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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없이 어렴풋한 일요일
정영문
문학동네 2001.0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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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1. 끝
2. 무게 없는 부피
3. 배회
4. 고문하는 고문당하는 자
5. 불면증
6. 자폐증
7. 후각 상실
8. 보이지 않는 균열
9. 더없이 어렴풋한 일요일

저자 소개 1

독특하고 실험적인 글쓰기로 죽음과 구원, 존재의 퇴조 등 인간 본연의 문제를 집요하게 파고들어온 작가다. 번역가로도 활동 중이다. 정영문은 1963년 경남 함양에서 태어나, 서울대 심리학과를 졸업했다. 1996년 「작가세계」 겨울호에 실린 장편소설 『겨우 존재하는 인간』으로 문단에 등단했으며, 1999년 『검은 이야기 사슬』로 12회 동서문학상을 수상했다. 지은 책으로 소설집 『검은 이야기 사슬』 『나를 두둔하는 악마에 대한 불온한 이야기』 『더없이 어렴풋한 일요일』 『꿈』 『목신의 어떤 오후』, 중편소설 『하품』 『중얼거리다』, 장편소설 『핏기 없는 독백』 『달에 홀린
독특하고 실험적인 글쓰기로 죽음과 구원, 존재의 퇴조 등 인간 본연의 문제를 집요하게 파고들어온 작가다. 번역가로도 활동 중이다. 정영문은 1963년 경남 함양에서 태어나, 서울대 심리학과를 졸업했다. 1996년 「작가세계」 겨울호에 실린 장편소설 『겨우 존재하는 인간』으로 문단에 등단했으며, 1999년 『검은 이야기 사슬』로 12회 동서문학상을 수상했다.

지은 책으로 소설집 『검은 이야기 사슬』 『나를 두둔하는 악마에 대한 불온한 이야기』 『더없이 어렴풋한 일요일』 『꿈』 『목신의 어떤 오후』, 중편소설 『하품』 『중얼거리다』, 장편소설 『핏기 없는 독백』 『달에 홀린 광대』 등이 있다. 옮긴 책으로 『우리는 사소한 것에 목숨을 건다』, 『페르마타』, 『복스』, 『돈 안 드는 마케팅』, 『미스터 에버릿의 비밀』, 『사랑을 말할 때 우리가 이야기하는 것』, 『4의 규칙』, 『인간들이 모르는 개들의 삶』, 『카잔차키스의 천상의 두 나라』, 『호박방』, 『에보니 타워』, 『젊은 사자들』, 『물결을 스치며 바람을 스치며』, 『존 싱어 사전트와 마담X의 추락』,『가족』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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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01년 07월 31일
쪽수, 무게, 크기
310쪽 | 457g | 153*224*30mm
ISBN13
9788982814105

책 속으로

아버지는 내게 그 자리에 꼼짝 말고 있으라고 한 후 소나무숲 뒤쪽에 있는 가게로 갔어. 나는 아버지가 걸어가는 뒤로 하나씩 늘어나는 모래 위의 발자국을 바라보았어. 나는 그가 남기고 간 발자국을 쳐다보며 그를 기다렸어. 그리고는 잔상 속에 그를 좀더 오래도록 붙들기 위해 눈을 감았어. 하지만 그는 한참이 지나도 내가 있는 곳을 찾지 못하는 듯 돌아오지 않았어. 나는 아버지의 발자국 위로 사람들의 발자국이 찍히는 것을 보았어. 그렇지만 내가 그곳에 있는 한 아버지가 다시 돌아오리라는 생각에 계속해서 기다렸어. 사람들이 나를 보면서 지나갔고, 나는 그들의 눈에 불안해하는 아이로 비치고 있다는 것을 내게 길게 머무는 그들의 시선을 통해서 느낄 수가 있었어. 나는 아버지를 찾으러 가야겠다는 생각을 했지만 이미 아버지의 발자국은 다른 사람들의 발자국에 뭉개져 어느 것이 그의 것인지 알 수가 없었어. 시간이 흘렀고 나의 눈에서는 눈물이 고였고 마침내 뺨을 타고 내려온 눈물이 시야를 흐려놓았어. 나는 신발을 벗고 맨발을 모래 속에 파묻었어. 나는 발가락으로 뜨거운 모래알을 움켜쥐었어.

---pp.128~129

추천평

정영문 소설의 특징 중 한 가지로 가급적 움직이지 않기. 즉 '운동의 최소화'를 지적할 수 있다. 또한 아무런 동요도 긴장도, 불안정한 에너지의 변동도 없는 '열반 상태'(바바라 로우 '열반 원칙')로의 실현, 뱉은 말을 지움으로써 의미의 최소화하기 등도 정영문 소설을 독특하게 하는 요소다. 이번 창작집의 주인공들도 예외는 아니다.

「끝」은 오랜 전에 감옥을 다녀온 일이 있는 '나'와 자궁암에 걸려 죽음을 눈앞에 두고 있는 그녀와의 짧은 만남을 그리고 있다. 그녀의 죽음 뒤 염화칼륨 앰풀을 이용해 죽음을 기다리는 '나'의 독백으로 이루어진 이 소설은 '나'가 스스로 "지금 나의 모든 기억이 사실일까"라고 의심할 정도로 무의미한 어조로, "결코 사랑에 이르지 못한, 처음부터 사랑에 이를 가능성을 상실한 것이었던" 두 늙은 남녀의 무의미한 만남에 대해 역설적으로 이야기하고 있다.

마치 무게 없이 부피만 있는 풍선처럼, 핵심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정영문의 소설들을 역설적으로, 끝내 드러나지 않는 어둠과도 같은 삶의 단면을 우리에게 펼쳐 보인다. 불면증과 자폐증과 분열증,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죽음이라는 이름의 병을 처절하게 앓고 있는 그의 소설 속 인물들과 더불어 그로테스크한 언어의 산책을 끝내고 나면, 그 비현실적인 꿈속 같은 풍경 속에서 언뜻 우리의 상실된 감각을 되찾은 것만 같은 환각에 접하게 되는 것 또한 이 때문이다. 그리하여 되찾은 감각 속에서 우리는, 고문당하는 자가 다하는 고문의 언어, 그 표면적인 가혹함 속에 감추어진 연약함이 불러일으키는 연민과, 자폐의 언어, 그 알아들을 수 없는 이야기가 마음을 편안하게 해준다는 역설, 그리고 아무런 형태도 빚어내지 못하는 불면의 언어, 그 분열된 채 어긋나기만 하는 대화가 잠들지 못하는 우리의 피로한 의식을 위로해줄 수도 있다는 반어적인 진실을 이해하게 되기에 이른다.
---손정수(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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