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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의 범죄사
인류의 시작부터 현대까지 방대한 범죄의 역사 양장
알마 2015.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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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서문(2002년)

1부 인간 폭력의 심리학
1장 폭력의 숨은 패턴
2장 인류의 폭력성에 관한 기록
3장 자기파괴의 심리학
4장 인간은 어떻게 진화했는가
5장 의식의 단점

2부 범죄사 개관
1장 해적과 모험가
2장 유명한 도시
3장 네로부터 콘스탄티누스까지
4장 로마제국의 멸망
5장 혼돈 속의 유럽
6장 암살자와 정복자
7장 여행자와 모험가
8장 의기양양한 교회
9장 역사가 규칙을 바꾸다
10장 개인주의에서 혁명까지
11장 범죄의 세기

3부 대량살인의 시대
1장 성범죄의 등장
2장 폭동
3장 마피아
4장 정치적 조직범죄
5장 범죄 폭발
6장 현실감

부록(2004년)
후기
감사의 말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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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

콜린 윌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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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in Wilson

콜린 윌슨은 1931년 6월 26일 잉글랜드 중부 레스터셔 주의 주도인 레스터에서 노동계급 가족의 맏아들로 태어났다. 일곱 살 때 처음으로 글을 읽는 법을 배운 뒤로는 독서에 몰두했고, 자연과학, 심리학, 철학 서적에서 《위어드 테일즈》와 《안락의자 과학》 등의 펄프잡지까지 닥치는대로 탐독함으로써 광범위한 교양을 쌓았다. 16세에 중학교를 그만둔 뒤에는 생계를 위해 모직 공장에 취직했고, 단조로운 공장의 일상에서 탈출하기 위해 T. S. 엘리엇을 위시한 위대한 영국 시인들의 시에 탐닉했다. 그 뒤에는 실험실 조수와 세무서 공무원 등으로 일하다가 영국 공군에 자원 입대했지만, 단조
콜린 윌슨은 1931년 6월 26일 잉글랜드 중부 레스터셔 주의 주도인 레스터에서 노동계급 가족의 맏아들로 태어났다. 일곱 살 때 처음으로 글을 읽는 법을 배운 뒤로는 독서에 몰두했고, 자연과학, 심리학, 철학 서적에서 《위어드 테일즈》와 《안락의자 과학》 등의 펄프잡지까지 닥치는대로 탐독함으로써 광범위한 교양을 쌓았다. 16세에 중학교를 그만둔 뒤에는 생계를 위해 모직 공장에 취직했고, 단조로운 공장의 일상에서 탈출하기 위해 T. S. 엘리엇을 위시한 위대한 영국 시인들의 시에 탐닉했다. 그 뒤에는 실험실 조수와 세무서 공무원 등으로 일하다가 영국 공군에 자원 입대했지만, 단조로운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고 곧 제대한다.

1950년대는 농장일이나 도랑을 파는 뜨내기 인부로 생활비를 벌며 독서를 계속했고 이때 읽은 『바가다트 기타』에 촉발되어 시작한 명상은 윌슨의 우울증을 극복하는데 큰 도움이 되어 주었다. 그해 여름에는 프랑스를 여행하며 미국인 철학자 레이먼드 덩컨을 만나 잠시 교류하기도 했지만, 곧 고향인 레스터로 돌아와서 여러 직종을 전전하며 데뷔작인 『어둠 속의 의식』(1960)과 문학 평론 등을 쓰기 시작했다. 생활에 신경을 쓰지 않고 창작에 전념하려고 작심한 윌슨은 낮에는 마르크스와 쇼가 집필을 했던 대영박물관의 독서실에서 자료를 찾아가며 『어둠 속의 의식』을 썼고, 밤이 되면 근처의 햄스테드 히스 공원에서 방수 침낭 하나만 가지고 노숙을 하는 생활을 계속했다.

콜린 윌슨은 『어둠 속의 의식』 집필중 그 이론적 기반이 된 문학 평론 부분을 독립시켜서 『문학의 아웃사이더』라는 제목의 비평서를 쓰기 시작했다. ‘실존주의적인 위기’라는 관점에서 카프카, 카뮈, 헤밍웨이, 헤세, 로렌스, 반 고흐, 쇼, 니체, 도스도옙스키의 저작물을 폭넓게 분석한 이 책은 1956년 5월에 『아웃사이더』라는 제목으로 출간되자마자 문단에 엄청난 반향을 일으키며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윌슨은 에디스 시트웰과 필립 토인비를 위시한 비평가들의 격찬에 힘입어 하루 아침에 세계적인 작가로 추앙받는 유명인사가 되었지만, 자신이 노동계급을 대표하는 지식인 영웅으로 떠받들여지는 것에 위화감을 느끼고 다음 해 두 번째 아내인 조이와 함께 콘월 주로 낙향했다.
그 이래 그는 은둔자의 삶을 살아가면서 서양사, 범죄사, 철학, 심리학, 종교, 성과학, 신비주의, 오컬트 SF, 미스터리, 스파이소설, 전기, 초일상적 현상, 초(超) 고대사 등 폭넓은 분야에 걸친 120여편의 저작물을 발표했고, 20세기를 대표하는 재인(才人)이자 대중 저술가라는 명성을 얻었다. 그밖의 대표작으로는 『패배의 시대』(1959),『문학과 상상력』(1962),『성욕의 기원』(1963),『아웃사이더를 넘어서』(1965) 등의 문학 비평서와, SF 소설인 『현자의 돌』과 『스파이더월드』4부작(1987-2002), 논픽션인 『오컬트의 역사』(1971) 등이 있다.
역자 : 전소영
이화여대 법학과와 호주 매콰리 통번역대학원을 졸업한 후 호주에 거주하며 현재 (주)바른번역 소속 전문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옮긴 책으로 《언어의 진화》 《땅, 물, 불, 바람과 얼음의 여행자》 《김대리, 정신 차려》 《주변 사람을 일촌으로 만드는 사교의 기술》 《현장에서 바로 통하는 파워 비즈니스 협상》 《경제학이 숨겨온 6가지 거짓말》 들이 있다.

품목정보

발행일
2015년 10월 22일
판형
양장 ?
쪽수, 무게, 크기
1000쪽 | 1456g | 165*240*47mm
ISBN13
9791185430799

책 속으로

1부 인간 폭력의 심리학

1960년대 중반, 심리학자 에이브러햄 매슬로가 자신의 저서 《동기와 성격Motivation and Personality》(1954)을 내게 보내왔다. 나는 그 책의 4장 ‘인간 동기에 대한 이론A Theory of Human Motivation’에서 변화하는 패턴에 대한 포괄적인 해결책의 윤곽을 찾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 장은 원래 1943년 학술지 〈심리학 리뷰Psychological Review〉에 처음 실렸고 전문 심리학자들 사이에서 고전으로 꼽혔으나, 어떤 이유에선지 일반 대중에게는 퍼져 나가지 못했다. 이 논문에서 매슬로는 인간의 동기가 ‘욕구의 단계’ 또는 가치 단계의 측면에서 설명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는 크게 네 개의 범주, 즉 생리적 욕구(기본적으로 음식), 안전의 욕구(기본적으로 비를 피할 수 있는 지붕), 소속감과 애정의 욕구(뿌리에 대한 욕구, 타인이 원하는 존재가 되고픈 욕구), 존경의 욕구(타인의 호감과 존경을 받고 싶은 욕구)로 나뉜다. 매슬로는 이 네 단계를 넘어 다섯 번째 범주가 있다고 주장했다. 그것은 바로 자아실현의 욕구로 그 자체로 즐겁기 때문에 알고 이해하고 창조하고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욕구를 말한다.
계속 굶은 사람은 음식 외에는 아무것도 생각할 수 없고, 그에게 천국이란 많은 음식이 있는 곳이다. 그러나 음식 문제를 해결하고 나면 안전의 문제, 집, 말하자면 ‘영역’의 문제에 매달리게 된다(모든 뜨내기 노동자들은 은퇴하기 전에 장미꽃으로 둘러싸인 문이 달린 작은 시골집을 장만하는 것이 소원이다). 이 문제가 해결되면 성의 욕구가 절박해진다. 단순한 육체적 만족이 아니라 따뜻함, 든든함, ‘소속’의 욕구다. 그리고 이 단계의 욕구가 만족되면 다음 단계로 호감과 칭찬을 받고 싶은 욕구, 자존감과 이웃의 존경에 대한 욕구가 나타난다. 이 모든 욕구들이 만족되면 ‘자아실현’의 욕구가 자유로이 발달할 수 있다(항상 그런 것은 아니다. 매슬로도 4단계를 넘어서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당시 범죄학의 두 번째 연구인 《살인 사건집A Casebook of Murder》을 저술하고 있던 나는 매슬로의 욕구 단계가 범죄의 역사적 시기와 비슷하게 대응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19세기 초까지만 해도 대부분의 범죄는 단순한 생존의 욕구, 매슬로의 1단계를 충족시키기 위해 저질러졌다. 예를 들어 에든버러의 시체 도둑인 버크와 헤어는 희생자를 질식시켜 살해한 후 시체당 약 7파운드에 의과대학에 팔아넘겼다. 19세기 중반이 되면 이 패턴은 변화한다. 산업혁명은 부를 증가시켰고, 사회적 지위가 있는 중산층 가정에서 벌어지는 ‘가정 내 살인’이 갑자기 가장 악명 높은 범죄로 등장했다. --- pp.30-31

지배성은 생물학자와 동물학자가 큰 관심을 기울이는 주제인데, 지배적인 동물 또는 지배적인 인간의 비율이 놀라울 정도로 일정해 보이기 때문이다. 버나드 쇼는 언젠가 탐험가 스탠리에게 그가 아파 쓰러지면 탐험대를 대신 지휘할 수 있는 남자들이 몇 명이나 될지 물었다. 스탠리는 즉시 “20명 중 한 사람꼴입니다”라고 대답했다. “그건 정확한 수치입니까, 아니면 어림잡은 수치입니까”라고 쇼가 물었더니 “정확한 수치죠”라고 말했다. 생물학 연구 역시 이것이 사실임을 확인해주었다. 무슨 이유인지는 모르겠으나 어떤 동물 집단이든 정확히 5퍼센트, 즉 스무 개체 중 한 개체가 지배적인 리더의 자질을 갖는다. 한국전쟁 동안 중공군은 미군 포로 중 지배적인 5퍼센트를 분리시켜 별도의 수용소에 두면 나머지 95퍼센트는 탈출 시도를 하지 않는다는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했다.
이 점은 모든 인간에게 ‘영웅주의’ ‘최고’에 대한 갈망이 있다는 베커의 주장을 평가할 때 고려해야 하는 사실이다. 최고에 대한 갈망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신이 최고가 아님을 받아들이는 상당히 안정된 사회와 양립하기 어려워 보인다. 베커의 주장대로 성장하면서 자신이 최고라는 느낌을 상실하기 때문일 수도 있다. 그러나 유치원에서 자녀를 10분 이상 기다려본 사람이라면 대다수의 아이들 역시 자신이 ‘최고’가 아님을 받아들인다는 사실을 깨달을 것이다. ‘지배적인 5퍼센트’는 성인뿐 아니라 아이에게도 적용된다.
이제 사회의 측면에서 보자. 5퍼센트는 엄청나게 큰 수다. 가령 1980년대 영국에서 인구의 5퍼센트라면 300만 명에 이른다. 그러나 사회에 300만 명의 ‘리더’를 위한 자리는 없다. 이 말은 5퍼센트 중 많은 수의 사람들이 필연적으로 어떤 식으로든 ‘특별함’을 인정받지 못한다는 의미다. 그들은 지배적이지 않은 나머지 사람들과 구별되지 않는 지위로 평생을 보낼 것이다.
(소작인과 귀족, 부자와 빈자로 나뉘는) 계급 구조가 강한 사회에서 이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다. 지배적인 농부나 노동자는 마을의 대장장이나 교회 성가대의 리더로 만족할 것이다. 대저택의 영주가 되기를 기대하지도 않고, 대저택의 영주가 자신보다 덜 지배적이더라도 불쾌해하지 않는다. 그러나 노동자 계층 출신의 소년이 대중의 아이돌이 되고 텔레비전에서 매일 지도자들을 보는 사회에서 상황은 대체로 덜 안정적이다. 지배적인 5퍼센트 가운데 ‘평범한’ 사람들은 왜 자신은 부자가 아니고 유명하지 않은지 그 이유를 알 수 없다. 그는 자신이 ‘최고’가 아니라는 사실에 분노와 좌절을 느끼고, 팔꿈치로 사람들을 밀어젖히면서 앞쪽으로 나아가는 변칙적인 방법을 기꺼이 고려한다. 이것은 점점 높아지는 범죄와 폭력의 강도에 대해 매우 많은 면을 설명해준다.
또한 우리는 이 지배적인 개인 중 얼마나 많은 수가 독선가로 변해가는지 알 수 있다. 총 학생 수 500명인 학교에서는 약 25명의 지배적인 학생이 최고가 되기 위해 분투한다. 이 중 일부는 훌륭한 운동선수, 우수한 학자, 뛰어난 논쟁가 등이 될 재능을 갖추고 있다(그리고 물론 지배적이지 않은 집단에서도 상을 받을 만큼 재능을 갖춘 학생들이 있다). 그러나 지배적인 학생 중에는 재능을 갖지 못한 아이들도 필연적으로 있기 마련이다. 어떤 아이들은 정말 멍청할 수도 있다. 그런 아이는 어떻게 최고가 되고 싶은 욕망을 충족시킬 수 있을까? 물론 그는 자신의 지배성을 가능한 한 모든 방법을 동원해 표출하려 할 것이다. 외모가 출중하거나 매력이 있으면 여학생들의 흠모에 만족할 수 있다. 교사들에게 그다지 중요하게 여겨지지 않는 특정한 재능, 가령 음악을 듣는 귀, 선천적으로 뛰어난 관찰 능력, 생생한 상상력 등이 있으면 자신만의 세계 속에 살면서 고독한 ‘아웃사이더’가 될 수 있다(그런 개인들은 훗날 슈베르트, 다윈, 발자크와 같은 인물로 클 수 있다). 그렇지만 최고가 되기 위한 지름길을 선택해서 약한 학생을 못살게 굴거나 시험에서 부정행위를 하거나 비행청소년이 될 가능성도 존재한다.
재능 없는 ‘아웃사이더’의 주된 문제는 결국 세상이 자신을 불공평하게 대한다고 느낄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다. 불공평한 대우를 받았다고 느끼는 사람들은 대개 자기연민에 빠진다. 자기연민과 부당함을 느끼면 쉽게 상처를 받고 불안정해진다. 그런 사람들에게는 자신이 최대의 적이며, 이 사실은 그냥 보기만 해도 알 수 있다. 그의 기분은 공격적이거나 부루퉁하거나 둘 중 하나고, 두 기분 모두 그를 기꺼이 도와주려는 사람들을 쫓아내버린다. 그가 어느 정도 매력이나 지능을 갖추었다면 다른 사람들에게 받아들여질 만한 사람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조만간 불만과 자기연민이 튀어 나오고 결국 불신과 거부로 이어진다.
그들이 지닌 문제의 핵심은 자기규율의 문제다. 지배적인 사람은 다른 사람들보다 조바심을 낸다. 다른 사람들에 비해 더 많은 활력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조바심은 지름길을 찾도록 만든다. --- pp.107-109

아시리아인의 시대로부터 나치의 시대에 이르기까지 역사는 가혹하고 효율적인 인간들이 결국 실패하고 마는 사례로 가득하다. 범죄의 핵심을 다룰 때는 왜 그런지 이해할 필요가 있다. 범죄자는 기본적으로 자신이 원하는 것을 몰래 훔치거나 강제로 빼앗지 말아야 하는 이유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이다. 매듭을 풀기가 어려울 때 그가 느끼는 첫 충동은 칼을 꺼내 끊어버리는 것이다. 단기적으로 이 방법은 대개 성공한다. 그러나 시간이 조금만 지나도 일은 꼬이기 시작한다. 칼 팬즈램과 같은 범죄자의 경우 그 이유는 명백하다. 아시리아, 훈 족, 반달 족과 같은 국가의 경우 더 복잡할 수는 있지만 결국에는 똑같은 이유다. 범죄적 폭력의 근본 문제는 그것이 사회에 끼치는 해악에 있지 않다(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끔찍하긴 하지만 말이다). 장기적으로 볼 때 범죄는 언제나 똑같이 범죄자의 목적 달성을 좌절시킨다는 점에 문제가 있다. 기본적으로 계산 착오라 할 수 있다. 범죄는 본질적으로 목적을 이루기 위한 좌뇌의 방법이기 때문이다. 좌뇌는 목적 달성 외에는 어떠한 가치도 인정하지 않는다. 그리고 어찌 된 일인지 목적은 과정 속에서 상실된다.
역사가 아널드 토인비를 매료시킨 것이 바로 이 모순이었다. 그는 1912년 5월의 어느 저녁에 그 모순을 깨닫게 된 과정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토인비는 스파르타 평원을 내려다보는 미스트라Mistra3의 버려진 성채에서 그날을 보냈다. 600년 동안 미스트라는 번성한 도시였으나 1821년 어느 날 아침에 야만적인 한 무리의 침략자들이 주민들을 학살하고 그곳을 폐허로 만들었다. 완벽히 무의미한 학살과 파괴에 대해 곰곰이 생각하던 토인비는 ‘인간사에 분명하게 드러나는 소름 끼치는 죄의식’과 ‘인류의 범죄와 어리석음의 잔인한 수수께끼’에 압도당했다. 왜 인간은 파괴를 위한 파괴 그 자체에서 기쁨을 얻는 유일한 동물일까? 바로 이것이 토인비의 《역사의 연구Study of History》 8,000여 쪽을 관통하는 질문이다. --- p.196

2부 범죄사 개관

여기에 흥미로운 역사적 사실이 있다. 깨달음에 대한 갈망, 구원이나 내면의 지혜에 대한 갈망이 문명화된 세계의 서로 전혀 상관없는 독립된 장소에서 대략 같은 시대(기원전 5세기)에 확산되었다는 사실이다. 그리스의 소크라테스, 페르시아의 조로아스터, 이스라엘의 예레미야, 중국의 공자·노자·묵자, 인도의 붓다·마하비라(자이나교의 창시자)·비야사(《마하바라타Mahabharata》의 전설상의 저자) 들이 모두 비슷한 시대의 현자들이다. 마치 인류가 위대한 사상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었을 때, 일종의 텔레파시에 의해 그 사상이 널리 확산된 것은 아닌가 하는 추측을 불러일으키는 부분이다. 이 스승들 모두의 공통점은 기본적인 사실을 인식했다는 데 있다. 이는 우리의 욕망이 본능적으로 (음식, 섹스, 쾌락, 안전과 같은) 육체적 만족을 모색하지만, 욕망은 물리적 세계에 의해서는 결코 완전히 충족될 수 없다는 것이다. 육체적 욕망은 항상 그 뒤에 더 많은 것, 더 깊은 무엇인가에 대한 이상한 갈망을 남긴다. 인간은 알코올중독자처럼 끊임없는 갈증에 의해 움직이지만 그 갈증을 해소해줄 수 있는 술은 존재하지 않는다. 소크라테스는 그것을 지식에 대한 갈망, 붓다는 영원에 대한 갈망, 유대의 예언자들은 신에 대한 갈망이라고 믿었다. 그러나 모든 믿음에는 공통적으로 그 갈망이 내면의 평화, 내면세계에 이르는 길을 찾고 싶은 욕망이며, 물질세계에 열중하는 것은 일종의 혼동에서 오는 결과라는 통찰이 자리한다.
로마인에게는 이러한 통찰이 전혀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들의 어마어마한 활기는 자기통제, 자기규율에서 가장 크게 표출되었다. 그들에게는 지혜나 영원을 향한 신비스러운 갈망이라는 진화적 욕구가 없었다. 고대의 모든 민족들처럼 그들 역시 강한 종교적 믿음을 지녔지만 제물 바치기와 신탁과 징조에 대한 믿음처럼 미신의 형태로 표현되었다. 이러한 행위는 종교와 거의 관련 없어 보인다. 악마의 눈길을 피하기 위해 가슴에 십자를 긋는 행동이 기독교와 상관없는 것처럼 말이다.
신비적 형태든 진화적 형태든, 종교적 욕구는 좌뇌 의식의 한계를 벗어나기 위한 인간의 시도로 볼 수 있다. 인류는 모든 동물 중 유일하게 세부적인 것에 집중할 수 있기 위해 이러한 분할된 형태의 의식을 발달시켰다. 인간은 다른 동물들이었다면 신경쇠약에 걸리게 만들었을 문제와 복잡함에 대처하는 법을 익혀야 했다. 그러나 이 능력에는 긴장, 두통, 안달, 함정에 빠진 듯한 느낌이라는 무거운 벌이 따랐다. --- pp.259-260

이것이야말로 이 단계의 인류 진화에서 핵심적인 문제였다. 인류는 마지막 기차가 떠난 후 플랫폼에 남겨진 승객처럼 물질세계에서 오도 가도 못하게 되었다. 본능적으로 그는 어떤 곳으로 가고 있어야 한다는 사실을 알았다. 어떤 곳으로 가려는 내면의 충동이 그를 지구상에서 가장 고도로 진화된 동물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이것은 인류의 역사에서 가장 큰 모순 중 하나를 낳았다. 아널드 토인비가 《역사의 연구》에서 탐구한 모순이기도 하다. 즉 인간은 ‘무엇인가에 대항’할 때 최상의 능력을 발휘하고, 성공하여 긴장을 풀면 최악의 상태가 된다. 헤로도토스가 전하는 이야기를 들어보자. 몇몇 페르시아인들이 키루스 왕을 찾아가 이제 정복자가 되었으니 더 편안하고 쾌적한 땅으로 이주하자고 제안했다. 그러자 키루스는 “쾌적한 땅은 약한 사람을 낳는다”라고 대답했다. 토인비는 한 장 전체(1권, 31~73쪽)를 할애해 어려운 환경과 쉬운 환경의 차이를 검토하고 어려운 환경이 위대함을, 쉬운 환경이 나약함을 낳는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중국의 경우 툭하면 얼거나 범람하거나 늪이 되어버리는 황허 강보다는 양쯔 강이 문명의 조건 면에서 더 유리했다. 그러나 중국의 문명은 양쯔 강이 아닌 황허 강에서 탄생했다. 남아메리카의 경우 스페인인들이 발파라이소(Valparaiso, ‘천국 계곡’이라는 뜻)라 부른 더 쾌적한 지역이 아닌 가혹한 북방의 사막에서 안데스 문명이 탄생했다. 아티카와 보이오티아, 로마와 카푸아, 비잔티움과 칼케돈, 브란덴부르크와 라인란트, 심지어 영국의 블랙컨트리와 홈카운티까지 토인비는 계속해서 예를 들어가며 ‘혹독한 환경’의 나라들이 창의적인 인간을 만든다는 사실을 증명한다.
이것은 물론 인간에게만 보이는 현상은 아니다. 포도주 애호가라면 세계에서 가장 좋은 포도주는 포도가 역경에 맞서야 하는 지방에서 나온다는 사실을 안다. 보르도 지방의 포도는 깊은 자갈층을 파고들어야 하고, 샴페인 지방의 포도는 추위와 싸워야 한다. (프랑스의 론 계곡이나 이탈리아 또는 북아프리카처럼) 좋은 토양과 날씨를 갖춘 곳에서 나오는 포도주는 강렬하지만 개성이 결여되어 있다. 식물도 동물처럼 대부분 ‘기계적’이다. 생존을 가능하게 하는 동시에 정체도 유발하는, 깊이 각인된 습성들의 덩어리다. 습성은 필요한 정도 이상의 노력을 하지 않도록 만든다. 인간은 ‘어떤 곳으로 가려는’, 앞으로 나아가려는 충동을 경험하는 지구상의 유일한 동물이다. 대부분의 동물들이 습성의 제약을 받는 반면, 인간은 습성 그리고 뇌의 제약을 받는다. 인간은 외부 문제에 대처하느라 ‘바로 앞에 닥친 일에만 집중하는 눈’을 과도하게 발달시켰다. 그래서 이 문제들이 해결되어 사라질 때마다 진정되면서도 갈피를 잡지 못하게 된다.
분명 인간이 발달시켜야 하는 것은 내면의 눈이다. 단순히 앞에 닥친 일만 보는 눈이 아닌 목적을 향한 눈 말이다. 인간이 어떤 장기적 목표 의식을 갖고 움직일 때 최고의 능력을 발휘하는 것은 자명하다. 그와 반대로 목표 의식이 없는 인간이 ‘산산조각이 나는’ 것 역시 확실하다.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은퇴하자마자 죽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일상의 목표들, 즉 육체와 감정의 만족을 유지하는 일은 너무도 작고 단편적이라 우리 안에서 최상의 능력을 끌어내기에는 역부족이다. “그후로 그들은 죽을 때까지 행복하게 살았습니다”는 사실 평범한 삶으로 가는 공식이다. 진정으로 만족스러운 삶은 모든 것에 우선하는, 목적으로 향하는 커다란 다리에 의해 이어진다는 사실을 우리는 본능적으로 느낀다. 이 본능적인 인식이 암흑시대 초기에 세계를 천천히 변화시키고 있었다. --- pp.343-344

기독교 신학자들은 범죄 성향을 발달시키는, 구속되지 않은 자아의 이런 자연스러운 성향을 ‘원죄’라 불렀다. 그들은 거기에서 인간의 본성에 어떤 근본적인 약점(또는 병)이 있다는 증거를 보았다. 또한 그것은 교회의 권위가 필요한 이유를 설명했다. 앞에서 ‘분할 의식’, 즉 인간이 좌뇌의 에고에 쉽게 갇히게 되는 경향으로 문제를 더 간단히 설명할 수 있음을 보았다. 또한 역사 속에 나타나는 엄청나게 많은 잔혹 행위, 가령 로마인의 잔인함은 사디즘의 발로가 아니라 과도하게 발달한 목적의식 때문이라는 사실도 살펴보았다. 중국의 만리장성과 대운하를 건설한 황제들처럼 그들은 목적에 너무 집착한 나머지 개인을 파리처럼 하찮게 취급했던 것이다.
이 모든 것은 중세시대 말까지 기록된 범죄가 이상하게 비개인적으로 보이는 이유를 설명한다. 노상강도는 도살업자가 소를 죽이듯 지나가는 사람들을 살해한다. 그것은 생계 수단이다. 강도들은 잡히면 처형당한다. 그러나 그 누구도 그들의 행위를 기록해야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연대기 편자들이 기록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느끼는 범죄들은 반역, 음모, 위조화폐 주조처럼 권위에 대항하는 범죄였다. 하층계급에서 일어나는 범죄는 쥐나 벼룩의 움직임처럼 관심의 대상이 아니었다.
그러다가 르네상스시대에 이르러 이 경향은 서서히 변화하기 시작한다. 개인주의가 발달한 시대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개인주의는 교육받은 계층과 교회에만 영향을 미쳤다. 따라서 강간, 살인, 강도를 저지른 성직자 돈 니콜로 데 펠라가티의 범죄(478쪽 참조)와 같은 사건이 일어날 수 있었다. 그는 그저 교황의 선례를 따랐을 뿐이었다. --- pp.530-531

3부 대량살인의 시대

19세기 후반에 갑자기 성범죄가 출현한 이유는 분명하다. 그것은 (소설 읽기라는 새로운 습관에 의해 길러진) 상상력과 빅토리아시대의 고상한 체하기 관습으로 인한 좌절감의 결합으로부터 나온 산물이었다. 섹스는 더이상 클리랜드와 보즈웰이 생각하던 현실적인 취미 활동이 아니었다. 그것은 곰곰이 생각하고 혼자 흡족하게 미소 짓게 만드는 대상이 되어버렸다. 19세기 프랑스 시인 보들레르는 섹스에 죄의 느낌이 없다면 지루하고 무의미하다고 말한 바 있다. 그가 하려던 말은 섹스가 상상의 도가니 속에서 사악한 동시에 맛있는 것으로 변할 수 있다는 뜻이었다. 크라프트에빙과 해블록 엘리스5 같은 새로운 ‘성과학자’의 작품에서 다양한 종류의 페티시즘, 즉 여성의 신발, 코르셋, 속바지, 앞치마, 심지어 가랑이 부분만 봐도 성적으로 흥분되는 남자에 대한 이야기를 읽을 수 있다. 성욕의 엄청난 압력은 이 대상들에 성적 ‘마법’을 불어넣었다. 해블록 엘리스도 언젠가 어머니가 리젠트파크에서 소변 보는 모습을 본 후 평생 ‘황금빛 강’에 대한 시적인 글을 썼고 정부들에게 자기 앞에서 오줌을 누도록 설득했다.
이 모든 것은 (빅토리아 여왕이 사망한) 1901년 무렵 빅토리아시대의 고상한 체하기 관습이 이미 빠르게 사라지고 있었는데도 성범죄 문제는 사라질 기미를 보이지 않았던 이유를 설명해준다. 섹스가 공개적인 토론 주제가 되면서 구시대의 음울한 ‘금단’의 의미는 점차 퇴색해갔고 그 결과 (리퍼와 바셰의 범죄 같은) 폭력적인 성범죄가 점점 감소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디포와 클리랜드의 현실적인 성적 태도로 돌아가는 일은 없었다. 좋든 나쁘든 섹스는 인간의 상상력에 점령당한 것이다.
이는 물론 섹스가 약간 비현실적으로 되었다는 것을 의미했다. 셰익스피어는 줄리엣을 이상화했지만 인간으로서 그녀가 어떠했는지는 정확히 알았다. 그러나 디킨스, 새커리, 윌키 콜린스의 작품에 나오는 주인공들에게는 현실적 차원 자체가 결여되어 있다. 조드 ‘교수Professor Joad’6는 여자들의 허리 아래가 딱딱한 물체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았을 때 여자들에게 관심을 갖게 되었다고 말한 적이 있다. 빅토리아시대의 소설가들은 여주인공들이 허리 아래가 딱딱한 물체인 것 같은 인상을 준다(그러니 ‘월터’가 여주인공들에게 자기 사촌들 같은 성기가 있다고 상상할 수 없었던 것도 당연하다). 따라서 새로운 성적 솔직함(그리고 프로이트 교수의 불온한 이론들)은 에드워드시대 사람들의 낭만주의에 실질적인 영향을 주지 못했다. 그들은 스스로 경악했다고 말하면서도 계속해서 유혹과 간통에 열광적인 관심을 보였다.
곧 신문사 경영자들(가령 윌리엄 랜돌프 허스트)은 섹스 기사가 잘 팔린다는 사실을 발견했고, 대중은 모든 이혼 스캔들의 자세한 내용을 읽게 되었다. 간통과 결부된 살인 사건은 재판이 끝날 때까지 신문의 헤드라인을 장식했다. 1904년 미국에서 그해의 큰 화제는 플로로도라Florodora 걸 중 한 명인 낸 패터슨에 대한 재판이었다. 그녀는 연인이 자신을 떠난다고 하자 마차 안에서 그를 총으로 쏘았다(그녀는 그의 죽음이 자살이라고 주장했다). 1906년 언론은 건축가 스탠퍼드 화이트의 살인 사건을 ‘세기의 범죄’로 꼽았다. 화이트는 해리소라는 돈 많은 난봉꾼의 총에 맞아 죽었다. 해리는 자신의 아내(역시 플로로도라 걸 출신)가 화이트의 정부였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그런 범행을 저질렀다. 두 사건 모두 극히 진부한 치정 사건이었지만 간통과 성적 매력이라는 필요한 요소를 갖추고 있었다.
심지어 성적 매력조차 필수적이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섹스였다.

--- pp.668-669

출판사 리뷰

범죄의 역사로 인간 본성을 통찰한 대작

이 책은 인류 초기부터 현대까지 방대한 범죄의 현장을 샅샅이 훑으면서 인간의 범죄성과 폭력성의 근원을 탐구한 방대한 작품이다. 저자는 역사, 심리학, 인류학, 고고학, 사회학, 철학, 문학, 뇌과학을 넘나들며, ‘인간은 왜 이토록 잔인한가?’ ‘인간은 원래부터 사악한 존재인가?’ 더 나아가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궁극적인 질문에 답하고자 한다.
‘만물의 영장’이라는 이름이 무색하게 인류 역사는 폭력과 살인, 약탈과 전쟁으로 얼룩져 있다. 원시 인류의 살인 흔적에서부터 고대 제국의 황제들과 중세 기독교 교황들의 끔찍한 고문과 학살, 현대의 잔혹한 연쇄살인과 ‘묻지 마’ 살인에 이르기까지 인간의 폭력성은 끝이 없어 보인다. 이 책에 무수히 등장하는 인류사 속 범죄의 현장은 너무나 참혹하고 참담하여 인간에 대한 절망적인 회의를 불러일으킨다.
오스트랄로피테쿠스는 무기(뼈 곤봉)으로 살해하는 법을 익힌 듯 보이며, 저우커우뎬周口店의 유적에서 발견된 40개의 두개골은 훼손되었고 손을 집어넣어 뇌를 파낼 수 있도록 구멍이 나 있어 베이징원인이 식인종이었음을 보여준다. 네안데르탈인과 크로마뇽인 역시 식인종이라는 증거가 있다. 기원전 12세기 아시리아의 왕인 티글라트필레세르 1세는 마을을 습격해 수천 명씩 살육했고 주민들은 산 채로 사타구니부터 어깨까지 말뚝에 꿰어졌다. 기원전 4세기 그리스 페라이의 알렉산드로스는 사람들을 산 채로 파묻고 개들에게 먹이로 던져주었으며 우호 관계에 있는 두 도시의 주민을 모이게 한 뒤 에워싸고 모두 토막 내 죽였다. 로마 황제 칼리굴라가 가장 좋아했던 처형 방식은 ‘살천도殺千刀’라고도 불리는 능지처참형으로 조금씩 수천 번 살을 발라내는 형벌이었다. 네로 황제 시대 로마인은 기독교인들의 몸에 타르를 발라 기둥에 묶고 날이 어두워지면 불을 붙여 살아 있는 횃불로 사용했다. 11세기 1차 십자군원정대는 헝가리의 한 도시 주민 4,000명을 학살하고 여러 마을을 습격해 주민들을 고문하고 아기들을 쇠꼬챙이로 꿰어 죽였다. 13세기 교황 인노켄티우스 3세는 같은 기독교인인 카타르파를 이단으로 선포하고 도시 주민 2만 명을 학살했다.
이런 예도 있었다. 16세기에 프로테스탄트인 “네덜란드의 모든 사람들은 이단자이며 따라서 사형을 선고한다는 선언문을 공포했다. (…) 성주간聖週間 동안 800명이 처형당했다. 입에 철로 만든 재갈을 물리고 혀만 나오게 한 뒤 혀끝을 자르고 뜨겁게 달군 쇠로 지지면 혀는 입에 다시 집어넣을 수 없을 정도로 크게 부풀어 올랐다. 그후 그들은 불길에 던져졌다. 이 방식이 너무 시간이 걸리자 사람들을 땅에 눕힌 다음 철봉이나 도끼로 내리쳐 허리를 부러뜨린 다음 그대로 죽게 두었다. 그러려면 처형 집행인은 엄청난 힘이 필요했는데 그들도 결국 지쳐버렸다. 그래서 알바는 죄수를 세 명씩 묶은 다음 강에 집어던져 익사시키도록 명령했다. 앤트워프에서는 이 방식으로 그동안 8,000명이 처형되었다. 그러나 여전히 속도가 느렸다. 나중에 알바가 한 말에 따르면 그가 이단죄로 처형을 명령한 사람은 약 1만 9,000명이었다.”
극악무도한 개인의 사례도 존재한다. 15세기 프랑스 귀족으로 잔 다르크의 전우이기도 했던 질 드 레는 연쇄살인범의 원조로 일컬어진다. 그가 가장 좋아한 변태 행위는 바로 아이들을 대상으로 한 고문과 살해였다. 자신의 성으로 아이들을 유괴하거나 꾀어 들여서 목을 조르거나 베면서 (심지어 여자아이들에게도) 항문 성교를 했고 피살자들의 내장을 꺼내어 그것에 대고 자위하기를 즐겼다. 그러고는 팔다리가 절단된 시체들을 버려진 탑에 버렸다. 그가 체포된 후 그 탑에서 약 50구의 시체가 발견되었다. 비슷한 시기 루마니아의 귀족이자 드라큘라의 원형인 블라드 체페슈 역시 잔혹함에서 뒤지지 않았다. 그는 사람들이 천천히 죽어가는 모습에서 커다란 쾌락을 느낀 역사상 가장 소름 끼치는 괴물 중 하나였다. 1457년에 트란실바니아를 전격 공격한 그는 가장 좋아하는 처형 방식인 말뚝에 꿰어 죽는 모습을 지켜보기 위해 남자, 여자, 아이를 포함한 포로들을 끌고 왔다. 나무 막대기를 항문이나 질로 집어넣어 희생자의 몸무게로 말뚝을 타고 내려와 꿰이게 만들었는데, 그는 처형에 더 오랜 시간이 걸리도록 막대기 끝을 너무 뾰족하게 만들지 말라고 명령했다. 그의 말뚝 처형은 식사 자리의 유흥거리였다.
현대 범죄의 도착성과 가학성은 상상을 초월한다. 가학적 성도착자자인 게오르크 그로스만은 1914~1921년에 베를린에 있는 자신의 방으로 사람들을 유인해 살해한 후 희생자들의 인육을 먹고살았다. 1918~1924년 하노버의 프리츠 하르만은 약 50명의 젊은 남자 부랑인들을 죽이고 시체를 고기로 팔았다. 1928년 뉴욕의 앨버트 피시라는 노인은 10세 소녀를 목 졸라 죽이고 신체 부위를 스튜로 끓여 먹었다. 배설물을 먹고 음낭에 바늘을 집어넣은 채 바늘이 녹슬도록 빼지 않는 등 성적 괴벽을 지니고 있었고 아이들의 비명 소리에 쾌락을 느꼈다. ‘보스턴 교살자’ 앨버트 드살보는 1962년 6월부터 1964년 1월까지 13건의 성폭력 살인을 저질렀고, 200명을 강간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희생자를 의도적으로 ‘음란한’ 자세로 ‘진열해’ 놓았다. 스타킹과 거터벨트를 입은 채 다리를 벌린 자세로 만든 뒤 질 속에는 청소용 솔 손잡이를 집어넣었다. 1973년 미국인 청년 에드 켐퍼는 14세인 1963년부터 여섯 건의 강간 살인을 저질렀다고 자백했다. 그는 살해한 후 머리를 잘라내고 시체를 강간하고 해부했다. 특히 목 없는 시체와 섹스하기를 즐겼다.
그 밖에도 이 책에서 저자가 주요하게 다루는 다수의 어린 소녀를 강간 살해한 ‘황야의 살인자’ 이언 브레이디를 비롯한 현대의 잔혹한 연쇄살인범과 사이코패스 성범죄자들 그리고 갈수록 증가하는 동기(이유) 없는 살인들, 나아가 보스니아, 코소보 등에서 벌어진 ‘인종 청소’와 고문, 납치, 자살 폭탄 테러, 비행기 납치 폭파 테러 등 인류의 범죄사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인 것으로 보인다.

왜 인간은 동족 살해를 저지르는 유일한 동물이 되었는가?

‘인간은 왜 이토록 잔인한가?’라는 질문은 많은 이들에게 풀리지 않는 숙제였다. 저명한 동물행동학자 콘라트 로렌츠와 과학 저술가 로버트 오드리는 폭력성이 인간의 타고난 본성이라고 보았다. 그러면서 로렌츠는 인간의 공격성을 스포츠나 탐험처럼 덜 위험한 취미로 승화시킬 수 있다고, 아드리는 파괴성만큼이나 질서와 문명에 대한 인간의 본능 역시 강력하다고 강조하며 다소 낙관적인 견해를 제시했다. 반면 에리히 프롬은 아드리와 로렌츠를 반박하며 우리의 먼 조상이 원래부터 호전적이고 공격적이라는 증거는 없다고 주장했다. 그는 호전성은 문명에 비례해 증가한다면서 인간과 문명은 서로 맞지 않다는 프로이트의 견해를 따른다. 프로이트는 문명은 인간을 언제나 좌절시키고 방해하며 신경증과 자기파괴로 몰고 간다고 보았다.
이에 대해 저자는 인간의 범죄성은 심리적인 면과 사회적인 면을 동시에 고려해야 하며, 범죄 자체도 단일한 것이 아니라 역사적으로 다양한 패턴으로 변화해왔음을 주목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저자는 범죄의 역사가 심리학자 에이브러햄 매슬로가 주창한 욕구 단계설과 비슷하게 대응한다는 점에 착안한다. 이 관점에 따르면 초기 문명부터 19세기 초까지는 1단계인 생리적 욕구(음식)와 관련된 생존형 범죄가 대부분이었다, 이후 2단계인 소속감과 애정의 욕구(집, 안정)와 3단계인 존경의 욕구(섹스, 타인의 호감과 인정)와 관련된 주거침입이나 강도, 성범죄 등이 출현했다. 그리고 20세기 들어 자기존중 및 자아실현(자존감)의 욕구와 관련된 범죄 단계로 접어들었다.
이와 더불어 저자는 프린스턴대학교 심리학자 줄리언 제인스의 ‘양원兩院 정신bicameral mind’ 이론에 주목한다. 제인스는 고대인들에게는 자의식이 존재하지 않았으며 그들의 행동은 신(지도자 또는 왕)의 목소리라고 여긴 환청을 쫓아 수행되었다고 보았다. 제인스는 뇌의 좌우 두 개의 반구가 연결되지 않은 환자를 대상으로 한 로저 스페리의 분할 뇌split-brain 연구에 근거하여 초기 문명들은 ‘양원적’이었다고 주장한다. “인간은 자신의 행동에 책임이 없었다. 그들은 신의 목소리를 따랐을 뿐이다. 그러다가 매우 천천히 의식(자기인식)이 발달하기 시작했다. 이를 초래한 원인은 많지만 가장 중요한 원인은 기원전 3000년 이전에 발생한 문자의 발명이다. (…) 문자의 발달은 새로운 종류의 복잡성을 만들었고, 이 복잡성은 양원 정신을 약화시켰다.” 뇌의 좌반구는 언어와 이성을 관장하고 우반구는 직관과 관련이 있다. 제인스는 환청이 우뇌에서 나오며 좌뇌에서 이를 듣는다고 보았다.
저자는 제인스 이론의 한계를 인정하면서 이렇게 말한다. “사실 조금만 더 생각해보면 우리 모두가 분할 뇌 환자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우리가 경험하는 이른바 ‘감感’이라고도 하는 직관은 다른 ‘자아’의 영역(무의식으로 가는 통로처럼 보인다)으로부터 나와서 좌뇌(의식, 완전히 깨어 있는 자아의 영역) 속으로 들어온다. (…) 제인스의 진정한 성과는 인류가 역사상 꽤 늦은 시기에 현재의 ‘소외된’ 의식의 형태를 발달시켰을 것이라고 지적한 데 있다.” 아시리아인, 스파르타인, 로마인, 그리고 나치까지 역사에서 가혹하고 효율을 지향하는 인간들이 모두 좌뇌인이었다고 저자는 말한다. “범죄자는 기본적으로 자신이 원하는 것을 몰래 훔치거나 강제로 빼앗지 말아야 하는 이유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이다. (…) 범죄는 본질적으로 목적을 이루기 위한 좌뇌의 방법이기 때문이다. 좌뇌는 목적 달성 외에는 어떠한 가치도 인정하지 않는다. (…) 한편 우뇌는 어디로 흘러가고 있는지 보고 주변 지형을 살피며 그다음에 어디로 향할지 결정할 수 있게 해준다. 좌뇌는 앞으로만 전진하려는 강박증에 빠져서 방향을 바꿀 능력을 쉽게 잃어버릴 수 있다. 그렇게 되면 두 가지 결말밖에 없다. 자기파괴 아니면 점진적인 소모다. (…) 이 모든 점을 놓고 볼 때 범죄는 인간 진화의 불행한 노폐물이라는 사실이 분명해진다. 인간의 지능은 앞을 내다보는 능력과 관련이 있고 이 능력 덕분에 인간은 편안함, 안정, 쾌락을 얻는 방법을 계산할 수 있다. 한편 이 능력은 인간을 잠재적인 범죄자로 만들기도 한다. 원하는 것을 얻는 가장 간단한 방법은 가서 낚아채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장기적으로 볼 때 범죄는 언제나 한결같이 범죄자의 목적 달성을 좌절시키고 만다. 예컨대 자아실현(자존감) 욕구의 성취라는 목적은 범죄로는 절대 도달 불가능하다. 이는 기본적으로 계산 착오다. 이와 관련하여 저자는 벤 보트의 ‘폭력적인 인간’ 즉 ‘독선가獨善家’에 관한 흥미로운 연구를 소개하며 “이 모든 사실을 바탕으로 프롬의 질문, 즉 왜 인간은 아무 이유도 없이 같은 종을 죽이고 고문하는 유일한 생물인가 하는 물음에 더 정확히 대답할 수 있다”라고 말한다. 그 답은 인간의 유전적 유산이나 죽음에의 동경과 같은 가설에 있지 않다. 바로 자기주장의 욕구, 즉 ‘최고’가 되고 싶은 열망에 있다. 독선가의 행동에서 이 행동이 어떻게 나오게 되었는지 알 수 있다. 자신이 다른 누구보다도 ‘중요’하다는 느낌은 폭력적으로 자기주장 행위를 하도록 만든다. 그런데 이 폭력은 본질상 장기 목표를 달성하지 못한다. 베토벤은 그를 언짢게 한 웨이터에게 수프 접시를 집어던졌다. 독선가의 전형적인 행동이다. 그러나 그는 ‘우월성’을 주장하기 위해 폭력에 의지하지 않았다. 그는 장기 목표가 인내와 자기규율을 통해서만 달성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다시 말해 자신의 에너지가 흘러갈 방향을 음악 쪽으로 돌려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오랜 자기규율로 에너지가 흐르는 운하의 둑이 깊어졌고, 결국 한 방울의 에너지도 낭비하지 않았다. 반면에 독선가는 분노를 폭력으로 분출하면서 에너지를 모두 낭비한다. 설상가상으로 운하의 둑도 파괴한다. 그리하여 부정적인 감정을 자유로이 표출하도록 스스로에게 허용함으로써 느리지만 확실히, 감정적 요실금이라 할 수 있는 자기침식의 과정에 빠져들고 만다. 적절한 ‘배출구’가 없으므로 그의 내면은 늪이나 오수 처리장처럼 변해버린다. “이것이 알렉산드로스 대왕에서 스탈린에 이르기까지 역사상 폭력적인 사람들 대부분이 결국 정신병자로 생을 마감한 이유다.”
문제는 욕구가 좌절될 때다. 이 난관을 자기통제로 극복하면 베토벤이나 대니얼 디포가 되고, 범죄라는 ‘쉬운 길’ ‘지름길’을 택하면 히틀러나 스탈린이 된다.

범죄성과 창의성, 역사와 인생의 두 극단

진화는 인류를 좌뇌 인간으로 만들었다. 인간은 전쟁과 자연재해 속에서 자기보호와 생존을 위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이성적 사고가 필요했고, 이는 좌뇌의 급격한 발달로 이어졌다. 좌뇌 의식은 인간을 목적 달성에 집착하게 만든다. 그리고 집착은 맹목과 편협함, 잔인함과 어리석음(범죄성)을 낳았다. 하지만 집착은 동시에 과학과 철학과 예술(창의성)을 낳는다. 그 좋은 예가 바로 《로빈슨 크루소》의 작가 대니얼 디포다. 저자는 그를 “천재성과 범죄성의 관계를 보여주는 흥미로운 본보기”라고 평가한다.
디포는 1660년 가톨릭과 프로테스탄트(영국국교회)를 모두 거부하는 ‘비국교도’ 가정에서 태어났다. 젊은 시절부터 정치 팸플릿을 쓰고 반란에 가담했다 감옥에 다녀오기도 했던 그는 이후 결혼을 잘 하고 사업의 성공으로 벼락부자가 되었지만 사치와 경영 부실로 파산해 도망자 신세가 된다. 그러던 중 당시 인기 없던 영국 왕 윌리엄 3세를 옹호하는 논설 작가로서 정부를 위해 일하겠다고 제안해 요직에 오르게 되고 새로운 사업에 성공해 빚을 모두 갚는다. 윌리엄 3세 사망 후 후원자가 없어진 그는 영국국교회의 고교회파를 풍자하는 팸플릿을 써서 무기형을 언도받는 필화 사건을 겪고 감옥살이를 한다. 이 사건으로 일약 대중의 영웅으로 떠오른 디포는 감옥에서 계속 팸플릿을 발표하고 심지어 신문까지 펴내며 펜을 쥔 권력자가 된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그는 재무 장관에게 “현 정부에 잠재적인 비판가와 적을 가려내기 위한 정보 제공자 네트워크, 한마디로 스파이 조직이 필요하다고” 제안해 자유의 몸이 된다. 디포는 전국을 돌아다니며 비밀 요원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일에 나섰다. 이 계획은 놀라운 성공을 거두었다. 디포는 영국과 스코틀랜드를 그레이트브리튼Great Britain이라는 하나의 국가로 통일시키는 일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함으로써 네트워크의 가치를 증명했을뿐더러, 실제로 그의 네트워크는 영국비밀정보국British Secret Service의 기반이 되었다. 이후 휘그당(자유당)이 실각하자 재빨리 당파를 옮겼으나 곧장 휘그당이 재집권하는 바람에 체포되어 감옥에 갇힌다. 그러자 그는 다시 스파이로 봉사하겠다고 제안해 중용된다. 디포는 반정부 인사로 위장해 반정부 신문의 신임을 얻고 마키아벨리식 기술을 사용해 정부가 싫어하는 모든 것을 억압하는 데 앞장선다. 그러나 조만간 정체가 탄로 났고 휘그당은 그를 이중간첩으로 의심한다. 어렵사리 신뢰는 회복했지만 더이상 사기꾼의 삶을 살기 힘들다고 판단한 듯, 디포는 무인도에 버려졌다 구조된 한 스코틀랜드 해적의 실화를 자료 삼아 소설을 쓰기 시작한다. 이렇게 탄생한 《로빈슨 크루소》를 필두로 여러 편의 인기 소설을 발표함으로써 이후 디포는 작가로서 생계를 이어가게 된다. 정치 논객, 사업가, 스파이, 작가로서, ‘기회주의자 사기꾼’이자 ‘위대한 소설가’로서 파란만장한 삶을 살다 간 디포를 통해 저자는 인간 범죄성의 핵심을 간파해낸다.
“한 인간으로서 디포는 본질적으로 타협가였다. 항상 지름길을 찾았고 이 세상에서 남을 속이지 않고는 성공할 수 없다고 믿었던, 한마디로 사기꾼이었다. 그러나 그의 생애를 보기만 해도 그가 얼마나 잘못된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 드러난다. 다른 모든 사기꾼들처럼 그는 특이한 형태의 어리석음을 지니고 있었다. 규칙을 자기 편리한 대로 적용하는 일이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한 최선의 방식이 아니라는 사실을 그는 몰랐다. 비밀정보국을 설립할 때 디포는 안정과 영향력에 대한 갈망을 충족시키기 위해 타고난 부도덕성을 사용하는 자신을 스스로 똑똑한 마키아벨리형 인간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안정도 영향력도 얻지 못했다. 그저 변덕스러운 정치 상황에 좌지우지되도록 스스로를 내맡겼을 뿐이었다. (…) 한편 디포는 자신의 부정직함을 씁쓸하나마 솔직하게 드러내는 자질이 있었다. (…) 바로 디포의 이런 요소가 그를 위대한 소설가로 만들었고 생전에 그가 유일하게 거둔 진정한 성공을 가져다주었다. 그는 마키아벨리가 되고자 애쓰지 않고 자신의 글쓰기 능력을 정직하게 사용하고 나서야 비로소 안정을 얻었다. 이처럼 우리는 디포에게서 인간 본성의 서로 반대되는 2대 성향이자 인류 역사의 2대 주요 흐름인 범죄와 창의성, 폭력과 지성, 기회주의와 고결성을 아주 명료하게 볼 수 있다. 또한 범죄가 기본적으로 실수이고 계산 착오라는 것이 범죄에 대한 진정한 반론임을 알 수 있다. 간단히 말해 범죄는 생존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잘못된 방식이다. 설혹 부정직한 방법으로 눈앞의 목표를 달성하더라도 그 결과 장차 자기파괴라는 대가를 치르게 된다. 디포와 관련해 아이러니한 점은 그의 정직함(예술가의 본능적인 정직함)이 그에게 유일하고 진정한 성공을 가져다주었을 뿐 아니라 유럽 문화의 방향을 바꿨다는 사실이다. 디포의 생애는 인간의 육체와 정신 사이의 갈등, 개성과 영혼 사이의 갈등을 상징한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의 의심스러운 개인적 도덕성은 그와 함께 죽었다. 그러나 예술적 정직성은 계속 나아가서 결코 중요성을 과소평가할 수 없을 만한 혁명을 일으켰다.”
이렇듯 비관적이고 절망적인 인류 범죄의 역사를 써내려가면서도 저자는 희망 어린 성찰과 전망을 놓지 않는다. 역사의 추는 범죄성과 창의성이라는 두 극단 사이를 계속해서 오가며, 따라서 문명의 역사는 범죄의 이야기이자 창조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창의성을 무시한다면 범죄를 이해하지 못하게 될 뿐 아니라, 인류 역사의 전체 의미를 놓치게 될 것이라고 저자는 역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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