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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문
제1장 비판적 실재론, 사회관계 그리고 사회주의의 옹호 제2장 자연과학에서의 실재론 제3장 파이어아벤트와 바슐라르: 두 개의 과학철학 제4장 과학의 이데올로기들로서의 철학들: 실증주의 비판에 부처 제5장 사회과학적 지식의 가능성과 자연주의의 한계 제6장 과학적 설명과 인간 해방 제7장 변증법, 유물론, 지식 이론 제8장 로티, 실재론, 자유라는 이상 제9장 비판적 실재론이란 무엇인가? 역자 후기 찾아보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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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증주의와 해석학을 넘어
전통적으로 실증주의에서는 인간을 주어진 사실들을 수동적으로 감지하며, 그것의 일정한 결합을 기록하는 존재로 전제한다. 이 점에서 ‘경험주의적 존재론’은 경험적으로 확인되는 것에 대해서만 존재를 인정하는 입장이며, 이를 기초로, 실증주의/경험주의는 기본적으로 사건과 사건 간의 불변적 결합에 기초한 흄적 인과성만을 인정해 왔다. 하지만, 사실상 ‘경험’은 인간의 인식 영역의 ‘범주’이며, 따라서 경험주의적 존재론은 인식의 범주와 (인간의 의식과는 상관없는) 존재의 범주를 혼동하는 범주 오류, 또는 ‘인식적 오류’에 빠져 있는 것이다. 나아가, 이러한 해석은 세계를 설명하는 데 있어 ‘왜’라는 질문을 제기하지 않는다. 요컨대, 이러한 불변적 결합이 왜 발생했는지를 묻지 않는다는 것이다. 바스카는 이러한 견해를 “인과법칙과 그것의 경험적 근거를 잘못 동일시한 것”이라 비판한다. 실증주의와는 달리 비판적 실재론은 ‘A에 의해 자극되었을 때 B를 산출하는 경향이 있는 그러한 자연적 기제 M이 있다면, 그리고 오직 그러한 경우에만 A와 B의 연쇄가 필연적인 것’이 되며, 이때 자연적 기제 M은 A와 B의 연쇄를 설명해 주는 인과적 기제가 된다. 따라서 실증주의가 주장하는 A와 B의 연쇄는 인과성을 규정하는 것이 아니라, 인과법칙의 경험적 근거일 따름이다. 게다가, 비판적 실재론은 이러한 인과기제 M이 경험적 차원으로 환원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이를 인식하기 위해서는 존재의 층위를 구분할 필요가 있는데, 바스카는 이를 세 가지 층위로 구분한다. ‘경험적 영역’, ‘현실적 영역’, ‘실재적 영역’이 바로 그것이다. 예컨대, 성냥은 ‘발화하는 성질’을 가지고 있는데, 어떤 경우 현실적으로 발화하기도 하며, 발화한 것들 가운데 일부는 경험적으로 관찰된다. 이것들 각각을 실재적인 것, 현실적인 것, 경험적인 것으로 영역을 구분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점에서 인과기제 M은 언제나 직접적으로 경험 속에 확인되는 것은 아니며, 그것의 실재성은 ‘물질적 사물들에 변동을 가져올 수 있는 실체의 능력’에 의존한다는 것이다. 곧, 존재한다는 것은 지각된다는 것이 아니라, 무엇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결국, 이 점에서 과학은 지속적인 변증법 속에서 현상(또는 일련의 현상들)을 판별하고, 그것에 대한 설명을 구성하고, 그 설명을 경험적으로 시험하는 세 국면적 발전 도식을 갖게 되며, 이렇게 하여 작동하는 발생 기제가 판별되면, 그 기제는 다시 설명해야 할 현상이 된다. 해석학 역시 이러한 비판을 벗어나기 어렵다. 해석학은 사회과학과 자연과학 사이의 근본적인 차이에 주목하며 사회과학은 자연과학과 동일한 방식으로 연구될 수 없다고 주장한다. 해석학에서는 자연과학이 경험적 규칙성을 기록하고 사건들을 예측적인 포괄법칙에 포섭시키는 것을 목표로 삼는 반면, 인간의 행위는 특정한 목적을 가진 것이며 오로지 그 행위에 관련된 규칙 및 규범과 개념을 파악하는 것에 의해서만 이해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그러한 목적만으로는 사회를 온전히 이해할 수 없으며, 나아가 인간의 목적 자체가 허위적이거나 부적절할 수도 있는 것이다. 게다가, 해석학은 그러한 목적이 왜 발생했는지도 적절하게 설명할 수 없다. 나아가, 이들이 생각하는 사회과학과 자연과학의 차이는 기본적으로 실증주의적 과학관에 기초한 구분에 불과한 것으로, 현대 자연과학은 실증주의적, 경험주의적 방법론에 기반하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이들은 간과하고 있는 것이다. 비판적 실재론과 비판적 자연주의 비판적 실재론은 과학을 자동적 객체들(실재하는 대상)을 재현하기 위하여 사람들의 사유 속에 ‘타동적 객체들’을 창출하는 활동/실천으로 파악한다. 여기서 자동적 객체란 인간의 의식 및 과학의 과정 밖에 존재하는 변함없는 실재적 객체들을 가리키며, 타동적 객체들이란 과학적 실천을 통해 만들어 낸 인지적, 이론적 객체들을 말한다. 비판적 실재론에서 이러한 구분은 매우 중요한데, 비판적 실재론은 타동적 차원의 객체들과 자동적 차원의 객체들 사이의 비동일성, 즉 사유와 존재의 비동일성을 단언하기 때문이다. 이와 달리, 인식론적으로 경도된 근대 철학은, 자동적 객체와 타동적 객체 사이의 일치 여부를 보증해 줄 수 있는 확실한 기초를 찾으려 노력했으며, 그 과정에서 존재를 인식에 입각하여 정의하는 인식적 오류, 인간중심적 세계 인식의 오류를 범했던 것이다. 반면, 비판적 실재론은 실재를 탈인간중심화해야 함을 역설한다. 그렇다면, 과학적 이론의 진리성 여부는 어떻게 파악할 수 있을까? 바스카는 자동적 객체와 타동적 객체 사이의 직접적 일치 여부를 묻는 것을 불가능하다고 주장한다. 요컨대, 근대 철학이 그토록 찾고자 했던 대상과 인식의 일치를 보장하는 아르키메데스의 점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론의 진리성 여부를 알 수 없는 것인가? 결국, 회의주의에 굴복해야 한다는 것일까? 바스카는 이를 라카토스의 과학적 연구 기획의 방법론을 쫓아 ‘이론들’ ‘사이’에서의 선택으로 개념화한다. 즉, 우리는 어떤 이론(타동적 객체)이 대상(자동적 객체)과 직접적으로 일치하는지를 알 수는 없지만, 어떤 이론 T가 더 많은 경험적 내용을 갖고 있으며, 그것이 확인된다면, 다른 이론 T'보다 더 좋은 이론이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 우리는 언제나 한 대상에 대해 경쟁하고 있는 이론들을 만나게 되며, 대개의 경우 우리는 그 가운데에서 어느 한 이론을 선택할 합리적인 근거를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자연과학과 사회과학의 차이는 무엇인가? 바스카에 따르면, 사회도 자연과 마찬가지로 과학적 연구의 대상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단, 사회는 자연과는 달리 세 가지의 한계가 존재한다. 즉, 존재적 차이, 인식적 차이, 관계적 차이가 그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존재적 차이란, 사회과학의 대상이 되는 사회는 인간의 행위 없이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는 사회과학의 대상을 이루는 사회가 언제나 역사적이며, 문화적이라는 측면을 말한다. 인식적 차이란, 사회과학에서는 자연과학과는 달리, 실험실과 같은 폐쇄체계를 구성할 수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와 같은 상황은 주류 사회과학 방법론자들이 주장을 무화시킬 따름이다. 즉, 주류 사회과학 방법론자들, 특히 실증주의자들의 주장과는 달리, 사회과학에서 이론에 대한 합리적 확증과 기각의 기준이 예측일 수는 없으며, 따라서 전적으로 설명적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관계적 차이가 있다. 관계적 한계는, 사회과학은 그 자체가 자신이 탐구하려는 영역의 일부로서 원칙적으로 그것이 채용하는 설명적 이론들의 개념들과 법칙들에 영향을 받는다는 사실이다. 특히, 관계적 차이는 중요한데, 실재론적 사회과학은 설명적 비판이라는 개념의 발전을 통하여, 표준적인 사실/가치, 이론/실천의 구분의 붕괴를 촉발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요컨대, 바스카의 비판적 자연주의는 원칙적으로 인간 과학들을 실증주의적이고 도구주의적인 예측과 통제의 목표로부터 분리시켜, 심층설명과 인간해방이라는 실재론적인 목적으로 재정향지으려는 시도인 것이다. 예측과 통제를 넘어, 설명과 비판, 해방의 사회과학으로. 현재 사회과학 방법론의 정통으로 간주되는 실증주의를 비롯한 경험주의는 바로 경험적 규칙성과 사례·확증(또는 반증)의 독단에 기초하고 있다. 즉 법칙은 경험적 규칙성이거나 또는 그것에 의존하며, 그것들에 대한 적절한 통계와 예측을 통해 확증(또는 반증)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정통의 설명은 존재하는 것을 경험적인 것으로 한정한다는 점에서 존재론적으로 지나치게 제한적이며, 이에 기초한 이론을 실재에 대한 올바른 재현으로 승인한다는 점에서 인식론적으로 지나치게 관대한 것이다. 이 점에서, 자연 발생적인 사유의 방식과 이것을 반영하는 철학적 경험주의는 그 실재를 신비화한다. 왜냐하면, 경험주의는 사회적 실천인 과학을 통해 파악된 (사회적/이론적) 사실을, 자연적 사실로 만들기/믿기 때문이다. 사회적/이론적 사실들을 자연화함으로써 탄생하는 물신주의는, 그 사실들을 발생 또는 유지시키는 사회적 맥락에 대한 설명을 좌절시키며, 현실을 있는 그대로 승인하게 된다. 요컨대, 현실을 탈역사화하고 영구화하게 된다. 경험주의의 이러한 한계는, 방법론적 개인주의에서 명확하게 드러난다. 방법론적 개인주의는 사회 및 사회적 현상들에 관한 사실들이 오로지 개인들에 관한 사실들에 입각하여 설명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방법론적 개인주의를 채택하는 순간 이론가는 곤란에 처하게 되는데, 사회 분석의 기반으로서 ‘개인’을 불러내자마자, 그 ‘개인’을 설명하는 술어들이 ‘사회적인 술어’라는 점을 발견하게 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사람들이 가진 특별한 속성을 가리키는 술어들은 모두 그것들의 사용에서 사회적 맥락을 전제하기 때문”에 우리는 개인을 사회 분석을 위한 최초의 시작점으로 상정하자마자 다시 사회적인 맥락 속에서 개인의 행위를 재정의 할 수밖에 없는 모순에 처하게 되는 것이다. 게다가, 방법론적 개인주의는 인간이 어떻게 행위하는가를 설명하긴 하지만 인간이 무슨 행위를 하며 또한 그 행위를 왜 하는지에 대해서는 아무런 설명을 해주지 않는다. 방법론적 개인주의자들에게 인간의 이성은 욕망의 효과적인 노예에 불과하다. 따라서 이러한 방식 속에서 인간들이 이성적이라고 말해지는 것은, 그들이 무엇을 하는가를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기껏해야 오로지 그들이 어떻게 그것을 하는가를 설명할 뿐이다. 따라서 이것은 사회학이라고 하기보다는 인간 행위학(praxiology)에 다름 아닌 것이다 이와 달리, 비판적 실재론은 인간과학들이 본래 비판적이며 자기비판적이라고 파악한다. 즉, 사회적 객체들에 대한 해명은 가치가 주입되어 있는 것일 뿐만 아니라 가치를 주입하는 것이다. 그리고 보통 사람들의 (그리고 원시 과학적) 견해에 대한 과학적 비판은 본질적으로 해방적 충동을 가질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어떤 일정한 허위의식, 또는 ‘허위’라고 지적할 수 있는 어떤 일정한 의식의 필연성을 우리가 설명할 수 있다면, 그 의식이 발생하게 된 원인에 대한 부정적 평가와 그것의 해소를 지향하는 행위에 대한 긍정적 평가가 뒤따르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비판적 사회과학과 비판적 실재론 이와 같은 바스카의 비판적 실재론은 포퍼에 의해, 본질주의, 역사주의로 비판받았던 마르크스주의 연구방법론의 과학적 성격을 설명해 줄 수 있는 것으로 많은 마르크스주의자들에게 각광을 받고 있다. 대표적인 이론가들로 마르크스주의 국가론자인 밥 제솝을 비롯한 일군의 조절이론가들과 영국 마르크스주의 철학자인 알렉스 캘리니코스, 마르크스주의 계급이론의 선두 주자인 에릭 올린 라이트, 지리학자인 마이클 웨버, 구성주의 국제정치 이론가인 A. 웬트 등을 그 예로 들 수 있다. |