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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르웨이의 한국인 라면왕 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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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거꾸로 가는 인생
노르웨이의 첫번째 한국인 못 말리는 장사꾼 기질 죽을 고비를 넘기고 하우스 보이 '아치 볼' 꿀꿀이죽 속의 콘돔 생명의 은인 스나이더 나쁜 친구들 오슬로의 화장실 청소부 물에 불린 빵의 추억 요리사를 향한 첫걸음 2. 거북이 성공기 감자 하나도 남다르게 깎는다 어렵게 이룬 첫번째 꿈 연애는 젬병 사랑의 쟁취, 아네리스 기회는 온다 인삼빵이 된 인삼차 라면 세 박스 라면이 걸레 같다고? Mr. Lee 라면의 탄생 내 자신이 홍보물이다 3. 비즈니스는 연애다 출발은 인간관계 마음에 드는 나무는 넘어갈 때까지 찍는다 비즈니스와 골프의 공통점 거래는 끝나도 인간관계는 끝나지 않는다 지시는 금물, 솔선수범부터 돈 앞에는 절제력이 필요하다 위기 속에 기회가 있다 열등감보다 장점을 먼저 생각한다 발뻗고 자고 싶으면 정직하라 기본으로 돌아가라 4. 사랑하는 사람들 가슴에 묻은 첫 아내 홀아비와 세 딸 문제아 선자 네 인생을 선택해라 Be Happy! 두번째 아내 혜정 여자도 좋지만 아내가 더 소중하다 재혼이 더 힘들다 아내의 상처 여보, 애인 생기면 집 사줄게! 5. 두 개의 조국 낳아 준 조국, 키워 준 조국 호텔에 입성한 한국 대사관 그래도 나는 한국인 세울 NO, 한국 OK! 왕보다 시민이 먼저인 나라 봉사하는 국회의원, 대접받는 국회의원 겁나는 일류주의 내리막 길 다음은 오르막 길이 나온다 이민을 떠나야 한다면 6. 새로운 도전 그리운 막걸리 음식은 최고의 문화 상품 나는 아직도 꿈꾸는 청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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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나는 사람을 가리지 않는다....삶의 방식은 달라도 상대방에 대한 마음만 진심이라면 사람은 누구나 친구가 될 수 있다고 나는 믿는다.
스스로 밝고 행복한 사람은 누구도 함부로 대하지 않는다. 오히려 즐겁고 공손하게 상대하려고 한다. 결국 사람은 자기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저마다 다를 대접을 받는다는 이야기다. ...여전히 '내가 가고 싶은 길'이 자리 잡고 있었다.....당장은 불효가 되더라도 내 인생의 길을 찾아 사람답게 살아가는 것, 어쩌면 이것이 부모님의 몸을 빌어 이 세상에 온 것에 대한 보답이 되는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기본적인 실력을 갖춘 상태에서 자신이 하는 일에 정성을 다하고 성실하게 일하면, 내가 광고하지 않아도 항상 나늘 눈여겨보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이다. 실력 있고 성실한 사람과는 누구나 팀이 되고 싶어하고 함께 일하고 싶어한다.... ... 좋은 인간관계가 없는 비즈니스가 오래가는 걸 절대 본적이 없다. ... 인간관계는, 어떤 치밀한 셈으로도 절대 계산이 되지않는 '절대가치'의 것..... ...단 한 사람도 내 손으로 해고한 적이 없다는 사실이다. 정말 그랫다....문제가 생겼다면 서로 의논하고 도우며 해결책을 찾아가면 된다. 미처 몰랐던 단점이 보인다고 해서 사람을 버릴 수는 없다. ...나는 실수의 왕자다....하지만 이것만은 기억한다. 실수를 하면 유식해진다는 사실이다....기기서 배우게 되기 때문이다...단, 자꾸 실수를 하다 보면 부자가 되기는 좀 힘들지도 모른다. 인간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열등감을 느낀다고 한다. 어린아이는 부모에 대해 첫번재 열등감을 느끼고... 극복할 수 없는 열등감보다 남이 가지지 못한 장점을 극대화 시키는 사람, 그 사람이 진정으로 자신을 사랑하는 현명한 사람이다. 자식들은 모두 제 길을 찾아 인생의 거친 바다를 항해해 간다. 부모는 캄캄한 밤길을 비춰 주는 등대처럼, 자식 앞에 불을 켜주는 역할을 할 뿐이다... --- p.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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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나는 겨우 열입곱 살이었다.
1954년 4월 4일, 이 날은 내가 노르웨이 오슬로 공항에 첫 발을 내딛은 날이며, 동시에 '노르웨이의 첫번째 한국인'이라는 기록을 만든 날이기도 하다. 한국에서부터 노르웨이까지는 장장 72시간이라는 긴 시간이 걸렸다. 정원 30명 정도의 작은 프로펠러 비행기는 얼마나 정신없이 흔들렸던지, 비행기를 탄 게 아니라 마치 폭풍 속에 작은 난파선을 탄 듯한 기분이었다. 게다가 오슬로 공항에 도착했을 때는 4월인데도 진눈깨비가 내리고 있었다. 낯선 땅에 보이는 사람들이라곤 온통 노랑버리에 키가 큰 코쟁이들뿐이고, 날은 어둑한데다 치적치적 진눈깨비까지 내리고 있어 어린 마음에도 심란한 기분을 어쩔 수가 없었다. 노르웨이에 도착하기까지도 결코 평탄한 여정이 아니었다. 폭격으로 부상당해 편치 않은 몸에 부산에서는 비행기를 타지 못할 뻔한 위기가 있었고, 게다가 일본과 태국까지 경유한 긴 긴 여정이었다. 지금은 네덜란드나 영국을 거쳐 아홉 시간 정도면 도착하는 거리를 무려 여덟 배의 시간에 거쳐 날아간 것이다. 노르웨이까지 가는 동안 해프닝도 많았다. 방콕에서는 잠시 머무는 사이 사원 구경에 나섰다가 갈아타야 할 비행기를 놓치고 말았다. 비행기를 놓쳤으니 망연자실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비행기를 놓쳤다는 사실보다 더 경악할 만한 일이 벌어졌다. 내가 놓친 비행기가 떨어져서 비행기에 탔던 사람들이 죽었다는 뉴스가 전해졌던 것이다. --- pp.19-2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