상인가, 어떻게 나는 이 세상에서 잘 살 수 있는가, 하는 자기 성찰로 이어진다. 한스 크루파는 얀과 마누엘이 나누는 비판의 보편성과 객관성을 확보하기 위해 쇼펜하우어, 니체, 에리히 프롬, 융, 보부아르, 조지 버나드 쇼와 같은 철학자는 물론 많은 문학 작품을 전거로 내세운다. 그리고 “사랑은/항상 준다/옳은 대답을-/사람들이 사랑에게/옳은 질문을 할 때면”, “사랑하는 사람들의 눈에는/모든 것이/진정한 근본에 더욱 가까워지고/모든 것이 제자리를 찾는다”고 작가 자신의 잠언집과 시집에서 썼듯이, 그러한 사회적 병리현상을 치료할 수 있는 길로 진정한 사랑을 제시한다. 작가가 제시하는 사랑에 대한 변론은 대화 중에 쉴 새 없이 섞이는 팝송 가사들로 위트 있게 이어지는데, 이것은 한스 크루파가 심각함과 경쾌함, 심오함과 아이러니라는 두 정점을 어떻게 조율하고 있는지 보여주는 부분이기도 하다. 한스 크루파는 이 작품을 통해 현실이라는 담에 갇혀 눈에 보이는 것만을 좇을 것이 아니라, 그 담 너머에 있는 인생의 참뜻을 보아야 진정한 인생을 살 수 있음을 다시 한 번 깨닫게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