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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시 신드롬
1944년부터 현재까지 프랑스는 과거를 어떻게 다루었는가 양장
휴머니스트 2006.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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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한국어판 서문
옮긴이의 말
감사의 글
서문-신경증 프리즘
기억의 장(場) | 왜 비시인가? | 집단 기억
제2판 서문

제1부 협력과 저항, 그 갈등의 진화

1장 1944~1955년, 미완의 애도

1. 해방, 은폐의 기억
레지스탕스 꼬리표 | 청산의 딜레마 | 드골식 해석
2. 프랑스인들 간의 냉전
기이한 레지스탕스 | 사면과 사냥
3. 드골 진영의 저격서
'레미 사건' | 두 개의 시위
4. 마레샬의 전설
사원의 간수들 | 재심 | 납골당 이전 | 화해
5. 사법적 망각
페탱의 문제 | '도편추방법'
6. 안타까운 추억들
피날리의 아이들 | 오라두르의 아이들과 알자스의 아이들

2장 1954~1971년, 기억의 억압

1. 휴식 기간인가?
오베르크-크노헨 재판 | 국회에서의 소란 | 아카데미 프랑세즈 신드롬
2. 1958년 5월, 6월, 7월
드골의 재집권 | 과거와 현재의 기이한 왕복
3. 드골의 마귀 쫓기
모욕과 분노 | 대단한 애도
4. 수면 위로 다시 떠오른 갈등
레지스탕스 레퍼런스 | 알제리 전쟁과 프랑스 파시즘
5. 꾸며낸 명예
공식 기억 만들기 | 드골과 프랑스 | 레지스탕스 대원과 레지스탕스 |
국가, 어제, 오늘, 그리고 내일

3장 1971~1974년, 깨어진 거울

1. 잔혹한 슬픔
증언| 프랑스 내적 문제라는 시각 | 반유대주의 | 대독 협력자 |
레지스탕스 | 스캔들
2. 투비에 사건, 첫 번째 에피소드
사면 파문 | 바르비와 투비에 | 퐁피두의 화해
3. 레트로...... 회고하기
폭발적인 작품들 | 회고 유행 풍조

4장 1974년 이후, 강박의 시대 1―유대인의 기억

1. 불안의 시대
강제수용의 상처 | 유대 공동체
2. 다르키에가 몰고 온 파문들
다르키에 | <홀로코스트> | 르게, 부스케, 투비에(두 번째 에피소드) |
부인주의 | 반유대주의와 '일반화' | 비시 정권의 역할 | 재판 |
그것을 어떻게 말할 것인가?

5장 1974년 이후, 강박의 시대 2―뒤바뀐 정치 환경

1. "비시라고 말했나요?"
'지스카르 비시주의' | 프랑스 이데올로기들 | 마르셰 사건 |
1981년 대통령 선거운동 | 의회에서의 설전
2. 극우파와 아버지의 그림자
프랑스 우파 | 기이한 발상 | 노스텔지어
3. 바르비, 정화의 재판인가?
바르비 사건 | 재판, 기억, 역사 사이의 모순 | 바르비 재판과 재판의 충격

제2부 협력과 저항, 그 갈등의 전이

6장 비시 신드롬의 벡터들

1. 기념식에 대한 침묵
기념일의 의미 변화 | 공식 기억의 실패
2. 암울한 시기의 영화
해방기 | 신중했던 제4공화국 시기 | 1958~62년, 부흥기 |
1960년대의 다양한 주제들 | '회고' 유행 | 1980년대의 대중화
3. 학문적 기억들
초기의 저서들 | 드골의 비시, 로베르 이롱의 비시 | 레지스탕스 정신 |
비시의 미국인 | 독일 치하 프랑스에 대한 집중 조명 | 앞으로의 과제 |
역사학자와 일반 대중 간의 접속

7장 대중들의 수신, 기억은 확산된다

1. 미디어 메시지를 변주하라
영화 관객 | 독자들
2. 비시의 현대적 이미지
전쟁과 휴전 | 대독 협력자와 레지스탕스 대원들 | 6월 18일의 위인 |
페탱 신화의 신화
3. 기억의 정치학
망각 의지, 기억 의지 | 환상, 증오심

8장 결론, 비시의 기억은 어떻게 작동해왔는가

1. 신드레퓌스 사건
신드롬의 세 가지 특징 | 전쟁의 유산
2. 기억의 공금 수요의 불일치 증상
신화들이 걸어온 길 | 기억의 영역 조명

9장 저자 인터뷰, '바람직한 기억'이 존재할 수 있는가

미주
부록 1: 유용한 연표
부록 2: 프랑스 영화와 제2차 세계대전을 주제로 한 영화
부록 3: 참고문헌
찾아보기

저자 소개

저자 : 앙리 루소(Henry Rousso)
1954년 이집트의 카이로 출생. 스무 살인 1974년 생-클루 파리고등사범학교에 진학했다. 1981년 국립과학연구소(CNRS) 산하의 현대사연구소(IHTP)가 창립될 때 창립 회원으로 참가했으며, 같은 연구소에서 소장을 역임했고, 2005년까지 연구원으로 활동했다. 1986~87년 하버드대학을 비롯하여, 파리정치대학, 뉴욕대학 등에서 강의했다. 2000년 6월 ‘콜레주드프랑스’를 제외한 프랑스의 모든 고등교육기관에서 강의할 수 있는 자격증(habilitation)을 획득했고, 2001년 9월부터 파리 10대학 사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루소의 전공은 현대사 그 중에서도 특히 제2차 세계대전사이다. 〈Vingtieme siecle. Revue d'histoire〉, 〈Societe et Droit〉, 〈Les Cahiers du judaisme〉, 〈Passoto e Predente〉(이탈리아 학술지)의 편집위원, 프라하 프랑스연구소, 부다페스트 역사연구소 등 국제 학계에서도 많은 활동을 하고 있다.
그의 작품 『비시 신드롬』은 프랑스 사학계에 엄청난 파문을 일으켰고, 로버트 팩스턴(1972년 『비시 프랑스』라는 저서를 통해 프랑스 비시 정권이 나치즘에 자발적으로 협력했다고 주장)의 테제가 옳았음을 증명했다. 루소는 동시에 비시 체제가 비시 이후의 프랑스 역사에 끊임없이 관여하고 있음을 사료와 증언을 통해 주장했다. 작품으로는 La Collaboration. Les noms, les themes, les lieux(Paris:MA, 1987), Vichy, un passe qui ne passe pas(avec Eric Conan, Paris:Fayard, 1994), Vichy. L'Evenement, la memoire, l'histoire(Paris, Gallimard, 2001) 등이 있다.
역자 : 이학수
서울대학교 대학원 서양사학과에서 석사학위를 받았고, 같은 대학원에서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프랑스로 유학하여 사회과학고등연구원(DEA)을 거친 뒤, 소르본느대학에서 〈프랑스 알리에 농민들의 공산주의 운동 1920~1939〉이라는 논문으로 역사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서울대, 이화여대, 부산대, 부산교대 등에서 강의했고, 현재 해군사관학교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품목정보

발행일
2006년 11월 20일
판형
양장 ?
쪽수, 무게, 크기
661쪽 | 904g | 153*224*35mm
ISBN13
9788958621447

책 속으로

이 인터뷰는 한국의 독자들을 위해 마련했다. 옮긴이 이학수 선생은 2006년 2월 파라에서 저자 앙리 루소와 두 차례 만나 인터뷰를 진행했다. 이후 2006년 6월 한불수교 120주년 기념 제1차 한국?프랑스 국제학술대회 ‘친일, 대독 협력과 기억의 정치’가 개최되었는데, 루소 선생은 이 학술대회에 참가하여 〈프랑스의 제2차 세계대전의 기억:민족적, 유럽적, 국제적 문제〉라는 논문을 발표했다. 이때에도 두 사람의 만남은 계속 이어졌다. 이 인터뷰는 프랑스에서 진행된 두 차례의 대화, 학술대회의 만남, 번역을 위해 주고받은 2년여 동안의 토론을 정리한 것이다.

이학수 처음 비시체제에 대한 연구, 그것도 비시 체제 자체에 대한 연구가 아니라 그 이후 전개된 양측 세력 간의 힘겨루기를 추적했는데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비시 신드롬은 현재 프랑스 학계에서 어떤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가?

루 소 비시 체제나 비시 시기에 대한 석박사 과정 학생들에게는 지난 10년 동안 인기 있는 분야가 되었다. 그런데 이 책이 처음 출간될 당시는 당신도 알겠지만 1987년이었다(당신이 번역하게 될 책은 대폭 수정한 1990년판이다). 당시에 나와 같은 시기를 선택한 교수라고는 시앙스포의 장-피에르 아제마 교수뿐이었다. 아날학파가 지배하던 시대에는 중세말 과 근대가 가장 각광받는 분야였다. 당시 소르본 역사학자들은 여전히 제도사, 종교사, 군사사, 식민지 시절의 교역 등에 치중하고 있었다. 나는 사실 겁도 가장 뜨거운 감자를 집으려고 1939-1944년에 겁도 없이 뛰어 들었고 더구나 이 시대에 대한 연구가 아니라 이 시기를 기점으로 그 이후의 역사를 보겠다고 했으니 너무나 용감했던 것이 아니겠는가! 하지만 학계는 싸늘했었다. 그래서 이론 틀을 가져오기 위해 자꾸 모리스 알박스, 폴 리쾨르, 츠베탕 토도로프, 프로이트 등과 같은, 정통역사학자들이 아닌 사람들에게로 다가가기도 했었다. 파스칼 오리, 얼마 전 1대학에서 2차 세계대전 시기의 집단수용소로 국가박사학위를 마친 드니 페샹스키 정도만 나와 같은 시기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다가 외국 학자들의 연구로 이 시기가 논쟁으로 번지고, 나의 책이 출간되면서 다시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또 2판에서 내가 비시 시대를 주제로 한 영화들에 대한 분석을 시도한 것이 대중성을 얻는데 다소 기여한 측면이 있다.
( …… )
이학수 한국은 일본의 지배를 36년간이나 받았고 아직 과거청산을 프랑스와 같은 식으로 작업을 하지 못했다. 최근 진실위원회라는 정부부처가 생겨 친일파 문제라던가 한국 전쟁 당시 좌우익 이데올리기 갈등으로 많은 민간인들이 희생되었다. 현재 이념 때문에 희생된 자들이나 전쟁 와중에 폭격으로 사망한 사람들이 많았지만 아직까지 본격적으로 논의되지 못하다가 최근 이들에 대한 보상과 명예회복을 시도하고 있다. 한국은 일제의 식민지 지배로 빚어진 친일파와 독립운동에 참여했던 사람들의 문제, 한국전쟁으로 야기된 전쟁, 그 와중에 있었던 좌우파의 갈등 등 여러 가지 문제가 중첩된 역사의 특수성을 가진 국가이다. 이상의 문제를 두고 차근차근 질문해 보겠다.
~우선 한국과 프랑스가 외국 세력의 지배를 받았고 여기에서 적에 협력한 사람들과 조국의 독립운동에 또는 무장독립운동에 참여한 사람들 사이에 발생하는 갈등과 충돌 문제는 어느 정도까지는 공통적인 것 같다. 당신은 한국과 프랑스간의 대독협력과 레지스탕스에 대해 그 공통점과 차이점을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가?

루 소 마침 내가 서울에 가서 발제하게 될 한불120주년 주제와도 맞물려 고민하던 중이다. 우선 차이점과 공통점에 대해 고민해보자. 공통점은 외국 세력으로부터 점령을 당해 지배를 받았으며, 인적 물적 착취를 당했으며, 독립투쟁에 참여한 사람들이 체포되어 혹독한 대우를 받았다는 점일 것이다. 사실 한국의 역사나 일본의 역사에 대한 지식이 부족하여 좀 더 토론이 가능한 공통점을 찾아내지 못해 미안하다. 대신 나는 차이를 지적하면서 두 국가, 특히 프랑스가 처했던 상황의 특수성을 드러내 보이고 싶다.
당신도 잘 아시다시피 현재 프랑스와 독일은 유럽연합을 이끌어가는 두 기둥이다. 2차 세계대전에서 영국과 프랑스와는 연합국이었지만 프랑스 국민정서로 보면 영국인들보다 독일인들을 더 가깝게 느끼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프랑스와 독일(참 나는 독일에서 공부한 적도 있고 독일어가 유창한 편이다)의 역사를 보면 언제나 티격태격했고 서로 점령하고 점령당한 역사로 점철되어 있다. 하지만 그 와중에서 한 국가가 다른 국가를 결정적으로 지배하거나 장기적으로 우위에 섰던 적은 결코 없었다. 물론 알사스-로렌, 자르와 라인 지방은 프랑스와 독일이 번갈아가며 지배한 일부 영토는 예외로 한다.
1940~44년에 프랑스는 나치 독일에게 처음에는 영토의 일부를 나중에는 영토의 전부를 점령당했다. 강점기간은 비록 깊은 흔적을 남기긴 했지만 단기간이었다. 즉 식민지 지배라고 할 수 없는 전쟁기간동안의 단기적인 지배였다. 이 점이 한국의 일본 지배와 가장 큰 차이라고 보여 진다.
또한 프랑스 강점은 나치 독일이 다른 지역, 즉 중앙 유럽이나 동 유럽(특히 폴란드와 소련)에서 실시한 식민정책에서 비롯된 결과와는 달랐다는 점이다. 독일의 프랑스 지배는 다른 독일의 여타 점령 국가들과 비교해 볼 경우 덜 착취적이었고 덜 폭력적이었다고 할 수 있다. 내가 알기로 일본의 한국 및 중국 식민 지배는 유례없이 포악하고 착취적이었고 잔인했던 것으로 안다.
또한 프랑스와 독일 두 국가 간에는 중요한 차이가 존재하고 있다. 프랑스는 2차 세계대전 시기에서조차 식민지를 보유한 강대국이었다는 사실이다. 이에 비해 독일 제3제국은 식민지를 보유할 가능성도 없었고 프랑스 제국의 영토를 잠식할 의도도 없었다. 한편 프랑스 식민지는 연합국으로서는 군사적 측면에서, 드골의 자유 프랑스로서는 정치적인 측면에서, 특히 북아프리카가 그랬지만 반격 기지로 사용되었다는 사실이다. 일본은 프랑스 식민지인 인도차이나 등에서 식민지 지배를 시도했다. 하지만 식민지 지배나 관리가 일천했다고 볼 수 있다.

--- p.552-568

줄거리

1장 1944~1955년, 미완의 애도
사물에 대한 객관적(낙관적) 견해가 제2차 세계대전 이후의 시기를 습관적으로 ‘해방’과 ‘재건’이라는 연속적인 두 단계로 정의했다. 물론 어둠이 끝나면 빛이 오게 마련이다. 하지만 독일 점령의 끝난 뒤 10년 동안 전쟁 희생자에 대한 애도 작업이 힘들다는 시실을 목격할 수밖에 없었다. 이번의 애도는 1918년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났을 때처럼 전쟁의 상처에 대한 예상된 그리고 전통적인 애도였지만, 동시에 내적 충돌로 야기된 더욱 복잡하게 꼬인 불화를 포함하는 애도였기 때문이다. 해방 이후 계속해서 반복되는 위기의 기억들은 미완의 애도 시기에서 비롯되었고, 프랑스 사회는 자신이 겪었던 트라우마를 해결하는 데 완전히 무능하다는 것이 사실로 드러나고 말았다.

2장 1954~1971년, 기억의 억압
비시체제에 대한 기억을 두고 내적 갈등이 비교적 수스러들었다. 대신 이 시기에 프랑스인들은 ‘레지스탕스주의’라는 지배 신화를 구축했고 그 도움으로 내전에 대한 기억을 억압할 수 있었다. ‘레지스탕스주의’는 먼저, 비시 체제를 역사에 존재했던 것보다 주변화시키고, 프랑스 사회에 미친 비시 체제의 영향력을 체계적으로 극소화시키는 작업 과정을 거쳤다. 그 다음은 이 시기에 기억을 대상화하여 하나의 공동 기억을 만드는, 대문자 ‘레지스탕스(Resistance)’ 작업을 했다. 이제 기억들은 대상화되어 기념되고 ‘장소들’ 안에 새겨졌으며, 특히 드골주의와 공산주의와 같은 이데올로기적 집단 속에 새겨지게 되었다. 마지막으로 이 시기에 이 ‘레지스탕스’가 국민 전체와 동일시되는, 특히 드골 레지스탕스주의로 특징지워지는 작업 과정을 거치게 된다.

3장 1971~1974년, 깨어진 거울
거울이 깨지고, 신화도 산산조각 난다. 회상, 의문 제기, 홀린 듯 이끌리기 등을 통해 4년 동안 지속된 이 시기에 1950년 중반 이후 유지되어왔던 연약한 형평은 그 기반을 잃어버린다. 1971~74년에 생겨난 변화는 가장 의미심장하고 가장 눈에 띄는 신호들을 생성해내는 문화 영역에서 먼저 일어났다. 이 변화는 하나의 결과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다른 현상의 촉매제이기도 했다. 회고 풍조가 하나의 사회적 현상으로 자리 잡은 이유를 살펴보면, 그 현상이 자랄 수 있도록 자양분을 제공한 수요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다.

4장 1974년 이후, 강박의 시대 1―유대인의 기억
다시 강박의 시기가 시작된다. 유대인의 기억이 깨어난다. 유대인의 기억은 신드롬에서 아주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다. 다른 한편으로는 이 시기에 프랑스 국내 정치 토론에서 강점의 기억이 다시 중요해진다. 엄밀하게 말해 1974년이 전환점은 아니다. 깨어진 거울의 여세를 몰아 1940년을 명백한 사실 인증의 기준으로 삼기시작한 해가 1974년이었을 뿐이다. 경제 위기로 향수에 젖는 성향이 생겼을 것이다. 불확실한 미래 앞에서 갑자기 과거가 더 부각되고 미래를 전망하는 추세가 과거 되돌아보기에 밀려난 셈이다.

5장 1974년 이후, 강박의 시대 2―뒤바뀐 정치 환경
1974년 대선은 우파에게는 발레리 지스카르 데스탱의 당선으로 드골주의가 독차지해오던 지배가 끝났음을 의미했고, 좌파로서는 일시적이긴 하지만 결정적인 단합을 의미했으며, 단합의 결과 좌파는 1981년 선거에서 집권할 수가 있었다. 마지막으로 다양한 극우파 계열들이 대두하면서 이데올로기 논쟁을 다시 활성화시켰다. 심각한 경제 상황과 국제 정치의 긴장도이러한 국내 정치 환경을 조성하는데 일조를 했다. 모든 정치적 계파가 예외 없이 거센 비난을 자초했는데, 그 상당한 부분은 1940년대의 허상을 수많은 사실들의 근거인 양 끌어댔기 때문이다.

6장 비시 신드롬의 벡터들
과거의 벡터들, 신드롬의 역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던 벡터들을 검증하면서, 기억 증세들을 계급화하고 있다. 이러한 것들로는 기념식, 영화, 역사 기술(교육 분야 쪽에서의 역사 생산)을 들 수 있다. 기념식을 다루려는 것은 그것이 공식 역사의 구축에서 실패한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영화를 언급한 것은 그것이 공동 기억(집단 기억은 아니라도)의 형성에서 중요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역사 서술이 문제되는 것은 역사가와 역사책이 여전히 전형적인 기억의 벡터들이기 때문이다.

7장 대중들의 수신, 기억은 확산된다
이제 관심을 수신자(recepteurs) 쪽에 맞춘다. ‘확산된 기억’은, 조직된 기억들(정당이나 시민단체들)이나 지식인들에 의해 재창조된 기억만큼이나 잠재력 측면에서 중요한 기억들이며, 이들과 서로 대립관계에 있다. 하지만 확산된 기억은 개인의 기억과는 달리 자기 자체로서는 과거에 대해 일관되고 작동적인 관점이 구성될 수 없기 때문에 다른 재현들과의 경쟁에서 마지막 승리가 될 수가 있을 것이다. 따라서 질문은 바로 여기에 있다. 다양한 연령층, 다양한 견해를 가진 프랑스 사람들이 그들에게 제공된 표상들로 영향을 받았는가, 받지 않았는가?

8장 결론, 비시의 기억은 어떻게 작동해왔는가
이 책은 강점기를 조명하면서 프랑스 역사를 다시 쓴다는 주장을 하지는 않는다. 종종 소홀히 취급했던 기억의 영역을 부각시키려는 노력에 힘을 쏟았을 뿐이다. 우리는 비시 신드롬의 열쇠를, 왜 그것이 존재했는가보다 ‘어떻게’ 그것이 작동했는가를 먼저 질문해 보아야 한다. 마지막으로 두 가지 질문이 제기될 수 있을 것이다. 하나는 원래 사건의 성격이며, 다른 하나는 이와 관련된 기억이 특별히 진화해 나간 방식이다.

출판사 리뷰

신경증 프리즘으로 본 ‘저항과 협력 사이’의 갈등
― 이 책의 특징 1

『비시 신드롬』 독일 강점기에 전개된 역사를 설명하거나 관찰하려고 하지 않았다. 이 책은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프랑스 국민들의 기억 전개 양상을 그리고 있다. 이 양상은 상황에 따라 3~4 국면들로 구분하고 있는데, 그 구분 과정을 프로이트의 심리학 방법론을 도입하여 그려내고 있다. 전쟁 혹은 내전 직후 프랑스 국민들의 기억 전개 양상을 서술하고 있는 것이다. 책의 기본 구성은 프로이트의 이론을 도입하여 애도 작업, 기억의 억압, 기억의 자기 진술, 기억의 과잉 등으로 발전시켜나가고 있다.

이 책을 처음 쓰겠다는 생각은 청년기의 순진함에서 비롯된 만용에서 시작되었다. 1970년대 말 나는 처음으로 비시 체제에 대한 연구를 시작했다. 당시 이 주제가 여전히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는 사실을 잘 알면서도 충분한 시간이 흘렀기 때문에 이 시대에 칼날을 들이대는 것이 가능하다고 판단했다. …… 비시 체제라는 시신은 아직도 피가 채 식지 않았던 것이다. 죽은 시신을 다루는 법의학들에게는 충분한 시간이 아직 흐르지 않았으며, 오히려 살아 있는 사람들을 다루는 의사들 또는 정신분석학자들의 소관으로 판명되었기 때문이다.
나를 놀라게 한 것은, 역사가들의 집필을 포함하여 전쟁 시기인 이 암흑기에 관한 모든 기록들에 대해 사람들이 정열적으로 반응했다는 사실이 아니라,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생생하게 존재하면서 종종 강박으로까지 바뀌는 비시 체제의 ‘현재성’에 있었다.……
여기서 나는 당시의 단순한 학문적 접근을 뛰어넘는 연구가 시급히 필요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기존의 비시 역사 외에 다른 비시의 역사가 구성되기 시작했다. 비시 기억의 역사, 비시 체제 잔류의 역사, 비시 체제 지속의 역사가 그것이다. 시기는 1944년 ‘이후’부터 시작되지만, 언제까지로 규정해야 할지 아직도 단정하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결정을 내릴 수가 없을 것 같다.
― 『비신 신드롬』 38~39쪽, 서문에서


‘기억’과 ‘역사’의 흥미로운 만남
― 이 책의 특징 2

이 책은 역사가들 가운데 어느 누구도 ‘집단 기억’에 대해 말하지 않던 1980년대에 씌어졌다(2판 1990년 발간). 『비시 신드롬』의 저자 앙리 루소는 『기억의 장소(Les lieux de memoire)』의 피에르 노라(Pierre Nora)와 함께 프랑스 역사학계의 대표 학자로 평가받고 있는 학자이다. 두 사람은 ‘기억’이라는 공통의 주제를 연구하고 있지만, 그들이 말하는 ‘기억’은 근본적으로 다르다.
피에르 노라의 기억의 장소는 과거를 축하하는 구체적이고 가시적이며 지속적인 흔적이다. 따라서 역사는 특이한 기억을 소지하고 있는 특이한 집단에 의해 만들어진다고 생각한다. 반면, 앙리 루소의 ‘기억’은 복수이다. 그래서 서로 싸우고 갈등하고 투쟁하는 것이며, 그런 상태로 지금도 기억은 후세대에게 전이되고 있다고 말한다.

이학수 『비시 신드롬』을 쓰겠다는 생각은 정확히 언제 했는가?

루 소 나는 개인적으로 미국 역사가 로버트 팩스턴(Robert Paxton)―그 분의 부인은 프랑스인이다―의 책을 읽고 감동 받았다. 1972년에 『비시 프랑스. 친위대와 신질서 1940-1944』라는 책이 나왔는데―물론 영어판을 읽었다―그것은 우리가 배워온 것과 당시의 프랑스인들의 비시 체제 및 레지스탕스에 대한 입장과는 완전히 해석을 달리하는 충격적인 책이었다. 그는 국적은 다르지만, 외국인으로 프랑스 전공 역사가이지만 나에게 역사적 전망을 열어준 사람이다. 나는 그 사람의 시각이 맞는지 직접 연구해보고 싶었다. 이듬해에는 이 책이 장-피에르 아제마 교수의 어머니가 번역한 것을 세이유(Seuil)에서 출판했다. 이 책이 불러일으킨 파장에 대해서는 본문에서 자세히 설명을 했기 때문에 여기선 생략하기로 한다.

이학수 나는 프랑스 유학 시절 사회과학고등연구원에서 DEA를 하면서 동양인으로서는 드물게 피에르 노라의 ‘기억의 장소’ 세미나에 참석한 적이 있다. 지금 한국에서는 피에르 노라가 각광을 받자 『기억의 장소』를 번역하는 작업에 들어갔다고 한다. 그때 피에르 노라는 “프랑스 역사가 지나치게 프랑스 민족의 긍지와 영광을 내세우면서 기억 담론을 전유한 측면이 있어, 이러한 민족 서사시를 지양하고 역사와 기억의 만남을 제대로 조명해보면서 민족 역사를 확립하는 작업”이라고 대대적으로 소개했다. 그런데 당신이 말하는 기억과 피에르 노라가 기억의 장소들에게 말하는 기억은 달라 보이는데 정말 다른가?

루 소 내가 정의하는 기억과 노라가 정의하는 기억은 전적으로 다르다. 아무리 윤색을 해도 노라는 유럽연합 시대에 프랑스가 역사의 중심이기를 바라면서 프랑스 민족의 기억을 공식화하려는 전통적이고 보수적이고 애국적인 학자의 입장이라고 단적으로 말하겠다. 반면 나의 기억은 변화하고 갈등하고 충돌하며 고정되는 것이 아니라 세대를 따라 전이되는 기억이다. 이 문제는 매우 민감한 문제이므로 이 정도 선에서 멈추기로 하자.

이학수 처음 책이 출간되었을 당시 프랑스 보다 독일이나 미국과 같은 외국에서 더 인기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루 소 내 책에 대해 미국인들과 독일인들은 이상하게 호의적인 반응을 보이며 책도 일찍 번역되었다. 또 나는 개인적으로 독일에서 개최되는 세미나, 학술대회 때 발표자나 토론자로 자주 참석했고, 미국에서는 하버드와 뉴욕대학에서 강의를 한 적도 있다. 아마도 비시체제에 대한 나의 시각이 로버트 팩스턴과 유사하기 때문이고 나의 역사관이 민족주의 사관이나 국수주의가 아니라고 느끼기 때문인 것 같다. 또 이제는 특정 민족의 역사나 전쟁 역사에 대한 해석을 국제적 수준에서 접근하고 국제적 수준에서 담론화를 시도하자는 나의 주장에 반응을 보이는 것인 것 같다. 물론 내가 독일 강점 시기가 현재에도 계속해서 프랑스 사회에서 쟁점화되고 있는 이유는, 독일 지배가 아니라 비시 체제 때문이며 그러한 현상을 ‘프랑스인들과 프랑스인들 간의 내전’으로 해석하는 것에서도 특히 독일인들은 매력을 느끼는 모양이다.
― 『비신 신드롬』 555~557쪽, 9장 저자 인터뷰에서


이 책에서 말하고자 하는 세 가지 메시지
― 이 책의 특징 3

첫째 프랑스가 수치스런 과거를 국가가 나서서 과거 청산을 한 대표적인 경우라고 알고 있지만, 실제로는 과거 청산을 더욱 더 잘 할 수 있었는데도 각 세력 간의 힘겨루기와 여러 가지 악재가 겹쳐 결국 불완전한 상태로 마무리 짓고 말았다는 것이다. 당연히 그 이후 전개되는 프랑스 역사에서 비시 문제는 망령처럼 끊임없이 되살아나면서 사회 문제가 터질 때마다 프랑스 사회를 둘로 양분하고 있다.
둘째 드골은 우리에게 프랑스의 영광을 드높인 인물, 레지스탕스를 대표하는 위대한 인물로 소개되어왔다. 하지만 이 책에서는 드골은 우리나라의 이승만과 유사한 정치가로 평가하고 있다. 즉 국내의 레지스탕스 기반 없이 런던과 알제 등 외국에서만 ‘빙빙’ 돌았으며, 실제 무기를 들고 투쟁한 경험도 없으면서 외교적인 노력과 화려한 수사와 연설만 했으며, 결정적인 순간에 기회를 포착하여 권력을 장악한 것이라든가, 또 진정한 레지스탕스 투사들을 정치에서 격리시키고 자신을 레지스탕스의 상징적 인물로 내세운 뒤 레지스탕스 자체를 민족 신화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셋째 저자는 프랑스 국민들이 자라나는 청소년들이 교과서를 통해 ‘프랑스는 비록 2차 세계대전에서 독일에게 패하여 독일의 지배를 받았지만 레지스탕스 대원들의 활약으로 독일로부터 해방될 수 있었으며, 그것으로 프랑스의 혼은 죽지 않고 살아 있다’고 배워왔는데, 실은 그 모두가 허구에 근거한 신화였고 그러한 신화는 결국 68혁명에 의해 산산이 깨어지고 말았다고 주장한다.
독자들은 이제 곧 레지스탕스가 특히 드골에게 이용됨으로써 레지스탕스 운동에 참여한 투사들은 해방 후 오히려 정치에서 격리되고 소외되어 가면서 부당한 대우를 받았음을, 또 레지스탕스에 참여하지 않은 사람들이 레지스탕스를 이용하고 레지스탕스를 신화로 만들어버렸다는 내용을 만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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