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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책머리에 - 사각형의 눈
2. 머리, 영혼의 집 싸움과 인사 초상화와 참수형 블랙홀 머리카락이 하는 말 3. 손, 인간의 조건 손에서 입 사이 손안의 세계 변증법 진화 폭력 인사와 체포 지문 장갑 4. 손을 닮은 마음 약속 매와 기도 오른손과 왼손 글쓰는 손 노와 삽 5. 생각하는 발 형사 콜롬보와 수도승 최초의 노예 식탁 다리와 길 6. 길 위의 집 길의 시작과 끝 헨젤과 그레텔 붙박이 인간 비밀 타인으로서의 집 7. 의자 움직이는 의자 서 있기와 앉기 움직이지 않는 의자 흔들리는 의자 8. 상자와 가방 물고기의 관 책상과 서랍 판도라의 상자 책가방 그 남자의 가방 9.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사물의 뒷면 낯선 대륙들 진실과 사물 10. 껍질과 속 간판 의사와 조각가 죽음의 극복 11. 잃어버리기, 잃어버리지 않기 버리기와 잃어버리기 수집가들 문신 12. 사소한 사건 코카콜라코카콜라 로만 오팔카 사소한 사건 13. 그림과 말 인터뷰 경계선 위에서 그림의 침묵 14. 일하기와 놀기 재미없는 인생 식물적 인간 내 속에 있는 폭약 15. 뉴스, 코미디, 사디즘 뉴스 코미디 사디즘 16. 사냥꾼과 토끼 17. 덧붙이는 글 - 세속화 시대의 새로운 도상학 사전 - 이재룡(숭실대 교수, 문학평론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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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에 나는 물건을 잘 잃어버리는 편이었다. 차에 우산을 놓고 내린다거나 어디에 물건을 두었는지 기억 못하는 일이 요즘도 빈번히 일어난다. 그런 일로 자주 핀잔을 듣다보니 커피포트 전원을 끄고 방을 나왔는지 방문은 잠궜는지 두고온 물건은 없는지 약속을 잊지는 않았는지 괜히 조바심하는 일이 늘고 있다. 물건을 어디 두었는지는 잘 기억이나지 않는데 물건을 잃어버렸다는 사실은 오래 기억에 남는다. 내가 스스로 버린 물건은 잘 기억이 나지 않아도 잃어버린 물건들의 기억은 좀체로 지워지지 않는다. 내 기억의 공간을 들여다볼 수 있다면 그 속에는 틀림없이 수십 자루의 우산을 포함해서 잃어버린 물건들만을 위해 따로 마련된 공간이 들어 있을 것이고, 그것은 앞으로 계속해서 확장될 운명에 있다.
버리는 것과 잃어버리는 것. 이 둘은 어떤 사물과 나의 헤어짐이라는 내용에서는 같으나, 그 헤어짐의 주체가 내 쪽에 있는가 사물 쪽에 있는가에 따라 서로 구별된다. 내가 나서서 사물과 헤어지면 버리는 것이 되고, 나는 가만히 있는데 사물이 나를 떠나면 그것은 잃어버리는 것이 된다. 사물을 잃어버린다는 것을 사물로부터 내가 버려지는 것, 버림을 받는 것을 듣기 좋은 말로 바꿔 놓은 것이다. 마치 그 일이 일어나게 한 주체가 여전히 나라는 듯이 <나는 우산을 잃어버렸다>고 능동형으로 말하지만, 그렇게 말하는 나는 그 일이 일어나는 동안 실제로 어떤 의지를 가지고 그 일에 개입한 바가 전혀 없다. --- pp.165~16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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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에서 입 사이의 거리는 한껏 벌려보아야 1미터도 채 안 된다. 그러나 그 1미터야말로 인간의 운명에서 결정적인 공간이다. 그 1미터 반경의 공간 안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느냐, 어떤 도구가 끼어드느냐가 한 인간의 삶을 결정한다
--- p.3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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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물과 일상, 그리고 그 뒷면에 대한 한 예술가의 관심과 집착
월간『현대문학』에 '사물들, 그것은 무엇인가'라는 제목으로 연재했던 글들을 2년 만에 다시 손보아 내놓은『그 남자의 가방』은 '사각형'의 틀, 즉 고정관념과 제도, 규범 등에 갇혀 있는 모든 사물과 일상의 바깥으로 시선을 옮겨보려는 시도이다. 스스로는 '돌을 쪼는 조각가의 정(釘)처럼 무디고 느슨한 산문'이라고 겸손해하지만 연재 당시 '사물에 대한 시각적 관찰력과 상상력이 전개되는 과정을 세밀한 언어작업으로 구성하고 있다'는 호평을 받은 바 있다.
이 책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우선 하늘과 가까운 곳에 위치하면서 인간의 아이덴티티를 함축하는 기호인 머리, 인간의 운명과 한계를 함축하고 있는 손, 그리고 가장 아래에서 사유와 노동의 도구로 기능하는 발 등 신체에 대한 탐구가 시작된다.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훑었던 그의 눈은 이제 길을 걸어 집으로 들어가 그 안에 존재하는 의자, 책상, 상자와 가방에 이른다. 하찮고 사소한 사물을 꼼꼼하게 살피는 이러한 작업은 단선적이고 고정된 우리의 시각을 다른 방향으로 돌리고 그 뒷면을 들여다보자는 권유인 것이다. 이렇듯 신체와 사물에 대한 조각가의 관심은 외형을 투과하여 그 내면에 대한 진지한 탐구로 이어지는데, 철학적이고 문학적인 사유로의 확장(또는 변형)은 필연적으로 예술가로서의 정체성을 구체화시키는 과정에 이르게 된다. 이 책의 제목은 그의 대표작 중 하나인「그 남자의 가방」에서 가져온 것이다. '천사가 맡겨놓은 한 쌍의 날개'가 들어 있는 가방을 통해 진실과 눈에 보이는 것의 차이를 보여주고자 했던 그의 의도는 "우리에게는 왜 사물의 뒷면이 보이지 않는가?" "한쪽 눈으로는 텍스트를 보고 동시에 다른 한쪽으로는 이미지를 바라보는 그런 시선을 선택할 수 없는가?"라는 물음에서도 잘 나타나듯이 보이는 것과 안 보이는 것, 그림과 말의 경계를 고민해온 그의 작품세계를 대변하는 것이기도 하다. 특히 가난한 월급쟁이 외과 의사였던 아버지를 추억하면서 털어놓는 '외로움에 대한 내성(耐性), 낭만적인 삶에 대한 동경, 도시와 시골의 이중적인 고향 사이에서 어느 쪽에도 고향이 없는 이방인으로서의 자기 인식 등 나를 미술의 길로 끌어들인 이 모든 심리적 정황들은 바로 그의 유산이었다'는 고백은 작가의 내면과 예술관을 엿보게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