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소장하고 있다면 판매해 보세요.
|
글머리에
1 문학의 길 성자의 두 모습 보이지 않는 세계의 힘 시간 지우기 독서 다시 읽는 『광장』의 망명 상상력과 현실의 경주 참자유와 평등의 길 우리 굿 문화 문화의 뿌리 국가 권력과 역사의 폭력 고문장체의 힘과 미덕 한국 회화론과 한문학의 가르침 역사소설의 새 서사전개 쉽고 아름다운 우리말 사전들 권력의 덫 2 삶과 문학의 만남 깨어진 영혼들의 대화 서울은 아직 정글이다 향기를 뿜는 꽃 그림 <고향의 봄>와 이원수 선생 책 주고받기 우리말의 고향 나이를 넘어선 평생 독서의 모습 추사와 초의 스님의 교유 따뜻한 마음의 길 인간 신의 힘 삶의 결핍은 사랑의 씨앗이 될 수 있다. 그가 이길 수 있는 단 한가지 동시대 삶 속에서 그를 만난 내 소설의 행운 |
Lee Chung Joon,李淸俊
이청준의 다른 상품
|
어느 해 겨울 새벽 그가 잠을 깨어 보니 밤새 창 밖에 눈이 하얗게 내려 쌓여 있었다. 그는 그 눈을 보자 서울 교외의 산자락 아래 들어박혀 살고 있는 한 벗의 집이 떠올라서 곧바로 그 친구네로 차를 달려갔다. 교외길 주변은 온통 눈 세상을 이루고 있었고, 친구네 또한 그 애애한 아침 눈빛속에 아직 고즈넉한 정적에 싸여 있었다. 그런데 집안의 친구는 그가 불러도 한동안 아무 기척도 없었다. 이 친구가 어디 출타중인가? 그가 몇 차례 더 기척을 보내며 기다리고 있으려니, 뜻밖에 등뒤에서 벗의 소리가 들렸다. '나 여기야.' 위인은 벗이 찾아온 소리를 듣고 뒷문으로 집을 돌아 등뒤로 나타난 것이었다.
'뜰앞의 눈이 하도 고와서 차마 내가 밟고 나오기가 아깝더구만. 자네가 왔으니 자네가 먼저 저 눈을 밟고 내 집엘 들어오게 하려고 일부러 뒷문으로 길을 돌아 나왔지. 자 그러니 자네가 앞장서 이 눈을 밟고 들어가자구.' --- p.152 |
|
'수평선 단상 -넓어지려면 단순해질 일이다'(106쪽)
'낚시터에서 모자가 바람에 날아가 물 가운데로 멀어져 가는 것을 보면서 문득 내가 나를 버릴 수 있음을, 내가 아픔없이 나를 작별할 수도 있음을 알았다' (108쪽) --- p. |
|
소설 읽기가 더욱 재미있을 수 밖에 없었다. 하여 나는 그 이후부터 집안에 있는 소설책을 모두 찾아 읽었다. 지금 대강 기억나는 것으로는 예의'순애보'이외에 김말봉의 '밀림''찔레꽃' 박종하의 '다정불심' 따위 대중 연애 소설과, 이광수의 '무정' 김동인의 '배따라기' 빅토르 위고의 ' 레 미제라블' (당시의 책제는 '불쌍한 사람들'이었다) 도스토에프스키의 '죄와 벌' 같은 본격 번역 소설에 이르기까지 집 안에 있는 책 목록은 모두 섭렵한 셈이었다.
--- p.41-42 |
|
그리고 서당에서 배운 책이고 학교시절에 읽은 책이고 지금은 거의 그 내용을 기억할 수조차 없다. 설혹 그것들을 다 이해하여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한들, 그리고 그 시절 '사서삼경'이나 어떤 고급한 선지식을 읽었다 한들, 지금의 나에겐 그 고지식한 글방 선생님이나 국어 선생님의 나이를 넘어선 글읽기와 삶의 모습보다 더 귀한 가르침을 받을 수 있는 책은 없었으리라 생각된다. 더불어 그분들의 평생 글읽기는 바로 그분들의 삶이자 즐거움이 아니었을까 하는 뒤늦은 깨달음, 책읽기를 통한 끊임없는 자기 창조의 기쁨이 함께 했으리라는 믿음을 가져보기도 한다.
--- p.145 |
|
▣ 우리시대를 대표하는 작가 이청준의 7년 만의 신작 산문
1965년 <퇴원>이라는 단편소설로《사상계》를 통해 데뷔한 한 소설가가 있었다. 그리고 35년이 지난 2001년 현재 우리는 그의 소설을 빼놓고는 감히 60년대 이후의 한국문학을 말할 수 없게 되어버렸다. 중고등학교 국어교과서에는 그의 단편소설들이 실려 있고, 대학 강의실에서는 그의 작품들이 끊임없이 읽혀지고 있으며, 웬만한 독자들이라면 그의 작품 한두 편 정도는 쉽게 떠올리곤 한다. 뿐만 아니라 <이어도> <예언자>는 프랑스 유수의 출판사에서 불역 출간되었고, 그밖에 오스트리아, 일본에서도 번역 출간됨으로써 현지에서도 큰 반향을 불러모은 바 있으며, 세계적인 동시대 작가 르 클레지오, 이스마엘 카다레 등으로부터 찬사를 받기도 했다. 이쯤 되면 이청준이라는 작가와 그 작품세계를 겨우 몇 줄에 실어 적는다는 것은 말 그대로 옹색한 행위가 되기 십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설은 목적지조차 암담한 밤길을 걷는 것 같은 우리 삶의 동반자'라는 작가 자신의 말을 빌리자면, 소설가 이청준은 단연 우리 삶의 동반자와도 같은 작가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는 세월이 흐름에 따라 더욱 깊어가는 강처럼, 혹은 마당 한곳에 단단히 뿌리를 박고서 해마다 꽃과 열매를 선사하는 나무처럼, 가까운 곳에서 우리와 함께 문학을 일구며 끊임없이 삶에 대한 물음을 던지는 작가이다. '개인과 집단 간의 조화로운 관계는 어떻게 가능한가, 진실의 언어화를 가로막는 억압과 폭력의 정체는 무엇인가, 오염된 말들이 난무하는 소문의 벽을 넘어 말의 순수성을 회복할 길은 없는가, 지배와 해방, 복수와 용서 사이에는 또 어떤 인간적 진실이 숨어 있는가' 등등, 그는 우리의 정신을 깨우는 이러한 물음들을 적소적시에 지적인 소설언어로 치밀하게 형상화해왔던 것이다. 이러한 점이 아마도 '이청준'이라는 소설가가 우리에게 한없이 친숙한 고유명사이면서도 항상 우리의 마음을 낯설고 새롭게 파고드는 이유일 것이다. 그는 또한 소설 밖에서는 무척이나 말을 아끼는 작가이다. 그 많은 작품목록들 중에서 산문집을 찾아 읽을라치면 두 눈 크게 뜨고 찬찬히 짚어가야 겨우 발견할 수 있을 정도이다. 허나 소설가는 소설로서만 말한다는 그의 작가로서의 엄결한 자세는, 그렇기 때문에 이번 신작 산문집 <야윈 젖가슴>에 더 한층 각별한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