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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호 1년을 365일로 정한 이집트력
3호 아리스토텔레스_ 동물 분류학의 아버지 5호 에라토스테네스_ 지구의 크기 측정 7호 프톨레마이오스_ 천문학 집대성 9호 코페르니쿠스_ 근대 과학으로의 길을 염 11호 케플러_ '케플러의 법칙'수립 13호 윌리엄 하비_ 혈액순환설 주장 15호 라마르크_ 용불용설 제창 17호 슐라이덴 & 슈만_ 세포설 확립 19호 파스퇴르_ 생명과학 분야의 창시자 21호 파블로프_ 동물의 조건반사 규명 23호 에드윈 허블_ 우주의 팽창을 밝혀내다 25호 웟슨 & 크릭_ DNA 2중 나선구조 밝힘 27호 인간게놈 프로젝트_ 생명의 신비를 밝히는 열쇠 2호 밀레토스학파_ 그리스 과학의 시작 4호 아리스타르코스_ 최초로 지동설 제창 6호 히파르코스_ 별의 밝기 최초 측정 8호 오컴_ 오컴의 면도날'로 아리스토텔레스에 도전 10호 티코 브라헤_ '티코의 신성'을 발견하다 12호 갈릴레오 갈릴레이_ 그래도 지구는 돈다 14호 칼 린네_ 생물분류법의 기초 확립 16호 라이엘_ 근대 지질학의 기초 마련 18호 찰스 다윈_ 진화론 확립 20호 멘델_ 유전학의 창시자 22호 베게너_ 대륙이동설 주창 24호 모건_ 염색체의 유전자 발견 26호 줄기세포와 복제_ 복제양 돌리 탄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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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현재·미래의 과학, 세상 속에서 신문 속에서 다시 읽다
우리는 으레 과학이란 늘 정확한 정답이 존재하는 영역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그 정답에 대한 반박과 혁신적인 발상의 전환이 있었기에 과학의 역사가 만들어졌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지구가 둥글다는 주장과 함께 설득력 있는 근거를 제시한 최초의 인물이긴 하지만 우주를 지상계와 천상계로 분리한 그의 편협한 우주관은 오랜 세월 서양의 철학과 과학을 지배하는 사고의 족쇄로 작용했다. 2세기경 프톨레마이오스가『알마게스트』를 통해 주창한 지구 중심의 우주 구조는 코페르니쿠스에 의해 태양 중심설로 대체된다. 하지만 행성이 타원 운동이 아닌 원 운동을 한다는 코페르니쿠스의 가정은 훗날 케플러로 하여금 행성운동에 관한 결정적인 증거를 손에 넣고도 고정관념이라는 함정에 빠져 8년을 고군분투하게 만든다. 이와 같이 미신이 곧 과학이고 혹은 신화와 종교가 과학을 지배했던 시기 이후에도 과학은 과학을 엎고 사회·경제적 변화와 맞물린 채 그 본질을 찾아 먼 여정을 거쳐왔다. 따라서 과학적 발견과 발명을 두고 그 정의만을 설명하거나 개별적인 사건으로만 평가하는 데는 분명 무리가 있다. 최소한 동시대의 사회상과 역사·종교는 물론, 때로는 수백 년을 넘나드는 전후 발명과 발견의 상호작용이라는 맥락 역시 되짚어볼 필요가 있는 것이다. 『미래의 눈으로 다시 읽는 과학신문』은 세상과 다음 시대의 과학과 맞물려온 과학의 변신을 신문의 다양한 섹션-기사·인터뷰·광고·만화 등-을 통해 흥미롭게 재현하는 한편, 타임머신 칼럼을 통해 미래, 즉 오늘날의 관점에서 해당 사건과 과학자를 재조명하고 있다. 과학을 바라보는 제3의 눈, 살아 있는 칼럼을 만나다 『미래의 눈으로 다시 읽는 과학신문』은 칼럼을 통해 오늘날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과학사의 사건들을 바라보는 다양한 관점을 수록하고자 했다. 예컨대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의 우주론을 '인간의 정신세계를 구속한 생각의 독약'으로 바라보는 관점(<아리스토텔레스가 만든 생각의 독약>- 과학저술가 손영운)이 있는가 하면, 아리스토텔레스의 주장은 경험적인 사실에 의한 반박보다는 그가 가진 자연철학 전체와 연계시켜봐야 한다는 과학철학자의 견해(<아리스토텔레스, 자연은 빈 곳을 싫어한다!>- 한양대 철학과 교수 이상욱)도 주목해볼 만하다. 또한 웟슨과 크릭의 DNA 2중 나선구조 규명 뒤에 숨은 로잘린드 프랭클린이라는 여성 과학자의 공헌을 보도한 기사와 함께, 두 사람이 프랭클린을 앞지를 수 있었던 원인을 '전공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운 사고의 만남이 불러온 화학반응'으로 보는 칼럼(<자유로운 두 사고의 융합이 불러온 생물학의 혁명>- 연세대 기초과학연구소 하영미)은 읽는 이에게 새로운 사고를 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준다. 나아가 21세기 게놈프로젝트에서 웟슨을 또 한 번 조우하는 것은 시간을 넘나드는 신문 형식의 이 책이 지닌 또 다른 재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