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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말
1장 1월 말, 사흘 동안 생긴 일 2장 초년 30년 3장 텔레비전 방송계로 진출하다 4장 TV-am에서의 지낸 1년 5장 TVS에서 다시 LWT로 6장 LWT의 운영과 실패 7장 BBC에 합류하다 8장 BBC 시절 (1) 9장 BBC 시절 (2) 10장 그들은 왜 울었을까? 11장 텔레비전과 스포츠 12장 길리건과 켈리 그리고 허튼 13장 허튼 보고서의 오류 14장 마지막 몇 마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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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BC를 떠나야 할 시간이 순식간에 닥쳤다. 마지막으로 사무실을 떠날 준비를 하고 있는데 텔레비전 센터에서 피터 새먼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그는 그곳에서 놀라운 일이 벌어지고 있으니 빨리 와보라고 했다. 수백 명의 직원들이 ‘그렉을 복귀시켜라!’라고 쓴 포스터를 들고 거리로 뛰쳐나가 시위를 하고 있는데 시위대 규모가 삽시간에 크게 늘어나고 있다는 것이었다. (……) 화이트 시티에 당도해서 텔레비전 센터로 차를 타고 들어가는데 플래카드를 들고 구호를 외치는 직원들이 BBC 사옥앞 도로를 꽉 메우고 있었다. 정말 놀라운 광경이었다. 내가 차에서 내리자 군중은 박수를 치면서 나와 악수를 하려고 몰려들었다. 뉴스요원들이 여기저기서 나와 인터뷰하려고 달려들었다. 내 생애 중 아주 짧은 순간이었지만 내가 마치 미국 대통령후보나 가수 마돈나가 된 기분이었다. 두려운 기분마저 들었다.
--- p.52~5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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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섯 시 쇼〉가 큰 성공을 거두었지만 18개월 동안 그 프로그램만 운영하다 보니 나도 뭔가 변화가 필요했던 시기였다. 게다가 LWT가 회사 차를 제공하지 않겠다고 해서 화가 나 있던 참이었다. (……) 지금 돌이켜보면 회사차와 같은 사소한 것에 내 미래를 걸었다는 게 어처구니가 없다. 하지만 나는 거창한 인생 계획 같은 것은 믿은 적이 없다. 나는 그저 기회가 오면 그 기회가 나에게 이익이 되든 그렇지 않든 잡고 보자는 생각을 가지고 살아왔다. 나는 TV-am의 혼돈 상태에 매력을 느끼고 도전해보기로 했다. 회사를 살리는 데 성공하지 못하리라는 생각은 눈곱만큼도 해보지 않았다. 〈여섯 시 쇼〉에서 함께 일한 동료이자 소설가인 매브 하란이 항상 나에 대해서 말했듯이, 내가 인생에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는 단지 실패를 생각해볼 만큼 상상력이 풍부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 말에 어떤 진리가 담겨 있는 것 같기도 하다.
--- p.136~13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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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부 컨설턴트들에게 매년 2,000만 파운드씩 지출되는 돈을 대폭 삭감하였다. 이 돈은 대부분 매킨지에게 지출되고 있었다. 또한 각 부서 간에 내부적으로 청구하는 돈도 대폭 절감시켰다. (……) 비용 절감 조치가 우연히 유명해진 사건도 있었다. 어느 날 아침, 나는 개인비서에게 살이 자꾸 찌니까 다음부터는 회의실에 크루아상을 넣지 말라고 일렀다. 배가 고프지 않아도 크루아상이 눈앞에 있으면 자꾸 집어 들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며칠 지나지 않아 내가 BBC에서 크루아상을 먹지 못하게 금지시켰다는 기사가 각 신문에 보도되었다.
나는 그 보도에 항의하지 않았다. 그 기사가 사실이 아닐지라도 프로그램 제작에 들어가야 하는데 다른 곳으로 전용되는 비용은 내가 모두 삭감시켜버리려고 한다는 사실을 BBC 임직원에게 알리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런던 시내에 흩어져 있는 BBC 사옥을 왕래하는 데 택시를 타던 관행도 금지시켰다. 그 대신 각 센터 간을 왕래하는 버스를 무상으로 운행시킴으로써 수십만 파운드를 절감할 수 있었다. BBC 회장을 역임한 허시 남작은 2001년에 출판된 그의 자서전 『기회가 모든 것을 지배한다』(Chance Governs All)에서 내가 런던 택시 운전수들의 생계를 위태롭게 한다고 어느 택시 운전사가 그에게 비통하게 호소했다는 일화를 전했다. 그래서 3C, 즉 크루아상(Croissant), 택시(Cab), 그리고 컨설턴트(Consultant)가 내가 BBC에서 시행한 비용 절감 정책의 전설이 되었다. --- p.289~29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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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크 전쟁에 대한 내 사견은 BBC 회장 개빈 데이비스의 사견과 마찬가지로 사담 후세인을 제거해야 한다는 쪽으로 다소 기울고 있었다. 나는 그가 아주 비열한 인간이라 그가 없다면 이 세상이 좀 더 나아질 것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나중에 사실이 아니라는 것이 판명되었지만, 나는 블레어 정부가 이라크 대량살상무기에 관한 정보를 모두 공개할 수는 없으나 충분한 정보를 가지고 있고 대량살상무기가 실제로 심각한 위협이 되고 있는 것으로 오해하고 있었다. 나는 전쟁을 지지한다는 입장을 분명히 밝힘으로써 몇몇 친구로부터 좋지 않은 평을 받았고, 어떤 친구는 그녀의 쉰 번째 생일 파티석상에서 나를 신보수주의자라고 공개적으로 비난했다.
BBC 사장이라는 직책을 수행할 때는 전쟁에 대한 내 개인적인 느낌은 아무 소용이 없는 것이다. 내가 해야 할 일은 전쟁의 원인이 된 일련의 사태와 전쟁 그 자체를 가능한 한 공정하게 보도하는 것이다. BBC는 정부의 선전도구가 되어서도 안 되고, 전쟁을 반대하는 쪽에 기울어 그들의 주장을 부당하게 대변해서도 안 된다. 우리가 할 일은 어느 한쪽으로도 치우치지 않고 공정하고 보도하는 것이다. 일반 국민에 대한 우리의 의무는 사건을 기자들이 목격한 그대로 전달하는 것이다. 우리의 가치기준 선언문에 명시되어 있는 바와 같이 ‘신뢰는 BBC의 기초다’. 그러므로 신뢰를 위태롭게 하는 일은 절대로 하지 말아야 한다. 그것이 바로 우리가 어느 일방의 대변인처럼 보이지 않도록 처신해야 하는 이유이다. BBC 텔레비전 전무이사를 역임한 후 웰던은 영국의 국론이 분열될 때마다 BBC가 시달림을 받는다고 말했다. 이번에도 우리가 시달림을 받게 되리라는 조짐이 전쟁이 발발하기 훨씬 전부터 분명하게 나타났다. 수에즈 위기 이후로는 군사행동에 관한 영국의 국론이 극심하게 분열된 적이 없었다. BBC와 정부 사이의 관계가 가장 팽팽하게 긴장되는 시기는 항상 전쟁 중이었다는 사실을 역사를 통해서 분명히 알 수 있다. --- p.42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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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민주주의에서 언론매체, 그 중에서도 특히 방송이 미치는 영향력은 실로 막강하다. 에둘러 말할 필요 없이, 2004년 노무현 대통령 탄핵을 둘러싼 정치적 공방전에서 각 방송사들이 적극적으로 ‘노무현 구하기’에 나섬으로써 탄핵안이 좌절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은 가장 극적인 예라 할 수 있다.
정부권력이 전적으로 방송을 소유하고 권력의 시녀로 삼았던 불행한 시대는 갔다. 그러나 지금은 물론 앞으로도 방송을 자기편으로 만들려는 각 정치세력들의 쟁탈전은 치열하게 전개될 것이다. 그리고 그럴수록 “정치권력과 자본으로부터의 독립”이라는 (공영)방송의 슬로건은 심각한 위기를 맞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민주주의 사회에서 방송과 정치의 역학관계는 어떠해야 할까? 『BBC 구하기』는 바로 그에 관한 생생한 교훈과 모범을 보여주는 책이다. 『BBC 구하기』의 저자인 그렉 다이크(Greg Dyke)는 2003년 이라크전 당시 대량살상무기의 존재 여부를 놓고 블레어 총리와 첨예하게 대립하다가 결국 BBC 사장직에서 물러난 영국 방송계의 거물이다. 그가 노동당 지지자로서 블레어와 절친한 사이였음에도 세계 최대 공영방송사의 수장으로서 정부권력의 외압에 결연히 맞선 것, 해임 후 수천 명의 BBC 직원들이 거리로 뛰쳐나가 그를 지지하는 시위를 벌인 것 등은 세계 방송사에서 가장 드라마틱한 이야기 중 하나로 기억될 만하다. 그런 그가 그간의 사태에 대해 입을 열기로 결심했을 때 영국 최대 출판그룹인 하퍼콜린스가 계약금으로 50만 파운드의 거액을 제시할 만큼 세간의 뜨거운 관심을 모은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 아닐까. 2004년 1월 말, BBC에서의 마지막 사흘간의 이야기로 시작하는 이 책에서 그렉 다이크는 우리가 외신을 통해 단편적으로 들어 알고 있는 BBC 사태의 전모를 신랄한 어조로 들려준다. BBC 사장직에서 물러나는 계기가 된 ‘길리건 사건’에 대해 되짚어보고 과연 그 진실은 무엇인지를 속 시원히 보여준다. 또한 어떻게 BBC에서 경영 혁신을 단행해 성공했는지, 그리고 어떻게 문화변혁운동을 일으켜 직원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는지도 밝히고 있다. 그 자리에 오르기까지 겪었던 영국 방송계에서의 흥미로운 경험을 솔직하고 신랄하게 털어놓은 에피소드들은 놓치기 아까운 덤이다. BBC의 제13대 사장 그렉 다이크는 모든 면에서 이전 BBC 사장들과는 많이 달랐다. 역대 BBC 사장들은 사립 명문학교를 졸업한 귀족 출신들이었지만, 그는 평범한 가정 출신에 공립학교를 졸업했고, BBC에 근무한 경력도 없었다. 그저 오로지 자기 실력 하나로 지역방송국에서 세계 최대 공영방송 사장 자리에 오른 입지전적 인물이다. 처음 방송 생활을 시작한 런던 위크엔드 텔레비전(LWT)에서는 런던 시민들의 생활상과 밀착된 <여섯 시 쇼>를 제작해 시청률을 끌어올렸으며, 쓰러지기 직전의 방송국인 TV-am에 스카우트되어 가서는 ‘롤런드 쥐’라는 헝겊 인형을 진행자로 내세운 파격 조치로 방송국을 위기에서 구해낸다. 실력에다가 운까지 모두 갖추고 영국 민영방송국의 요직을 두루 거친 그는 드디어 1999년 6월 사장 지명자 겸 부사장으로 BBC에 입사하여, 2000년 1월 사장이 되었다. 상업 방송국 경영자에서 공영방송의 수장으로 변신한 그는 취임 초기부터 논란을 불러일으킨다. 그러나 외부에서 들리는 우려의 목소리와는 달리, 정작 내부 직원들은 그를 열렬히 지지했다. BBC 사장이 되자마자 그는 큰 반대를 무릅쓰고 뉴스 시간대를 9시에 10시로 옮겨 9시와 10시 시간대 시청률을 끌어올린다. 그리고 비용 절감에 돌입해 취임 당시 24%에 이르던 간접비 비율을 12%로 줄이고 절감한 돈을 텔레비전 방송 제작에 쏟아 부었다. 그는 어린이 채널 두 개(CBeebies 및 CBBC)와 청소년을 위한 네트워크(BBC 3채널), 그리고 문화 네트워크(BBC 4채널)등 총 4개의 디지털 방송을 출범시켰다. 이에 따라 BBC 전체 시청률도 높아졌다. 또 전반적으로 침체되어 있던 BBC에 활력을 불어넣기 위해 ‘변화를 일으키자!’라는 문화혁신 운동을 전개하였다. 또 영국의 인구 비율에 맞게 BBC 내 소수 민족 직원과 간부의 비율을 끌어올린 것도 그가 이룩해낸 큰 성과다. 이처럼 공영방송을 성공적으로 경영해나가던 그에게 이른바 ‘길리건 사건’이라는 위기가 닥친다. 2003년 5월 BBC 국방부 취재기자 앤드루 길리건이 정부가 이라크 전쟁에 대한 정보를 ‘윤색’하여 이라크전 참전 명분으로 사용했다는 내용을 보도한다. 이에 영국 정부는 길리건 기자와 BBC를 비난하고 나섰다. 그렉 다이크는 즉각 길리건 기자를 옹호하고 공영방송 BBC의 정치적 독립을 수호하기 위해 애쓴다. 그러나 2004년 1월 일방적으로 정부 편을 든 허튼 보고서가 발표되면서 상황이 급반전되고, 결국 BBC 회장인 개빈 데이비스와 사장 그렉 다이크는 이 사태에 대한 모든 책임을 지고 물러나게 된다. 그러자 누구도 예상치 못한 일이 일어났다. 그렉 다이크가 자리에서 물러난다고 발표하자, 수천 명의 직원들이 거리로 뛰쳐나가 그의 해임을 반대하는 시위를 벌인 것이다. 심지어 지방 라디오 방송국에서는 진행자가 방송 중에 거리로 뛰쳐나가 시위에 참여하기도 했다. 또한 이들은《데일리 텔레그래프》에 ‘BBC의 독립’이라는 제목의 전면광고를 내고 그렉 다이크를 지지한다는 뜻을 밝혔다. 그렉 다이크는 사장직에서 물러나게 되었다는 내용이 담긴 마지막 이메일을 임직원들에게 보낸 뒤 지지의 뜻을 밝히는 회신을 6,000통이나 받았다고 한다. 이 모든 일은 그렉 다이크가 이끌었던 문화변혁운동과 공영방송 BBC의 독립을 지켜야 한다는 직원들의 열망이 이루어낸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렉 다이크는 BBC 사장이 될 당시, 과거에 노동당에 5만 파운드 헌금을 했던 일이 도마에 올랐을 정도로 열렬한 노동당 지지자였다. 그런 그가 이라크전 관련 오보 사태를 둘러싸고 토니 블레어가 이끄는 노동당 정부에게서 받은 배신감은 말할 수 없이 컸다. 이 책에서 그는 자신이 느낀 울분을 가감 없이 털어놓고 있다. 자신을 해임하는 데 앞장선 토니 블레어와 총리실 공보 보좌관 앨러스테어 캠벨을 소리 높여 비난하고, 자신을 해임시킨 BBC 경영위원회를 헤드라이트 불빛에 놀란 토끼 같다며 조롱한다. 또한 이라크전 참전에 대한 비판 여론이 들끓던 2003년 3월 블레어 총리가 그와 BBC 회장인 개빈 데이비스에게 편지를 보내 항의했던 일도 폭로하고 있다. BBC의 방송 논조가 마음에 들지 않았던 블레어 정부는 이런 식으로 방송에 간섭을 했던 것이다. 2004년 10월 MBC 초청으로 한국을 방문했을 때, 그렉 다이크는 한 강연회에서 방송과 정치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이렇게 피력했다. “언론은 더 대담하고 도전적이어야 한다. 정치인들과 언론인들은 민주주의 국가에서 다른 역할을 부여받고 있으며, 서로 존중해야 한다. 민주주의는 언론과 정치 둘 다 필요로 한다.” 지금의 한국 방송은 정부와 국회의 뜻이 반영되는 방송위원회를 통해 구성되는 정치권 테두리 안에 존재하고 있다.(KBS는 물론 다른 방송사들 역시 사정은 비슷하다.) 즉 BBC에 비해 정치권력에 휘둘릴 가능성이 아주 높다는 뜻이다. 최근에는 KBS와 관련하여 ‘정권의 코드 방송’이라는 비난 여론이 거세게 일고 있는데, 정연주 사장의 재임명 문제를 둘러싼 논란 역시 그 연장선상에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BBC 구하기』가 한국 방송계에 시사하는 바는 매우 크다. 그렉 다이크와 BBC 사태를 교훈으로 삼아 방송의 임무와 사명에 대한 진지한 논의의 장이 펼쳐지길 기대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