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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ouard Le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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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가 발견한 작가,
소설가 정영문이 국내 처음 소개한 요절한 예술가의 대표작 에두아르 르베에 대해 처음 알게 된 것은 약 10년 전, 전 세계의 아방가르드 문학을 영어권에 가장 많이 소개한 달키아카이브프레스의 대표를 만난 자리에서였다. 대표는 달키의 작가 중 자살한 작가가 여러 명 있다고, 그 어떤 출판사보다도 많은 작가가 자살한 출판사라는 얘기를 했다. 그중 르베는 처음 들어보는 작가였다. 대표가 그의 죽음을 둘러싼 얘기를, 좀더 구체적으로, 2007년 《자살》이라는 작품을 써 원고를 출판사에 넘긴 지 열흘 뒤 마흔두 살의 나이에 자살했다는 얘기를 했고, 달키에서 번역 출간된 그의 네 권의 책 중 《자살》과 《자화상》을 먼저 읽어볼 것을 추천했다. _‘옮긴이의 말’ 중에서 《자화상》은 2015년 소설가 정영문이 직접 소개하고 번역해, ‘에두아르 르베’라는 이름을 국내에 알린 작품이다. 이후 《자살》까지 국내에 출간되며 지극히 절제된 그 특유의 스타일이 많은 사랑을 받았다. 사진 작업으로도 잘 알려진 그는 옷을 입고 포르노그래피의 포즈를 재현한 〈포르노그래피〉, 공 없이 평상복으로 찍은 〈럭비〉, 다른 나라 도시와 이름이 같은 미국의 소도시를 담은 〈아메리카〉 등의 연작으로 명성을 얻었다. 이렇듯 핵심을 비워 역설적으로 본질을 드러내는 그의 작업은 저작 활동에서도 두각을 드러냈다. 실현되지 않은 작품 아이디어 500여 개를 담은 《작품들》(2002)부터 그가 죽기 열흘 전에 완성한 《자살》(2008)까지 극도의 절제와 실험적 형식을 선보였다. 《자화상》은 그의 대표작으로, 감정과 인과관계를 배제한 채 무작위로 나열한 문장들로 한 인간의 초상을 그린다. 정동과 주관성이 배제된 극도의 절제, ‘나에 대한 기록’의 새로운 형식 발명 프랑스 문학계가 이미 사적인 기록, 자아로의 침잠, 자서전, 그리고 오토픽션(autofiction)으로 포화 상태에 이르렀다고 생각했을 때, 외견상 가볍고 형식적으로는 소박한 텍스트 하나가 우리의 허를 찌르며 나타났다. 이 텍스트는 이미 매우 혼잡한 문학적 풍경 속에 슬며시 끼어들더니, 다름 아닌 그 세계를 내부에서부터 새롭게 바꾸어놓는 작업에 착수한다. 달리 말하자면, 에두아르 르베는 자신의 《자화상(Autoportrait)》을 통해 ‘나에 대한 기록(recit de Je)’의 새로운 형식을 발명해낸 것이다. _〈레쟁로큅티블(Les Inrockuptibles)〉 르베는 2005년 〈텔레라마〉와의 인터뷰에서 ‘공황에 사로잡혀 곧 죽을 것이라는 확신 속에 나의 흔적을 남겨야겠다는 생각으로 이 글을 쓰기 시작했다’라고 밝힌 바 있다. 그렇게 3개월에 걸쳐 완성한 《자화상》은 조르주 페렉의 《나는 기억한다(Je me souviens)》와 조 브레너드(Joe Brainard)의 《나는 기억한다(I remember)》의 구조적 영향이 뚜렷하다. 그러나 그 어떤 성찰이나 분석 없이 ‘나’의 주제를 다룸으로써 일체의 정동(情動)과 주관성이 배제된 건조한 객관성을 그 특징으로 한다. 르베는 일상의 모든 면을 간결하고 단정적인 건조한 문장들로 하나하나 엮어내어 육체적, 정신적, 감정적, 성적, 정치적, 철학적, 미학적 자화상을 그린다. 그러면서도 자신의 글쓰기에 유보를 둔다. “나는 백색의 글쓰기를 꿈꾸지만 그런 건 없다”라는 문장을 통해 완벽한 객관성이란 허구임을 미리 밝힌 것이다. “내 삶을 정확하게 설명하는 것이 삶을 사는 것보다 더 오래 걸릴 것이다.” 에두아르 르베가 자기 삶의 파편들로 이루어낸 보편적 생애를 향한 가만한 응시 나는 에두아르 르베의 《자화상》을 수년에 걸쳐 여러 번 읽을 기회가 있었다. 그의 표현에 따르면 “파편”들의 집합을 읽으면서 무수한 “나는”으로 시작하는 문장들에 실제의 “나”를 대입하고 싶어진다. 읽으면서 쓰게 하고, 비우면서 채우게 하는 서술 때문이다. 점묘화의 방식으로 나열된 문장들은 각각 불특정한 과거와 분명한 현재-글을 쓰고 있는 지금-를 연결하는 시간의 흐름을 담고 있으므로 작품의 최종 형태는 평면처럼 보이는 입체가 된다. 무작위로 이어지는 문장들을 읽는 동시에 피할 길 없이 나의 자화상을 드문드문 구성하게 하는 책이다. _한유주, 소설가 《자화상》 속에서는 “나는 자살을 시도한 적이 있다”라는 문장과 “양말에서 구멍이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라는 문장에 경중(輕重)의 차이가 없다. “세상을 바꾸는 사람은 현실을 믿지 않는 사람”이라고 단언하다가도 “흡연에 시간을 너무 뺏긴다”고 자평한다. 이러한 서술 방식은 삶의 무작위성을 그대로 재현할 뿐 아니라, 한 인간의 삶을 최선의 방법으로 담아낸다. 르베가 “내 삶을 정확하게 설명하는 것이 삶을 사는 것보다 더 오래 걸릴 것이다”라고 말했듯, 제아무리 상세하고 솔직한 설명조차 한 인간의 삶을 온전히 조명하기란 불가능하다. 대신 《자화상》은 독자로 하여금 파편화된 문장들을 관조하고 의미를 얽어내, 마치 ‘점묘화’와도 같은 한 인간의 초상에 이르게 하는 것이다. 그 문장들이 단순한 한 개인의 진술로서 흩어지지 않는 것은 독자 자신을 투영할 수 있는 “충분한 중립성이 공존”하기 때문이다. 이렇듯 “르베는 자신을 모든 각도에서 이야기함으로써, 결국 모든 사람이 한 줄 혹은 다른 한 줄에서 자기 자신을 발견하게 만드는 거울을 제시”(〈르미디리브르〉)한다. 이 책을 읽으며 르베의 죽음을 떠올리지 않기란 어렵겠지만, 동시에 죽음의 그늘 속에서 완성된 이 책이 역설적으로 가장 보편적인 삶을 응시하게 한다는 사실이 큰 울림으로 남는다. “그리고 작가들은 죽는다. 그들이 어둠 속으로 합류하는 만큼 모든 빛이 그들의 작품 위로 쏟아지기를.” _〈르몽드〉, 《자화상》 서평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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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에두아르 르베의 《자화상》을 수년에 걸쳐 여러 번 읽을 기회가 있었다. 그의 표현에 따르면 “파편”들의 집합을 읽으면서 무수한 “나는”으로 시작하는 문장들에 실제의 “나”를 대입하고 싶어진다. 읽으면서 쓰게 하고, 비우면서 채우게 하는 서술 때문이다. 점묘화의 방식으로 나열된 문장들은 각각 불특정한 과거와 분명한 현재-글을 쓰고 있는 지금-를 연결하는 시간의 흐름을 담고 있으므로 작품의 최종 형태는 평면처럼 보이는 입체가 된다. 무작위로 이어지는 문장들을 읽는 동시에 피할 길 없이 나의 자화상을 드문드문 구성하게 하는 책이다. - 한유주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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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 그 자체를 작품의 부가가치로 여길 사람은 아무도 없겠지만, 그것은 작품의 끝이자 곧 완성을 의미한다. 작품은 닫히고 그 의미는 비로소 전개된다. 작품은 자질구레한 개인사로부터 해방되고, 더 이상 저자의 허영심에 대해 해명할 필요가 없으며, 그 자체로 존재하게 된다. 만약 작품이 하찮은 것들로만 이루어져 있다면 그것들은 금방 먼지로 돌아가겠지만, 지속될 가치가 있다면 그 마침표 직후에 그 이유가 우리에게 더 분명하게 드러난다. 에두아르 르베(1965-2007)의 짧은 작품 세계 역시 그러하다. - 르몽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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