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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의심한다
1 청춘 음악을 읽다_ 오늘 잃어버린 내 야상 단 30분 겨울이 싫었다 젠장, 큰일이다 복숭아 2 내 생애 최고의 여행 외톨이 나는 당신에게 반하고 싶다 에스컬레이터 음악을 읽다_ 내 마음은 어른의 영화 저절로 그려지는 그림 3 아름답다 동시대 예술가 W 617 여전히 참, 너답다 음악을 읽다_ 그 노래 이사를 했다 정말, 정(正)말입니다 4 안녕, 똥차 애증의 관계 언제나 이렇듯, 어느 날 갑자기 석류 음악을 읽다_ 동행 힘들다고 말할 수 있는 누군가는, 그 손을 잡아야 한다 다음에, 다시 올게요 도움을 받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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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아직도 만나고 있는 오랜 친구가 불쑥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고마워.” 며칠 전 잠을 자다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었단다. 아직도 나랑 놀아 주고 있는 몇 안 되는 내 친구들이 너무 고맙다는 생각. 그렇잖아. 내가 생각해도 나는 이기적이고 모난 데도 많은데, 그런 나를 참아 주고 아직도 놀아 주는 친구들이 고맙잖아. 그때 나는, 뭐라고 답했더라. 아마도 오글거리는 건 못 견뎌 하는 나는 농담처럼 그 말을 받았을 것이다. 나만 하겠니. 너도 알잖아, 나 친구 몇 명 없는 거. 너까지 나랑 안 놀아 주면 나 외로워서 큰일 나. 그래서 너한테 잘하는 거야. 나도 이기적이라서. ---「어른의 영화」중에서 그날은 집에 돌아와서도 W의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도대체 어디로 사라진 걸까. 그러다 문득 라디오 작가 시절 내가 자주 꿨던 꿈이 생각났다. 알람이 울려댄다. 일어나야 한다. 새벽까지 원고를 쓰다 잤으니, 두 시간도 못 잤다. 하지만 일어나야 한다. 머리 안 감고 모자 쓰고 나간다 해도, 방송국까지 40분은 걸리니까…. 일어나야 하는데, 지금은 일어나야 하는데…. 그러다 깜빡 다시 잠이 들면, 이런 꿈을 꾸곤 했다. 몸이 돌덩이처럼 무거워 침대에서 일으킬 수가 없다. 일으키기는커녕, 내 몸이 점점 더 침대 속으로 빠져들어 가는 기분이 든다. 조금씩, 조금씩 더… 침대 안으로 내 몸이 빠져들어 간다. 그 순간 딱! 이 부딪히는 소리가 좁은 방 안으로 경쾌하게 울려 퍼진다. 우걱우걱. 침대가 입을 닫아버렸다. 우걱우걱. 내가 사라져버렸다. 잠시 후 후두두 두둑. 침대가 내 하얀 뼈를 뱉어낸다. 그 즘 나는 늘 놀라서 깨곤 했다. 일어나 보면 하얀 뼈 대신 밤새 내가 흘린 땀이 침대에 흥건했다. 그때 나는, 내가 사라져버릴까 봐 두려웠던 걸까. 내가 사라져버렸으면 좋겠다고 바랐던 걸까. W는 도대체 어떻게 된 걸까. 스스로 사라져버린 걸까. 사라짐을 당한 것일까. ---「단 30분」중에서 “나는 만족을 모르는 인간인가 봐요. 어쩌면 지금의 나를 부러워하는 사람들도 있을 텐데, 왜 나는 여전히 불안하고 자꾸만 다른 꿈을 꾸는 걸까요?” 한 선배에게 물었다. 나보다 열 살 이상 많은 선배였다. 나름 진지하게 물어본 거고, 뭔가 어른스러운 답을 얻고 싶었다. 그런데 돌아온 선배의 답은, “나도 그런 걸, 뭐.” 에에? 선배 나이가 돼도 그런 고민을 해야 한단 말이에요!? 나도 모르게 목소리가 커졌다. 곧 오십을 바라보는 선배의 나이. 그런데도 선배에겐 꿈이 있었다. 그것도 선배의 지금 현실과는 무척 다른 꿈. 그래서 선배 또한 여전히 불안하고 힘들다고 했다. 그 꿈을 이뤄 나갈 의지와 열정이 늘 모자란 것 같아 자책하고, 현실과 꿈속의 삶 사이에서 갈등하느라 괴롭고. “우울해! 선배 나이가 돼도 그런 고민을 해야 한다니, 우울해, 우울해!” ---「젠장, 큰일이다」중에서 어린 시절 나는 만화 ‘은하철도 999’의 철이가 여자아이라고 생각했습니다. L은 생각했다. 가발을 쓰고 모자를 푹 눌러써 남자아이인 척해 봤자 나를 속일 순 없다고. 옆집 영희가 L을 바보 멍청이라고 부르기 전까지 L은, 철이가 틀림없는 여자아이라고 생각했다. “엄마, 철이가 남자예요? 아니죠? 여자죠? 영희가 바보 멍청이인 거죠?” 언제나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거짓말을 못했던 L의 어머니는, L을 향해 다음과 같은 표정을 숨길 수 없었다. ‘내 아들이 바보 멍청이인 건가? 어떻게 철이를 여자라고 생각할 수 있는 거지?’ 하지만 L에게 철이는 분명, 영심이었다. 1993년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라는 말을 남기고 타계한 성철스님보다도 몇 해 전 ‘하나면 하나지 둘이겠느냐, 둘이면 둘이지 셋이겠느냐.’ 만고불변의 진리를 담아 이 노래를 불러대던 안경태의 영원한 첫사랑 영심이. 분명 은하철도 999의 철이는 영심이었다. 그러니 철이는 당연히 여자인 거 아닌가? 영심이가 크면 달려라 하니의 나애리가 되는 거고. 그런데 왜 영심이는 갑자기 나애리로 개명을 한 걸까? 사람들은 영심이와 나애리의 얼굴이 다르다고 하던데, 성형수술한 과거를 숨기기 위해 개명을 한 걸까? ---「정말, 정(正)말입니다」중에서 누군가 말했다. 인간은 서로의 불행을 털어놓으며 정을 쌓아 가는 동물이라고. 자신의 삶에 눈곱만큼의 불만도 없는, 정말 완벽하게 행복한 사람, 나는 지금껏 만나 본 적이 없다. 우리는 모두 힘들다. 각자 다른 이유, 다른 크기의 불행을 우리는 모두 갖고 있다. 그리고 털어놓는다. 가장 가까운 사람들에게, 나의 불행을. 그리고 또 듣는다. 가장 가까운 사람들에게, 그들의 불행을. 나만 힘든 건 아니구나, 너도 힘들구나, 우리 같이 힘내자. 서로를 위로하며, 걱정하며, 독려하며, 함께 울다가 웃다가, 그렇게 우리는 친구가 된다. 그래서 나는 바라게 됐던 것 같다. 다음 만남에선, 우리 모두 조금 더 작은 불행으로 투덜거릴 수 있기를. 나뿐 아니라 너의 불행 또한 작아져야, 나의 작아진 불행도 투정의 기회를 잡을 수 있을 테니까. 그리고 그다음 만남에선, 우리 모두 더 더 작아진 불행으로 투덜거릴 수 있기를. 그러다 어느 날은, 정말 시시콜콜한 얘기들로만 투정부릴 수 있기를. 그보다 완벽한 내일은 상상할 수 없었다. 커다랗던 불행들이 하나둘씩 사라져, 어느새 우리 모두가 아주 작은 일로도, 나 요즘 이런 것 때문에 힘들잖아, 투정부리듯 볼멘소리를 하고 그러다 또 웃을 수 있는 내일. 나는 그런 내일을 꿈꾸곤 했다. ---「힘들다고 말할 수 있는」중에서 “나를, 좋아해 주는 사람이 있어.” 어느 날, B가 A에게 말했다. 천천히 책에서 고개를 들어, A가 두꺼운 안경 너머로 B를 바라봤다. 지금도 B는 그 날, 그 때, 그 순간 A의 표정을 잊을 수 없다고 했다. 아무 말도 하지 않고 B를 바라보던 A의 표정. 그 표정에 짓눌려 B가 다시 입을 열었다. “나도… 그 사람이 싫지 않아.” 그리고 또 한참이나 B는 기다렸다. A가 무슨 말이든 해 주길 바랐다. 화라도 내 주길, 조금이라도 섭섭한 기색을 보여 주길, 아주 미세하게라도 달라진 표정을 보여 주길. 하지만 여전히 A는 A였다. 특유의 그 초연한 표정. 그 누구와 함께 있어도 혼자라는 표정. 그리고 내게는 그것이 너무 당연하다는 표정. 참지 못하고 다시 입을 연 건 B였다. “나한테, 무슨 할 말 없어?” 고개를 갸웃하며 한참을 생각하던 A는, 이렇게 말했다. “그건… 잘된 일인가요?” ---「누군가는, 그 손을 잡아야 한다」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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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간다는 건, 끊임없이 스스로 반문하는 것, 끊임없이 나를 돌아보는 것
사실과 거짓, 진실과 환상, 현실과 꿈, 그 사이를 헤매는 우리의 이야기 “마지막 마침표가 끝날 때까지도, 의심을 멈추지 마라.” 첫 에세이집 《나는 아직, 어른이 되려면 멀었다》와 그로부터 3년 후 출간한 《나는 다만, 조금 느릴 뿐이다》를 연달아 베스트셀러에 올려놓으며 60만 독자의 사랑을 받아온 작가 강세형. 평범한 일상에서 맞닥뜨린 가슴 먹먹한 순간들과, 기쁨과 슬픔이 교차하는 일상의 순간들을 섬세하게 포착하며, 놀라운 공감의 힘으로 우리에게 위안과 희망을 전해왔던 그녀가 2년 만에 새로운 이야기 《나를, 의심한다》로 돌아왔다. 신작은 형식과 내용 모두에서 새롭고 특별하다. 결이 다른 이야기들이 놀라운 상상력과 섬세한 문장으로 사실과 환상, 현실과 꿈을 가로지르며 뒤섞여 펼쳐지기 때문이다. ‘에세이’라고 부를 법한 우리 주변의 평범한 이야기뿐만 아니라 ‘소설’이냐 되묻고 싶을 정도로 픽션적 요소가 강한 이야기, 그리고 글과 음악이 어우러진 이야기까지. 작품에는 서로 교차해 써내려간 다양한 빛깔의 이야기들이 공존한다. 작가가 전작에서는 ‘나’와 ‘너’의 이야기에 주목했다면, 이번 책에서는 ‘우리’와 ‘사회’로 시선을 확대하여 한층 더 넓고 깊어진 질문을 던진다. 더불어 ‘강세형의 책’ 하면 예쁘고 사랑스러운 일러스트, 감각적인 문장, 깊은 공감과 감성을 떠올리던 독자는, 이번 작품에서는 온전히 글에만 집중하는 색다른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작가는 비주얼한 장치 대신, 책 전체를 관통하는 ‘의심’이라는 주제를 떠올리게 하는 서사적 장치를 곳곳에 심어놓고 독자가 걸려들기를 숨죽여 기다린다. ‘나를, 의심한다’에서 작가의 메시지는 책의 내용뿐 아니라 형식을 통해서도 독자에게 다가가고 있는 것이다. 세상이 아직 서툴고 불안한 우리가 소중한 일상과 마음속 진실을 마주하는 방법 “내 안의 나와 마주하며, 그렇게 우리는 어른이 된다.” 교복처럼 즐겨 입던 옷을 잃어버린 후 불현듯 깨달은 이별에 대한 생각, 어른이 되면 하지 않게 될 거라 생각했던 걱정들을 여전히 하고 있는 자신에 대한 고민, 아무리 힘들어도 힘들다고 말할 수조차 없는 세상살이의 힘겨움, 미워도 쉽게 헤어질 수 없는 애증 같은 주위와의 관계 등…. 누구나 경험했을 사람과 사람 사이의 이야기, 익숙해서 미처 깨닫지 못했던 일상의 단면들까지, 강세형 작가의 스토리텔링에서는 그녀만이 가진 특유의 관찰력이 빛난다. 일상 속에서 흘러나온 감정들을 포착하여 섬세하게 그려낸 유려한 필치는 강한 흡인력으로 독자를 이끈다. 작품 속에는 자신의 곁을 돌아보고 삶을 반추하게 하는 순간들로 가득하다. 익숙한 이야기지만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단상들은 새롭기만 하다. 나는 알고 있었다. 그와 똑같은 야상은 어디서도 찾을 수 없으리라는 것. 내가 찾는 옷은 새 옷이 아니라 ‘그 옷’이었으니까. 똑같은 디자인의 새 야상이 아니라 몇 해를 입어 비로소 내게 적당해진 바로 ‘그 야상’이었으니까. 세월이 만들어 준 그 적당함은, 그 어떤 새것으로도 대신할 수 없다. 그런데 시간이 흘러 다시 봄이 오는 듯하니, 나는 또 일감이 한가득 쌓인 책상에 앉아 일 대신 검색을 하고 있었다. 똑같은 야상 어디 없나. 그와 똑같은 야상은 절대 찾을 수 없으리라는 걸, 잃어버린 순간부터 알고 있었으면서 또. 부질없는 짓이라는 걸 알면서 또. 나는 늘 그랬으니까. 무언가가 가장 간절해지는 순간은 언제나 그때. 사람이 가장 그리워지는 순간 또한 언제나 그때. 이제 다시는 그와 같은 사람을 만날 수 없으리라는 걸 알게 되는 바로 그 순간, 그때였으니까. _[읽어버린 내 야상]에서 영국의 소설가 마크 해던은 “독자는 책을 읽으며 질문을 하지만, 좋은 책은 독자에게 말을 걸기도 한다”고 말했다. 그녀의 책은 수많은 생각들의 파편들로 독자의 마음 가장 깊은 곳으로 다가가 숨겨진 질문을 끄집어내고 끝내 마음을 울린다. 누군가 말했다. 인간은 서로의 불행을 털어놓으며 정을 쌓아 가는 동물이라고. 자신의 삶에 눈곱만큼의 불만도 없는, 정말 완벽하게 행복한 사람, 나는 지금껏 만나 본 적이 없다. 우리는 모두 힘들다. 각자 다른 이유, 다른 크기의 불행을 우리는 모두 갖고 있다. 그리고 털어놓는다. 가장 가까운 사람들에게, 나의 불행을. 그리고 또 듣는다. 가장 가까운 사람들에게, 그들의 불행을. 나만 힘든 건 아니구나, 너도 힘들구나, 우리 같이 힘내자. 서로를 위로하며, 걱정하며, 독려하며, 함께 울다가 웃다가, 그렇게 우리는 친구가 된다. _[힘들다고 말할 수 있는]에서 에세이 중간중간 삽입된 글과 음악의 컬래버레이션 [음악을 읽다]도 책을 읽는 즐거움을 더한다. 저자가 라디오 작가로 일하던 시절 [뮤직 아일랜드]로 인연을 맺은 김동률의 2014년 ‘동행’ 앨범 수록곡에 동명의 에세이를 붙인 것이다. 가사는 같지만 듣는 사람에 따라, 또 듣는 상황에 따라 조금씩 다른 해석과 감상을 가질 수 있는 것이 음악의 힘임을, 강세형 작가는 때로는 따뜻하게 때로는 섬세하게 보여준다. * * * 이 책을 통해 삶의 면면과 자연스럽게 맞닿아 있는 소소한 일상의 이야기를 읽다 보면 “맞아, 나도 그런걸”이라고 중얼거리며 꼭꼭 숨겨둔 내면의 상처를 꺼내고 싶어진다. 그렇게 독자는 공감하고 위로받고 새로운 희망을 얻는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읽으면 읽을수록 낯설고 이상하다는 생각이 든다. 무언가 다르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자꾸만 의심하게 된다. 저자가 이 책을 통해 우리에게 묻는 질문들을 어느새 독자 스스로 하게 된다.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세상, 우리가 속한 사회, 내가 믿고 의지하는 가족과 친구들, 그리고 내 자신까지…, “어디까지가 사실이고, 어디까지가 거짓일까.” 모든 것에 대한 의심을 멈추는 순간, 나는 그런 어른이 되어 있을지도 모르니까. 내가 본 것, 내가 아는 것, 내가 믿고 내가 기억하는 모든 것이 100%의 진실, 100%의 옳음이라고 확신하는 어른. 나를 조금도 의심하지 않는 어른이. 그래서 오늘도 나는 나를, 의심한다. 내 머릿속을 맴도는 수많은 기억들과 수많은 말들과 수많은 이야기들을 끄집어내 펼쳐 놓곤 한참을 바라보다 이런 생각을 한다. 어디까지가 사실이고, 어디까지가 거짓일까. _[나를, 의심한다]에서 한 권의 책은 세상의 축소판이다. 특히 이 책이 그렇다. 사실과 거짓, 진실과 환상, 현실과 꿈의 경계에서 우리를 비추는 세상, 그리고 그 속을 헤매며 무엇이 사실이고 무엇이 가짜인지 분간조차 하기 힘든 우리. 그렇게 저자는 아직 서툴고 여전히 불안한 우리에게 진정한 어른의 시간을 오롯이 마주하는 방법을 보여준다. 바로 ‘의심’을 통해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