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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민식
진실을 담는 시선 양장
최민식
예문 2006.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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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얼굴에 부친 인간 존재론 - 김열규(서강대 명예교수, 민속학자)

예정된 만남
내 어린 시절의 전원
홀로 남은 서울에서
전쟁 그리고 결혼
일본 밀항
사진과의 만남

나는 고발한다
필름에 담은 가난한 내 이웃
군화와 필름
나의 휴먼 심포니
사실을 담아내는 사진의 힘
흑백의 진실
사진은 철학이다
보이는 만큼 찍는다
사진에 인류를 담고 싶다
사진은 구호다
내 사진의 스승

삶은 사진이다
인생을 닮은 인물사진
나는 아직도 사진의 광맥에 있다
나는 왜 사진을 찍는가?
내 사진의 휴머니즘
끊임없는 나의 도전, 다큐멘터리
생애 속에 녹아든 나의 작품세계

부록
연보

저자 소개

저자 : 최민식
1928년 경상북도 안동에서 태어났다. 한국 사진예술의 1세대로서 국내 리얼리즘 사진의 독보적인 존재인 그는 한국전쟁이 끝나고 미술을 배우러 일본으로 건너갔다가 사진예술에 눈을 뜨게 되었다. 그 후 독학으로 사진을 연구하면서 특히 소외받고 가난한 사람들을 주제로 사진을 찍어왔다. 한국 국전 특선(1965), 대한사진문화상(1995), 백조사진문화상(1996), 동강사진문화상(1995)을 받았으며, 지금까지 미국, 독일, 프랑스, 일본 등에서 15회의 개인 초청전을 가졌다.
1957년부터 찍은 사진작품들을 자신의 사진집 《인간 ㆍ HUMAN》을 통해 꾸준히 발표하고 있으며 현재 12집까지 출간하였다. 이 외에도 여러 권의 에세이집, 사진평론집 등을 내며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으며 부산대, 인제대 등에서 강의를 하고 있다.

품목정보

발행일
2006년 11월 04일
판형
양장 ?
쪽수, 무게, 크기
218쪽 | 405g | 크기확인중
ISBN13
9788956590899

책 속으로

그 작은 농토에서 지은 벼를 지주에게 바치고 나면, 우리 여섯 식구는 반년이나 먹을까 말까 한 식량으로 일 년을 먹고살아야 했다. 1941년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별 수 없이 집안 농사일에 매달릴 수밖에 없었다. 아무래도 그 시절 중학교 과정을 배우기에는 현실이 따라주지 않았다. 그러던 중 우연히 신문에 기술 양성소 소개 기사가 난 것을 보고 눈이 번쩍 뜨였다. 기술도 가르쳐주고 중학과정까지 마칠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 지긋한 가난 때문에, 등록금이 없어 배우려 해도 배울 수 없는 내 처지에서는 희소식이 아닐 수 없었다. (…)
그렇게 해서 평안남도 진남포에 있는 미츠비시 마그네슘 회사의 기능자 양성소(중학과정)에 들어가 2년 후 졸업하였다. 그리고 졸업 후 바로 보내진 곳은 일본 군수공장이었다. 도착하자마자 코를 찌르는 악취에 아연실색했다. 무엇이 잘못 되어도 크게 잘못 되었다는 것을 깨닫기에는 이미 너무 늦은 때였다.
공장은 염산?염소 가스 때문에 숨쉬기도 힘든 악취를 내뿜고 있었다. 주변 과수원들은 모두 메말라 황폐함 그 자체였다. 폐병환자가 속출했고, 면으로 된 작업복은 하루도 못 가서 삭아버렸다. 많은 소년들이 그곳에서 죽어나갔다. 폐병으로, 영양결핍으로, 사고로. 그 독한 가스에 죽겠다 싶어 수차례 도망을 시도했으나 여의치가 않았다. 차라리 도망가다 잡혀 형무소를 가더라도 그곳을 벗어나고 싶을 정도였다. 무서웠고 고통스러웠다. 마스크를 아무리 두껍게 해도 소용없었다. 지금도 내 이빨은 그 독가스 때문에 성한 것이 별로 없다. 아직도 가끔 그 악취가 문득 내 코끝을 스치는 듯 해 섬뜩해지기도 한다.
일본 군수공장에서 내 삶이 이렇게 허무하게 끝나는가 싶었다. 괴로운 날들이 하루 이틀 이어졌다. 그렇게 1년 반을 지내고 희망이 꺾일 무렵, 전쟁이 끝나고 해방이 되었다는 눈물겹도록 반가운 소식이 들렸다.
전쟁은 끝났고 해방은 되었으나, 먹고사는 건 그다지 달라진 게 없었다. 나는 가족들이 있는 황해도 연안으로 돌아가 또다시 농사일을 계속할 수밖에 없었다. 소작으로는 양식이 모자라 1년 중 절반은 굶주리다시피 하는 생활의 연속이었다. 식량이 떨어지면 밤중에 남의 산에 몰래 가 생나무를 베어 장작을 해 장에 팔기도 했고, 막노동과 품팔이도 하면서 겨우 연명했다. (…) 배는 고팠지만 그렇다고 뾰족한 수도 없었다. 그대로 농사만 짓는다고 달라질 것은 없어 보였다. 나는 비교적 생활이 넉넉했던 고모에게 부탁하여 고모부 몰래 돈을 얻어 무작정 서울로 내려갔다. 농사일을 불쌍한 어린 동생들에게 떠넘기고 고향을 떠난 것이었다. 공부도 못 시키고 먹을 것도 주지 못한 동생들을 생각하니 가슴이 찢어질 것만 같았다.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반드시 성공해 돌아오겠다는 약속뿐이었다. 그로부터 60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다. 그때 이후 북에 남겨두고 온 동생들의 소식을 듣지 못했다. 남북 이산가족 만남의 신청을 했으나 지금까지 아무런 소식이 없다. 죽었는지 살아 있는지, 안부라도 알 수 있다면 좋으련만.

--- pp. 17~21

출판사 리뷰

“인간이 거기 있기에 나는 셔터를 눌렀다”

최근 권위 있는 사진 공모전의 입상 작품들 중 디지털 기술로 조작을 하고도 마치 아무런 손질을 가하지 않은 양 출품했다가 수상 자체가 취소되는 불미스러운 일들이 있었다. 우리의 사진 문화가 그만큼 사실보다는 보이는 것에만 급급한 현실이라는 점을 잘 반영한 사건이다. 이는 아직도 우리의 사진예술이 기술적으로 뛰어나고 눈으로 보기에 현란해야 좋은 사진이라는 인식이 지배적이기 때문이다. 예술로서의 사진에 대해 더 따져 물어본다면 이런 질문이 나올 수 있다. ‘사진은 어떤 가치를 지녀야 사진으로서의 제대로 된 기능을 하는 것일까?’ 최민식의 사진을 보면 단번에 그 해답을 발견할 수 있다.

한국전쟁이 끝나고 어려운 환경에도 불구하고 미술에 대한 열정을 버릴 수 없었던 그는 일본으로 밀항했고 그곳에서 처음으로 사진을 접했다. 그때부터 그는 50년 동안 줄곧 사진만을 찍어왔다. 사진이라는 것이 아직 서양인들의 호사스런 취미 정도로만 알려져 있던 상황에서 그는 가슴 아픈 조국의 현실과 그 안에서 힘들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알리기 위해 카메라를 들었다. 가난을 누구보다 잘 알았기에, 가난한 사람들의 표정을 누구보다 잘 읽어냈기에 그의 사진을 보는 동안에는 누구나 휴머니스트가 된다. 그것은 사실을 있는 그대로 고발하는 리얼리즘이라는 가치를 지녔기 때문이다. 그의 사진은 투박하며 결코 예쁘지 않다. 그러나 눈을 뗄 수 없게 만든다. 그렇게 사실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사진 본연의 기능에 충실했기에 그는 대가가 되었다. 하지만 그가 걸어온 사진예술가로서의 삶을 보면 그것만큼 힘든 일도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군사정권이 지배하던 시절 최민식은 권력을 가진 자들에게 더없이 불편한 존재였다. 그는 수시로 중앙정보부에 끌려가 시달림을 당해야 했고, 그들의 공작으로 인해 생계마저 이어나갈 수 없는 처지가 되었다. 그를 회유하기도 하고 강압하기도 하던 정권은 프랑스 문화원장과 짜고 그의 프랑스 전시회용 사진을 빼돌리기도 하였다.

중앙정보부에 수도 없이 불려갈 때마다 그가 듣던 말이 있다. “외국 초청전에 왜 그런 못 먹고 못 입는 국민들의 사진을 보내느냐, 나날이 발전해가는 국가의 모습, 설악산과 예쁜 아가씨들의 모습을 찍어 보내면 한국의 이미지가 좋아지지 않겠느냐.”

그의 대답이 걸작이다. “나는 국가를 홍보하는 사절이 아니다. 현실을 담는 예술가였기에 그런 선전물이 아니라 내 ‘작품’으로만 초청전에 임해야 했다. 그렇게 해야 당연하다. 설사 내가 가진 애국심으로 예쁘기만 한 대한민국의 사진을 열심히 찍어 외국인들에게 보여준들 그것이 애국일까. 그것은 누구를 위한 애국일까. 빈곤에 처한 민중을 구석방에 몰아둔 채 잔치를 벌이는 자들을 위한 것이 애국일까. 그들의 논리대로라면 나 역시 내 방식으로 국가를 홍보한 것이 아닐까. 그들과 다른 것이라면 내 애국심은 무엇보다 먼저 소외받은 절대다수의 민중에게 닿아 있다는 것이다. 나에게는 언제나 민중이 사실이고 현실이었으며 국가였다.”

이렇게 온갖 어려움에도 굽히지 않고 계속된 사진예술의 결정체가 그의 사진집 시리즈 《인간?HUMAN》이다. 이 작품집 역시 그의 생애처럼 순탄치 않은 작업이었다. 80년대 민주화운동이 한창이던 시절에는 《해방신학》이라는 책을 국내에 소개했던 베네딕트 수도원 산하 분도출판사에서 그를 지원하기도 했었다. 그렇게 온갖 억압과 탄압 속에서도 끈질기게 이어온 그의 사진집이 벌써 12권이다. 하지만 그는 여든이라는 나이가 무색하게 아직도 왕성한 활동을 보이고 있다. 아침이면 어김없이 카메라 가방을 둘러메고 걷고 또 걷는 그는 여전히 한국 리얼리즘 사진의 선두에 서 있다. 아직도 이 노(老) 사진작가만큼 많이 걸을 수 있는 작가는 국내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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