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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해받은 동양철학의 어머니 《논어》
동양 문화 속에서 《논어》는 그저 한 권의 책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천만 권의 새로운 책을 임신하고 출산한 말 그대로 어머니 같은 고전이다. 또 혹자는 중국 문화 그리고 동아시아 문명에서 공자와 《논어》가 차지하는 위상은 서양 문명에서 예수와 성경 그리고 플라톤과 그의 《대화록》이 차지하는 위상과 같다고 말하기도 한다. 따라서 “플라톤 이후의 서양 철학사는 플라톤에 대한 각주에 불과하다”는 철학자 화이트헤드의 발언을 “공자 이후의 동아시아 사상사는 《논어》 다시읽기의 역사”라고 바꿔 말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러나 그처럼 풍부한 재해석의 가능성에도 불구하고 공자와 《논어》가 20세기 이래 전반적인 무시와 방기의 대상이 되어버린 점 또한 부정할 수 없다. 성경과 플라톤의 《대화록》이 철학적 검토와 반성을 위한 기본 텍스트로서 오늘날에도 활발하게 해석되고 있음을 상기한다면, 이는 안타까운 일이다. 아마도 여기에는 동아시아 문명이 주체적인 근대화에 성공하지 못했으며, 많은 사람들이 그 원인을 공자와 《논어》가 대표하는 전통문화에서 찾고자 했던 점이 크게 작용했을 것이다. 예를 들어 중국에서는 아편전쟁의 충격에서 벗어나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양무운동, 변법운동, 신해혁명이 일어났으나 여러 면에서 한계를 드러내었던 바, 이에 ‘5.4 신문화 운동’이 전개되었다. 이 ‘신문화 운동’은 전통에 대한 철저한 반성과 비판을 요구하였고 이는 곧 공자, 《논어》, 유교에 대한 부정으로 이어졌다. 그렇다면 우리의 현실은 어떠한가? 불행히도 일본에 의해 식민지로 전락했던 충격은 전통에 대한 성급한 무시와 부정, 폐기를 가져왔고, 그 결과 유교에 대한 무지와 오해가 여전히 우리 사회에 팽배해 있다. 일례로, IMF 사태 이후 벌어진 “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 해프닝은 극단적이고 피상적인 공자 비판과 유교 부정의 현실을 보여주는 대표적 사건으로 회자되기도 했다. 공자의 화려한 부활 그러나 시대가 바뀌면서 공자를 둘러싼 상황 또한 급격히 바뀌고 있다. 5.4 신문화 운동과 덩샤오핑의 개혁, 개방 정책으로 인해 중국에서 배척받았던 공자 사상이 중국 제4세대 지도자인 후진타오 시대를 맞아 부활하고 있는 것이다. 중국에서는 그 동안 개혁, 개방 정책과 시장경제체제의 부작용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특히 2021년 중국공산당 창당 100주년을 계기로 초강대국 반열에 진입하려는 야심을 갖고 있는 중국공산당 지도부는 무엇보다 체제안정과 질서유지가 중요하다고 보고 있다. 그 결과 도시와 농촌간의 빈부 격차, 부정부패, 사회불안 등 고속성장에 따른 갈등을 치유하고, 당의 정체성을 확립할 수 있는 수단으로 공자라는 비장의 카드를 내놓은 셈이다. 미국의 시사주간지 《뉴스위크》는 공자의 유교사상이 최근 중국에서 화려하게 재조명되고 있다면서 공자와 중국공산당의 관계를 다룬 커버스토리를 게재하기도 했다(2006년 3월 20일자). 이 잡지는 중국 지도부의 공자 부활 노력을 차세대 인터넷으로 각광받는 ‘웹 2.0’에 비유하기도 했다. 후진타오 주석이 내세우는 인본人本과 친민親民주의는 공자의 핵심 사상인 인의仁義와 맥을 같이 한다. 이는 사회주의 이념의 퇴조로 통치 이데올로기의 빈곤에 직면한 중국공산당이 유교문화를 토대로 하는 중화 민족주의를 전환기 중국의 새로운 이데올로기로 삼은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공자는 ‘중국 공산당이 타도해야 할 봉건 잔재 1호’에서 ‘중화의 스승’으로 극적인 변신을 한 셈이다. 그런데 이미 1980년대부터 공자 사상의 중요성에 눈뜨고 시류에 휩쓸리는 일 없이 꾸준히 공자를 부르짖어온 학자가 있으니, 그가 바로 중국 사상계의 거장 리쩌허우다. 80년대 중국 계몽운동의 기수로 혁혁한 명성을 날리던 리쩌허우는 “공자는 죽었고 리쩌허우는 늙었다”는 학계 일부의 비판을 비웃으며 《논어금독》을 저술했다. 중국 사상계의 덩샤오핑 - 리쩌허우 도대체 리쩌허우는 어떤 사람인가? 요즘 중국 대학생들은 그가 누구인지도 잘 모른다고 하지만 80년대의 중국 청년 지식인들에게 그는 당시 우리의 리영희 교수 같은 존재였고, 그의 책들은 《전환시대의 논리》와도 같았다. 중국 역사에서 지워지지 않을 ‘10년간의 대재앙’이었던 문화대혁명을 마감하고 현대 중국에서 이른바 신新시기가 도래한 지도 벌써 20여 년이 지났다. 그 당시 정치 무대에 덩샤오핑이 세 번의 실각을 딛고 개혁, 개방의 총설계사로 화려하게 등장했다면, 사상계에서는 리쩌허우가 혜성처럼 나타났다. 그는 일찍이 50년대 말기 20대 후반의 나이에 미학 방면에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계급투쟁으로 점철된 ‘혁명’의 시기를 독학과 사색으로 통과한 그는 《미美의 역정》(1981), 《중국근대사상사론》(1979), 《중국고대사상사론》(1985), 《중국현대사상사론》(1987)과 같은 사상사와 미학사상, 그리고 철학에 걸친 일련의 저작을 내놓으면서 많은 젊은이들의 영혼을 ‘개혁, 개방’하였다. 특히 그가 1981년에 펴낸 《미의 역정》은 중국철학사가로 유명한 펑유란馮友蘭에게 ‘죽은 역사를 살려낸 대大 저작’이라는 극찬을 받았으며, 당시 많은 학생들이 이 책을 읽고 단숨에 그의 숭배자가 되었다고 전해진다. 80년대 중국사상계의 ‘덩샤오핑’으로 평가받는 리쩌허우는 유려하면서도 솔직한 문체로 ‘문화심리구조’나 ‘침적積澱’ 또는 ‘실용이성實用理性’과 같은 참신한 용어를 구사하면서 중국 전통문화를 해석하는 한편 ‘서체중용西體中用’과 같은 대담한 주장을 던져 커다란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그의 학설이 광범위한 반향을 불러일으키는 이유는 이른바 철학사는 유물론과 관념론의 투쟁사이고, 중국의 역사는 농민과 지주의 투쟁사이며 문학사는 리얼리즘과 비非리얼리즘의 투쟁사라는 과거의 창백한 방법론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독창적인 철학적 개념을 구사하면서 매우 유려한 필치로 사상사에 대해 참신한 해석을 내리는 동시에 현실에 대해서 도전적인 문제 제기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왜 《논어금독》이 중요한가? 그렇다면 왜 우리는 《논어금독》에 주목해야 하는가? 첫째, 이 책의 저자가 80년대 이후 중국에 가장 큰 영향을 주었고 대중적으로도 높은 인지도를 갖고 있는 사상가 리쩌허우이기 때문이다. 비록 지금은 중국 국내의 상황 변화에 따라 영향력이나 위상이 감소되었지만, 여전히 그의 사상은 중국의 현실과 미래를 이해하는 데 많은 시사점을 주고 있다. 둘째, 《논어금독》이 단순한 《논어》의 역주서가 아니라 창조적인 재해석을 시도하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에서는 20세기에도 《논어》에 대한 뛰어난 저작들이 출현했다. 전문적인 주석서로는 청수더의 《논어집석論語集釋》과 양수달의 《논어소증論語疏證》을 들 수 있다. 대표적인 역주서로는 양보쥔의 《논어역주論語譯注》, 첸무의 《논어신해論語新解》가 있으며 남회근의 《논어별재論語別裁》도 많은 독자층을 지니고 있다. 이에 비해 《논어금독》은 철저히 철학자, 사상가라는 입장에서《논어》를 재해석하고 있기에 우리의 주목을 끈다. 리쩌허우의 작업을 검토함으로써 우리는 고전의 재해석을 통한 동양철학의 재정립에 대한 가능성을 모색할 수 있기 때문이다. 《논어금독》만의 특징 《논어금독》은 리쩌허우가 1989년 가을에 착수하여 1994년 봄에 완성했다. 텐안먼 항쟁 이후 저술이 시작되어 그가 미국으로 출국한 뒤에도 계속된 것임을 알 수 있다. 《논어금독》의 체제를 살펴보면 원문, 번역, 주석, 그리고 해설로 이루어져 있다. 리쩌허우는 번역을 할 때 “문인問仁”과 “문정問政”을 “인에 대해서 물었다”, “정치에 대해 물었다”가 아니라 “어떠한 것이 인이냐고 물었다”, “어떻게 정치를 해야 하느냐고 물었다”로 번역한다. 유 학은 실체를 묻는 것이 아니라 방법을 묻는 것이라 믿기 때문이다. 《논어》는 사람을 변화시키는 책이다. 옛말에 “《논어》를 읽기 전에도 이런 사람이고《논어》를 읽고 난 다음에도 여전히 이런 사람이라면 읽지 않은 것과 같다”는 말이 있다. 《논어》를 읽고서도 아무런 변화가 없다면 그것은 《논어》를 잘못 읽은 것이다. 이것이 리쩌허우가 말하는 유학의 ‘실용이성’이다. 리쩌허우는 중국의 고대사상을 ‘실용이성’, ‘낙감문화(=즐거움의 문화)’, ‘천인합일(=하나의 세계)’이라는 세 범주로 종합한다. 그에 따르면 중국 문화에는 서양의 ‘죄책감 문화’나 일본의 ‘부끄러움의 문화’(루스 베네딕트)라는 것이 없고 ‘즐거움의 문화’가 있을 뿐이다. 또한 중국 문화에는 서양처럼 피안과 차안, 현세와 내세라는 두 개의 세계가 없고, 오직 차안과 현세라는 하나의 세계만이 존재한다. 그러므로 신神 없는 인생의 의의를 찾아야 하는 고투가 뒤따르지만, 그것이 사유의 깊이를 더해준다고 그는 주장한다. 리쩌허우는 아울러 유학이 기적과 신비를 중시하지 않지만, 종교와 신앙을 배척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그리하여 유학은 인격신이 없고 마법과 기적이 없는 ‘반半종교’라는 것이다. 리쩌허우에게 유학은 또한 ‘반半철학’이다. 유학과 공자는 추상적 사변체계와 논리구조를 중시하지 않는다. 공자의 ‘인仁’과 ‘예禮’에는 “무엇인가what is”의 문제가 매우 적으며, 결국 관건은 “어떻게 할까how to”이다. 또한 공자가 강조한 유학의 목표는 “안으로 성인이 되는 것”과 “밖으로 왕도를 실천하는 것”이다. 그러나 현존하는 《논어》는 “안으로 성인이 되는 것”을 강조한 안회나 증삼 학파에 의해 전승된 것이기 때문에 공자의 “밖으로 왕도를 실천하는 것”에 대한 사상은 《논어》를 편집하는 과정에서 그들에 의해 빠졌을 거라는 게 리쩌허우의 주장이다. 따라서 그는 “안으로 성인이 되는 것”을 강조하는 송명시대의 성리학과 양명학, 현대의 신유학이 유학의 주류라는 생각에는 동의하지 않으며, “밖으로 왕도를 실천하는 것”을 강조하는 공자 - 순자 - 동중서- 왕통 - 진량 - 섭적 - 고염무 - 황종희로 이어지는 노선을 중시한다. 고전 - 오래된 미래 그렇다면 리쩌허우는 왜 많은 사람들이 번역, 주석, 해설했던 《논어》를 다시 해설한 것일까? 이러한 작업을 두고 스스로 “찬밥을 데우고 또 데우는 일처럼 재미없다”고 표현했으면서 말이다. 그가 《논어금독》을 통해 공자와 유학을 재해석하고자 한 동기는 무엇보다 《논어》가 중국의 혼, 즉 중국의 문화심리구조를 형성하는 데 가장 큰 영향을 주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국 내에서 ‘반종교’이며 ‘반철학’인 유학과 공자사상의 성격이 제대로 해석되지 못하고 있다. 따라서 그는 먼저 유교를 해체한 뒤 재건하고자 했다. 이런 ‘비판적이고 창조적인 계승’을 위해 《논어》의 재해석을 시도한 그는 공자 사상의 세 측면을 강조한다. 그것은 첫째, 인성의 배양을 중시하며 동물성(欲)과 사회성(理)의 융합과 통일을 중시한다는 점이다. 둘째는《논어》에 보이는 종교적 사덕과 사회적 공덕의 두 경향은 후대 ‘내성(안으로 성인이 되는 것)’과 ‘외왕(밖으로 왕도를 실천하는 것)’으로 전개되면서 복잡한 양상을 드러내고 있다. 따라서 이런 정치 - 종교 - 윤리의 삼자결합, 즉 중국식의 정교합일이 지닌 반근대적 요소를 극복하는 것이 중요한 과제이다. 셋째, 공자의 사상은 개인의 주체성에 대한 탐구를 중시한다. 그것이 바로 ‘천명天命’이며 ‘입명立命’이다. 리쩌허우의 이러한 《논어》 재해석은 단순한 고전의 재해석이 아니라 고전과의 철학적 대화이며 동시에 현실참여적 지식인으로서의 고심에 찬 모색의 결과이다. 그는 오래 전 주희 역시 “자신의 문장이나 위대한 저술을 쓰려 하지 않고 《사서》를 잘 주석하는 것을 평생의 임무”로 삼았다며, 자신 역시 중화의 고전들을 “오늘과 내일에도 진정으로 읽기 편하고 쓸모 있는 책으로 만들 수 있다면, 내 자신의 문장이나 전문 저서를 쓰는 것보다 훨씬 더 가치 있는 일”일 거라 말한다. 오래된 미래인 고전에 대한 그의 이러한 관심과 창조적 재해석은 공자와 《논어》 나아가 동양철학을 이해하고 접근하는 데 많은 시사점을 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