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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가메쉬 서사시〉는 수많은 연구가와 작가들에 의해서 소개되고 있다. 전문적인 점토판 연구가들은 수메르어와 악카드어를 해독한 책들을 계속 내놓고 있다. 길가메쉬를 주인공으로 한 소설들이 쏟아져 나오고, 영화와 연극으로 상연되고, 만화로 그려지고, 음악과 춤으로 표현되고, 심지어는 일본의 애니메이션과 게임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장르에서 등장하고 있다. 이것은 ‘최초의 신화’며, ‘최초의 책’이며, ‘최초의 영웅’에 대한 당연한 귀결인 셈이다. 비록 2000년 이상 동안 잊고는 있었지만.
그렇다면 ‘한국적 상황’은 어떠한가. 매년 대학과 신문이 발표하는 필독서의 목록에는 ‘길가메쉬’라는 이름을 ‘전혀’ 찾을 수 없다. 불행한 일이다. 최초의 문자를 찾아내고, 최초의 언어와 신화를 복원하고, 최초의 국가, 최초의 선진 문명, 최초의 영웅을 다시 인류 앞에 내놓을 때까지 겪었던 인고의 세월 앞에, 그래서 그 엄청난 쾌거 앞에 경탄하고 받아들이는 작금의 현실을 이 땅에서는 찾을 수 없다. 수메르 신화에 대한 냉대와 〈길가메쉬 서사시〉에 대한 소홀은, 그렇다 치더라도 더 안타까운 일이 있다. 청소년 혹은 젊은이들은 일본 만화나 애니메이션, 또 컴퓨터 게임에 등장하는 길가메쉬를 그대로 받아들인다는 점이다. 거기에 나타는 길가메쉬의 모습은 원본과는 ‘상당히’ 다른 면이 있다. 그들의 머릿속에 먼저 책을 통해서 접한 길가메쉬가 있어야 될 텐데, 상황은 그렇질 못하다. 이 책은 ‘젊은 독자들’을 위한 책이다. --- p.10~11 〈지은이의 말〉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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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를 낳은 신화, 그 주인공의 영웅적 이야기
― 길가메쉬 서사시에 대하여 〈길가메쉬 서사시〉가 100여 년 전 최초로 번역(영어)되었을 때부터 세계 문학의 위대한 명작으로 인식되어 왔다. 독일 시인 R. M. 릴케는 “길마메쉬는 놀랍다!”며 〈길가메쉬 서사시〉는 가장 위대한 “죽음과 공포의 서사시(das Epos der Todesfurcht)”라고 말했다. ‘죽음’이라는 보편적인 주제는 유한한 인간이 무한한 혹은 영원한 삶을 추구하기 위해 죽음과 처절히 싸우는 한 영웅의 투쟁을 말하고 있다. 이 서사시는 죽음을 극복하기 위한 인간의 본능적인 몸짓을 보여준다. 처음에는 영웅적인 전쟁을 통해 불멸의 명성을 이루고자하고, 그 후에는 인간이 죽어야한다는 사실은 그 어떤 인간의 업적보다 강렬하기에, 죽음 자체를 극복하여 영원히 살고자 한다. 물론 길가메쉬는 필연적인 실패와 좌절, 그리고 결국 인간은 그가 남기는 이름을 통해 영속성을 이룰 수밖에 없다는 깨달음을 얻는다. 죽음에 관한 두려움이 분명 이 서사시의 근본적인 주제이지만, 이 서사시는 그 이상을 것을 독자들에게 호소하고 있다. 〈길가메쉬 서사시〉는 인간이 어떻게 ‘지혜’를 얻을 수 있는지를 길가메쉬의 거듭된 성공과 실패를 통해 알려주고 있다. 이 과정은 인간의 나약함에 대한 심오한 통찰력과, 삶과 죽음을 통해 반복되지만 인간들에게 숨겨진 그 진리의 단면을 어렴풋이 보여 준다. 맛깔스럽게 재구성된 청소년을 위한 ‘길가메쉬’ 이야기 ― 이 책의 특징 1 현재까지 남아있는 기록으로 볼 때 수메르는 인류 최초의 문명이다. 수메르는 고대문명 가운데 최초로 문자를 사용했는데, 점토판에 설형문자(쐐기문자)를 새겨서 왕명록, 매매문서, 물품내역, 공증서류 등의 기록을 남긴 것으로 유명하다. 특히 설형문자로 기록된 수메르의 신화와 역사는 히브리 신화, 그리스 신화, 그리고 성서의 여러 이야기(대홍수와 에덴동산 등)에 커다란 영향을 미친 것으로 널리 인정받고 있다. 수메르는 선사시대와 역사시대 사이에 가로놓인 문턱이었고, 인류가 야생의 단계를 벗어나 문명을 탄생하게 되었음을 알리는 ‘배꼽’이었다. 수메르는 기원전 3000년경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4000여 년 전에 문명을 건설했다. 하지만 지금으로부터 150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수메르가 존재했다는 사실 자체가 역사의 어둠 속에 묻혀 있었다. 길가메쉬 이야기가 기록된 점토판이 발견된 것은 1858년이었으며, 고고학자들의 노력으로 수메르의 존재가 확인된 것은 1869년의 일이다. 악카드, 앗시리아, 바빌로니아 등의 언어에 대한 비교언어학적 연구를 통해서, 1923년에 수메르어의 문법적 기초가 다져졌으며, 1930년대 이후부터 본격적으로 수메르의 설형문자가 음역 및 해독될 수 있었다. 《청소년을 위한 길가메쉬 서사시》는 수메르의 위대한 유산인 길가메쉬 서사시를 읽기 쉽고 보기 편하게 재구성한 책이다. 서양 학자들의 연구를 중역한 것이 아니라, 세계 각지에 흩어져 있는 점토서판 원문을 검토하고 수메르어 판본과 악카드어 판본을 비교대조하여 음역하여 한국어로 번역한 책인 《최초의 신화, 길가메쉬 서사시》의 저자가 ‘젊은 세대’에게 길가메쉬를 소개하려고 맛깔스럽게 재구성한 책이어서 그 의미가 참으로 각별하다. 〈길가메쉬 서사시〉를 충실히 번역한 곳을 읽다보면 곳곳에서 말줄임표를 만날 수 있는데, 이것은 점토판이 깨져서 판독이 불가능한 부분을 표시한 것이다. 저자는 이 부분까지 독자의 읽기를 고려해 재구성하였고, 본문에 적절하게 배치된 수메르 유적과 설형문자의 사진들을 100여장 가까이 삽입하여 독자를 갈가메쉬 서사시의 시대로 안내하고 있다. 길가메쉬는 BC 2812년부터 126년 동안 수메르의 우르크를 통치했던 역사적 인물이면서, 동시에 3분의 2는 신이고 3분의 1은 인간이었던 신화적 영웅이다. 〈길가메쉬 서사시〉에 의하면, 길가메쉬는 폭행을 일삼는 난폭한 임금이었다. 백성들의 원성이 높아지자 신들은 길가메쉬와 맞설 수 있는 존재인 엔키두를 만들게 된다. 엔키두는 여성과 성적 접촉을 통해서 문명인이 된 후 길가메쉬와 만나 형제가 된다. 죽음이 두렵지 않았던 두 사람은 삼목의 숲을 지키는 괴물 훔바바를 죽이는 등 다양한 모험을 경험한다. 하지만 분신과도 같았던 엔키두가 죽음을 맞이하면서, 길가메쉬는 자신의 죽음이라는 실존적인 문제에 부딪히게 되고, 왕은 걸인이 되어 황야를 방황하며 영생을 구한다. 길가메쉬는 자신의 조상이면서 유일하게 영생을 얻은 우트나피쉬팀을 만나기 위해 멀고도 험한 모험에 나서는데, 끝끝내 영생의 비법을 찾지 못한 채 고향에 돌아와 숨을 거둔다. 죽음과 맞써 싸우는 존재, 인간이 중심에선 최초의 작품 ― 이 책의 특징 2 ‘서사시는 완결된 과거라는 시간의 구조 속에 민족의 영웅적 과거를 담아내는 서사양식’이다. 서사시의 영웅이 늙지 않는 이유도 거기에서 찾을 수 있다. 그리스 서사시의 주인공들은 신탁에 의해서는 죽을 수 있어도 자신의 내면에는 죽음의 그림자를 갖지 않는다. 죽음으로부터 소외당하지 않는 사람이 바로 영웅인 것이다. 그렇다면 길가메쉬 이야기는 어떠한가. 흥미로운 점은 길가메쉬의 성격이다. 외부에 잠재하는 죽음의 가능성과 맞서 싸울 때 길가메쉬는 영웅이다. 하지만 자신의 운명에 내재되어 있는 죽음과 대면할 때 그는 한낱 인간에 지나지 않는다. 세상의 그 무엇보다도 자신의 죽음이 낯설었던 인간의 모습이 길가메쉬 서사시에는 그려져 있다. 일반적으로 영웅이 세계의 흉포함에 맞서 싸우다가 패배할 때 비극이 만들어진다. 하지만 길가메쉬의 경우에는 죽음이라는 인간의 내재적인 운명과 맞서 싸우다가 패배하여 비극을 구성한다. 그런 의미에서 〈길가메쉬 서사시〉는 “인간이 중심에 선 최초의 작품”(새뮤얼 노아 크레이머)이다. 《청소년을 위한 길가메쉬 서사시》는 죽음의 공포와 마주하고 있는 단독자의 운명을 그리고 있는 작품이며, 불멸의 욕망과 필멸의 운명 사이에서 방황했던 고대적 광기의 기록이다. 길가메쉬는 이룰 수 없는 꿈(영생불사)을 품고 모험에 나섰다가 끝내 그 꿈을 이루지 못했다. 하지만 그의 모험과 여행은 역설적으로 인간의 운명(죽음을 향한 존재)을 발견하는 과정이었다. (이 대목에서 기계인간이 되어 영원한 생명을 얻고자 우주를 순례하는 〈은하철도 999〉의 철이가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은하철도 999’를 길가메쉬 서사시의 SF 버전으로 읽을 수 있을 것이다.) 〈길가메쉬 서사시〉는 죽음을 넘어서고자 했지만 끝내 굴복할 수밖에 없었던 인간의 보편적 운명에 대한 원초적인 기록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