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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 천년 가는 집을 짓는, 나는 목수다
송광사 절밥으로 끼니를 해결하고, 태안사 툇마루에 앉아 차를 마시며 1장 창경궁 담장 너머 달빛에 종이를 비추며 - 목수의 아들로 태어난 운명 - 먹고살기 위해 아버지의 길을 따르다 - 열일곱 살에 당대 최고 도편수 김덕희의 제자가 되다 - 선배들의 연장을 갈며 도구에 눈뜨다 - 구도자의 길과 목수의 길 - 음양의 이치와 전통 건축의 맛과 멋 - 어느덧 나무는 나의 운명이 되었다 - 이음새 하나가 천년을 간다는 한결같은 믿음 - 55년 동안 단 하루도 쉬어본 적이 없는, 나는 천상 목수다 - 목수는 목수일 뿐, 자기 분수를 지킬 줄 알아야 한다 2장 한옥, 그 천년의 건축 미학 - 안동 봉정사 극락전 - 부여 백제문화단지 - 한마음선원 부산지원, 광명선원, 서산정 - 영주 부석사 회랑, 수조각, 설법전 - 경주 월정교 - 강진 무위사 극락보전, 사천왕문, 천불전 - 강진 다산초당 동암과 서암 - 순천 송광사 육감정, 약사전, 영산전 - 곡성 태안사 원각선원과 명선암 - 여수 향일암 일주문 - 장수 논개사당 의암사 영정각과 숭앙문 - 정읍 내장사 명부전과 대웅전 - 남원 예촌 한옥 마을 - 공주 마곡사 대웅보전과 영은암 - 예산 수덕사 일주문 - 평창 월정사 적광전과 방산굴 - 평창 지장암 지장전과 요사채 - 원주 상원사 대웅전 - 강화도 보문사 극락보전과 무설혜중전 - 양평 용문사 일주문, 대웅전, 요사채 - 광주 남한산성 국청사와 수어장대 - 양평 초은당 - 용인 효렴사 - 인천 한옥 호텔 경원재 앰배서더 - 신촌 이화여대 이화역사관 - 서울 은평구 진관사 대웅전 - 서울 종로구 관음사 무량수전과 산신각 - 서울 서초구 천개사 인법당 - 서울 강남구 봉은사 법왕루 - 남양주 전수교육관 3장 손끝에서 이루어지는 건축, 목수의 연장들 - 붕어톱 - 탕개톱 - 양날톱 - 줄톱 - 톱날 고르기와 톱 조리개 - 벽련도끼 - 대자귀, 중자귀, 손자귀 - 훑이기와 훑이기 낫 - 망치 - 장대패와 단대패 - 맞걸이대패 - 밀걸이대패 - 곱장대패 - 둥근대패 - 홈대패 - 문살등밀이대패 - 쌍줄대패 - 투밀이살쇠대패 - 문턱마감대패 - 곧날대패 - 변탕 - 초소형 둥근대패 - 모끼대패 - 옆훑이기대패 - 때림끌과 둥근끌 - ㄱ자 끌과 쌍끌 - 그므개 - 꺾쇠 - 목돗줄 - 먹통과 먹칼 에필로그 - 목수 인생 55년, 마지막으로 짓고 싶은 나의 집 흙과 돌과 나무 그리고 바람이 지은 집, 한옥은 자연이며 자유며 생명이다 부록 최기영 대목장이 걸어온 길 최기영 대목장 가계도 중요무형문화재 제74호 대목장 최기영 기문의 계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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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목장님께서 보기에 우리나라에서 가장 잘 지어진 최고의 목조 건축물은 무엇입니까?”
학교에서 학생들을 상대로 강의할 때나 기업에서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강연할 때 종종 받게 되는 질문이다. 이런 질문이 나오면 모두들 자기가 하고 싶었던 질문이었다는 듯 귀를 기울이며 내 대답을 기다린다. 그러나 내 대답을 들은 사람들은 이내 기대가 실망으로 바뀐다. 내 대답은 언제나 “없습니다”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뿐 아니라 세계 어딜 가든 이 같은 질문에 대한 답은 없다는 게 정답이다. 하나의 건축물은 그 시대의 정신과 문화, 생활수준과 양식, 그리고 당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마음을 반영한 것이다. 그걸 후대 사람들이 자기들 생각과 기준으로 평가하고 판단하기는 어렵다.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는 좋은 건축물은 있을 수 있지만 이 세상 어디에도 완벽한 건축물이란 있을 수 없다는 게 내 생각이다. --- pp.90-93 좋은 목수든 좋은 집이든 원리는 똑같다. 분수를 알고 지키는 것이다. 분수를 안다는 건 자기가 발 디디고 서 있는 현재의 위치를 정확하게 안다는 말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걸 깜빡깜빡 잊어버린다. 분수에 맞지 않게 잘못 지어진 집은 허물어지게 되어 있다. 기단과 주초석, 기둥과 보, 서까래와 지붕 등 집을 이루고 있는 모든 요소와 구조들이 분수에 맞게 제 위치를 잘 지키고 있는 집이 좋은 집이다. 나는 내 분수를 알았기에 남들이 쉴 때 더 열심히 일하고, 남들이 잘 때 더 열심히 연구하고, 남들이 놀 때 더 열심히 기량을 연마했다. 본래 나는 가난하고 무지하고 힘없는 집안에서 태어난 사람이라는 것, 목수란 편안하고 안락하고 안정적인 삶을 기대할 수 없는 존재라는 것, 이것이 내가 지켜온 나의 분수였다. --- p.94 장장 17년 동안 이어진 대공사를 끝마치고 나서 거울을 보니 까맣던 머리카락이 하얗게 변해 있었다. 목수로서 걸어온 55년 동안의 모든 기량과 마음을 다 쏟아 부은 대역사였다. 나는 백제문화단지를 들를 때마다 능사를 찾아 5층 목탑을 한참 동안 바라보곤 한다. 내가 온 힘을 다해 지었지만 도무지 내가 한 일이라고 믿기지가 않는다. 지금까지 단 한 건의 하자도 발견되지 않았다. 이 거대한 목탑이 이토록 조그만 평면 위에 어떻게 서 있는 것일까? 이런 질문을 던질 때도 있다. 내가 지은 건축물 앞에서 내가 신기해 자문을 하면서도 나는 이에 대해 확실한 답을 할 수가 없다. 공부가 더욱 깊어지면 죽기 전에 그 비밀을 알 수 있을지 모르겠다. --- p.133 “지금까지 건축하신 한옥 중에 최고의 작품은 어떤 겁니까?” 내게 인터뷰를 요청한 기자들 가운데 상당수는 대화 말미에 꼭 이런 질문을 던진다. “아마도 제가 죽기 직전에 짓는 작품일 겁니다. 장인의 실력은 해가 묵고 갈수록 좋 아지거든요. 그러니 작년에 지은 집보다 올해 지은 집이 더 좋은 것은 당연한 일이죠.” 내 대답 또한 한결같다. 판단력이 아직 흐려지지 않았을 때, 그나마 대패질할 정도의 기력이 남아 있을 때, 혼신의 힘을 다해 짓게 되는 건축물이 내 대표작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내게는 최고의 작품이니 대표작이니 하는 것들보다 더 절실한, 마지막 남은 간절한 소망 하나가 있다. 그것은 경상북도 경주시 구황동에 덩그러니 터만 남아 있는 황룡사 9층 목탑을 재현해 건축하는 일이다. 황룡사 9층 목탑을 재현해낸다면 이는 우리 전통 건축 역사에 한 획을 긋는 역사적인 일이 될 것이다. 부여 백제문화단지 안에 건립한 능사 5층 목탑은 아파트 13층 높이의 38미터짜리 탑이지만 황룡사 9층 목탑은 아파트 21층 높이인 72.9미터짜리 탑이다. 능사 5층 목탑의 거의 두 배에 달하는 어마어마한 규모의 탑인 것이다. --- pp.332-33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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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 지정 중요무형문화재 제74호이자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대목장, 보완 최기영(寶玩 崔基永). 『목수 고집』은 그의 55년 목수 인생을 결산하는 자서전이자 그가 평생토록 지켜온 한옥 건축의 미학을 오롯이 담아낸 숭고한 고백록이다. 이 책을 통해 그는 못질 하나 없이 나무를 이어 만든 집이 천년을 가는 한옥 건축의 과학성과 건축미를 여실히 보여준다.
열일곱 살의 나이에 사찰 건축의 대가 김덕희 문하에 들어가 혹독한 도제 시절을 거쳐 김덕희-김중희-최기영으로 이어지는 기문(技門)의 수장이 되기까지, 그 역정은 가열차고 혹독했다. 아무도 가르쳐주는 사람이 없어 낮에는 스승의 어깨 넘어 배우고, 밤중에는 창경궁 담장 넘어 달빛에 종이를 대고 비춰보면서 전통건축물을 연구했다. 연장이 없으면 선배 목수에게 연장을 갈아주겠다며 빌려와 하루 종일 쓰면서 용법을 익혔다. 이게 아니면 죽는다 하는 각오로 목수 일을 깨우쳤다. 이렇게 그의 손길이 거쳐간 전통건축물들은 안동 봉정사 극락전과 공주 마곡사 대웅보전, 송광사 육감정과 영산전, 무위사 극락보전, 월정사 적광전, 부산 한마음선원 등등 굵직한 건축물만 해도 일일이 다 헤아리기 힘들 정도다. 그는 전통 건축을 계승하고 발전시키는 일과 더불어 급속한 현대화와 산업화를 거치며 잊고 지냈던 우리의 주거문화를 제대로 알리고 보급시키는 일에도 앞장서오고 있다. 송도의 한옥 호텔 경원재 앰배서더, 남원 예촌 한옥 마을 등이 그 예다. 문화재 복구는 기초에서 건축, 단청에 이르기까지 철저한 고증을 거쳐 진행된다. 기록이 소멸된 경우도 많아, 과학적인 기법에 상상력을 접목시켜야 한다. 도편수의 내공은 이때 발휘된다. 장장 17년에 걸쳐 완공된 부여 백제문화단지와 경주 월정교의 재현은 대목장 최기영의 목수로서의 모든 내공을 쏟아 부은 역작이다. 못을 쓰지 않고 목재와 목재만 얽어 처마의 하중을 떠받치는 '하앙식 공법'은 그가 중국과 일본을 수없이 오가며 그 시대 건축물을 연구한 끝에 밝혀내 부여 백제문화단지 공사에서 처음 사용됐다. 서까래 사이에 끼운 지지대가 아래로 향한 채 처마를 떠받치는 독특한 형태의 이 건축법은 백제 건축의 정수로 꼽힌다. 칠순을 훌쩍 넘긴 나이에도 젊은 사람 못지않은 활력으로 전국의 작업장을 지휘하고 다니는 그에겐 마지막으로 꿈이 하나 남아 있다. 동양 최대의 목탑인 경주 황룡사 9층 목탑을 짓는 것이다. “황룡사 9층 목탑은 세계에서 제일가는 나무 집입니다.우리가 자본도 있고 인력도 있는데 이걸 복원하지 못한다면 말이 안 되지요. 이건 일개 목수인 저만의 꿈이 아니라 대한민국의 꿈이 되어야 합니다.” 이 시대의 큰 목수 최기영의 고집, 그 뭉근하고 우직한 목수 고집을 독자들에게 전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